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아담 2015. 4. 10. 14:20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임금 아닌 임금, 덕종   -   이기환 논설위원        2015-04-07 21:25       

최근 오랜만에 낭보가 들렸다. 문화재청이 미국 시애틀박물관이 소장 중이던 ‘덕종어보’(사진)를 기증받았다는 소식이다. 한데 덕종이 누구인가. 아무리 ‘태정태세 문단세…’를 꼽아도 ‘덕’자는 없으니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본래는 왕이 아닌데 죽은 뒤에 높임을 받은 추존왕(追尊王)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임금 대우 국왕’이다. 덕종(1438~1457)은 만 19년을 살았을 뿐이지만 만만치 않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우선 세종이 자신의 무릎에 앉혀 키웠을 만큼 가장 사랑한 손자였다. 또 세조의 맏아들이자, 세종에 버금가는 성군이라는 성종의 친아버지이며, 지금까지 숱한 사극의 주인공이 된 인수대비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 또한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어린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아버지(세조)가 원죄였다. 그는 의경세자로 책봉된 지 2년 만인 1457년(세조 3년) 시름시름 앓았다. 세간에는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현덕왕후)가 나타나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의경세자)을 죽이겠어.”(<음애일기>)

의경세자는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격분한 세조는 현덕왕후의 능(소릉)을 마구 파헤쳤다. 현덕왕후 권씨도 기구한 여인이었다. 왕후는 문종의 세번째 부인이었다. 앞서 문종의 두 부인은 요사스러운 방사술(휘빈 김씨)과 동성애(순빈 봉씨) 때문에 쫓겨났다. 현덕왕후는 그들과 달리 덕과 위엄을 갖췄다고 한다.

왕후는 24살의 나이에 단종을 낳았지만 이틀 만에 승하하고 만다. 그렇게 낳은 아들마저 3년 만에 쫓겨났고, 친동생(권자신)과 어머니까지 단종복위운동(1456년)에 연루돼 참형을 당했다. 그랬으니 혼령이 되어 나타나 세조를 괴롭히고, 의경세자를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그렇게 죽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은 의경세자는 친아들 성종에 의해 덕종으로 추존됐다. 성종은 요절한 작은아버지(예종·재위 1468~1469)의 아들로 입양되는 형식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실의 법도를 따르면 예종을 아버지로, 친아버지(의경세자)를 큰아버지(백부)로 모셔야 했다. 그러나 성종은 절묘한 수를 찾는다.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황제의 재가를 받아온 것이다(1471년). 없던 전례를 억지로 만든 것이다. 성종은 친아버지에게 덕종(德宗)이란 묘호를 올리고, 종묘에 모시면서 어보를 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이번에 반환된 덕종어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