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한국정치의 호프 2017. 9. 28. 19:48

Ⅰ. 서론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시기인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1979년 10·26사건까지의 무려 18년 가운데, 1970년대 유신체제는 가장 폭압적인 시기에 해당된다. 이런 폭압적 시기가 있게 된 연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제정해서 강권통치로 종신집권을 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은 군(軍)출신으로 불법적인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전복시키고 2년간 군정(軍政)을 통해 집권, 제3공화국시기에 대통령직선제로 중임(重任)을 역임해 왔다. 그러나 제3공화국 헌법의 대통령 3선(三選) 금지조항으로 3선집권이 어렵게 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서 여당(민주공화당)만의 변칙통과로 3선개헌안을 만들어 대통령 3선을 역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3선집권 도중에 헌정쿠데타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유신헌법의 제정,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간선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고자 한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시기 유신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대통령긴급조치를 헌법 조항에 명문화시켜 영구집권을 꾀했다. 유신헌법은 제도적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반민주성, 대통령긴급조치의 위법성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을 채우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신체제에 항거한 일부 대학생과 반(反)유신세력을 긴급조치로 억압하고 부마항쟁의 진압과정에서 폭압성을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강압통치로 장기집권을 하고자 만든 유신체제의 도입은 아이러니하게도 반유신운동인 부마항쟁을 계기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둘러싸고 중앙정보부(김재규)와 대통령경호실(차지철) 두 권부(權府)간 갈등으로 이어져 10․26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쿠데타 이후 군정(軍政) 2년, 제3공화국에서 대통령직선 3번, 유신체제에서 대통령간선 2번으로 장장 18년의 장기집권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집권욕을 뿌리치지 못하고 계속 집권하고자 했을까? 이런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왜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장기집권을 감행했는지, 유신헌법이라는 악법을 만들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영구집권의 대통령직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권력유지의 수단으로써 왜 대통령긴급조치와 계엄령과 위수령을 강행해야만 했는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가지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의 상위에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도입하고, 반(反)유신세력에 대해서는 대통령긴급조치를 발동하고, 장기집권을 꾀하고자 한 것은 국민의 염원인 국가의 민주화와 주권재민과는 동떨어진 집권욕과 폭압성을 동반한 독재자로 연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유신체제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과 폭압성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긴급조치, 부마항쟁이라는 세 가지 사례로 분석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에 안주하면서 유신체제가 와해되지 못하도록 긴급조치와 계엄령으로 폭압적인 통치를 해왔으나, 정작 자신의 부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대통령의 말로(末路)를 보여주었다.

 

유신체제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제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제도화시키고, 또 대통령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에 해당하는 유신정우회(유정회)라는 체제의 행동대를 선출하게 하여 유신헌법을 통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획책한 후진국형 정치체제 그 자체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허수아비식 친위기관을 내세워 손쉽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영명한 지도자'로 신격화되어갔다. 그 결과 행정부를 장악한 데 이어 대통령지명의 유정회와 민주공화당(공화당)이라는 두 트랙으로 의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의회(입법부)를 장악하며 난공불락 장기집권의 입지를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유신체제시기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 개인의 집권욕과 그 권력유지를 위해 감행한 폭압성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국민에 의한 대통령직선제와 야당의 집요한 대권도전 배제라는 측면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제도적 역할로 권력유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무한도전의 권력장악이 가능하게끔 헌정체제를 바꾸는 일대변란이 바로, 유신헌법에 의한 유신체제의 성립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신헌법이 대통령을 영구집권하게 만들어놓은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욕과 폭압성의 실체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긴급조치, 부마항쟁 진압과정의 사례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중략>

 

따라서 이 사례 분석은 기존의 유신체제 연구가 반(反)민주성과 위헌성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미흡한 것에 대한 반증으로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반민주성, 대통령긴급조치의 위법성과 강압성, 부마항쟁에서의 박정희 정권의 폭압성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한 연구방법으로는 인과관계 측면(유신체제의 성립과 붕괴), 법·제도적 측면(유신헌법과 대통령긴급조치), 그리고 행태적 측면(박정희 대통령의 권력욕과 폭압성) 등이다. 왜냐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행태적 측면에서 집권욕과 폭압성을 가지고 영구집권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 측면과 법·제도적 측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면만을 고려하기 보다는 위 세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이 의도하고자 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과 폭압성이라는 행태적 측면을 중심에 두되, 유신체제의 등장과 붕괴라는 인과관계적 측면과 유신헌법의 상위에 올려놓은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유정회 및 국가긴급권이라는 법·제도적 측면을 보조변수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이 행태적 측면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부로 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간의 갈등도 부수적으로 포함시킬 것이다.

 

* 이글은 한국정치사회연구소한국과 국제사회제1권 2호(2017 가을호)에 게재된 정주신(한국정치사회연구소)의 "유신체제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과 폭압성: 통일주체국민회의․대통령긴급조치․부마항쟁," 논문의 서론 부분에 해당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