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공군총참모장 김정렬 중장[태극무공훈장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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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무공훈장 수훈자

2019. 1. 13.

 

 

 

김정렬 장군 훈장류
(태극, 충무, 을지, 화랑, 국민무공훈장, 외국훈장)



본적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103

생년월일 1917년 9월 29일

학력 1936 경성공립중학교 졸업
1941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경력 1943 육군항공사령부 항공사관학교장
1956 초대 공군총참모장
1952 UN군사령부 한국군사사절단장
1953 공군중장
1954 제3대 공군참모총장
1957 국방부 장관
1963 민주공화당 초대 의장, 주미합중국 특명전권대사
1966 대한반공연맹 이사장
1967 제7대 국회의원
1971 삼성물산주식회사 사장
1973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81 국정자문위원,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수석부의장
1987 국무총리 서리
1987 제19대 국무총리


서훈 1951 태극무공훈장
1954 을지무공훈장
1956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 미국수공훈장 (지휘관급)
1963 수교훈장 흥인장
1987 수교훈장 광화대장

 

주요저서 1952 현대국제법 (P.C.Jessup저) 역서 일한도서
1958 국제조약집 박영사
1958 국제법학 (상) 박영사
1960 국제법학 (하) 박영사
1969 한국의 영토 (박사학위논문) 서울대출판부
1971 아세아정세의 변동과 한국 대한상공경제센터
1972 국제법 강의 박영사
1976 제3차 해양법 회의와 한국경제刊 대한상공경제센터
1986 영서당기 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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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표 제 목 김정렬 중장
작 성 자 전쟁기념관
감 수 자 전쟁기념관
발 행 일 2004/10/18
갱 신 일 2004/07/31
요 약 정 보

● 한문 : 金貞烈
● 생몰연대 : 1917.9.29-1992.9.7
● 출신지역 : 서울 종로
● 최종계급 : 육군 중장
● 상훈내용 : 태극무공훈장
● 참고문헌 : 태극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상 세 설 명

※약력

*1917. 9 서울출생
*1948 5 육군소위 임관
*1949. 1 육군항공사관학교 교장(초대)
*1949. 10 공군 총참모장(초대)
*1950. 5 공군준장
*1950. 10 공군소장
*1952. 12 재동경 유엔군총사령부 한국군연락장교단장
*1953. 3 공군준장
*1954. 5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1954. 12 공군 참모총장
*1957. 7 예편
*1957. 7 국방부장관
*1992. 9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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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1917년 9월 29일 서울시 종로에서 출생한 김정렬(金貞烈) 장군은 1936년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조국의 광복과 함께 그는 1948년 4월 1일 공군창설의 주역들인 최용덕, 박범집(朴範集), 장덕창, 이근석, 김영환(金英煥), 이영무(李永茂) 등과 함께 항공부대라는 명칭으로 수색에서 발족한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사관후보 1기생으로 5월 14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1948년 9월 13일 조선경비대 항공기지사령부 비행부대 부대장으로 임명된 그는 이틀 후 최초의 편대비행을 실시하고 10월에는 ‘여.순 10.19사건’ 진압작전을 위해 출격하였다. 다음해 2월에는 중령으로 육군항공사관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제주 4.3사건’과 옹진지구전투에 출격하는 등 많은 전투지원활동에 참여하였다.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한 1949년 10월 1일 초대 총참모장에 오르며 공군에서 최우선 군번인 50001을 부여받은 장군은 다음해 5월 공군 준장으로 진급한 후 6.25전쟁에 임했다. 이후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공군 기획참모부장과 국방부장관 특별보좌관을 역임한 그는 1954년 12월 제3대 공군참모총장에 취임하여 공군발전에 헌신한 후 1957년 7월 6일 공군 중장으로 군문을 나섰다.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온 후에도 국군의 발전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던 장군은 1957년 7월 국방부장관에 발탁되었다. 또한 1963년 공화당이 창당되자 초대 의장에 오르면서 정치에 입문하여 제7대 국회의원, 국정자문위원 그리고 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 부의장 등을 두루 역임하고 1987년 7월 제20대 국무총리에 임명되어 국정 전반을 관장하고 1988년 2월 퇴임하였다.
1992년 9월 7일 75세를 일기로 타계한 김정렬 장군의 장례식은 대한민국 공군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장군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공군의 초대 및 제3대 참모총장을 역임한 김정렬 장군은 우리나라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재정이 곤란한 상황에서 공군창설을 위해 동분서주 노력한 창설요원이며,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일본.중국 등 외국군에서 부대장급으로 활약한 7명의 지도자급 인사 중 한 분이다.
장군은 시대적인 요청으로 보아 공군의 독립은 그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느꼈지만 공군창설을 위한 여건은 열악하기만 하였다. 따라서 뜻을 같이 하는 창설요원들과 함께 국내 유지들의 이해를 돕는 호소방법을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사비로 1949년 4월 “항공의 경종”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국내 각 요로에 배부하였다. 이 책의 말미에는 “우리 조국을 제일 사랑하는 것은 우리 백의민족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타에 의존하지 말고 타에 이용당하지 말라. 남북통일도 우리의 예지에서 나오는 것이요, 작전계획도 자주적으로 입책(立策)되어야 한다”는 장군의 애국애족 정신을 짐작할 수 있는 어귀가 수록되어 있다.
장군을 비롯한 일부 창설 주역이 노력한 결과로 전국에 건국기 헌납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어 T-6 연습기 10대를 캐나다로부터 도입할 수 있었으며, 1950년 5월 15일 여의도비행장에서는 성대한 건국기 헌납식과 서울 상공에서의 처녀비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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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적

김정렬 공군 중장은 공군총참모장으로 취임한 이래 공군육성에 전심전력을 경주하여 오던 중, 1950년 6월 25일 이후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신예전투기를 입수하여 비행단장으로 겸임하면서 단시일 내에 유엔공군의 일원으로 협동 또는 단독작전을 감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투기에 탑승하여 진두에서 지상군엄호작전을 감행하는 등 작전완수에 기여한 전공으로 1952년 12월 26일 은성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80호)을 수여받았다.
장군이 참모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L형 및 T-6 건국기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 기종으로는 남하하는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다. 6월 25일 전투기 확보의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를 통해 미 극동군사령부에 전투기의 원조를 요청하였다. 다음날 전투기 원조문제를 위해 내한한 미 극동공군사령부 참모가 “한국 조종사 중 훈련없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조종사가 몇 명이나 됩니까?”라고 질문하자 장군은 “10명 정도”라고 대답함으로써, F-51 전폭기 10대를 지원받게 되었다.
1950년 7월 2일 F-51 전폭기가 도입되자 대한민국 공군은 육군과 합동으로 낙동강방어선의 후방차단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후 7월 26일까지 서울, 문산, 평택, 천안 등 경부선과 영덕, 영주, 신녕 등 경북지구에 출격하여 적 보급품집적소, 진지, 전차, 차량, 건물 등을 폭격하고 적병을 다수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장군은 또한 참모총장으로서 지리산공비토벌작전인 일명 ‘사천기지작전’을 주도하였다. 1951년 8월 17일부터 9월 18일까지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의 요청으로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의 F-51 전폭기들은 지리산공비토벌작전으로 공중공격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951년 7월말 현재 남한 각지에는 유엔군의 총반격시 패주하여 산악지대로 도주한 9,500여 명의 잔적들이 살인.방화.약탈.납치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후방지역의 질서를 교란하고 있었다. 특히 지리산을 중심으로 발악하는 약 4,000명의 공비들은 산청경찰서 관내의 각 지서와 마산, 진주 등지의 공공건물을 습격하였고 사천기지까지 위협하였다.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는 빈약한 정보와 무기로 효과적인 토벌작전이 어려움에 처하자 공중공격을 공군에 요청하였다. 이에 제10전투비행전대는 제2정찰비행전대의 T-6기 및 L형 항공기의 적정정찰 및 목표유도하에 F-51전폭기로 공중공격하여 공비 558명 사살, 아지트 192개소 및 건물 39개 동, 포진지 10개소 등을 파괴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공군참모총장 김정렬 장군은 이러한 작전을 주도한 공로로 두 차례의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하여 충무 및 화랑무공훈장, 6.25종군기장 및 공비토벌기장 등을 수여받았으며, 미 금성 및 은성훈장과 공로훈장 등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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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2003
국방부,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제1집, 1955
육군본부, 한국의 전쟁영웅들, 1992
이원복, 호국용사100선, 명성출판사, 1976
국방부, 호국의 별 제3집, 1979
포병학교, 포병의 발자취, 1963
병학사, 내 젊음 조국에, 1987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38도선 초기전투: 중동부전선 편, 1982
국방일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2002. 11. 9
국방부, 한국전쟁사 제8집, 1975
공군본부, 공군사 제1집
육탄 10용사 현충회, 육탄 10용사, 도서출판 法政, 1986
국방부, 호국의 별, 제6집, 국방부 정훈국, 1982
국방일보, 한국의 전쟁영웅들 (1) 육탄 10용사, 1992. 6. 4
국방부, 호국전몰용사공훈록 제3집,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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