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훈장]히로시 H. 미야무라 미 육군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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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미국 명예훈장

2017. 10. 7.

 

[히로시 "허쉬" 미야무라 하사의 사진. ⓒ National Archives]

일본계 미국인 2세인 히로시 미야무라는 1951년 4월 24일 연천 대전리전투에서 용전분투해 5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맡은 위치를 끝까지 사수하다 중공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 그는 28개월간의 포로 생활을 견뎌낸 뒤 석방돼 명예훈장을 받았다

[미야무라 하사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고 악수하는 모습.

히로시 "허쉬" 미야무라 (Hiroshi "Hershey" Miyamura)는 1925년 10월 6일, 미 뉴멕시코주의 갤럽
(Gallup)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입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들어선 1944년 미 육군에 징
집되어, 일본계 장병들로 구성된 제442 보병연대 (442nd Infantry Regiment)에 잠시 근무했습니다.

자신들의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일본계 병사들이 싸운 이 부대는 21명의 명예의 훈장 (Medal
of Honor) 수상자를 포함해서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기록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
작 미야무라가 본인은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5일 전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죠. 일본이 항복한 이후, 미 육군에서 제
대한 미야무라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자동차 정비사 일자리를 기다리면서 미 육군 예비군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53년 8월, 포로수용소에서 귀환한 미야무라 상병이 오스본 소장으로부터 명예의 훈장 수여자가
되었다며 축하받는 모습. ⓒ unknown]

그 와중에 측면으로 들어오는 적군들을 알아챈 미야무라 상병은 주저없이 참호에서 뛰쳐나와 총검으
로 10여명 이상의 중공군 병사들을 물리치면서 그의 분대에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분대로 돌아온 미야무라 상병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철수를 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또다른 중공군의 부대가 갑자기 몰려오자, 미야무라 상병은 30 구경 기관총을 가지고 총
탄이 떨어질 때까지 효과적으로 적들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분대는 거의 몰살당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병사들에게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미야무라 상병 자신은 적이 탈취 못하도록 기관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는데, 또다시 중공군들
이 밀고오자, 총검으로 적 병사들을 물리치면서 두번째 기관총 진지로 가서 남아있던 미군 병사들에
게 후퇴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남아서 기관총으로 엄호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미야무라 상병이 그의 분대원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고, 그 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쏟아지는 중공군의 물결은 단 한명의 기관총 사수에 의해 막혔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자, 미야무라
상병은 은폐된 벙커에 피신했다고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쏜 기관총 앞에는 50명 이상의 중공군 시체들이 널려있었다고 하네요. 야간을 틈타
적군과 마주치면 백병전으로 제압하면서, 미야무라 상병은 수천명의 중공군이 둘러싼 언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썼지만, 25일 새벽 즈음에는 얼어버린 시체인 척하면서 적을 속여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가던 수백명의 중공군 중에 한 중공군 장교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한 미야무라 상병
은 끝내 포로가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후 28개월 동안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지냈고, 따라서 바깥
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은 직후,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한 미야무라 하사의 모습. ⓒ unknown]

포로수용소에서 미야무라 상병은 그의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의 분대원들이 무사히
탈출했을 지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의 분대원들 상당수가 무사히 귀환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미야
무라 상병은 분대원들 대부분이 부상당했거나 전사했을 것으로 믿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때 미야무라 상병은 많은 분대원들을 잃었기 때문에 군사법정에 불려나갈 것으로 믿기까
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53년 8월 23일 그가 판문점 인근의 자유의 마을을 통해 귀환했을 때 미
야무라 '하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가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중공군이 미야무라 하사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것처럼, 미군도 그가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게된

사실을 최고기밀 (Top Secret)로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랠프 오스본 (Ralph Osborne) 준장은
이 사실이 중공군 귀에 들어가면 미야무라 본인에게 가해질 일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협정-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히로시 미야무라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2014.07.27.

6ㆍ25 전쟁 영웅 입장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장충동 앰버서더 호텔에서 열린 '6ㆍ25 전쟁 영웅들과의 만남'에서 에드워드 로우니(왼쪽), 로날드 유진로서(가운데)와 히로시 미야무라가 입장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27일 6·25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참모로 활약하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던 에드워드 로우니(97) 미 예비역 육군 중장을 비롯해 로널드 유진 로서 중사, 히로시 미야무라 하사, 아이너 잉만 병장(이상 미국), 메흐멧 고넨츠 대위(터키) 등 유엔군 참전용사 5명에게 한국군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http://blog.daum.net/jink062/15674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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