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특전사령관 조문환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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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무공훈장 수훈자

2019. 1. 13.

 

 

                                                     공수단장 시절 공수교육 이수자에게 표창하는 조문환 대령(왼쪽)

월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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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 비둘기 부대장 조문환 육군준장 귀국.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조문환 장군에게 을지무공훈장 수여.
-김성은 국방부장관 동석.

출처:대한뉴스 제 564호 1966-04

사진출쳐 = http://blog.empas.com/marinekslee/24908316

 

 

성명 조문환 曹文煥 (별세)

생년월일 1923/06/01 (양력)

출생지 서울

성별 남

학력

- 1948 육군사관학교(제7기)

경력

1963 - 군단참모장

1965/01 - 주 월남 한국 군사원조단 단장(준장)

1966 - 사단장

1968 - 1971 초대 특전사령관

1975 - 수도군단 단장

1976 - 국방부 인력 차관보

1977 - 전투병과교육 사령관

1978 - 국방대학교 대학원 원장

1979 - 예편(중장)

1979/12/20 - 1980/09/09 제19대 국방부 차관

1980/09/09 - 1982/05/20 제5대 국가안보회의 상근위원 겸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

1984 - 광업진흥공사 이사장

- 1987/11 별세

평화의 사도 비둘기부대

(건설 지원단)

1964년 8월 2~4일에 발생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월남에 대한 군사지원을 증가시키면서 압력수단으로
월맹을 폭격하였고,
이에 맞선 월맹은 미군장교숙소와 미공군기지를
공격하는 등 월맹군의 도발이 격화되자 미국은 월남에 대하여
종래의 소극적 지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 (1964년 12월18일)은
우리정부에 국군의 추가 파병을 요청하였고, 월남정부 또한
1965년 1월 2일 국군의 2차 지원에 관한 공한을 우리정부에 보내왔다.

정부와 국방부는 미국과 월남의 2차 파병 요청에 따른 협의를 거쳐,
국군의 해외 추가파병에 대한 동의안이
1965년 1월 26일 제47회 임시국회 제7차 본회의에서 가결
(찬성106, 반대 11, 기권 8)되자, 국방부는 1월 29일
국방부 일반 명령 제5호로 강원도 현리에 위치한 제6사단에서
주월한국군사원조단 본부를 창설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뜻의 '비둘기 부대'로 명명하고,


단장에 조문환 준장(육사7기)을 임명하였다.

1964. 7. 15 서울 창동에서 환송식을 갖고 출범한 비전투 부대,
제1이동외과 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은
1964년 7월 28일 선발대로 하여 한국군이 부대로서는 최초로 파월된
비둘기 부대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의료진과 건설 공병으로 구성된 평화의 사도 전사부대이다.

http://www.vvk.co.kr/vietwar/vvk-baegyung.htm

문환은 해방 후 육사 7기(특별반) 졸업 후 임관하여 30여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전두환 군부쿠데타 직후인 1979년 12월 20일 국방부 차관에 발탁됐으며, 이후 장관급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겸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한국 육군사(史)에서 몇 가지 기록할만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1965년 사상 첫 월남 파병부대인 비둘기부대의 지휘관을 지냈으며, 1969년 특전사령부를 창설해 초대 사령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초대 수도군단장,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국방대학원장 등 육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차관 발탁 당시 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그는 특수전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상황에 맞는 비정규전술을 발전시킨 공로가 크다고 합니다.

퇴임 후 한국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지낸 그는 1987년 11월 8일 심장마비로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고인의 장례는 11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발인하여 당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장군 제1묘역(묘지번호 152)에 묻혔습니다. 그의 삶을 과도하게 비판할 생각도, 필요 이상으로 옹호할 생각도 없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그 역시 시대의 희생자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가 뭐라고 얘기했건 간에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이 좋아서 자원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극이라면 그가 친일파 집안에 태어난 것이겠지만, 친일의 대가로 영화를 누리던 부친의 덕을 전혀 보지 않은 것은 또 아닙니다. 그가 한국군에 이바지한 공로가 적지 않다고 해도 일제말 ‘학병지원 제1호’ 기록이라든지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에 부화뇌동한 점 등은 비판받아 마땅한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83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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