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아담 2015. 4. 23. 14:22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황희 스캔들’      -  이기환 논설위원    경향신문 2015-02-01 22:21:03

 


             

“아니야.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얘기야.”

1452년(단종 즉위년) 7월 <세종실록>을 편찬하려고 사초(史草)를 들춰 보던 지춘추관사 정인지가 깜짝 놀랐다. 세종 때의 사관 이호문이 ‘황희 정승’을 주제로 쓴 사초에 어마어마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황희가 대사헌 때 승려 설우에게 황금을 뇌물로 받아 ‘황금대사헌’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황희가 곤경에 처한 나머지 “도와달라”고 찾아온 역적(박포)의 아내와 간통했다는 대형 스캔들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또 황희가 “매관매직했으며, 자신에게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몰래 중상했다”고까지 기록했다. 정인지는 황보인 등 편수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황희의 오랜 지기였던 우리도 모르는 내용인데…. 중상모략이 틀림없어요. 간통 사건만 해도 그렇지. 아니 규방의 은밀한 일을 이호문이 어찌 안단 말입니까.”

결국 사관(이호문)의 ‘사감(私感)’이 개입된 ‘악의적인 사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인지 등은 “근거가 없는데도 고칠 수 없다면 직필이라 할 수 없다”며 삭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황보인·최항·정창손 등은 “사초를 삭제하는 선례를 만들면 말세의 폐단이 되니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고칠 수 없다”는 신중론을 개진했다. 결국 이호문의 사초는 삭제되지 않은 채 <세종실록> 1428년 6월25일자에 실렸다. 사실 <실록>에 황희를 두고 상반된 시선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1452년(문종 2년)의 ‘황희 졸기’는 “사람들이 우러러 어진 재상이라 했다”지만, “제가(齊家)에 단점이 있었고, 청렴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실제 황희 정승의 청렴성을 의심할 만한 내용들이 <실록>에 실려있다. 다만 ‘황금대사헌 운운’이라든지, ‘박포 아내 사건’ 등 대형 스캔들의 진위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세종실록>의 편수관들은 ‘사관의 기록은 절대 삭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목이 달아나도 사필은 굽힐 수 없다(頭可斷 筆不可斷)”(1735년)고 외친 조선시대 사관들의 자세였다. 무엇보다 황희 스스로 “<태종실록>을 보고 싶다”는 세종의 면전에서 “후세를 위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얼굴색을 바꾼 일도 있었으니까(1438년). 만약 황희 정승이 살아있었어도 이호문의 사초를 삭제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나름 억울했을 테지만…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7210027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