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무공훈장]아덴만 여명작전 검문검색대 공격1팀장 김규환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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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무공훈장

2017. 10. 2.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검문검색대 공격1팀장 임무를 수행한 김규환 소령. 사진제공=채홍강중사

◆특수전여단 공격1팀장 대위 김규환.2011.01.25

 21일 새벽 3시. 눈을 떴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구나’. 피탄 고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 1차 작전 때 선두에 서서 작전을 하다 부상한 대장(안병주 소령)의 고글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대로 잠을 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대원들은 밤새 잘 잤느냐는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았다. “역사적인 날에 우리 대원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 뒤 늘 하듯 파이팅을 외쳤다. 전투배치 방송이 나오고 중갑판으로 이동했다. 고속단정 진수 후 은밀 기동을 시작했 다.

 링스헬기가 K-6 사격을 가하고 최영함에서 포 사격이 시작됐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간간이 들리는 저격수의 사격소리를 들으며 선체 등반을 위해 접근을 시작했다. 1팀의 안착 소식이 들렸다. 성공이다. 대테러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믿음이다. 평소 피나는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닌, 몸이 알게 하는 것이다. 선교에서 선원들의 사진을 대조해 가며 신원을 확인할 때 그들의 안도하는 모습과 우리를 향해 박수쳐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청해부대 검문검색대원들이 고속단정에 탑승, 4400톤급 구축함과 파도를 가르고 있다.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검문검색대는 아덴만 여명작전 성공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해군 제공

청해부대 최영함의 해군 특수전 여단(UDT/SEAL) 요원 25명이 ‘아덴만 여명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하루가 지난 22일 최영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영함 소속 특수전 요원 30명 가운데 3명은 지난 18일 1차 작전 때 부상을 당해 치료 중이고, 2명은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해 호위 근무를 하고 있다. 요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대테러 진압작전·대북특수 임무 등에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해군 제공] 2011.01.25

아덴만 여명작전 주역 2년만에 재회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21일 해군 부산작전기기에서 열린 '아덴만 여명작전' 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석해균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과 석 선장을 치료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 등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검문검색대원 김평민 중사, 이 교수, 석 선장, 검문검색팀장 김규환 소령(진). 2013.1.21. ccho@yna.co.kr

아덴만 작전 주역들

(서울=연합뉴스) 3년 전 청해부대 지휘관으로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영주 해군 준장(해사 40기,왼쪽)과 해군 특수전 전단(UDT/SEAL) 소속으로 당시 검문·검색대 공격팀장이었던 김규환 소령(해사 57기). 2014.1.20 << 해군 제공 >> photo@yna.co.kr

 

장병 끊임없는 반복 숙달 훈련‘전광석화’ 작전으로 임무 완수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무사히 구출하고 해적 10여 명을 생포·사살한 쾌거. 세계 인질구출작전 역사에 ‘퍼펙트’ 기록을 남긴 아덴만 여명작전이 4주년을 맞았다. 2011년 1월 21일 새벽 이역만리 해상에서 펼쳐진 작전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국군의 뛰어난 임무수행 능력을 지구촌 곳곳에 알리는 자양분이 됐다. 작전 성공 4주년을 기념해 그날의 감격을 생생히 전달하는 릴레이 인터뷰와 리뷰(Review), 청해부대 파병 6년의 성과 등을 연속 3회로 소개한다.

 

 # 물 흐르듯 삼박자 ‘척척’…금자탑 완성

 “지금도 눈을 감으면 작전 현장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작전 종료 후 대원들과 나눈 진한 포옹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대테러복 대신 함정 근무복을 입은 김규환 소령. 그는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청해부대 6진 검문검색대 공격1팀장 임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해군1함대 호위함(FF) 부산함에서 포술장으로 근무 중이다.

 김 소령은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짜릿함이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고 있다고 말했다.

 “작전 준비 과정에서 많은 대원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 대원들은 ‘국가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특수전 대원이 되자’고 다짐한 후 주저 없이 고속단정(RIB)에 올랐습니다. 수없이 반복 숙달했던 훈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군인으로서의 사명감, 서로 믿고 지켜주겠다는 전우들의 눈빛을 보며 이 작전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습니다. 작전 종료 후 동료들과 나눈 진한 포옹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청해부대는 파병 3개월 전부터 교육훈련에 심혈을 기울인다. 3단계에 걸친 개인·분야별 교육훈련으로 임무수행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 검문검색대도 마찬가지다. 1단계 개인임무 숙달 훈련, 2단계 팀워크 훈련, 3단계 종합훈련을 진행한다.

 공격팀은 특수전 기초훈련(24주)과 해상대테러 과정(6주)을 이수한 대테러 전문요원으로 구성한다. 이들의 탄탄한 기본기와 고도의 팀워크는 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검문검색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중·해상·해중 침투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또 야시경·방독면 등 보유장비를 활용한 훈련, 흔들리는 선박·헬기에서 저격하는 능력 향상을 위해 모의구동장치 사격훈련을 병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 능력과 팀워크가 크게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렸습니다.”

 우리 군은 작전 당시 2~3명의 검문검색대원이 중경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군작전사령부는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되자 똑같은 선박의 도면과 사진을 청해부대에 보냈다. UDT/SEAL은 시뮬레이션 훈련을 전개해 이동·등반시간, 진압 경로 등을 제공했다. 미국·오만 해군 등 우방국과의 실시간 정보 공유도 원활했다. 석해균 선장도 이 같은 작전지원 덕분에 미군 헬기를 이용, 안전한 후송이 가능했다.

 “검문검색대는 분초 단위로 작전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또 선박 도면과 인질의 예상 위치, 인적사항을 암기한 후 머리가 아닌 몸이 반응하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작전은 전광석화처럼 펼쳐졌습니다. 선박 등반 때는 최영함·해상작전헬기·저격수의 위협·엄호사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상급부대의 전폭적인 지원과 현장지휘능력, 연합공조체계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루어진 금자탑입니다.”

 

 # 조건반사적 행동절차…작전 성공 ‘방점’

 어느 군사작전이나 고비는 있기 마련이다. 아덴만 여명작전도 그랬다. 김 소령이 꼽는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사다리를 설치하고 선박에 오를 때와 수색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석 선장을 후송해야 했던 상황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선박에 올라가는 순간은 작전팀이 가장 많이 위험에 노출되는 시기이며, 선박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후송은 잔여 해적의 기습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원들은 마치 훈련을 하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훈련 시의 땀 한 방울이 전투 때의 피 한 방울’이라는 자세로 실전적 훈련을 수행한 결과입니다. 특히 우리 국민과 선박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사명감과 ‘불가능은 없다’라는 UDT/SEAL 신념이 어우러져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했습니다. 검문검색대를 포함한 청해부대 6진은 조건반사적인 행동절차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극복하고 퍼펙트 작전을 완성했습니다.”

 김 소령은 청해부대 파병에서 복귀한 후 1년7개월 동안 UDT/SEAL 작전참모실에서 작전관 임무를 수행했다. 이어 국방대학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난 15일 함정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아덴만 여명작전 성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김 소령은 과분한(?) 상훈에 보답하기 위해 국민의 군대 확립에 전력투구할 것을 다짐했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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