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아담 2013. 3. 6. 15:32

제1장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1절 하나님의 실존

1 선생님은 일찍이 오랜 기도와 명상의 생활에서 실존하는 하나님과 드디어 상봉하게 되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절대진리를 전수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와 인생과 역사의 배후에 숨겨진 모든 비밀을 밝히는 놀라운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문제가 풀리고, 세계에 적용하면 세계 문제가 풀립니다. 이뿐만 아니라 종교의 미해결 문제, 철학의 미해결 문제도 풀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세계관이요, 새로운 우주관이요, 새로운 인생관이요, 새로운 섭리관이요, 새로운 역사관입니다. 이것은 또 모든 종교 교리나 철학의 특성을 살리면서 전체를 하나로 포용할 수 있는 통합원리이기도 합니다.


2 ‘하나님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말뿐만이 아닙니다. 원리를 통해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불가피적으로 있어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있기 전에 있었고,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고,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식하고 알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춥다는 것을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신다면 신이 계시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포로 느껴야 됩니다. 그 경지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문제,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3 인생에 있어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뭐냐 할 때, 먼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죄인 중의 가장 큰 죄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 계시는데도 자식이 어머니 아버지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 자식을 효자라고 하겠습니까, 불효자라고 하겠습니까? 불효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것 이상 큰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이상 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여러분은 막연하게 관념적으로만 신의 실존을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논리적인 면으로만 신의 실존을 인식하려고 하면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논리권 내에만 머무르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신을 인식하는 신앙이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 영원한 생명의 실체로 완성시켜 줄 수 있겠느냐고 할 때, 여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참되신 주님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적인 소망인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 목표입니다.

 

 결과적 존재에 대한 원인적 존재

5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그 누구도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지만 자기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부모, 이렇게 해서 종지조상인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되면 아담 해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인류의 시초가 되는 조상도 자기들이 원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가, 그 어떠한 분이 동기가 돼서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하게 되면, 남자 여자를 말합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없으면 안 되고, 여자에게도 남자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남자가 원해서 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 남자에게 필요한 여자도 자기가 원해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고 보니 남자가 되었고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자로서, 남자로서 자라고 보니 비로소 부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6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생활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인류가 되었습니다. 그 인류는 수많은 국가에 연결되어 있고, 수많은 국가는 수많은 종족,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 자신도 그 개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그 가정의 일원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로 맺어진 그 가정, 혹은 친족은 자기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태어나 가정의 일원이 됐고, 친척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제인연이나 부자인연을 논하는데, 그 인연도 하나님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결과의 세계입니다.

 

7 이 땅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존재하게 만든 원인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우리가 지내고 있는 나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도 결과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환경의 인연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그 환경을 갖추게 한 동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사회 형성, 하나의 국가 형성, 하나의 세계 형성을 두고 볼 때에 그것을 이어오는 것은 물론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그 인간을 형성시킬 수 있는 근본 원인은 인간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 존재 입장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형성할 수 있는 동기와 내용이 있어야 되고 그 원인이 필히 있어야 됩니다.

 

8 우리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돼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원인과 결과가 됩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상대적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그렇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원인과 결과가 하나된 것이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된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그 외에는 이상적 환경, 이상적 존재를 찾을 수 없습니다.

 

9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떠한 연유를 통한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결과는 원인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어떠한 곡절의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반드시 원인과 상응할 수 있는 내용과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도 어떠한 원인을 닮아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적인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0 하나님은 이 우주의 원인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작용의 원인적인 존재요, 힘을 가하는 원인적인 존재요, 방향을 제시하는 원인적인 존재요, 목적을 제시하는 원인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인격적인 신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동기를 중심으로 방향을 가지고 목적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확실한 입장이기 때문에 인격적인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을 통해서 방향을 거쳐 목적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체 원인적인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인체의 신비로 본 하나님의 실존

11 사람은 우주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그 주체자, 즉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서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작가로 비유해 봅시다. 작가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구상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구상해서 만든 작품이 그야말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되게 될 때는 무한히 기쁜 것입니다. 만일 그 작품이 자기 생각보다도 더 멋지게 되었다 할 때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됐기에 깨뜨려 버린다.’라며 깨뜨려 버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될 때는 자기 일생의 보물로 여기고, 가나오나 놓아두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그 이상의 것을 바라면 하나님도 그 이상의 것을 바라실 텐데, 그렇게 인간을 지었다면 얼마나 멋지게 지었겠습니까? 여기에서 하나님도 인간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2 우리 인체의 구조는 참 신비의 왕궁입니다. 수많은 세포들이 개별적인 동시에 상응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상충이 없이 협조적인 구성을 통해서 나라는 개인의 자유 해방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방대한 세계가 유동하고 운동하는 것이 나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는 결론도 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3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곳이 얼굴입니다. 얼굴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곳이 눈입니다. 이 눈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눈은 부모로부터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의 눈은 어디서 왔습니까? 조상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인간인 아담 해와에까지 가서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면 최초의 그 눈이 태어날 때,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눈 자체는 복사열에 의해서 수분이 증발할 수 있는 이 지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눈썹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있는데, 눈썹 자체도 생겨날 때 공기 가운데 있는 먼지가 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눈은 무궁무진한 신비의 궁(宮)이 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눈 자체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태양이 있고, 공기 중에 먼지가 있으며, 수분이 증발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여기에 맞게끔 탄생시킨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탄생시킨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14 귀를 보면, 귓바퀴가 앞을 향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생겼다면, 또 귓바퀴가 없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앞에서 오는 소리가 그냥 휙 지나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멀리서 말하는 것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귀는 앞에서 나는 말소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상대와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습니다. 뒤통수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를 만나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귓바퀴가 앞을 향해 있게 된 것은 앞에서 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귀가 생기기 전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15 귓바퀴를 무엇 때문에 만들어 놨겠습니까? 그것은 공기가 가다가 거기에 걸려 화음이 되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귀를 한번 잘 보세요. 큰 바퀴가 있고 작은 바퀴가 있어서 소리를 잘 거릅니다. 큰소리가 들려오면 이 큰 바퀴에서 그 소리를 슬쩍 죽여 놓습니다. 큰소리가 그냥 그대로 귀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니 큰 바퀴에서 소리를 한번 죽였다가 작은 바퀴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귀는 몰랐지만 본래부터 알 수 있는 내용의 동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조물주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16 얼굴에 시커먼 눈썹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적마다 ‘왜 이렇게 시커먼 것이 있지?’ 하면서 기분 나빠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없으면 얼굴이 얼마나 희멀끔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것을 붙여 놨느냐? 사람들의 얼굴에 털이 나 있으면 눈썹이 필요하겠습니까? 짐승들은 엎드려 기어 다니니까 눈썹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그 형태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서서 다니니까 눈썹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눈썹이 나 있는 부위는 대개 살짝 높습니다. 눈썹 부위가 슬쩍 높아져서 산맥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명당 중에서도 왕 명당자리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겠습니까? 사람이 서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7 사람이 기어 다닌다면 눈썹이 필요 없습니다. 정말 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썹이 한쪽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왜 이렇겠습니까? 비가 와서 물이 흐를 때 한 곳으로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눈썹이 한쪽 방향을 향해서 나 있고 살짝 옆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흘러내릴 때 영락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만일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땀이나 빗물이 눈으로 다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눈이 쓰려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못 산다는 것입니다. 눈을 가만 보면 눈썹도 미덥지가 못해서 또 눈꺼풀로 둘러놓았습니다. 눈꺼풀로 둘러 눈을 보호하게끔 해 놨습니다. 눈물은 움푹한 곳을 통하여 옆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몇 천년 몇 만년 연구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18 코가 만약 뒤집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낙비라도 오게 되면 큰일 납니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생각해 보세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코는 만물 가운데서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에게는 천도가 있습니다. 상하관계 질서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코는 왜 밑으로 내려오면서 넓어졌느냐?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입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빗물 같은 것이 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 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코가 아래로 향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 입술을 보면 기기묘묘합니다. 입술하고 이빨하고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입술하고 이빨하고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불과 몇 밀리미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이 위험하다면 이 이상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아차 잘못하게 되면 큰일 납니다. 그렇지만 불안을 느낍니까? 먹을 때는 그저 먹는 것에 바쁘지 불안을 안 느낍니다. 혀도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속에서 끌어당기고 밀고 하면서 작두 같은 이빨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도 충돌 없이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춥니까?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을 참 빨리 합니다. 이렇게 빨리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박자를 맞추고 처음 만난 여러분과 정들 수 있게끔 말하게 하는지 정말 기기묘묘한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혀가 손가락과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 납니다.

 

 본심작용으로 본 하나님의 실존

20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가 있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공기로 숨을 쉬고 살기 때문입니다. 공기가 무슨 맛이 있습니까? 맛도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히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압니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참 신기합니다.

 

21 하나님이 사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는 사랑에 정착합니다. 남자 여자 두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일체화되고 변하지 않는, 통일된 애정의 가장 밑바닥에 수직으로 계십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되면 그곳이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신비한 기도의 경지, 영적 체험권에 들어가서 ‘하나님!’ 하게 되면 속에서 ‘왜 부르느냐? 여기 있다, 여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기’라는 것은 자기 마음 가운데입니다. 심신일체가 된 사랑의 중심점, 수직의 자리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의 중심은 어디냐? 아무리 작더라도 그 중심은 양심입니다. 우주의 사랑의 축이 머무르는 곳, 지탱하는 선단지(先端地)는 자기 양심입니다. 심신일체가 된 그 양심입니다.

 

22 하나님은 사랑의 뿌리, 생명의 뿌리, 혈통의 뿌리, 양심의 뿌리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왜 못 느끼느냐? 나하고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더불어, 생명과 더불어, 혈통과 더불어, 양심과 더불어 하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뿌리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려면 사랑을 사방으로 뿌리라는 것입니다.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기 생명과 사랑과 이 모든 것을 희생시켜 완전히 영의 자리에 돌아가면 하나님이 주인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했기 때문에 종적으로 눌려 있습니다. 이것을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끔 하면 하나님이 자기 양심 가운데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23 인간에게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그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피조물과 창조주가 합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그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의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의 작용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인간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니 절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 접촉할 수 있는 제1의 터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그 목적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끔 인간 가운데 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존속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도 기쁘고 인간도 좋아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24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인간을 창조하던 창조목적의 기준과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가야 할 목적의 기준이 서로 다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되어야만 하나님도 기뻐할 수 있고 인간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인간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을 찾아 올라갈 수 있게 하는 무슨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작용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으니 그것을 바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자극시켜서 끌어내어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양심입니다. 양심은 높아지기를 바라고 작용합니다. 양심은 현재의 자기보다 나아져라, 나아져라 하고 재촉합니다. 이 작용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양심은 현재의 자기보다도 높아지라고 촉구하지 낮아지라고 촉구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보다도 내일, 내일보다도 모레, 금년보다도 내년, 가면 갈수록 더 높고 더 가치적인 자기를 형성하라고 촉구하는 그 힘이 양심작용입니다.

 

25 인간의 양심은 어디까지나 대상적인 것이지 주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용의 원칙을 따라 찾아가게 되면 반드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주체가 있습니다. 그 주체와 대상은 서로가 손해나는 것을 바라고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이익이 되기를, 보다 낫기를 바라고 작용합니다. 우리 양심은 보다 나은, 보다 큰, 보다 가치적인, 보다 세계적인 것을 향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심작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하나의 목적을 바라고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26 주체와 대상이 우리의 양심 가운데서 작용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양심작용은 주체가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양심이 작용을 계속하는 것을, 고차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고차적인 주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의 주체 되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없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양심작용을 부정해야 됩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27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양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눈을 번쩍 뜨고 나서 좋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하면, 마음은 언제나 파수꾼인 양 ‘야 이놈!’이라고 합니다. 그 양심작용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양심을 가진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결과적인 존재가 끊임없이 양심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작용을 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주체를 공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양심작용은 내려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어떠한 높은 주체자 앞에 하나되고자 하는, 보다 가치적인 요구를 작용시키는 플러스적 요건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 섭리해 오신 하나님

28 하나님은 오늘 이 시점 내에만 들어와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생활감정에만 언제나 상대 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속해 나오는 하나님, 즉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역사를 계승시켜 나오시면서 바라 나온 길은 스스로 자각한 것에 취해서 노력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의 배후를 따라 나오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섭리의 내용을 먼저 깨닫고 그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시점에 선 사람이 그려 가는 생활 터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섭리를 발전시켜 나올 것이고, 섭리의 뜻을 존속시켜 나올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위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입니다.

 

29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느냐? 정성입니다. 지금 시대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핍박이 없습니다. 언론·집회·결사·신앙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 놓은 것은 끝날의 한때를 위해서입니다. 신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다 뜻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아무리 하늘을 위해 수고하고 목을 내놓고 충성해도 핍박받지 않습니다. 그런 때는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 애쓰시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을 살려 놓기 위해서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핍박의 길, 순교의 길을 걷게 하여 오늘날까지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30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세계 문화권은 종교 문화권 내로 흡수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중심한 기독교 문화권이라든가, 극동아시아를 중심한 유·불·선 문화권이라든가, 인도를 중심삼은 힌두교 문화권이라든가, 이슬람 문화권이라든가 하는 문화권이 형성된 것을 두고 볼 때에, 수천년 동안 사람들은 종교 문화권 내로 몰려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리공장이 세워지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부속재료들이 수리공장 주변에 모여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볼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31 하나님은 이 우주 안에 안 계시는 곳이 없는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기가 있는데도 공기가 있다는 것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숨이 막혀야만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맥박이 1분에 70번 정도 뛰고 있는데, 이것도 평소에는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걸어갈 때 맥박이 뛰는 것에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고, 눈을 깜박거릴 때도 맥박이 뛰는 것에 보조를 맞춰 깜박거리며 산다면 신경이 쇠약해져서 사흘도 못 가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것들을 모르기를 잘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도 구멍 낼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보인다면 우리는 신경이 쇠약해져서 한 시간도 못 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32 우리는 태양 빛을 받고 살지만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것이 고맙다고 해서 ‘태양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큰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짓궂은 분이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없습니다. 아마 5분 이내에 통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가면서 ‘너희들 통일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를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이 고마운 일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33 지혜로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수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서 지배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무형이니만큼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누가 조금도 지장을 안 느낍니다. 여러분은 몸이 있지만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꾸벅꾸벅 조는 여러분의 몸을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고 하는 논리는 가당합니다.

 

34 우리는 공기가 통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못 느낍니다. 공기가 통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이 큰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그것을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도 작다고 보고 더 큰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35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것을 사람들이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곳에 두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무도 훔쳐 가지 못하도록 아주 깊숙이 숨기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좋은 것이라면, 그것을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곳에 감추어 두려고 할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 마음 밑바닥 바로 그곳에 그런 것을 숨기고 싶어할 텐데, 그곳은 여러분 혼자만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혼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개방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특한 인간성, 독특한 사고방식, 독특한 감정을 갖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한 장소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의 양심을 무형으로 지은 이유입니다.

 

36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세계가 뒤집어진다고 합시다. 그런 귀중한 것을 마음속 가장자리에 갖다 놓겠습니까, 마음속 맨 중심에 갖다 놓겠습니까? 그 귀한 보물을 마음의 맨 중앙에 감추어 둘 것입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서 싸고 또 싸놓을 것입니다. 또 그것을 누가 들어와서 구경하는 것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뚜껑을 덮고 싸고 또 싸서 절대 다른 사람이 못 보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보인다면 이 천지간에 다이아몬드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절대자, 무한한 가치의 절대자, 무한한 생명의 절대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한 분을 어디에 감추고 싶겠습니까? 마음속에 감추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모르는 곳에, 몇 천년 몇 만년을 두고 연구해도 모르는 곳에 감추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37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과 유형이 어떻게 결합하느냐? 무형세계와 유형세계를 어떻게 묶을 수 있느냐? 이것은 이론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육적인 무엇이 모체가 되어서는 영적인 나와 육적인 나를 묶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부모와 육적인 부모,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기준에서 영적인 하나님과 보이는 실체적 태초의 타락하지 않은 인류조상이 무엇을 중심삼고 묶어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종횡이 반드시 하나되어야 합니다. 종횡이 하나되어야 되는데, 무엇을 통해서 묶어지느냐 하면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끼리는 최단거리, 직단거리로 통합니다.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

38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습니다. 하늘땅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그 물건을 내 것으로,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 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이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고, 피조만물을 넘어 하나님과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까지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가기를 마음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39 여러분이 하나님의 편재성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끼고,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의 콧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이 있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태양을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40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할 때,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소부재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감출 것이 없습니다. 다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무소부재의 자리, 사랑을 중심삼은 전지전능한 자리에 있고 싶어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41 하나님이 우주에 없다면, 우주는 다 빈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다면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있는 줄 알게 될 때는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사랑 가운데서 무소부재의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빈 것입니다.

 

42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하나님은 분명히 있습니다. 어디에 있느냐? 나에게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제일 가깝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눈이 눈을 볼 수 있습니까? 가깝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가깝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43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신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마음과 이야기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 뿌리에 있습니다. 마음을 자꾸자꾸 뽑아 보면 최고의 양심 뿌리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다음엔 사랑 뿌리에 있고, 생명 뿌리에 있고, 혈통 뿌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도 감사, 사회에 나가서도 감사, 나라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감사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이 공식대로 됩니다. 어디 가든지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상천국이요 천상천국과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