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웰빙팜 2018. 2. 20. 06:49

고금의 위대한 사업을 일으킨 자, 거대한 학문을 달성한 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인생의 3종 경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밤에 서풍이 심하게 불더니만
푸른 나무들이 다 시들어버렸네.
나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저 하늘 끝까지 펼쳐진
가없는 길을 바라보네.
(제1경계)

바지 끈이 점점 헐렁해져도
끝내 나는 후회하지 않으리.
그대를 위한 것이라면
내 몸 하나 초췌해진들
그 무엇이 걱정이랴
(제2경계)

길거리에 밀려 넘치는
군중들 속에서
천 번 만 번 그녀를 찾아
헤매었지.
문득 무심하게
고개 돌려 쳐다보니
등불이 희물그레
꺼져가는 그 난간 곁에
바로 그 여인,
서 있지 아니한가!
(제3경계)

이상은 중국의 왕꾸어웨이가 30세에 쓴 『인간사화』 권1, 제26칙. 내용이다.(번역은 도올 선생이 한 것) 도올 선생에 따르면 '인간사화'는 시진핑을 포함한 현대 중국 지식인들이 즐겨 보거나 인용하는 작품이란다. 위 인생3종 경계도 원래는 다른 시대, 작가, 맥락에서 쓰여진 글들을 작가가 자신의 의도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마치 색깔과 모양이 다른 구술을 꿰어 근사한 목걸이를 만들어 낸 것처럼.

나는 위대한 사업을 구상한다거나 거대한 학문을 일으키려는 망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것은 할 만한 사람들이 하면 된다. 나는 그저 비굴하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도 위 글을 읽으면 뭔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있다.

홀로 누각에 올라 하염 없이 저 멀리 뻗어있는 길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진 곳에 있는 누각에 혼자 잘 오르지도 않거니와 설혹 오르더라도 주변 풍광이나 즐기지 저 멀리 펼쳐진 길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멀리 뻗어 있는 길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을 때 하는 일이다. 일상의 이해관계나 따지는 참새들이 그 경계를 어찌 알겠는가.

바지끈이 헐렁해지거나 몸이 초췌해지는 것이 무슨 대수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일인가.

지난 주말에는 남해 금산에 있는 보리암에 다녀왔고 이번 주에는 해인사에 다녀왔다. 두 사찰 모두 사찰 입구에 이르는 진입로가 무척이나 길다. 지금에야 차로 가니까 금방 가지만 옛날에 걸어다닐 때는 절에 기도 한번 하러 가려면 보통일이 아니었겠다 싶다. 산길을 하루 온 종일 걸어야 이를 수 있는 길이다. 그러니 혼자 이생각 저생각 실컷해야 했을 것이고 사찰 입구에 도달힐 때 쯤이면 생각이 정리되고 스스로 답을 찾지 않았을까. 절이나 스님이 용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길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간혹 돌팔이 의사 등이 환자의 병을 자기가 고치는 것처럼 수선을 떠는 경우를 보는데.. 병은 환자 스스로 고치는 것이다. 의사 등은 helper에 불과할 뿐. 세번째 경계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님을 찾아 헤메는 과정 자체가 구도의 길이고 구원이 길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님을 찾을때 쯤이면 이미 '나'와 '님'의 경계가 허물어져 스스로 구원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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