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브라질 이야기

20년 전부터 브라질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울러 유튜브도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코비드 이겨내는 브라질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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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야기

2020. 9. 17.

이 글은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에서 2020년 9월에 발행한 웹진 라틴아메리카 4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소개란에 쓰인 '브라질 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 오래전 활동한 이력입니다. 편집측에서 굳이 이력을 요청하여 부득이 넣은 것입니다.  개인 결정이 아님을 분명히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글은 지난 7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지금은 격리가 완화되었지만 경제는 아직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원본글보기 링크 http://www.lakis.or.kr/webzine_new/?go=45#ebook/66-67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민 6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브라질 한인사회. 세대도 1세대에서 2세대로 완전히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코비드 19가 창궐하며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첫 환자가 2월 26일 확진 받으며 국내 시장은 요동쳤다. 한창 불경기로 조마조마하던 시장은 바로 반응하며 환율은 40% 이상 급등했다. 브라질에서 가장 큰 경제축을 이끄는 상파울루 주지사는 3월 20일부터 본격적인 격리를 시행했다. 격리는 우리 한인이 이룩한 모든 것을 앗아가는 계기가 됐다. 

 

5만여 명의 한인이 사는 브라질.  대부분 상파울루시 중심지 봉헤치로(Bom Retiro) 동에  한인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봉헤치로는 2차 대전 전후 이탈리아, 그리스, 유대인을 거쳐 이제는 우리 한인이 활동하는 전통적인 이민 동네이다. 상파울루시에서 법령으로 한인촌으로 지정한 첫 이민 동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인촌에 모든 한인이 사는 것은 아니다. 도시가 넓어 지역마다 퍼져 살고 있지만, 대다수 이곳에서 의류와 관련된 일을 한다. 한식당 등 먹거리 시장도 50여 개가 되고 교회도 있고 병원도 있고 학교도 있는 곳이다. 

 

작은 강을 건너 수천 개 옷가게 있는 브라스(Bras) 지역과 더불어 우리 한인은 80~90년대 최대 2,200여 개 이상의 가게를 운영했다. 시대가 변하며 불경기로 지금은 1,000여 개 정도로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한인이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다. 의류업은 단순히 옷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다. 원단, 원사, 단추, 포장지 등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고 다림질, 주름, 염색 등 서비스도 필요하다. 한국·중국  등에서 옷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업체도 있다. 하여간 국내에서 인정받은 큰 시장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민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의류업을 다르게 봤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4차 산업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매력적인 사업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늘어난 규제와 경쟁으로 예전과 같이 큰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일부는 아예 업종을 변경했고 취업하고 전문직에 도전했다. 점차 어려워지는 의류업에 큰 변화는 있을 것이라 누구나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또 큰 여파로 오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3월 20일부터 시행된 첫 격리는 딱 15일만 시행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집에 있으면 바이러스 확진도 줄어들 것이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간다고 대다수는 믿었다. 브라질 사람은 독감과 비슷한 바이러스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격리로 일어날 피해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격리는 예상보다 잘 못 됐다. 참여율이 70% 이상 되어야 하는데 60% 미만, 심한 경우 50% 정도만 집에서 격리했고 나머지는 돌아다녔다. 즉, 격리는 지켜지지 않는 불편함만 남겼다. 

 

실패한 원인은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봉쇄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장과 병원 약국 슈퍼마켓 빵집 등 필수 업체는 계속 정상 영업했다. 이들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계속 일을 했다. 대중교통도 돌아다니는 등 도시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첫 15일간 집에서 격리하던 시민도 격리가 계속 연장되자 점차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인도 석 달간 가게를 열지 못해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임대료를 내야 하고 직원 월급도 줘야 하고 또 그동안 사놓은 물품 대금도 내야 했다. 이와 별도로 자녀  학비와 생활비도 충당해야 했다. 그런데 격리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돈이 돌지 않으니 경제 상황이 점차 악화했다. 임대료를 깎아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정부에서 지정한 유예기간 후 사정없이 받아내고 있다. 자녀 학비도 최소 10% 할인해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액 그대로 받는 사립학교가 대부분이다.  

 

연방정부에서는 격리 초기 두 달간 월급의 절반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격리는 계속 연장되며 이제 다섯 달을 넘겨 눈물을 머금고 직원을 해고했다. 주 정부에서는 세금 감면이나 융자금 지원 하나 없이 가게를 열지 못하도록 감시만 하며 시민의 성토를 받았다. 실제로 한 한인 업체는 격리 기간 중 비밀리에 영업했다는 이유로 2,000불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여받았다. 삶도 어려운데 기본 서비스도 받을 수 없는 악몽 같은 기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 이어갈지 고민하는 사람도 한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가게 문을 닫고 무작정 한국으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오랜 불경기와 여러 이유로 지난 5년간 만여 명의 한인이 브라질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코비드 19로 대략 3,000여 명이 한국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떠났다는 것의 안타까움과 남은 사람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 많은 걱정이 남았다. 

 

안타까운 점은 하던 사업을 폐업 신고도 하지 않고 그냥 한국으로 갔다는 것이다. 폐업을 신고하려면 시간과 돈도 많이 들고 지금 그럴 여력 없어 들어갔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 안타깝다. 지난 몇 년간 브라질에 다신 오지 않겠다며 한국으로 들어갔던 사람도 있다. 이곳에 사는 친척도 만나고 싶고 향수병에 걸려 브라질의 돌아오려고 했지만, 밀린 세금과 소송으로 공식 루트로 못 오고 인적 국을 통해 밀입국했다가 돌아간다는 경우도 들었다. 결국, 미래를 위해 폐업 정리는 꼭 해야 한다. 

 

많은 한인이 운영자금이 모자라 압박을 받고 있다. 웬만한 가게는 한 달에 운영비로 수만 불이 필요하다. 그동안 모아둔 비상금을 쓰는 사람 있는가 하면 주위 친척이나 또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숨통을 틔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게를 계속 운영해야 하는지 회의가 드는 경우가 허사였다. 지난 6월부터는 주 정부는 제한적으로 영업을 허가했다. 이때 한인은 큰 기대가 있었다. 석 달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해 전국으로 팔려나갈 도소매 주문이 몰릴 것으로 봤다. 의욕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주 정부 규제는 다시 한번 좌절하게 했다. 

 

먼저 하루 영업시간은 4시간으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사이였다. 즉, 내부에서 일은 해도 되지만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을 줄이자는 의도로 영업시간을 제한했다. 결론은 사람이 더욱 몰려 혼잡해졌다. 가게는 의무적으로 손세정제를 구비해야 했고 가게 앞에서 들어오는 손님의 온도를 확인해야 했으며 마스크 미착용 손님이 못 들어오게 해야 하는 등 일할 것이 넘쳤다. 사실 이런 것은 주 정부와 시 정부에서 해야 하는데 그 의무를 자영업자에게 넘겨 논란이 많았다. 

 

가게 문을 열려고 급히 대용량 손 세정제와 온도계를 샀다. 매장에 손님 수도 제한되어 40%만 입장이 허용됐다. 제한하고 감시, 이 모두 인력비가 느는 것이데 모든 비용은 자영업자가 부담해야 했다. 이행하지 못할 경우 벌금을 받는다. 이게 모순이다. 정부에서는 해야 할 것은 안 하고 모든 책임을 자영업자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준비하느라 한인은 정보를 공유하며 마스크 온도계를 공동 구매하는 등 준비했다.  

 

드디어 가게를 열었는데 매출은 예상보다 많이 저조했다. 가장 큰 이유로 코비드 19 바이러스가 아직 유행하고 있어 외출을 두려워한다. 또한 오랜 격리 생활로 돈이 없다는 것이다. 격리 기간 중 그나마 잘되던 식품점은 장사가 재개되며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다고 한다. 주 손님인 한인이 옷 가게 장사가 안되자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한식당의 고통도 비슷하다. 격리 기간 중 손님을 받을 수는 없었고 배달은 가능했다. 그런데 이 모두 평균 매출의 채 10%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잘되는 경우다. 

 

이런 와중에 한인회를 비롯하여 브라질 문화 예술연합회 등 한인 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대다수 종사하는 의류 제작 경험을 무기 삼아 원단으로 마스크를 제작하여 사회에 기부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인촌에 있는 보건소와 경찰서에 갔다줬다. 코비드 19가 창궐할 초기, 정부의 안일한 준비와 예산 부족으로 필수 보호장비조차 모자랐던 보건소 직원은 마스크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삽시간 소문이 퍼지며 지역 경찰서를 비롯, 교사협의회, 시의회 등에 기부했고 특히 우리 이웃인 볼리비아인 회에도 기부했다. 

 

점차 나눠주기 시작하자 브라질 언론에서도 관심을 두고 특별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코비드 19로 공포심에 모두가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운동은 브라질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이곳에 사는 외국인이 아닌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긍정의 힘을 보여준 한인사회의 운동은 케이팝과 같이 소개되며 브라질 언론에서는 크게 다뤘다. 

 

한인회를 선두로 한인은 힘을 모았다. 기부금도 속속 모금됐고, 쌀과 진단 키트 등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경제활동이 멈춰 힘든 한인을 위해 십시일반 돕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마스크 무료 배포는 물론, 사회적으로 소외된 한부모 가정과 독거노인에게 생필품과 지원금을 나눠 한인이 조를 짜서 직접 나눠줬다. 격리로 다들 집에서 어려운 시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기증받은 진단키트로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검사도 시행했다. 이때 7% 이상의 확진자가 나와 바이러스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알았다. 

 

확진을 받은 몇 한인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언어가 안 되는 이중 고통을 받았다. 이를 돕고자 뜻있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공립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5월 한창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 한인회장은 우리 한인을 대표하여 의료체계가 가장 심각하게 무너진 마나우스시에 비행기를 타고 직접 가서 기증하여 사회적으로 뉴스가 되기도 했다. 이런 기부와 행동으로 브라질 사회에서도 깊게 보고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한인을 대상으로 지역 보건소에서 따로 독감 예방접종을 시행해주기도 했다.   

 

3,000여 명의 한인이 떠나는 혼란한 한인사회. 그래도 이런 혼란한 시기에 한 점 희망이 보인다. 그동안 한 인회를 비롯한 각 단체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대부분 이민 1세대가 주류를 이뤘다. 즉, 아버지 세대가 사회를 이끌고 1.5세를 비롯한 2세는 참여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이제 40대가 넘는 2세대 젊은이가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 구성원으로 나온 것이다. 한인 단체를 비롯하여 브라질 사회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코비드 19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시대와 세대를 넘어가는 한인 이민 사회. 젊은이들의 꾸준한 활동에 힘입어 지원금과 봉사활동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에게 장학금도 전달하고 ‘사랑의 쌀 나눔’은 3차까지 이어졌다. 소금, 설탕, 쌀 등이 들어 있는 생필품 200상자를 나눠줬다. 기부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매년 8월 15일 날 열리는 한국의 날 행사는 취소 되었지만 ‘광복절 문화예술 공모전’을 열어 우리 기상을 이어갔다. 또한 미스코리아 브라질 선발대회도 개최하여 현재 온라인으로 신청받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한인 단체에서 시청의 허가를 받아 봉헤찌로 한인촌과 브라스 한인 밀집 지역에 방역했다. 방역복과 마스크를 착용 후 시행한 길거리 방역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크게 홍보됐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은 브라질 국민에게 작지만 꿋꿋한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브라질 한인사회가 어려운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본다. 먼저 이민 60주년이 다 돼 가며 일선에서 은퇴한 후 고향을 찾아 한국으로 귀환하는 1세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라인으로 산업이 재편성되며 기존 사업이 흔들린다는 것. 어쨌든 한인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여러 이유로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자발적 또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떠나는 모두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이민사회의 필연이라고 본다. 그러나 코비드 19는 그 속도를 빠르게 하여 고통을 배로 준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여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한인사회도 기지개를 켜고 이 세상을 이어갈 밝은 사회를 이룩할 것이다. 어려웠지만, 서로 힘을 결속하는 시기가 됐고 세대교체라는 변화도 준 것이다. 우리는 브라질에 사는 이방인이 아닌 어엿한 책임을 지는 사회인이라는 것을 이번에 많이 보여줬다. 잠시 움츠러든 몸을 깨워 이제 한 발자국이 아닌 한 계단을 오르는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수고가 많은 모든 한인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래 사진 제공 : 브라질 한인회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ssociacaodoscore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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