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원리강론

아담 2013. 1. 30. 00:23

<참된 행복을 찾아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떻게 될 때 오게 되는 것인가요?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을 마실 때 행복감을 느끼고 진리에 갈급한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만남으로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각자가 처해진 자리에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본의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욕심장이’라고 하면 기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욕심장이’를 떠 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 다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범죄는 불의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불의를 맺는 욕망 즉 악한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심은 악을 지향하는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을 지향하는 공통된 본심>
이 세상에 불의의 욕망을 따라가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 본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두운 죄악의 길에서 불의의 욕망을 채우고 한 때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욕망을 채운 다음에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괴로움과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에게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있을 수 없고 제자에게 불의를 가르치는 스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참된 행복을 지향하는 모든 인간들의 공통된 본심의 발로입니다.

특히 이러한 본심이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선을 이루려고 몸부림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종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종교인은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루고자 몸부림치면서 정성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유사이래 본심이 요구하는 선을 지향하면서 몸부림친 도인이나 종교인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지구상에 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수십억이 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사이래 본심대로만 살다 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3:10-11)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인간의 이러한 참경에 직면하였던 바울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2-24)라고 스스로를 개탄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놓고도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에 반하여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심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상반된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인간의 모순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어떤 선과 악을 놓고 결단해야할 문제가 생길 때 마다 갈등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신문기사에 이런 보도가 있었습니다. 선행을 한 어느 택시운전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세 2,000만원 짜리 작고 초라한 집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택시운전사가 하루는 뒷좌석에 탔던 손님이 신문으로 포장한 보따리를 놓고 내렸습니다. 택시를 세워놓고 무심코 보따리를 열어본 순간 깜짝 놀랐답니다. 그것은 바로 현금다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인적 없는 깊은 산골자기로 차를 내 몰았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돈을 세었습니다. 무려 4,0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돈이면 전셋집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크고 좋은 곳으로 옮겨 어머니와 가족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돈을 놓고 내린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이 돈을 잃어버린 주인이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운전사는 갈등했습니다. ‘주인을 찾아 주자’ 하는 마음과 ‘이 돈으로 더 큰 집으로 이사 가자’하는 마음이 갈등했습니다.

 

그 치열한 두 마음의 싸움 때문에 운전사는 밤을 꼬박 새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심하였습니다. 이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밝자 방송국에 찾아가서 신고를 하고 주인을 찾아서 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접수하는 직원이 택시기사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이것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잤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체 내에서 심각한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가 악을 지향하는 욕심이 우월하면 죄악의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선을 지향하는 욕심이 우월하면 선한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신앙생활을 한 결과 그가 속한 종단에서 칭찬을 받으면서 소중한 직분을 얻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선과 악의 갈등 속에서 선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을 놓고 갈등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면에서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율법을 완성했다는 말은 율법을 놓고 마음속에서 갈등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마음 속에서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는 등의 말씀에 갈등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행동을 위한 결단에도 갈등한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선한 가치를 놓고도 자체 내에 모순성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파멸의 길을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찾자>
그러므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죽도록 고민하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은 당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존재도 모순성을 내포하고서는 생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내포한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순성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일러 기독교에서는 타락이라고 합니다.

 

인류는 더 이상 타락한 인간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갈등 속에서 파멸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선명 선생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속에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싸우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더 이 싸움을 계속하시겠습니까? 10년입니까? 100년입니까? 우주의 모든 존재는 엄연한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겉사람 된 육신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속사람 된 양심의 길을 따라 인생승리를 달성해야 할 것이 여러분의 인간된 의무요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훈경 p127)

 


그러므로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노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의무요 책임입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 해야만 합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을 중심하고 갈등하지 않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그런 남자와 여자가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낳아 한 가정을 이룬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인을 이루어 산다면 그 세계가 진정으로 행복한 세계요 천국일 것입니다. 통일원리는 모든 인간을 행복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원리를 수련하고 깨달은 사람들은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지가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그래서 초창기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죄악에 빠져 살다가 구원을 얻고 새사람이 되었고 세계적인 멸시와 천대와 비소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극복하면서 오늘의 세계적인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이 원리를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통일원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