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 강선영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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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병과 여성장군

2019. 1. 10.

 

육군 항공병과에서 "헬기와 결혼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작전 현장을 중시하는 강선영 육군 대령이 28일 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준장)에 임명됐습니다.

국방부는 28일 중장급 이하 군 장성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창군 이후 처음으로 여군 대령 3명이 동시에 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국방부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여성 인력을 우선 선발한다는 원칙에 따라 창군 이래 최초로 전투병과 여군 2명을 동시에 진급시켜 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 육군본부 안전관리차장으로 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중 강선영 준장의 임명이 화제입니다.

육군 내부에서는 임기제(2년후 자동전역) 장성 진급이 아닌 여군 내 최초의 정상진급 사례라 더욱 축하하는 분위기입니다.

강 장군은 여군 35기로 1990년도에 임관 후 △UH-1H 최초 정조종사 △특전사 최초 여장교 강하조장 △특전사 대대 최초 여팀장 △최초 항공대대장 △최초 항공단장 등 여러 분야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초'라는 말 뒤에 숨은 강 준장의 노력과 의지에 동료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입니다.

강 준장은 한 매체를 통해 "군이 편견없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게 해줬으며 평등한 보직관리를 해주었다"고 밝혔습니다.

강 준장은 특전사, 전투항공단, 합동참모본부, 해외파병 등 지금까지 야전과 작전을 넘나들며 군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전사에서 잦은 강하 훈련을 하며 다양한 헬기를 경험했던 것이 항공병과로 옮기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준장은 1993년 육군 항공학교에 입교, 회전익 조종사 95기로 1등으로 수료했습니다.

우리 육군의 주력 헬기인 UH-1H, CH-47, 500MD, UH-60 조종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항공병과 임무를 수행하며 피우진 보훈처장과 춘천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준장은 "항공병과에서 장군이 되기가 어려운데 부족하나마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기회로 남은 기간 군과 국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한편 강 준장은 남군이 월등히 많은 군 여건에서 여군 후배들에게 '전우애'를 강조했습니다.

강 준장은 "군대에서 성비가 남자가 월등히 많은데 차츰 제도가


여군 우대 추세로 가고 있어 역차별 받는다는 남자 동료 등의 인식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상급자에게 인정받기 전에 동료와 전우애를 쌓고 모든 임무에서 동료의식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근무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이날 육군본부 안전관리차장(준장)에 허수연 대령(여군33기)이, 국군간호사관학교장(준장)에 권명옥 대령(간사27기)가 임명됐습니다

지난 8월 정경두 합동참모의장 임명으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 첫 장성급 인사가 28일 마무리됐다.

이날 여성 대령 3명이 준장으로 진급해 여성 장군 3명이 창군 이래 처음으로 동시에 탄생했다.

강선영 준장은 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 허수연 준장은 육군본부 안전관리차장, 권명옥 준장은 국군간호사관학교장에 각각 임명됐다. 강 준장은 전투병과 최초로 임기제가 아닌 정상 진급한 사례다.



정보본부장은 중장으로 진급한 김영환 소장이 맡게 되며 부석종 해군 소장(중장 진급)이 해군사관학교장으로 임명된다.

준장에서 소장 진급은 31명, 대령에서 준장 진급 대상자는 77명이다.

준장 공석을 당초 계획보다 육군 6석, 공군 1석 등 7석을 줄였다.

이번 인사에서 3사관학교, 학군·학사 장교 출신을 발탁해 사관학교 편중이 완화됐다.

준장 기준으로 비육군사관학교 출신 비율은 지난해 20%에서 31%로 높아졌다.

해군·해병·공군에서도 각각 1명씩 학군·학사장교 출신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2013년 이후 해군·해병·공군에서는 사관학교 출신이 준장 진급을 독차지 해왔다.



원문보기:
http://sports.khan.co.kr/bizlife/sk_index.html?art_id=201712282121003&sec_id=560901#csidx7ec67935c91125b9439a883c40c1f48

2014. 07. 10

2003년 3월 6일 동티모르 에카트 강에서 우리 선배이자 동료인 민병조 중령과 박진규 중령이 순직했다.

 사고 당시 나는 동티모르 유엔군사령부 의전과장으로, 상록수부대가 주둔한 오쿠 시와 떨어진 수도 딜리에서 근무하고 있던 상황이라서 고인들과 만날 기회도, 특별한 인연도 없었다. 하지만 사고수습이 완료되고 나서야 이들의 죽음은 ‘참군인으로서 모두가 기억해야 하고 귀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억하고자 10년 전 파병을 마치고 유엔군 법무관에게 상록수부대 사고자료를 획득해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상록수부대에서 유엔군사령부에 보고한 ‘사망사건 수사종합보고’에 의하면 사고 개요는 다음과 같다. ‘소령 등 5명이 근무지 순찰 및 고장 난 발전기 수리를 위해 4분의 1톤 차량 2대를 이용, 에카트 강을 건너다가 그중 차량 1대가 원인 불상으로 정지하자 5명이 합세해 구하던 중, 상류에 내린 집중 호우에 의해 갑자기 불어난 강물(지형특성에 의한 홍수형 급류)에 미처 대처하지 못해 5명이 떠내려가 4명이 익사하고 1명이 실종됨.’ 그리고 그들의 사체검안서에는 ‘기타의 재해사’라고 명시됐다.

 사고를 목격한 동티모르 현지인의 진술에 의하면 사고는 평시 건조기에는 수심이 얕다가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수심이 깊어지는 에카트 강(연평균 강우량 1200㎜의 절반이 우기철에 집중됨)을 차량 2대로 도강하던 중, 뒤따르던 지프가 강 가운데 멈춰 서며 일어났다.

 먼저 도강했던 고 박진규 중령과 운전병 백종훈 상병은 멈춰 선 지프로 향했다. 고 민병조 중령 등 3명의 인원을 구조하기 위해 다시 강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먼저 휩쓸려 떠내려갔고, 구조를 기다리던 고 민 중령 일행은 빨리 탈출하라는 현지인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신고만을 당부한 채 끝까지 남아 동료를 찾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지에서 자진 집결한 현지인을 포함한 상록수부대원 800여 명이 수십 일 간의 수색활동을 펼쳤으나 끝내 한 구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이후 그들의 의로운 죽음은 함께 주둔했던 많은 유엔군들에게 귀감이 됐고, 상록수부대가 주둔했던 오쿠시 바닷가에는 그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이었음에도 동료를 구해내고자 했던 전우애와, 부하와 함께 산화한 군인정신을 보여준 이들의 죽음이 단순히 ‘기타의 재해사’로 기억 속에 묻혀서는 안 된다.

 그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교육장소 어딘가에 세워진다면, 태극마크를 붙이고 국제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는 선후배 전우들이 그들의 임지에 가기 전 한 번씩 다시금 군복의 의미를 다짐하고 떠나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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