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기 육군소장님 묘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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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장군2묘역

2014. 7. 22.

 

 

윤흥기 장군 견장 달아주는 노태우 제9공수여단장에 취임하는 윤흥기 준장, 오른쪽이 정병주 특전사령관, 왼쪽이 전임 여단장이었던 노태우 준장이 윤 준장에게 지휘관 견장을 달아 주고 있다.

ⓒ 윤흥기 장군 가족 제공

 

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 측을 진압하러 출동했다 회군한 윤흥기(사진) 예비역 육군 소장(당시 9공수여단장)이 1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80세. 고인은 당시 신군부를 저지하기 위해 싸운 핵심 장성 5인(정승화 육군참모총장,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윤흥기 9공수여단장) 중 마지막 생존자다.

 9공수여단의 회군은 12·12 사태, 나아가 80년대 이후 한국 역사를 좌우할 결정적 국면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진압군 측의 유일한 출동부대였던 9공수여단은 신군부 측 1공수여단보다 서울에 더 빨리 도착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9공수여단이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회군하지 않고 곧장 서울로 진입했다면 쿠데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는 역사의 가정법일 따름. 그때 9공수여단은 “서울시내 피해가 예상되니 일단 쌍방이 철수한다”는 육군본부와 신군부의 ‘신사협정’에 따라 회군했고, 신군부 측 1공수여단은 그대로 서울로 진입해 육군본부 등을 무장해제하면서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고인은 1993년 7월 정승화 예비역 대장 등과 함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 주도세력 34명을 반란죄 등으로 고소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전립선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12·12 쿠데타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6월 이른바 ‘전두환법’ 통과 직후부터 병세가 악화돼 연명치료를 하고 있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30분이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02-3010-2292.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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