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아담 2013. 3. 6. 15:30

4절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4대 속성입니다. 모든 창조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절대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을 그 위치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유일합니다. 어디에서도 마음대로 섞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길이란 유일합니다. 그다음에는 불변하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주류 속성

2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유일한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불변의 사랑과 영원한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일치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창조할 때 무엇을 가했느냐? 창조성입니다. 절대 창조성, 유일 창조성, 불변 창조성, 영원 창조성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창조성을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통하면 하나님과 영원히 동고·동락·동참할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속성이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하고 천하에 유일적인 것, 영원한 것, 불변한 것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사랑이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인연, 영원한 참된 남자, 영원한 참된 여자가 그 과정에서 절대·유일·불변·영원할 수 있는, 부동에 정착할 수 있는 사랑의 주인들이 되어야만 남자로서 완성, 여자로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랑 완성의 자리인 동시에 남자 여자의 생명이 하나되는 자리요, 남자 여자의 생명이 하나되는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혈통적 인연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사랑을 중심으로 한 절대성, 사랑을 중심으로 한 유일성, 사랑을 중심으로 한 불변성이 있습니다. 모두 사랑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속성도 절대적이고, 불변이고, 유일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인간도 원합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절대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적이고, 유일하고, 영원불변입니다.


5 사랑은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사랑 앞에는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 도리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대해서 ‘너희 부부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영원히 변할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절대적이냐 하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 속성의 현현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일, 절대무이(絶對無二)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아담도 그 속성이 현현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인 속성이고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인 속성으로 현현했는데, 그 속성 자체가 절대적입니다. 그 내적인 속성과 외적인 속성을 갖춘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인데, 그 사랑은 하나님까지도 절대복종할 수 있는 절대적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절대적인 사랑 앞에 부부로 오시는 분은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동시에 영원불변입니다.

 

6 창조주인 하나님이 세운 목표는 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곡절의 과정을 거쳐 간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양심의 중심이 되고 모든 사람의 소망의 목표가 되는 하나님은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

7 하나님은 사랑의 뿌리, 근원입니다. 또 하나님은 생명의 뿌리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은 혈통의 뿌리이고 양심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든가 생명·혈통·양심을 보지도 못하고 만질 수도 없지만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뿌리가 되고 사랑의 뿌리가 되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과 사랑의 뿌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못 느끼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은 참사랑의 뿌리입니다. 뿌리는 줄기를 통해서 순과 통합니다. 그렇게 돼서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뻗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뻗으면 뻗을수록 순도 자라고 줄기도 자라고 뿌리도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세계에서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아버지가 창조주이십니다.


9 사랑의 뿌리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뿌리 중의 뿌리입니다. 그 사랑의 뿌리에 접붙여야 됩니다. 거기에 하나되면 그 사랑의 뿌리에 연결되고, 거기서 싹이 나와서 가지를 무성히 뻗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거기에서 주인의 소망이 꽃피는 것입니다. 싹이 나와서 가지를 틔워야 합니다. 싹만 나 가지고는 망합니다. 싹이 나와서는 가지를 뻗쳐야 됩니다. 주된 가지를 비롯해서 수많은 가지가 나와야 합니다. 수많은 잎들이 무성해야 거기에 꽃이 핍니다. 그것이 자라는 순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본래의 완성 단계를 거쳐 가는 것입니다.


10 사랑의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뿌리입니다. 뿌리 가운데 중심 뿌리는 하나입니다. 중심 뿌리에 통할 수 있는 사랑이 어디 있느냐 해서 찾아가야 됩니다. 그러니 완전히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몸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몸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11 선의 하나님은 희생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랑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상이한 소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드러내는 자리는 반드시 희생하는 그 양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에 따라서 크고 작고, 높고 낮은 사랑이 결정됩니다.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큰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요, 희생이 작으면 작을수록 거기에는 작은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2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창조하여 당신의 사랑을 그 위에 쏟아놓을 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연히 남자와 여자로부터 그 사랑을 돌려받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은 무한한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먼저 자신들끼리 사랑 속에서 하나되어야만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담과 해와가 한 쌍의 성숙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하나님에게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성장·성숙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13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사랑 때문에 했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누구냐? 인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왕이시니까 부모 사랑도 갖고 있고, 부부 사랑도 갖고 있고, 형제 사랑도 갖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전후좌우 그 본성을 가지고 참된 사랑을 갖기를 바라는 상대가 나타날 때는 언제든지 대할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의 대왕이십니다.


 정·지·의 인격적인 하나님

14 하나님은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짓기 위해서는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인격적 신이 되려면 인간 같아야 됩니다. 인간에게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공동목적을 가질 수 있는 그 본체라면 인간을 닮아야 됩니다.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15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창조할 때 무목적인 창조물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정·지·의의 자체로 되어 있으니만큼 이와 같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역시 정·지·의의 본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16 하나님은 인격적 신입니다. 인격적 신이기 때문에 정·지·의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와 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웃으면 하나님도 웃어야 됩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눈물을 흘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눈물을 흘립니다.


17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신성한 자체로서 지고(至高)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인간, 즉 피조물과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급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즉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통해 닮았느냐? 핏줄을 통해서, 혈통을 통해서 닮았습니다. 혈통을 통해서 인연되었다는 것은 사랑으로 인연되었다는 뜻입니다.


18 하나님은 정·지·의를 합한 내용을 갖춘 인격적 신입니다. 그런 인격적 신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 인간시조를 지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은 창조주와 피조물에 대하여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상적인 사랑의 상대자를 찾고자 하는 상대이상이 절대 필요하다고 보게 될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성하시니만큼 그 신성한 분이 상대이상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사랑의 대상자도 신성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특권적 권위가 여기에서 성립됩니다.


19 철학의 최후 종착점은 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신은 어떠한 신이냐? 절대적인 신, 불변의 신, 유일의 신입니다. 신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그 신은 인간에게 필요한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안팎을 갖추고 뜻을 갖추고 이상을 갖춘 인격적 신이어야만 됩니다. 정서적인 면이나 뜻적인 면이나 지식적인 면이나 모든 면에서 인간과 통할 수 있는, 완전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이 아니고는 아무리 신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는 완전히 상관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격적 신이 되어야 한다는 표제 밑에서 철학은 하나님을 숭상 안 해왔습니다.


20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 닮은 것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이 그런 상대라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요소가 백 퍼센트 화합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소성에 있어서 전부가 화합할 수 있는 신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지‧의를 가진 신이어야 됩니다.


21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은 인격을 가진 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주체이니까 사람과 완전히 통할 수 있는 인격자입니다. 그런 분이라면, 그분이 생각하는 인륜도덕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칙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인륜이 있고 인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천륜이 있고 천정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주체자로서의 사랑을 가져야 되고, 그런 법도를 가져야 됩니다. 또 인간은 대상자로서 사랑을 가져야 되고 그 법도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인륜과 인정이 있는 반면 천륜과 천정이 없다면 이것은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22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의예지를 중요시 했습니다. ‘원형이정’은 자연의 변함없는 순환, 춘하추동의 순환적인 우주 궤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인격적 신을 몰랐습니다. 자연세계의 음양 이치는 풀었지만, 사랑이라든가 핏줄이라든가 완성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동서남북이 균형을 취한 주체 대상의, 성상 형상의 중화적 존재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23 이 천지를 운행하는 신은 인격적 신입니다. 인격적 신은 인간을 중심한 이상적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가 되어야 하고, 부부가 되어야 하고, 자녀를 거느리고 일족을 편성하고, 일족을 중심삼고 일국을 편성해서 세계 통일, 하늘의 대가족 국가를 형성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일민족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한 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그다음에는 신랑 신부를 말했습니다. 남자로서 이룩할 최고의 기준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게 되면 골자를 전부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신랑 신부를 찾아와서 가정 편성, 종족 편성, 국가 편성, 세계 통일천하를 위해 재림을 한다는 것입니다.


24 사랑을 논하려면 인격적인 신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정서와 인격적으로 사람과 같은 소성을 가진 신이어야 되는데, 그러한 신을 제시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다는 사실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원리와 법도의 하나님

25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반대로 사탄은 비원리적인 자리에 선 자입니다. 그러므로 비원리적일 때는 사탄이 주관하고, 원리적일 때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던 위치를 보게 되면 하나님이 있고, 다음이 아담 해와가 있고, 다음에 천사장이 있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리적입니다.


26 종교생활은 뭐냐? 본성의 생활입니다. 본성은 원리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원리의 주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리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본성의 자리만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관리할 수 있습니다. 본성의 자리는 절대적인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본성도 절대적인 자리를 취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몸을 대해서 언제나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원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원리는 모든 사물의 중심을 결정합니다. 원리원칙일수록 그것은 중심의 자리에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27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은 전체의 대표자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중심삼고 볼 때, 원칙적인 원리의 자리에 가까운 사람이 보다 선한 사람입니다. 그 원리의 중심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원리에 따른 본심은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려고 하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 자동적으로 하나되려고 하는 작용이 양심작용입니다. 본래 양심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몸까지도 하나 만들 수 있는 주인이었습니다. 그것이 원리였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비원리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리의 작용은 비원리를 대해서 언제나 투쟁하면서라도 작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양심작용입니다.


28 참은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수습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갖게 될 때 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갖지 못하면 참이라는 명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참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써 참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게 될 때 참도 떠나게 됩니다. 거기에는 참이 아닌 악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참이 있어야 참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심으로써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니 선이니 하는 명사는 인간을 위주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29 참이란 무엇이냐? 남자 앞에 제일 진리요 참된 것이 여자이고, 여자 앞에 제일 진리요 참된 것이 남자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참이 사람이요, 사람 앞에 참이 하나님입니다. 진리가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이고 하나님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시작된 모든 것은 참이 아닐 수 없고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참된 것이 어떻게 완성을 하느냐? 남자 여자가 하나되고, 그 하나된 남자 여자하고 하나님이 하나될 때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아니고는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 하게 되면 그 남자는 진리의 완성을 대표한 자요, 여자도 역시 진리의 완성을 대표한 자입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 완성과 더불어 우주 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30 하나님은 진리의 주체요 진리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리라면 이 원칙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주체적 존재인 동시에 주체로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자기 소관이든 상대적인 것이든 모든 것의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적 중심이 되어 있고, 또 영원히 중심존재로 남아질 것입니다.


31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법으로 지어 놓고, 그 법을 무시하면 그 하나님은 법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됩니다. 법을 세웠으면 법을 지킴으로써 법을 주관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됩니다. 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법을 반대하면 그 법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법을 지켜야 그 법이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자기가 그 법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그 법을 중심삼고 판단할 수 있고, 안 된다고 제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법을 가지고 판결할 수 없고 선고할 수 없습니다.


32 기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라고 하는데,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원칙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지, 무원칙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기가 법을 세워 놓았으면, 영원하신 분이 제정한 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가 세워 놓은 것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33 기독교 목사들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이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천지의 모든 존재물은 법칙, 대원칙에 의해서 작용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 원칙을 파괴하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위주로 하여 제정된 모든 법, 입법기관을 통해 제정된 법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고 영원·불변·유일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이 정한 법은 절대·유일·불변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에 일치될 수 있는 상대자가 필요합니다. 상대자가 있어야 됩니다. 개인을 해방할 수 있는 그 법에 일치할 수 있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상대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