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브라질 이야기

20년 전부터 브라질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울러 유튜브도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브라질 근현대사 핵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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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뉴스 기고

2015. 11. 12.

안녕하세요. 

밝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착한 브라질 이야기입니다. 

원래 제가 쓰는 글은 정치. 경제외에 밝은 브라질 문화와 특히 음식에 대해서 자주 쓰는데 요즘은 우리 한인들도 가장 민감한 경제가 어려워 이를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착하며 사는 브라질은 그동안 수많은 경제위기를 이겨왔는데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심각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주위에서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고 특히 외국에 사는 한인들은 자원 많고 인구 많고 땅덩이 큰 브라질이 왜 이렇게 어렵다고 하는지 이해 못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유야 여러 가지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문제입니다. 

정치적인 어려움으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기업들은 불안한 시대에 투자를 주저하며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쉽게 알 수 있는 브라질 역사 배경에 대해서 씁니다. 

길더라도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

 



지금의 브라질을 알기 위해서는 근현대사를 먼저 봐야 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식민지 시절부터 지주들과 노예들의 삶은 하늘과 땅처럼 갈라져 부를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 대다수 국민은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1808년 포르투갈 왕족이 나폴레옹을 피하여 브라질로 피신했을 때 선선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되어 리우데자네이루가 브라질 왕국 수도가 됩니다. 그러다 1889년 공화정으로 바뀌게 되자 권력과 부의 분산을 위해 브라질 남부와 북동부 지역 주민들이 수도 이전을 처음 제시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19세기 말 공화정 초창기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당시 기득권이 많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커피 재배로 돈이 많은 상파울루 주 그리고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미나스 제라이스 주가 서로 돌아가며 대통령이 되자 이 상황을 카페꽁 레이찌(Cafe com eliteleite) 즉 우유·커피 공화국이라고 비판하게 되며 다른 지역에도 기회가 있어야 한다며 수도 이전에 다시 힘이 쏠리게 됩니다. 1930년에는 하오히오 그런지두 술주 출신의 군인 제뚤리오 바르가스(Getulio Vargas)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 재분배와 국민의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했지만 오랜 독재로 많은 적을 쌓고 특히 기득권이 많은 리우데자네이루 출신 지식인들의 힘에 밀려 결국 1954년 자살하게 됩니다. 지금의 브라질리아 수도가 위치한 곳은 브라질 국가 한가운데 있어 전국 균형을 잡는 지역이기는 하나 허허벌판이었기에 도시를 세울 기술과 자본이 없던 상황에서 근 현대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주셀리노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ck) 대통령이 등장합니다. 멋쟁이에 당시 2차대전 후 농산품 수출로 돈을 많이 번 브라질은 대국을 향한 성장 도약의 기회로 잡아 사회가 술렁일때 였습니다. 1955년 쿠비체크 대통령은 드디어 수도 건설을 시작하도록 서명하며 건설붐이 일게 됩니다.


   


5년 만에 척박한 땅에 50만 명이 살 수 있는 대도시를 건설한 브라질리아는 20세기 인류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공중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편 비행기 모습으로 설계됐는데 이 도시는 유명 도시 설계사 루이스 꼬스따(Luis Costa)와 천재적인 건축가 오스깔 니에마에르(Oscar Niemeyer)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1960년에 완공한 브라질리아는 도시 건설에 모든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여 국가 재정에 큰 압박을 주게 됩니다.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은 쿠비체크의 부통령이었던 주엉 굴라르찌(Joao Goulart)는 차기 대선에서 당선되어 1961년 취임하게 합니다. 쿠비체크 대통령이 시작한 대브라질 선진 계획을 착실히 이어온 굴라르찌 대통령은 토지.교육.도시 개혁 등 수도 이전과 더불어 새천년을 맞이할 준비를 착실히 하지만 당시 기득권이었던 대농장주와 기업가들과 대립하게 됩니다. 브라질리아 수도 건설로 파탄 난 국가 재정을 더욱 위협하는 무상 교육.연금.의료 정책은 가뜩이나 어려운 브라질 경제 상황을 더욱 힘들게 하였고 특히 친노조 정책은 당시 세계를 반으로 나눈 이념 정책 즉 공산화 운동에 불을 지피게 되는데 이를 반대한 군인들이 들고일어나게 합니다. 1964년에 들어선 군사정권은 심각한 인권유린은 물론 브라질 경제를 한 손에 쥐는 정책을 폅니다. 당시 브라질은 원자재 수출과 세계 경제 호황으로 큰 을 벌게 되는데 수출 물품이 많자 이제는 국가보호 정책으로 돌아서 수입금지를 명하게 됩니다. 즉 모든 물자를 수입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수입금지는 물론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한 회사가 한가지 사업을 독점하는 체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는 관리가 쉽게 하도록 한 것인데 1964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이 정책은 결국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낮추고 투자를 멈추게 한 것입니다. 굳게 닫혔던 수입문은 1991년 꼴로르 대통령이 들어서며 개방하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문을 열어 물밀 듯이 들어온 외국 제품은 저질품의 브라질 제품을 능가하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브라질 기업은 파산하게 되며 또 다른 경제위기를 가져옵니다. 하여간 이때부터 브라질은 국내 생산보다 외국산 수입이 더 싸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오랜 폐쇄정책 중 가장 큰 문제는 조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군사정권 속에서 국가의 갖은 시장개입은 결국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즉 오랜 시간 동안 외국과 거래 없이 살아난 국내 기업은 독점권으로 경쟁사가 없어 무리하게 개발과 투자를 할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품 질은 떨어지고 생산량도 떨어져 시중에 물건이 모자라는 전형적인 인플레이션이 일기 시작한 것이죠. 1980년 초반부터 점차 심화한 물가상승은 하이퍼 인플레 시대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는 연간 수백에서 수천 퍼센트 물가상승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국가 재정 적자는 물론 기본적인 서비스 즉 교육.의료.국방 모두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휴지보다 돈이 더 싸던 시절, 길거리에 뿌려진 지폐를 아무도 줍지 않던 시절을 지나 수차례 정책을 내세웠으나 모두 힘을 못 쓸 때 1994년에 시작한 헤알 정책은 기존 통화량만 줄이던 정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재정 지출도 줄이는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인플레이션을 잡은 것입니다. 이에 힘입어 8년 동안 두 번의 임기를 지낸 엔히끼 대통령은 재정축소로 국민 인기를 빼앗겼지만 대신 탄탄한 재정을 가진 연방정부를 최초의 좌파 대통령 룰라에게 2002년 물려 주게 됩니다. 룰라 대통령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가진 자의 세상에서 드디어 저소득층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인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야당생활과 노조 활동을 하던 룰라 정부는 국회에서 다수가 안 되어 정책을 이어가기 힘들었습니다. 이제 노동당(PT)은 지지를 조건으로 같은 연립여당이던 의원들에게 지지 조건으로 매달 돈을 주는데 이를 위해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멘살렁(Mensalao)입니다. 




우체국, 국민연금 등 공공기관에서 돈을 빼돌리고 민영화한 통신기업으로부터 1억2천만 헤알을 빼돌리는 등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을 가지고 의원들을 매수합니다. 이 사건은 우체국 임원의 무리한 뒷돈에 앙심을 품은 납품업자가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언론에 배포하며 알려졌는데 룰라가 이를 무시하며 꼬리를 자르려 하자 다치게 된 당시 연립여당 정치인들의 폭로전이 난동하며 점차 수사가 커져 당시 주세 지르세우(Jose Dirceu) 내무부 장관은 물론 노동당 대표 주세 제노이노(Jose Genoino) 등 정부의 중요 인사와 대통령의 핵심인물이 모두 구속당하고 실형을 선고받게 된 것입니다. 수백 년간 이어온 우파 정권을 비판하며 깨끗한 이미지의 좌파 정부를 지지하던 국민은 노동당도 똑같은 행동을 한 것에 큰 충격을 빠지며 분노에 휩싸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룰라 정부 2기 임기 끝에 치러진 대선에서 룰라가 추천한 당시 내무부 장관 지우마를 선출하게 됩니다.  국민은 이미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보조금에 매달려 혹시 못 받을까봐 두려워 선출한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간 지우마 대통령은 선출되었을 때부터 룰라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주는데 룰라 정부가 완성하지 않은 정책을 버젓이 폐기하고 비리사건 조사를 방해하며 국민의 여론을 한쪽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비리와 천천히 일기 시작한 경제 빨간불로 국민의 불만이 고조하게 됩니다. 2013년에는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려 지우마 대통령과 룰라에 대한 최초의 욕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2014년에 열린 월드컵 개막일에는 외국 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야유를 보내 정부 관계자를 당황하게 하였고 월드컵 우승을 확실하던 국가 대표는 독일전에서 7대1로 대패하여 4강 진출이 좌절되자 국민 불만은 폭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같은 해 10월에 열린 대선 뚜껑을 열자 국민은 또 한 번 지우마 대통령을 지지하며 두 번째 임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옛날과 달리 심각한 세계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기업들의 투자가 멈췄고 전기 요금은 배로 오르고 해고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노조의 반발이 심하며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불만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멘살렁 사건으로 자금줄이 막힌 룰라와 대통령은 이번에는 브라질 1위 국영기업 브라질석유공사에 손을 뻗는데 연립정당인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그리고 브라질민중당(PP) 당과 사이좋게 나눠 먹은 사건이 터집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조사하고 있는데 이름하여 라바자또(Lava Jato) 사건입니다.




지난 2003년 노동당과 2개의 정당에서는 각각 사람을 내세워 석유공사 임원에 올려놓습니다. 이들은 결재를 직접 하며 석유공사에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1~3%의 비자금을 받았는데 돈 주기를 거부하면 입찰에 참가할 수 없어 대다수 건설가와 중공업이 모두 돈을 주게 됩니다. 우리 한국 삼성중공업은 물론 다른 나라 업체들도 뒷돈을 주었는데 업체들은 수사가 시작하자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을 내는 등 합의하였으며 특히 증언을 통해 생생히 증거를 모두 넘기게 됩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크냐 하면 현재까지 나타난 비자금 액수는 500억 헤알에 달하고 특히 브라질 최대 건설사 사장이 구속되는 등 현재 브라질 전체 국영공사에 차질이 있을 정도입니다. 멘살렁 사건에서는 주변 인물들의 함구로 혐의를 피해간 룰라 대통령이 이번 라바자또 사건에는 직접 개입한 정황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어 검찰에서는 이미 룰라 소환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우마 대통령은 이번 라바자또 사건의 핵심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임명권을 갖고 있어 도의적인 책임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룰라 정부에서 가장 떠들썩하게 말한 정책 볼사파밀리아(Bolsa Familia)는 지속적인 경제불안으로 세수가 적어 운영하기 어려운데도 작년 대선에서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국책은행이 1000억 헤알에 달하는 액수를 책임지게 하여 공공책임회피 분식회계 혐의로 요즘 퇴임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지금의 경제위기와 어려움은 우파의 흔들기라고 주장하며 자신은 깨끗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본인 임기 기간에 이룩한 경제성장은 모두 자신의 능력이 때문이라 주장하며 지금의 위기와는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그 핵심에 있는 지우마 대통령의 무능을 탓하며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열매를 맺는 나무로 비교한다면 룰라 정부는 3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교육과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아 물을 주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도로를 정비하고 부두를 넓힌다고 했지만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지금 브라질 국가 경쟁률은 아프리카 빈민국 수준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 열매를 너무 빨리 많이 땄습니다, 당시 세계 경제가 호황을 이뤄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돌고 돌자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무분별하고 돈을 마구 퍼다 쓴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물론 쿠바와 베네수엘라 등 제삼 세계 노선을 주창하며 선봉장 역할로 이들 나라에 무상지원을 한 것입니다. 물론 브라질은 고질적인 재정적자와 교육.의료 저질로 국민은 고생하던 것과 비교하면 미치고 환장할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뿌리를 갈아먹는 빈민구제 프로그램입니다. 볼사파밀리아는 먹을 것 없는 빈민을 구제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그 뿌리는 원래 엔히끼 대통령 때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확대하여 무상으로 그것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다 보니 결국 공부하고 직장을 얻는 것보다 이런 보조금을 받기가 더 쉬워 더 많은 사람이 매달려 재정지출을 압박한 것입니다. 빈민구제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계속 혜택을 주어 결국, 나무는 뿌리도 잘리고 열매도 빼앗기고 물도 없어 말라 비틀어 죽게 된 것이죠. 


룰라 정권은 임기 기간동안 3백만 가구를 D/E 계층에서 중산층은 C 계층으로 성장시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먼저 D/E 계층은 가구당 월수입이 1,957헤알, C계층은 가구당 월수입이 1,958~4,720헤알까지입니다. C 계층 즉 중산층으로 올라온 저소득층 사람들은 처음으로 보험도 들고, 고등교육도 받고 새 차도 사는 등 나름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제불황으로 다시 D/E 계층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드리아노 삐똘리(Adriano Pitoli) 경제학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15~2017년 사이 경제는 0.7% 움츠러들고 실질적인 가계소득은 1.2%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2017년 12월에는 17살 이상 실업률은 9.3%로 내다보며 310만 가구 즉 1,000만 명이 C 계층에서 한 단계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번 올라간 중산층에서 한 단계 내려가는 것은 200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며 올해에만 150만 가구 내년에는 110만 그리고 2017년에는 45만 가구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럼 중산층에서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실업입니다. 




요즘 기업들이 어려워하며 공장을 닫고 정리해고 한창입니다. 또한, 물가상승률을 따르지 않는 임금은 그 값어치가 연일 떨어지고 있고 줄어든 신용대출은 소비를 줄이며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한숨 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월급 공제가 높을 정도로 빚이 많다는 것이 지금 브라질의 현실입니다. 지난 2014년 국민소득은 11,612불을 기록하며 최고를 기록했지만, 올해에는 8,490불 그리고 2018년에는 7,900불이 예상되며 전 국민의 평균 소득은 최소 2020년까지는 얼어붙을 것이라고 FGV 브라질 경제 연구소는 발표하고 있습니다. 기업인들도 세금과 생산비가 50% 저렴한 파라과이로 이전하는 곳도 있고 외국계 기업에 반값에 매각되는 곳도 많습니다. 그래도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투자가 활발하다면 다시 회생할 수 있는데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각 정당은 벌써 차후 대선을 노린 물밑작업으로 서로 헐뜯기 바쁘고 기업들은 사업이 안 돼 연일 철수.축소를 외치고 국민은 일자리 잃고 배고파서 길거리로 내몰리며 강도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룰라가 만들어 놓은 것은 신기루같이 사라지는 것인데 룰라는 본인 잘못이 아니라 세계경제 위기가 가장 큰 이유고 우파의 장난이라고 아직도 이념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하는 모습에 원래 지지하던 저소득층도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적 최초로 좌파 정권을 만들고 저소득층에게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던 룰라.지우마 정권과 노동당은 모든 이에게서 손가락질받는 미운털 박힌 정부로 바뀐 것입니다. 정책상 실수라기 보다 개인 욕심을 더 부린 룰라와 지우마 정부는 역사를 바꿀 기회와 꿈을 짓밟아 버린 것입니다긴 글 오늘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길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쉽게 썼습니다. 답답하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다시 안정을 찾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삽시다.



손정수 대표 / 착한 브라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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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브라질 탑뉴스에 간추려 게제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