공군본부 감찰실장 이상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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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자료실.소장

2014. 2. 10.

 

 이상길(56. 소장.고창읍)공군 군수사령관이 공군 인사이동으로 공군 감찰실장에 보임됐다. 이상길 장군은 고창인으로는 처음으로 공군소장에 오른 정통파일럿 출신이다.


고창남초 6회와 고창중 19회, 서울 서라벌고를 졸업하고 공사 26기로 임관했다.


그는 미국 해군 대학원과 캐나다 국방 대학원 안보과정을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로 3천시간 가까운 비행경력을 갖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 대대장, 17전투비행단 비행전대장, 공군본부 정책차장을 거쳐 2004년 7월 장군으로 진급했다.


제11전투비행단장, 공군본부 인사운영단장을 거쳐 2007년 5월 소장으로 진급해 대한민국 공군의 핵심전력인 남부전투사령관에 취임했다.


이후 군수사령관을 역임했다.


ⓒ 고창코리아(http://www.gochangkorea.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2011.01.07  

기고-앞으로 가야 할 멀고도 먼 길 붕정만리<鵬程萬里>
/ 2012.01.17
이상길 소장
공군본부 감찰실장

붕정만리(鵬程萬里). 전설 속의 새인 ‘붕’의 만리여정을 나타낸 고사성어로, ‘앞으로 가야 할 멀고도 먼 길’을 뜻한다. 또 10년 전 발생한 헬기사고와 관련해 내가 동료 조종사로서 느꼈던 소회와 각오를 담아 국방일보에 기고했던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공군본부 감찰실장을 마지막으로 38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 같은 제목으로 다시 글을 쓰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3주 전, 전투조종사로서의 마지막 비행을 내 젊음과 청춘을 바쳤던 팬텀 비행대대에서 마쳤다. 2~3일 전부터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는 등 요란스러울 정도로 비행을 준비했던 탓에 삼십 년을 넘게 전투조종사의 아내로 살아온 집사람도 안전을 걱정했다.

장군이 굳이 위험한 비행을 하느냐며 핀잔을 주던 친구가 떠오른다. 하지만 “조종사에게 비행은 의무이자 명예이고, 후배들과의 교감을 위해 장군들도 비행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창한 소명의식으로 조종사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렵고 위험한 순간 속에서도 긍지와 자부심으로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3차원 공간에서 견디기 어려운 G-force와 블랙아웃(Black out, 중력가속도의 영향으로 눈앞이 깜깜해지다가 심하면 의식을 상실하는 현상)을 이겨내면서 희열을 느낄 때도 많았다.

소령 시절 88올림픽 기간 중 심야초계비행을 하며 느꼈던 짜릿함은 아직도 뇌리에 뚜렷하다. 하지만 매 순간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동료들이 산화해 우리 곁을 떠날 때마다 받았던 충격과 비통함은 여전히 떨치기 어렵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비행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언론과 국민들이 기강해이와 과실 의혹을 제기할 때였다.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조종간을 잡는 후배들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지상처럼 세우고 점검할 수 없는 3차원 공간에서 진행되는 공중상황의 특수성을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한다면, 비행사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쉬웠던 점은 4~5년 전 앞날이 창창한 조종사 후배들이 다수 전역한 것을 두고 단지 돈 때문에 민항으로 이직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을 때다. 공군본부 감찰실장 임무를 수행하며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했지만, 또다시 2건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안타깝지만, 지난 한 해 비행안전을 위한 노력과 정성은 전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내일의 비행안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마음의 고향 공군을 떠나지만, 후배들은 국민들의 진정한 격려 속에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10년 전 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붕정만리의 각오로 우리가 가야 할 ‘멀고도 먼 길’, 조국을 위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조종간을 더욱 굳게 잡아야 될 줄 안다. 오늘도 하늘로 비상하는 젊은 보라매들의 앞길에 무한한 축복과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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