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아담 2013. 3. 6. 15:28

2절 참사랑의 하나님

1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다 이룰 수 있고, 하고 싶은 대로 전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상 하는 그 무엇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절대자 하나님이라 해도 혼자서는 사랑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만 찾아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만은 하나님 혼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소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의 자극과 사랑의 신호는 상대를 통해서만 재현되는 것이지, 자체만으로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사람을 표준으로 하셨습니다. 그것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능력 많은 사람, 주관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하나될 수 있고 영원히 같이 놀고 영원히 같이 즐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완성한 사람,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 될 수 있는 자리의 완성한 사람이 하나님이 이상 하신 최고의 기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관자

3 참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함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 자리에 섰다고 하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영생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이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것은 본연의 창조의 근원에서부터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소원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4 참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기반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부부 간의 참된 사랑은 자기 부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은 참사랑이 돼야 합니다. 절대적인 참사랑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자기 상대와 하나되고자 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참사랑이 임재하는 것입니다. 참부부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품고 합일된 소망으로 미래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자녀의 잉태도, 가문의 번창도 이 기대 위에서 됩니다. 부부의 참사랑이 생활환경권을 넘어 하나님의 참사랑 이상과 일치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소원입니다.


5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한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 재미가 없습니다. 눈은 무엇을 보아야 되느냐?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쁜 영화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기 위해서 좋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입니다. 귀도 좋은 것을 들으려고 합니다. 나쁜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좋은 소리 중에서도 최고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보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보고, 듣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듣고, 냄새 맡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맡고, 만지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만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좋은 것의 최고는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인, 사랑의 대왕님이 누구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입니다.


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 지혜의 왕이신 하나님은 인간세계에서 제일 나쁜 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찾다 보니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제일 좋아 보이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하나님에게 제일 맞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독재자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나를 위하라는 독재자가 아니고 위하겠다는 독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위하려고 해야 합니다. 위하려고 하는 사랑의 독재자, 절대적인 주인 된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려는 사랑을 본질로 해서 절대적인 유아독존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7 하나님은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영원히 위하겠다는, 영원무궁토록 위하려는 사랑의 독재자가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와 더불어 사랑권 내에서 치리를 받기 위해서는 나도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주장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은 상대도 안 해준다는 것입니다.


8 절대적인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절대복종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에는 없는 말입니다. 힘의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 문화권은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힘만 가지면 다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절대적인 힘을 주장하는 하나님도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자리, 사랑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절대 좋아하는데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절대 능력을 발하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복종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러면 아버지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살지 않으면서 아들딸에게 ‘애들아,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복종하고 살아라.’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근원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도 사랑에 절대복종하며 살 때 ‘내가 이렇게 사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라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9 참이 무엇이냐 하면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우리 남자 여자가 사랑길을 찾아갈 때는, 그 남자 그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할 때는 자기 생명을 넘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는 내 생명을 바치려고 하고, 자기 모든 것을, 과거·현재·미래를 몽땅 희생하더라도 그 사랑과 하나되려고 합니다. 이것은 타락한 사랑이라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본연의 하나님이 원하였던 완성한 사랑이라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생명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의 생명까지 부정시킬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의 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평화의 세계가 안 됩니다. 독재적인, 독재세계의 단일세계가 될는지 모르지만, 화합하고 상대자 입장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서로 위할 수 있는 사랑이 없게 되면 평화의 세계, 하나의 세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 때문에 태어난 인간

10 하나님이 왜 만물을 지었느냐? 자기가 사랑할 대상자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먹고살다가 자기 본연의 세계로 돌아와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국에 들어와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가 왜 사랑을 가지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11 하나님의 주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입니다. 절대사랑·유일사랑·불변사랑·영원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찾기 위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해서는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절대적으로 유일적으로 불변적으로 영원적으로 위하는 자리에서 하나님 속성의 주류인 절대사랑·유일사랑·불변사랑·영원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을 닮아 영원한 생애를 중심삼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원한 참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 참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유일적 사랑입니다. 또 아무리 유일적이고 절대적이라도 변하면 큰일 납니다. 불변적 사랑이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12 하나님의 주류 속성에 절대적인 사랑의 개인 자리, 또 절대사랑의 가정 자리, 절대사랑의 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 자리가 갈라져 있지 않고 전부 다 이렇게 커 갔다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개인시대·가정시대·종족시대·민족시대·국가시대·세계시대로 하나의 중심과 연결된, 확대된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돼야 할 본연의 우리의 내적인 무형의 하나님의 속성을 중심삼고, 남성격 주체의 절대 주인의 자리를 중심삼고 종적인 자리를 잡아서 이것이 정상적으로 컸더라면 타락이 없는 세계입니다.


13 아담 해와는 절대 창조주의 몸입니다. 몸으로 만든 것입니다. 무형의 실체로는 실체 자극의 세계를 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의 마음에 들어와 아담이 성숙되기를 바랐고, 해와의 마음에 들어와 해와가 성숙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성숙되기를 바라던 그때에 타락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직계 혈통을 받은 아들딸이 틀림없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뿌리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뿌리입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뿌리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14 하나님은 인간조상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어떠한 기준에 두고 싶어하셨겠는가? 하나님이 본연의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인간을 슬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불행 가운데 두고자 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터로, 하나님의 마음자리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일터요, 마음의 집이요,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 또한 선한 까닭으로 아담 해와가 움직이던 그 생활환경도 선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창조 당시 하나님의 목적이요 이념이었습니다.


15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창조한 사상은 무엇이냐?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 발생의 기본 사상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반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완전 투입해서 보다 나은 제2의 상대를 만들려고 하는데, 인간은 타락해서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를 희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 타락한 세계는 개인주의가 세계 판도로 퍼져서 지상지옥에서 파괴 현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세입니다.


 사랑으로 완성되는 창조이상

16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정(正)에서 분(分)해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 무한히 나누어지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다시 합(合)에 의해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커 올라갑니다. 커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극에 있게 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완성을 하느냐? 사실 하나님이 어떻게 완성하느냐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지만 내용이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완성을 해야 합니다. 전지(全知)하기 때문에 지식의 완성이 아닙니다. 창조이상이 돈의 완성이 아닙니다. 권력의 완성이 아닙니다. 사랑의 완성입니다.


17 하나님 자신이 절대자이지만, 절대로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존재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일성, 즉 내성을 닮아서 태어났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반쪽 한 부분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반쪽 한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체들로는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 스스로의 완성, 여자 스스로의 완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만나야 되고 여자는 남자를 만나야 됩니다.


18 인간의 완성은 어디에 있느냐? 남자면 남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고, 여자면 여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반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하나된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완성됩니다. 아담이 완성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데, 하나님은 종적으로 절대 필요합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하려면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회전운동, 구형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으로 아담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해와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와에게도 횡적으로 절대 필요한 것은 아담입니다.


19 사랑의 개념에서 남녀가 갈라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랑이 일치된 거기에서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니까 분립시켜서 자극을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형의 하나님의 실체 내용이 유형의 실체 내용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무형의 성상 형상의 실체권이 유형의 실체권, 형상체 성상체로 전개되었습니다. 그것이 다시 무형의 실체가 되려면 하나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실체로 계시기 때문에 무형의 성상 형상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남자 여자가 하나된 대상 실체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됩니다.


20 인간 창조란 하나님 자신이 커 온 것을 실제로 재차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내적인 소성을 전부 실제 형상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뼛골 속 깊은 데까지 짜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