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사단장 황병태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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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자료실.소장

2014. 2. 12.

 

육군 제21사단장 이·취임식이 29일 오후 사단사령부 대연병장에서 김승겸 3군단장과 황병태(사진 오른쪽) 신임 사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2017년 09월 30일

                                                   합동참모부 황병태 소장(군동면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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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부장 황병태 육군 소장
최선 다하는 군인의 길

송하훈이 만난 사람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부장 황병태 육군 소장

최선 다하는 군인의 길

‘아름다운 강진 향우’

 

“전투복은 수의(壽衣)요, 군번은 묘비(墓碑)라는 각오로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亡戰必危)의 정신을 다집니다”

천아수안 망전필위 : 천하가 비록 평안할지라도 전쟁을 잊어버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강진이 낳은 스타 황병태 장군. 장군은 1958년 강진군 군동면 영포마을에서 출생했다. 황 장군은 계산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진학해 서울 청덕초등학교, 동국대 부속중학교,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3사관학교 16기 출신이다. 맹호사단 소위로 임관한 황장군은 주로 통신관련 분야에서 근무를 해왔다. 주요보직으로는 5군단 정보통신단장, 육군본부인사검증위원, 제1야전군사령부지휘통신참모처장, 국군지휘통신사령관 등의 직책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2009년 12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데 이어 2011년 4월에 다시 소장으로 진급했다. 이제 황장군은 대한민국의 땅과 바다와 하늘의 모든 정보를 책임진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계산초 18회 졸업생인 황장군의 인척으로는 현재 강진의원을 운영하는 황민홍 원장이 6촌 형제이며, 부인 성숙자(54)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현재 아들 황정훈씨는 육군 대위로 복무하고 있고, 딸 황여주씨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연세대 의대 출신의 의사와 결혼을 앞두고 있어 다복한 가정이다.

황장군은 “군동면 금곡마을에 선산이 있어 일년에 한 두 차례는 반드시 고향을 찾는다”며 “강진출신으로 자긍심을 갖고 군생활에 전념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장군이 고향을 찾는 것은 꿈을 키우고 성취할 수 있는 육체와 마음의 영원한 안식처로서 자리 매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장군은 오직 군인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전투복은 수의(壽衣)요, 군번은 묘비(墓碑)’라는 각오로 살아왔다. 국가와 나라를 위한 국궁진췌(鞠躬盡瘁)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는 권력과 부와 명예가 있지만 황장군은 군인으로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명예를 최우선시하며 오직 한 우물만 파겠다는 자세로 근무에 임하고 있다.

 

▶군인의 꽃인 육군 소장으로 진급한 소감은?

--77년부터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36년간 일해 왔다. 준장으로 진급했을 때 ‘하늘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1.500여 명이 똑 같이 소위 임관을 받았는데, 드디어 별을 달았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장군이 되면 우선 신분부터 달라진다. 복장은 물론 신발과 혁대까지 달라지고 차량이 지급된다. 그러나 이내 현실로 돌아오면서 내가 해내야하는 책임의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예전과는 다르게 훨씬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6시에 집을 나서서 6시 반에 출근을 하고 있다. 내 직속상사는 나보다 더 빨리 출근을 하고 있다. 군인의 꽃이지만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왔다 갔다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亡戰必危), 즉 천하가 비록 평안할지라도 전쟁을 잊어버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각오와 평소 생활신조인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것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군인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평소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해 왔다. 그 분의 철학처럼 내가 조국과 사회와 조직에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몸소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 목표를 가지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다. 그동안 전후방 각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최근 천안함, 연평도 도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개혁 추진 등과 더불어 군사분야도 변화가 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사이버공간의 확장과 스마트폰 등장으로 사회도 디지털, 정보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데, 군사분야에서도 패러다임 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고, 그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싸워 이기는 지휘통신부대’ ‘강한 정보통신병과’를 육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 현재는 합참 지휘통신부장으로서 합참으로부터 창끝 부대까지 원활한 상황인식과 지휘통제를 보장하기 위한 정보공유를 위해 현존하는 지휘통신 전력을 극대화하고 적보다 압도적 우위로 싸워 이기는 지휘통신 부대원을 육성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군인은 누구나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명예를 죽음으로라도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강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인은 생과 사가 교차하는 극한상황 속애서도 자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내던질 수 있는 사생관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크다. 이러한 사생관은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더욱 크고 숭고한 가치가 보존된다는 믿음, 명예로운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뛰어넘어 영원히 사는 삶이 된다는 확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죽음마저 기꺼이 택하는 용기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군인의 길을 간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직업군인의 희생은 또 다른 의미로 볼 때 절대적 존재인 조국의 안전과 국민들의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가장 귀한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다는 것이다. 무력을 관리하는 막중한 지위를 맡겨 준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군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군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전후방 각지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큰아들의 경우 중학교 3년 동안 1학년 때 철원, 2학년 때 경기포천, 3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다닐 정도였다. 게다가 항상 부대업무가 바쁘다 보니 이사를 할 때도 도와주질 못해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군인으로서의 삶은 나라와 민족이 더 우선이기 때문에 가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 적은 없지만 그런 남편을 믿고 따라와 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이것은 36년 동안 늘 가져온 기억이다.

초급장교시절 산골벽지에서 근무를 하면서 고생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별천지에서 살았구나 싶다. 간혹 옛 근무지를 지나칠 때마다 현대인들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휴식의 공간, 여유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그것이 오늘 날에 와서는 잔잔한 감동으로 남는다.

그리고 정보통신단장 시절에 군생활이 너무 힘들어하는 병사들을 간부 모두가 정성과 배려로 지도함으로써 나약했던 마음을 고쳐먹고 전역할 때까지 적응하고 굳건히 군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해온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하고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이 지금은 결혼해서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기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수조직인 군에서 본인이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구성원이 사고를 내면 책임을 면치 못한다. 당연히 승진도 어려울 것이다. 소장까지 진급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인적 자원의 손실이 없어야 한다. 그럴려면 사고예방이 철저하게 필요하다. 소위 때부터 전방에서 근무를 많이 했는데 항상 체크하는 생활을 했다. 왜냐하면 사고가 나서 뒷처리는 힘들지만 사고예방은 더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의 귀한 집 자식에게 사고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인간적 면도 늘 생각했다. 그것이 간부로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군생활 중 자살자 1명도 없었고, 탈영한 사람 역시 1명도 없었다. 당연히 큰 사고가 전혀 없었는데, 그것은 초급간부시절부터 병사와 현장에서 함께 해온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확인, 확인하는 방법 밖에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체크하고 또 체크하는 일은 나를 살리고 조직을 살리며 조국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화재며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특히 장비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작은 부분 하나라도 놓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운동은 주로 무엇을 해왔는가?

 

-- 마라톤을 해왔다. 42.195km를 8회 완주하였고, 하프 정도는 20~30회 한 것 같다. 군인은 무엇보다도 체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마라톤을 해왔는데, 그 운동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바쁜 생활인데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대담: 서울 송하훈 기자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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