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

앞으로 빛이 되어 2020. 3. 27. 10:10





28:

1908년 중국 청나라 선통(宣統)황제가 즉위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역사의 마지막 황제였다. 중국혁명후 그는 친일전범자로 법정에 선다. 황제의 본명은 ‘아이신줘러 푸이(愛新覺羅 溥儀)’였다.

 

1 33:

아이신줘러, 즉 애신각라(愛新覺羅) 이것은 청황실에 성씨입니다. 이 아이신줘러에는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중국, 동북아를 꿰뚫는 역사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골타(阿骨打)와 누르하치(努爾哈赤). 아골타는 여진족으로 1115년 금나라(大金)를 세운 금태조이고 누르하치 또한 여진족으로 후금(後金) 그러니까 청나라를 세운 청태조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동안 북방 오랑캐족 정도로만 여겨져 왔던 여진족 혹은 만주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역사속의 비밀을 풀어내고자 합니다.

 

4 43:

일찍부터 북방에서는 ‘여진족이 1만명 뭉치면 대적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거란족은 철저히 여진족을 뭉치지 못하게 경계했다. 1114 1만의 여진족이 요나라 10만 대군을 하얼빈(哈爾濱) 인근 출하점에서 대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하룻밤새 만주의 질서는 뒤집어졌다. 출하점전투의 주역은 바로 완안여진족(女眞族)의 지도자 아골타였다. 1115년 아골타는 곧바로 금나라를 건국하고 황제가 된다.

 

7 22:

한족의 심장부를 점령한 여진 추장 아골타. 아골타는 금나라를 건국한 후 황실성을 ‘완안(顏)씨’로 정한다. 금태조 아골타의 정식 이름은 ‘완안아골타(阿骨打)이다. 송나라를 정벌할 때 금나라 군부의 핵심인물은 아골타의 넷째 아들 완안올출이었다. 그런데 중국 드라마에서는 완안올출을 김올출이라고 부른다. 완안올출을 왜 김올출이라고 부를까? 금나라 왕자의 성이 완안이 아니고 왜 김씨일까?

 

8 44:

중국 대륙 서쪽 깊숙한 곳 감숙성의 경안현에는 뜻밖에도 완안성씨의 여진족들이 동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직계 조상이 금태조 아골타의 넷째아들 완안올출 즉 김올출이라고 했다. 왜 금황족의 후손들이 만주와는 정반대의 땅인 이곳에 살고 있을까? 오지에서 정체를 숨긴채 5천여명의 완안씨들은 씨족공동체를 이루어 8백여년 동안 이어오고 있었다.

 

11 8:

완안올출의 비석에도 역시 김올출이라는 이름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왜 자신들 선조의 성을 완안씨라고 하지 않고 김씨라고 부를까?

만주에서 감숙성까지의 거리만큼이나 기나긴 역사의 비밀이 ‘쇠금()’자에 담겨있다.

 

12 59:

여진족은 요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골타라는 영웅이 등장하면서 금나라를 건국하고 요나라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금나라는 곧바로 한족을 침략해서 중원대륙을 초토화시킵니다. 이때부터 중원에 있던 한족들은 북방민족에 의해 농락당하게 됩니다.

 

18 29:

송막기문(松漠紀聞)은 남송의 홍호가 10년동안 금나라에 머물며 기록한 당대의 생생한 증언이다. 그런데 송나라 사신 홍호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여진추장은 신라인’. 그뿐만이 아니다.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에는 자신들의 황실뿌리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이며 고려에서 왔다 – 금사본기’ 금시조 함보의 8대손이 태조 아골타이다. 신라와 고려인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두 사서 모두 금의 선조가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으로 기록했다.

 

19 42:

중국 다렌대학 왕우량 교수 – “함보는 고려 건국후 고려에서 왔다고 말하거나 고려  건국전 신라에서 왔다고 말해도 무관할 것 같습니다.”

 

20 28:

‘흠정 만주 원류고’는 여진족이 세운 또 하나의 나라 청나라의 공식 역사서이다. 이 책에는 금나라의 국호에 대한 설명이 있다. ‘금은 신라 김씨에서 유래했고 국호도 이를 따른 것이며 그 외의 주장은 근거없다’고 단호하게 정리했다.

 

21 44:

북만주에서 바람처럼 일어나 중국대륙을 제패했던 여진의 영웅 아골타, 그의 8대조는 고려초에 한반도에서 넘어간 사람이었다. 천년 넘는 역사의 저편에 과연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22 7: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지만 엄연히 중국 정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겠죠. 이러한 기록은 송막기문, 금사, 흠정만주원류고뿐 아니라 금지(金誌)와 삼조북맹회록(三朝北盟會編) 등에도 줄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7 9:

1636년 김세렴이 일본 통신사로 다녀오면서 남긴 해사록이라는 책에는 놀라운 기록이 나온다. 조선 유학자가 여진족 아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자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의 후손이다’고 했다. 아골타의 선조 함보는 김씨인데 왜 권행의 후손이라고 했을까?

 

30 30:

신라인 김함보의 후손들이 만주를 통일하고 나아가 한족과 중국대륙을 장악했다. 북방민족인 만주에 한족이 흡수된 형국이로군요. 우리역사에서 여진족은 읍루(挹婁), 말갈(靺鞨), 물길(勿吉), 숙신(肅愼), 주신(珠申,朝鮮), 여직(女直), 여진(女眞) 그리고 만주(滿洲)족으로 등장합니다. 부여와 고구려, 발해의 주요한 구성원들이었고 우리역사의 한 축을 이루던 사람들이 바로 여진족입니다.

 

37 48:

중국의 수도 베이징(북경北京)은 송나라 때까지만 해도 한족에게는 변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진족은 중원을 장악한 후 이곳에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었다. 북경은 그후로 중국의 중심지가 된다.

 

39 1:

당시 베이징 건설의 총책임자는 장호였다. 그는 뛰어난 능력으로 4대에 걸쳐 황제의 신임을 받은 발해 유민이었다.

 

41 21:

금나라 건국후 많은 발해의 여인들은 금황실로 시집을 갔다. 이로써 발해인들은 금나라의 고위 관료층과 왕비족으로 자리잡았다. 금나라는 발해인과 여진족 연합정권의 성격을 띄게 된 것이다. 금나라는 발해 후손인 왕비족과 신라의 후예인 왕족 이들이 합해져서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역사의 한부분인 것이다.

 

42 11:

금황실의 선조가 신라 후손이었고 국가의 지배계층은 발해의 유민, 그리고 고려와의 우호적 관계. 여진족 금나라는 우리역사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만주의 역사는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 신라, 그리고 금나라의 역사가 되는데 이것은 중국의 역사와는 상충되고 우리의 역사와는 그 맥락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42 51:

금나라는 또다른 북방민족인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지만 그후 1616년 여진족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후금을 세움으로써 다시 대륙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것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입니다.

 

44 18:

여진족의 후예들이 세운 중국 마지막 왕조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는 지금의 티벳과 신장위구르 지역까지 장악했다. 현재의 중국 영역은 청나라 건륭황제가 이룬 것이다. 청황실의 성씨는 아이신줘러(愛新覺羅)’이다.

 

45 07:

청 건륭황제 7대손 김괄 – “제 할아버지 성함은 헝쉬입니다. 아이신줘러 헝쉬. 할아버지는 당시 학교를 다니거나 직업을 구할 때 김광평이라고 불렀습니다.

 

45 45:

누르하치(愛新覺羅) 1616년 만주에서 후금을 건국한 후 랴오닝성 심양을 수도로 정한다.

 

46 16:

청태조의 이름은 애신각라 노이합적(愛新覺羅 努爾哈赤) 즉 아이신줘러 누르하치. 청황실의 성은 한자로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그런데 청황실의 후손인 김괄 교수는 왜 자신의 성을 김씨로 할까? 청나라의 역사서인 만주실록에는 청황실과 만주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나온다. 아이신을 한자로 표기하여 애신(愛新)’이 되었고 만주어 아이신의 원래 뜻은 ()’이다. 각라(覺羅)는 만주어 줘러를 한자로 차음표기한 것이며 씨족이라는 뜻이다. 아이신 줘러는 만주어이고 한자표기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며 원래 뜻은 금()이다. 청황실의 성 애신각라 즉 아이신줘러는 금부족들’, ‘김씨들 또는 김씨집안을 뜻한다. 금을 성으로 삼는 여진족의 후예 만주족들. 마지막황제 아이신줘러 푸이는 김부의이다.

 

48 34:

신라왕의 성인 경주김씨와 신라의 후예 금황실, 그 금나라의 후신인 청황실, 그들은 금을 뜻하는 김씨들이었다.

 

49 10:

1911년 신해혁명과 함께 청나라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때 중국인들이 내세웠던 구호가 멸만흥한(滅滿興漢)’ 그러니까 만주족이 세운 나라를 타도하고 한족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얘기입니다. 결국 이때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족들은 만주와 중국이 혈연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중국은 수천 년의 한족중심사관을 버리고 다민족통일국가론이라는 사관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즉 중국역사는 한족이 이민족에 항쟁한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중국이라는 통일된 국가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만주와 우리역사에서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요 이민족인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그리고 금나라와의 전쟁도 모두 중국 내부의 갈등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여진족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신라인의 후예가 금제국을 건설했다는 민족적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2003년부터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는 역사전쟁 즉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황된 역사관인가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56 07:

한족들에게 치욕을 안겨준 이민족의 나라 금나라. 더구나 금나라 태조 아골타의 시조가 신라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중국의 야심찬 동북공정 역사관을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다. 잃어버린 역사, 버려진 우리의 역사 만주, 그곳은 이제 치열한 역사전쟁으로 부활하고 있다.

 

56 52:

왜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명확하게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의식속에 한족은 우수하고, 흉노와 여진 등은 북방오랑캐라는 소중화사상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역사에 대한 무관심은 단순히 우리의 과거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우리가 지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