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월평동] 전사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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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현충시설

2014. 9. 18.

 

 

 

위치 ; 제주시 월평동 1128-2번지(아봉로337). 제주중앙고등학교에서 동쪽으로 동산길을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휘는 길 동쪽 마을 표석 옆에 있다.
유형 ; 비석(전사추모비)
시대 ; 대한민국
1948년 12월 28일 9연대와 교체한 2연대는 본격적인 산간지역 토벌을 강화하였다. 해안선에서 5km 이상의 지역을 적성지역으로 간주하여 보이는 대로 총격을 가하는 식으로 토벌작전을 감행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소개하지 않은 주민들의 희생이 컸다. 이에 대하여 무장대도 필사적인 대응을 하면서 크고작은 교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대부분은 매복에 의한 공격이 양측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희생자도 많이 발생하였다.(아픔을 딛고 선 제주 84쪽)
2연대 병력이 공비소탕 목적으로 출동하여 새벽에 월평동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월평동에 매복하였던 무장공비들이 기습공격으로 전투가 벌어져 치명적인 피해를 당하여 7명이 전사하였다. 그 피해를 보복하기 위하여 1949년 1월 3일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이 전개되어 이웃 용강마을 주민이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여 양민 93명이 억울한 희생을 당하였다. 현재 월평마을 입구 전투장소에 전사한 7명의 전적비가 서 있으며 그 당시 이야기로는 전사자 모두가 화장되었다고 전해진다.(월평동 마을지 『다라쿳』 82-85쪽)
비석 앞면 ; 육군 일등상사 朴九漢 이등상사 裵順玉 閔龍桓 이등중사 崔福圭 尹成重 金東榮 申永根
비석 뒷면 ; 諸 烈士는 일찍이 麗順事件을 鎭壓하고 단기 4281년 12월 28일 제주 進駐하여 每日과 같은 작전에서 卓越한 공적을 세워 단기 4282년 1월 16일부터 4월 13일까지 월평리 전투에서 赤匪를 待機殲滅作戰中 不幸이도 凶彈이 命中하야 名譽의 戰死를 遂함. 육군보병제2연대 장병 일동 단기 4282년 7월 일 建之

이 사건을 월평동마을지에는 1948년 12월 하순 경이라고 기록하였으나 비석에는 1월16일부터 4월13일까지라고 쓴 것으로 보아 마을지의 기록이 음력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마을지에는 한꺼번에 7명이 피해를 당한 것처럼 기록하였으나 비석의 내용은 약 3개월에 걸친 작전에서 전사한 분이 7명인 것으로 기록하였다.
말방앗돌(윗돌)을 받침돌로 이용하여 시멘트 몰탈로 고정하였다. 도로확장포장으로 비석은 원래 자리에서 약간 이동된 상태이며 이동 과정에서 심하게 기울어진 채로 방치된 느낌을 준다. 비문도 일부분 마모되었다.
2014년 2월에 정비되었다.
《작성 130406, 보완 140324》

http://www.jejuhistory.co.kr/bbs/view.php?id=local&page=1&sn1=&divpage=1&sn=off&ss=on&sc=on&cate=type&cate_no=18&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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