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브라질 이야기

20년 전부터 브라질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울러 유튜브도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한식은 집밥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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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야기

2019. 8. 23.



어렸을 적 우리 집은 한식을 꼭 먹는 집이었다. 이민 사회에서 한식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시절. 솜씨 좋으신 어머니 덕분에 항상 요리가 넘쳤다. 동네 궂은일에 앞장서시는 아버지가 고기를 궤짝으로 사 오시면 동네 사랑방 역할인 우리 집은 이웃들로 북적거렸다.

열여덟 살 무렵 부모님은 드디어 식당을 차리셨다. 쉽지 않은 이민 생활. 오랜 고민 끝에 어머니의 솜씨를 발휘하여 식당을 차리신 것이다. 학교생활로 따로 생활하던 나도 식당일에 매달렸다. 힘들었지만 식당에서 일하시던 한식 조리사 선생님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 배움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바탕이다.

식당은 1년 뒤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부모님은 한국으로 들어가셨다. 이리저리 떠돌다 혼자 살며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눈칫밥도 먹고 때로는 굶었다. 이때부터 한식은 좋아하면서도 먼 음식이 되었다. 혼자 살며 밥을 제때 제대로 해 먹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꽤 요리한다는 소리 들었다.

그래도 먹는 것보다 못 먹고 버리는 게 더 많았다. 그래서 주로 밖에서 먹었고 시간 되면 꼭 한식당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상파울루의 모든 한식당은 다 가봤다. 그렇다고 매번 비싼 한식당에 갈 수 없었다. 한식은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고추장 된장 등 수입품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비싸다.

혼자 살다 보니 우리 집에서 자주 모임이 벌어졌다. 내가 가장 많이 해 먹는 음식은 돼지 두루치기. 목살을 살짝 물에 데쳐 기름기와 잡내를 버린다. 배추와 김치를 잘 다져 넣어 볶다 특제 양념을 넣는다. 육수를 넣고 끓이다 두부를 올려 주면 나만의 특별한 요리가 된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꼭 요리해 먹었다.

한 번은 새벽에 늦게 들어와 한 시간 동안 요리했다. 맛있게 먹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만들고 밥통을 열어 본 순간. 밥이 없어 또 30분 동안 밥을 제대로 만들어 먹었다. 설거지 다 해 놓고 창밖을 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잠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맛있게 먹었다는 성취감에 벅찬 가슴 안고 잠이 들었다.

한식을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내 입맛이 많이 변했다. 잘 안 먹던 치즈도 먹고 아침에는 블랙커피에 빵 한 조각이 더욱더 맛있다. 물론, 이는 결혼하고 내 입맛을 바꾼 아내 역할이 크다. 결혼 전에는 내가 밥해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해주는 한식을 먹고 나는 얌전히 있기로 했다.

어느덧 내가 한식 관련 일을 하게 됐다. 식당이 아니라 브라질 사회에 한식을 알리는 일이다. 돈 버는 사업이 아니라 점차 잊혀 가는 우리 한식. 특히 다른 민족이 자기네 고유문화라 주장하고 있어 나라도 지키자는 작은 사명감에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보다 음식을 더 많이 만들고 장사하는 사장님도 있다.

보다 한식을 제대로 공부하신 분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연구하여 한식의 원리와 역사 그리고 요리 강습을 하러 다닌다. 주위에서 나보고 음식을 잘해 먹는 사람이라고 한다.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호기심에 식자재를 이용하여 만들어 먹는 것뿐이다.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 먹어봐서 맛을 분간할 줄은 안다. 이런 경험을 무기 삼아 한국 사람,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한식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것을 먹고 자라는 아이는 행복하다. 우리 쌍둥이들은 아직 김치를 못 먹지만 한식을 자주 해 먹인다.

아직 음식에 빨간색이 보이면 이건 매워요? 하고 물어보는데 참 귀엽다. 아빠가 해 줄 것 중 여러 음식을 만들어 주고 특히 남과 달리 한국말 잘하고 한식을 잘 먹는 아이들 키우려 한다. 혼자 살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외로웠지만, 이제는 가족이 있어 배부르다. 한식 그것은 내게 소중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