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노형동]베트남참전 위령탑 및 故 송서규대령 동상

댓글 0

☞제주도현충시설

2014. 8. 31.

 

 

 

故 宋瑞奎大領銅像 建立記

나를 따르라! 自由·正義·平和

고 송서규대령은 1933년 5월11일 여산(礪山)송씨 성능(成能)의 3남3녀 중 장남으로 서귀중학교(현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병으로 자원입대하였으며, 육군본부 직할 특수부대 작전참모 등을 5·16군사혁명 시에는 혁명부 검찰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혁명공약에 따라 군으로 복귀 후 공수특전단 대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6년 8월 백마(白馬)부대 대대장으로 월남(越南)에 참전 오작교 작전, 비마작전, 부루도자 작전 등 많은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항상 부하들과 동고동락하고 앞장서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았다. 1967년 11월6일 귀국을 2일 남긴 상태에서 닌호아 지역에 월맹군과 베트공이 침투하자 아직 현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후임 대대장에게 맞기지 못하고 지휘 중 휘하 1개중대가 늪지대에 고립되어 중대장과 소대장이 부상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자 전투현장에서 특공조를 편성, 선두에서 지휘 적을 물리치고 부하들을 구출하였으나, 자신은 집중공격을 받아 아깝게 전사하였다. 국가에서는 살신성인과 불굴의 정신을 높이 평가 일계급 특진과 함께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太極武功勳章)을 추서(追敍)하였다. 제주가 낳은 참 군인인 고 송서규대령의 공적과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제주의 혼으로서 나라와 겨레의 빛이 되길 기원하고자 국가보훈처, 제주도청, 베트남참전유공자회, 갑종간부 7기 동기회와 유족이 뜻을 모아 민족의 얼이 서린 영산 한라산 자락에 명예로운 동상을 세운다.

서기 2006년 5월 6일

베트남참전 위령탑 및 故 송서규대령 동상건립추진위원회

사진과 글 출쳐=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7pY9&articleno=15913244&maxNo=15913274&minNo=15913244&maxDt=20101220145910&minDt=20100914130232&maxListNo=0&minListNo=0&maxListDt=&minListDt=¤tPage=1&beforePage=1&categoryId=683441#

 

 

'베트남 전쟁영웅' 故 송서규 대령 추모식 열려

 

“한때 저의 인생을 한탄하면서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오늘 살아서 이 자리에 와서 남편의 동상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한이 다 씻어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 1967년 주월 한국군 닌호아 작전시 최전방 전투원으로 참가했다 작렬하게 전사한 ‘베트남 전쟁의 영웅’ 故 송서규 대령의 미망인 허록 여사(74)의 말이다.

6일 월남참전위령탑 및 故 송서규 대령의 동상이 세워진 제주시 충혼묘지 앞 광장에서 고 송서규 대령 39주기 추모식이 육군보병학교 갑종7기회(회장 이용택)주최로 각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숙연한 분위기 속에 열렸다.

2차례에 걸친 폐암 수술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헉헉 차오를 정도로 병든 몸을 이끌고 서울에서 이 곳 추모식장을 찾은 허 여사.

지난 5월 송 대령의 동상제막식이 있었지만 건강이 악화되고 기상까지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던 허 여사는 이날 추모식에는 산소호흡기라도 달고서라도 꼭 남편을 보러 가겠다는 각오로 이날 추모식에 참석, 40년의 긴 세월동안 쌓였던 회한을 모두 씻어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화여고 3학년이었던 허 여사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1기이자 생도 1번으로 참전하는 등 군에 발을 들여 놓은 인연으로 61년 송 대령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결혼 후 2남1녀를 두었지만 장남과 딸을 먼저 보내는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혼 5년만에 다시 남편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잃어버렸다.

허 여사는 “남편처럼 이역만리 땅에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숨져간 장병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그 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평생 가슴 속에 안고 흘리고 다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감사의 인사와 남편의 동상까지 보니 이제 인생을 마무리해도 여한이 없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 송서규 대령

송서규 대령은 지난 1993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51년 6월 육국보병학교 갑종7기로 자진 입대, 같은해 12월 육군소위로 임관한 뒤 66년 백마부대 대대장으로 월남에 참전, 오작교 작전, 비마작전, 부르도자작전 등 많은 작전에 참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난 67년 오늘 임기가 끝나고 귀국을 이틀 남긴 상태에서 닌호아 지역에 월맹국과 베트공이 침투하자, 현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후임 대대장에게 작전지휘를 맡길 수 없어 직접 지휘하게 된다.

그러던 중 1개 중대가 적에게 포위되고 중대장과 소대장이 부상당하는 등 위급한 상황에 놓이자 특공조를 편성 직접 최일선 전투를 감행하며 위기를 모면, 부하들을 구출했으나 자신은 적의 집중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이 같은 송 대령의 살신성인과 불굴의 군인정신을 기려 1계급 특진과 군인으로서는 최고 영예인 태국무공훈장이 추서됐고 현재 유해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2006년 11월 07일 (화)

제주매일(http://www.jejumaeil.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