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4. 9. 1. 00:31

성 여호수아(Saint Joshua)

 

 

 

 

 축     일

 9월 1일    

 신     분

 군인, 예언자, 구약인물  

 활동지역

 이집트, 이스라엘  

 활동연도

 +12세기경 BC     

 같은이름

 조슈아 

 

 

 

 

성 여호수아(Joshua)는 구약성서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는 중심인물로 그의 이름을 따서 성서 제목이 정해졌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거쳐 마침내 요르단 강 동쪽, 예리고 건너편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모세가 생을 마감하자(신명 34장) 모세의 시종이었다가 그의 후계자로 임명된 여호수아의 지휘로 이스라엘 백성은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종교 의식을 거행한 다음, 예리고 함락을 시작으로 중부에 이어 남부와 북부까지 차례로 점령하였다.

 

여호수아는 정복을 완료한 뒤 열두 지파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특수 영토로서, 실수로 살인한 이들이 피신하는 도피 성읍과 레위인들이 사는 성읍들도 지정하였다. 영토 분할이 끝난 뒤 가나안 정복에 동참한 요르단 동쪽 지파들은 돌아갔다. 여호수아서 마지막에는 여호수아의 유언과 세겜에서 소집된 집회 그리고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례가 서술되어 있다. 즉, 여호수아는 임종을 앞두고 백성들을 세겜에 소집한 후 진정으로 야훼 하느님을 경외할 것을 부탁하고 110세에 선종하였다 (가톨릭 홈)

 




여호수아서 : 용기를 갖고 힘을 내어라
다마수스 빈첸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너를 통해 내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바로 여호수아 1장 6절과 신명기 31장 7절이 결합된 이 아름다운 응송은 - 옛 사순 제4주일 전야에 불렀다 - 여호수아서의 요지를 알려준다. “용기를 갖고 힘을 내어라!” 40년 동안의 사막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무력하고 용기를 잃은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 이제 백성들은 정복과 승리에서 용기와 확신을 얻고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른다.


여호수아서는 모세오경과 연결되어 있다. 모세가 후계자에게 남긴 두 가지 중요한 임무 즉 약속된 땅의 정복과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10개 지파(민수 32,33 참조)에게 그들의 몫을 주는 일이 여호수아서에서 성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1-12장은 가나안 왕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전투와 승리를 이야기하고, 13-22장은 여호수아가 늙어서 요르단 서쪽에 정착하여 10개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23-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훈계와 죽음, 장례식을 다루고 있다.


여호수아서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시겠다던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하나의 결론일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발전을 기술하고 있는 구약성서의 첫 번째 책이기 때문이다.

 
선택된 백성들의 역사는 본래 예언적이다. 이방인들의 역사와는 다르다. 바로 사람들 가운데 하느님의 왕국을 설립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행복과 영광만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방인들의 역사는 그들 눈으로 보기에 기회와 행운과 운명으로 점철된다. 그래서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것처럼 그들을 인도해 주는 점장이와 예언자들을 믿는다. 반대로 하느님의 지혜는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해 줄 예언자들을 선택한다. “야훼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세워줄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5). 우리는 모세의 이 예언이 바로 “그 예언자”(요한 6,14; 7,40; 사도 3,22)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음을 본다. 유다 학자들은 유다 역사의 전시대를 살았던 예언자들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집회 46,1)로부터 시작되며 사무엘, 다윗, 엘리야 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유다교 정경은 여호수아서, 사무엘서, 열왕기들을 역사서로서가 아니라 예언서로서 분류하고 있다.

 
그러므로 첫 예언자인 여호수아는 마지막 예언자인 예수를 주목하게 한다. 예수란 말은 여호수아의 히브리 표현으로 실제 같은 말이며, “하느님은 해방하신다”, “하느님이 능력을 주시다”는 의미이다. 그 이름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예언이다. 즉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된 땅을 정복했다는 것은 정치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영적 해방이며, 그 참의미가 그와 같은 이름을 주님이 취하였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예시한다. 천사가 요셉에게 알린다 :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마태 1,21).

 
하느님께서는 세 차례나 여호수아를 일깨우신다 : “용기를 갖고 힘을 내어라”(1,6.7.9). 여호수아가 맡은 사명의 성공 여부는 신념과 신앙에 달려 있다. 꼭 그대로 사도들도 세상을 이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성령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사도 4,31).

 
여호수아가 예리고에 보낸 두 정탐원은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께서 세상에 보낸 두 사자 즉 율법과 복음에 주목케 한다. 창녀 라합은 정탐원들을 맞아들이고, 예리고가 멸망할 때 이방인의 교회를 상징하는 그녀의 가족들을 구하게 된다. 그녀는 안전을 보장하는 표로 창문에 진홍줄을 매단다. 이 진홍줄은 정화시켜 주는 물을 만들 때도 발견된다(레위 14장). 이 징표의 의미는 명백하다. 털실은 이스라엘과 메시아를 상징하는 양으로부터 얻어지고 진홍색은 곤충(연지벌레)의 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라합의 창문에 매달린 진홍줄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마태 26,28) - 이방인, 창녀, 죄인 등 - 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구원 능력의 보편적인 표지이다.


이제 그들은 약속된 땅을 갖게 된다는 큰일을 목전에 두고, 중대한 의식들을 치르게 된다. 길갈에서의 할례와 가나안에서의 첫 과월절 의식이다.

 
예리고는 맏배로서 하느님께 봉헌되었다. 가치있는 모든 것들은 전리품으로 취하지 않고 야훼의 금고에 넣어졌다. 유다 지파의 아간이 전리품을 훔쳐 금지령을 어긴 결과 그는 돌무더기가 되어버렸고, 이는 하느님의 은총의 보물을 거룩한 땅에 묻어버린 일부 유다인과 나중에 “그 거룩한 곳과 백성”(요한 11,48)을 지키기 위하여 메시아 예수를 거부한 유다인을 상징한다. 아간의 죽음과 창녀 라합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성취한 대혁명 즉 상속자들이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고 매춘부와 세관원들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주목케 한다(마태 8,12; 21,31 참조).

 

 


두번째 성읍인 아이를 정복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아이 성 주민들은 전멸당했다. 그리고 뒤이어 다섯 왕들과 북쪽의 왕들도 모두 칼로 죽였다. 이 전면적인 살육 전쟁은 백인들이 사실상 나머지 인류를 상대로 지난 3세기 동안 벌여온 식민전쟁과는 전혀 다르다. 백인들은 식민지 정복 동안 인간성을 말살하고 수단껏 착취해 왔다. 여호수아의 전쟁은 우상숭배와 죄악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최근의 유적 발굴은 이스라엘이 정복했던 당시의 가나안 문화는 도덕적으로 하위문화였으며 완전히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원매춘과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들이 공공연히 벌어졌다. 여호수아에 의해 그들이 전멸당한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악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논증이 된다. 죄악의 대가는 죽음이다.

 
여호수아의 팔레스띠나 정복은 그 궁극적인 목적이 하느님 나라 설립에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빨리 그 땅의 견고한 곳을 발판으로 삼아 제단을 세워야 했다. 폭력과 타락으로 손상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에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세웠다(8,31). 한 분이신 하느님, 하나인 나라, 한 백성, 하나의 제단, 하느님 나라의 이 기본적인 원리가 요르단 동쪽에 사는 지파들이 따로 제단을 만들면서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쪽의 지파들이 이 제단을 다른 신에게 봉헌할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의당 야훼 앞에 나아가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가나안 정복 후에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아직 그들 몫을 받지 못한 지파들에게 추첨을 통해 땅을 분배시켜 준다. 추첨은 하느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두번째 땅의 분배는 율법에 의한 전통적인 분배 방법을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분배를 분명히 예시하고 있다.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위해 “도피성”을 선정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의미가 있다. 율법에 따르면(민수 35,33), 무죄한 사람의 피는 땅을 더럽힌다. 만일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그 책임은 대사제에게 달려 있다. 대사제가 죽어야만 살인자는 자신의 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사제의 죽음은 그 부정한 땅을 속죄시켜 준다. 우리는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는 안내판을 발견한다.


마지막 2장(23-24장)에서,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계약을 갱신한다. 백성들은 선택해야 했다. 조상들의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아모리인들의 신들인지. 그들이 조상들의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정했지만, 참 예언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배신을 미리 본다. 또한 동시에 예수와 그분의 가족 즉 교회의 충절을 본다.
(Pathways in Scripture에서 강동성 편역)

 

[경향잡지, 1988년 7월호]

 


 

굳세고 용감해져라(여호 1,1-7)
정태현
 

 

히브리 말로 여호수아는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성서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이 다섯이나 나온다. 이 글에서 다루는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 사무엘 예언자 시대에 살았던 벳세메스의 주민 여호수아(1사무 6,14-18), 요시야 시절 유다의 한 성읍을 다스리던 성주 여호수아(2열왕 23,8), 하깨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대사제 여호수아(하깨 1,1; 2,2; 즈가 6,11),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엘리에젤의 아들인 여호수아(루가 3,29)이다. 이들 가운데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와 하깨 시대의 대사제 여호수아가 가장 유명한데, 이 둘을 구별하려고 보통 나중 인물을 예수아로 옮긴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하는 상황은 이집트를 빠져나온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을 향하여 가던 도중, 시나이 반도 남쪽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네겝 지방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말렉족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싸움을 걸어오자 모세는 젊은 장수 여호수아를 시켜 그들을 치게 한다. 이후 여호수아는 그림자처럼 모세를 수행하며, 모세가 시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올바로 이끌 수 있도록 충직하게 도운다. 아래 본문은 여호수아의 소명기(여호 1,1-9) 앞부분이다.

 
(구약성서 새번역) 여호 1. 1 주님의 종 모세가 죽은 뒤 주님께서는 모세의 시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나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 모든 백성은 일어나 저 요르단을 건너서,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3 내가 모세에게 이른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다 너희에게 주었다. 4 광야에서 레바논을 거쳐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그리고 헷 사람들의 온 땅과 해지는 쪽 큰 바다까지 모두 너희 엉토가 되리라. 5 네가 사는 동안 내내 아무도 너에게 맞서지 못하리라.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주었듯이 너와 함께 있어주며 너를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6 굳세고 용감해져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줄 사람은 바로 너다. 7 오직 너는 굳세고 아주 용감해져서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한 모든 율법을 명심하며 실천하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하리라”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을 전하는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34장).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요 예언자였던 모세는 느보 산 꼭대기에 올라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한 땅을 바라보며 죽는다. 모세는 죽기 전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그를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차게 하였다(신명 34,9). 이 안수는 모세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웠다는 표시이다.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직접 소명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종 모세의 뜻을 인준하시는 동시에 여호수아가 사명감과 자신감을 갖게 하신다.

 
구약성서는 ‘주님의 종’이라는 칭호를 거의 대부분 모세에게만 붙인다. 반면에 모세오경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라 불린다(출애 24,13; 33,11; 민수 11,28 등). 여호수아의 소명은 모세의 소명에 이어진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빼내어 가나안 문턱까지 인도하는 것이 모세의 소명이었다면,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는 것은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소명을 잇고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내가 모세에게 이른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다 너희에게 주었다.”(3절)는 과거형의 말씀은 ‘예언적 과거’라 불리는 특별한 문학 기법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소유를 마치 과거에 일어난 사건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넘겨주셨으니, 이제 주저하지 말고 그곳에 쳐들어가 차지하라는 뜻이다. 그 땅은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국경을 이루는 광야, 북쪽으로는 레바논,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이르는 ‘헷 사람들의 땅’(기원전 7세기 근동 문헌에서 시리아-팔레스티나를 가리킴)과 요르단 동쪽 지파들의 영토를 포함한다. 이 경계는 약속된 땅의 이상적 국경이다(창세 15,18; 출애 23,31; 신명 1,7: 11,24; 1열왕 5,1).

 
이어지는 말씀은 신명기의 사상으로 가득하다. 주님께서는 먼저 여호수아에게 아무도 그와 맞서지 못하리라고 단언하신다(신명 7,24). 그것은 당신이 그를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분은 당신이 모세와 함께 계셨듯이 그와 함께 계시며 그를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신명 2,7; 31,8). 이 약속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편집을 거친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에도 나온다(예레 1,19).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굳세고 용감해져라”(신명 31,7. 23) 하고 격려하시며, 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땅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줄 사람이라고 지적하신다. 이 지적에서 여호수아의 소명이 밝혀진다. 그의 소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명은 이미 신명 31,23에 주어졌다. ‘너는 굳세고 용감해져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사람은 바로 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명심하여 실천하라고 당부하신다. 율법은 하느님께 똑바로 가는 길과 성공하는 길을 가르쳐준다. 하느님께 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으면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상은 신명 5,32-33에서 이미 드러났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너희는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된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러면 너희가 차지할 땅에서 너희가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되고 오래 살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여호수아를 격려하신다. “굳세고 용감해져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주리라”(9절).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는 표현도 신명기에 자주 나온다(1,21; 7,21; 31,6. 8).

 

 

이처럼 주님께 약속과 당부와 격려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나누어주라는 소명을 받은 여호수아는 곧바로 정복사업에 착수한다. 그 당시 가나안은 수세기 동안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오다, 이집트가 약해진 틈을 타 수많은 도시 국가 형태를 이루어 그 지배에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튼튼한 요새로 이루어진 도시 국가들은 외부의 적이 침입할 때는 서로 협조하였으나, 자기들 내부에서는 적잖은 분쟁과 갈등에 곧잘 휘말려들었다. 여호수아는 이 취약점을 이용하여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을 하나하나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평지에서의 싸움은 승산이 없었다. 평지의 도시 국가들은 튼튼한 요새로 방비되고 말이 끄는 강력한 전차 부대를 갖추고 있었다. 고고학 발굴에서 게젤의 석벽은 폭이 4미터나 되고, 예리고의 이중 벽돌 성벽은 바깥쪽 성벽이 1.8미터, 안쪽 성벽이 3.6미터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인들이 튼튼한 요새 성읍을 공략하는 방법은 거대한 쇠망치나 기둥으로 성벽을 헐어내거나 뚫는 것, 성벽 아래로 땅굴을 파서 들어가는 것, 아니면 오랜 기간 동안 성을 포위하여 굶주리게 하는 것 등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런 방법을 쓰기에 충분한 무기도 병력도 없었다. 그래서 평지보다는 산악지대에 흩어져있는, 인구가 적은 성읍들을 골라 공격하고, 평지의 성읍들은 계략과 야간 기습을 이용하여 공략하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무기와 병력의 열세를 주님께 대한 믿음과 약속된 땅을 차지하겠다는 불굴의 의지, 시나이 광야에서 길러온 전투력으로 극복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런 격려는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에게 한 여호수아의 여러 설교에 잘 나타나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인들과 치른 전쟁은 성전(聖戰)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가나안족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야훼와 이방신들 사이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얻은 포로와 노획물은 모두 전쟁의 승리자인 하느님 차지이므로 하느님께 ‘완전봉헌물’로 바쳐야 한다. ‘완전봉헌’은 포로는 죽이고 물건은 완전히 파괴시킨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대량 학살과 파괴가 있었을까? 여호수아 이후에도 가나안인들의 성읍과 풍습과 우상숭배가 계속해서 존재한 것으로 미루어 ‘완전봉헌’이 말 그대로 실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하고 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에게 각 지파의 수에 맞추어 땅을 분배하고 레위 지파에게는 각 지파가 내놓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를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가나안의 정복과 분배가 끝나자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를 세겜에 불러모은 다음,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시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신 주님만을 충실히 섬기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파란 많은 전사로서 생을 마감한다.

 
‘주님의 종’ 모세의 뛰어난 영도력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기초를 마련하였다면,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의 헌신적인 삶은 그 정치적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사도직)
[경향잡지, 1999년 7월호]

 


 


성경 속의 인물 - 여호수아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위대한 지도자다. 그는 백열 살을 살다 죽었다.(여호 24,29) 그만큼 장수했다는 표현이다. 유목민들은 장수를 가장 큰 축복으로 여겼다. 늘 부족과의 전투 속에서 살아야했기에 오래 사는 사람은 하늘이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말뜻은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본래 이름은 ‘호세아’였는데 모세의 지시로 이름을 바꾸었다.(민수 13,16) 그의 임무가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에프라임 지파였지만 모세에 의해 발탁된다. 당시는 레위 지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만큼 여호수아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여호수아가 활약할 당시 지금의 팔레스티나 지역은 중앙 통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고을마다 독립된 왕국이 있었고 결속력은 매우 약했다. 그리고 한때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집트의 세력도 사라진 뒤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팔레스티나)을 정복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던 것이다.


여호수아기 3장은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는 장면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계약의 궤’를 맨 사제들이 강물에 발을 담그자 강물이 멈추고 벽을 이루었다. 그 사이를 백성들이 마른 발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전부 강을 건널 때까지 ‘계약의 궤’를 맨 사제들은 강 한복판에 서 있었다. 마침내 ‘계약의 궤’와 사제들이 건너오자 강물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모든 것은 철저한 기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는 지점부터가 ‘약속의 땅’이었던 것이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날 때는 금방 갈 것 같은 땅이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 이제 도착한 것이다. 모세도 죽고, 탈출 1세대도 모두 죽은 뒤에 약속의 땅을 밟은 것이다. 그들은 감회에 젖었다.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배우고 익히는데 40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들이 건너온 지점은 예리코 성 맞은쪽이었다. 여호수아는 기적의 강바닥에서 열두 개의 돌을 가져와서는 그곳에 세우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할례의식’을 가졌다. 군인들 가운데는 광야에서 40년간 떠돌이 생활을 할 때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그곳을 ‘길갈’이라 부르게 하였다.


길갈의 뜻은 ‘굴러 간다.’는 의미다. 약속의 땅에 들어왔고 젊은이들의 할례가 이루어졌으니 ‘이집트의 수치’는 굴러 가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길갈은 예리코 동편 3키로 지점에 있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첫 파스카 축제를 이곳에서 지냈고 오랫동안 작전기지로 삼았다. 훗날 예언자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사울을 선택하는데 그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그만큼 깊은 의미를 지닌 장소였다.(1사무 11,15) [2008년 9월 7일 연중 제2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여호수아의 첫 등장은 아말렉족과 전투에서였다. 그는 모세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며 두각을 드러냈다.(탈출 17장) 아말렉족은 이스라엘이 광야의 방황을 시작할 때부터 싸웠던 유목민들이다. 그들의 본거지는 팔레스타인 북부와 시리아에 걸쳐 있었고 아무루(Amurru) 지역이라 했다. 그래서 이들을 아모리족이라고도 부른다.


키가 크고 체격이 장대한 족속이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진입하기 직전 그들과 대규모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바산 임금’ 옥(og)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는다.(신명 3장) 60개의 요새화된 도시와 시골 성읍이 있는 땅이었다. 이날의 승리는 가나안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여호수아는 일생을 군인으로 지냈다. 젊은 시절 그는 정탐꾼으로 가나안땅을 밟은 적이 있다. 당시 열두 지파는 가나안 침공을 앞두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리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으로 보냈던 것이다. 각 지파에서 1명씩 뽑았고 여호수아는 에프라임지파를 대표했었다.


돌아온 12명중 여호수아와 칼렙은 승리를 장담했지만 다른 이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백성들은 술렁거렸고 원망을 쏟아냈다. 당시 가나안은 전차와 신무기를 지닌 막강한 국가였다. 따라서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겨우 벗어난 히브리인들에겐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10명의 판단이 현실적 안목에선 정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탈출과 광야에서의 생존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러므로 첩보작전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험대였을 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해선 안 된다.”(민수 14,9)고 여호수아는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죽이려했고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다. 가나안과의 무모한 전쟁으로 모두 자멸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게 된다. 가나안의 첩보활동이 40일이었는데 그들의 불신 때문에 하루가 1년이 되어 40년을 방황할 것이란 보속을 받은 것이다. 그제야 백성들은 뉘우쳤지만 때는 늦었다. 이후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된다.


기원전 13세기경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시작으로 예리코 성을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야훼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계심’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그들은 전투를 통해 성을 함락시킨 것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무모한 ‘비무장 행진’을 통해 점령했던 것이다.(여호 6,20) 이는 야훼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의심 없이 실천했다. 주님께서는 예리코 성의 정복은 군사력이 아니라 ‘야훼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려 했던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통해 가나안 땅을 차츰차츰 정복해갔다. ‘여호수아서’는 이러한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여호수아는 110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가나안 정복시대’는 막을 내리고 ‘판관시대’가 시작된다. [2008년 9월 14일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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