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1야전군 사령관 이소동(李召東)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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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군사령관

2019. 1. 10.

 

 

 

박정희 대통령은 18일 상오 청와대에서 이소동, 김종환 육군중장의 대장 진급 신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서종철 국방장관·이세호 육참총장이 배석했다. 1976.12.18
이소동대장은 1군사령관을 역임했다.

이소동소장 을지무공훈장 수여(67.08.11)

 

보병 제9사단(백마)사단은 1950년 10월25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29호에 의거,

서울에서 창설, 예하부대로서는 제 28연대가 대전, 제29연대가 공주, 제30연대가

청주에서 각각 창설 되었으며, 이듬 해 1월 포병사령부가 광주에서 편성되었다.

백마사단은 편성 1개월도 못된 1950년 11월23일부터

경북지구(영주, 김천, 문경)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였고,

1951년 1월25일 연합군의 제2차 총 반격시는 제1군단 예하부대로서

괴뢰군 제10사단의 주력을 포착 섬멸하여 적 사살 5,549명, 화기 노획 1,622정의

대전과를 올렸으며, 그후 철원지구 반격작전, 금화지구 방어작전, 사두봉 전투를 거쳐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중공군의 정예부대인 제38군의 12차에 걸친

인해전술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피아 공방전 끝에 적병 8,234명을 사살하고

백마고지를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휴전이 되기까지 8개월동안 중부 및 중,동부 전선에서 삼각고지, 금화 저격능선

등지에서 전투를 계속하였으며, 휴전 이후 금화, 포천, 인제, 화천, 양평, 양주

등지에서 부대정비와 전선 방어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투력을 배양하여 오던중

1966년 6월 1일 국방부 지령 제3호에 의거, 제2차 파월 전투사단으로 지명됨으로써

자유십자군의 일원으로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1966년 8월27일 중앙청 광장에서 환송식을 갖고 출범한 보병 제9사단 백마부대는

사단장 이소동 소장의 지휘하에 1966년 9월16일 부산 3부두를 출발,

1966년 9월22일 월남 나트랑에 상륙하여 인근 지역에 주둔했다.

백마사단은 월남 중동부 해안지력의 1번 도로와 해안을 따라

길이 270Km, 폭 50Km에 달하는 책임전술(TAOR)지역을 확보하고,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주요도시와 항만에 있는 군사시설을 보호 해 왔으며

또한 전술지역 내외의 침투하고 있는 적을 격멸하여 왔다.

초대 이소동 사단장의 뒤를 이어 박현식, 유창훈, 정규환, 조천성, 김영선 소장이

지휘를 맡았다. 파월기간중 478회 대부대 전투와 211.236회의 소부대 전투를

실시하여 총211,714회의 전투를 치루었다.


전투중에도 대민농사, 노력봉사, 의료봉사, 도로건설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대민사업을 지원했으며 1967년 1월29일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작전을 비롯하여

1967년 3월8일 맹호부대와 합동으로 월남의 동맥인 1번도로 개통의 오작교 작전과

1967년 7월9일 투이호아에서 실시한 홍길동 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 작전

등 전사에 길이 빛낼 많은 전과를 올려 천하무적 백마부대의 전설을 남겼다.

특히 월남국민의 숙원이었던 1번도로 개통은 월남군과 연합군까지도 공격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적의 지배구역이였으나 1967년 3월8일부터 맹호부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월남의 대동맥인 1번도로를 완전개통 함으로써

한국군 백마의 위용을 다시한번 과시했다.

전사에 길이 빛날 백마의 전승은 천하무적 백마의 전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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