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5. 1. 9. 23:14

성녀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

(Leonie Francoise De Sales Aviat)

 

 

 축      일

 1월 10일 

 신      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트루아(Troyes)

 활동연도

 1844-1914년  

 같은이름

 방지가, 살레시아, 프란체스까, 프란체스카, 프란치스까, 프란치스카, 프랜시스

 

 

 


성녀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는 1844년 9월 16일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세잔(Sezanne)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트루아(Troyes)에 있는 성모 방문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그녀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준 마리 드 살 샤퓌(Marie de Sales Chappuis) 원장수녀와 루이 브리송(Louis Brisson) 교목신부를 만났다. 이 학교에서의 생활은 그녀가 앞으로 살레시오회의 영성을 기반으로 젊은이들의 복음화에 헌신하는 수도회를 설립하는 기틀이 되었다.

 

1866년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화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는데 트루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방직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열정적인 사목자인 브리송 신부는 19세기 말에 본격화된 사회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858년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들에게 완벽한 인성 교육과 그리스도교 교육을 위한 센터를 열었다. 그런데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사업’으로 알려진 이 센터에 적합한 책임자와 안정적인 관리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영감 안에서 수도회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그는 더 없는 조력자이자 수도생활을 향한 성소를 간직한 레오니 아비아를 발견했다. 사실 레오니 아비아는 공부를 마친 후 성모 방문 수도회를 떠났다가 수도자가 되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돌아왔다. 하지만 브리송 신부와 샤퓌 수녀는 그녀에게 기다리도록 권고했고 그녀는 이에 순명했다. 얼마 후 그녀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영감을 받았는데, 이는 그녀를 자신의 고향인 세잔에서 유리제품을 만들고 수리하는 공장에 들어가도록 이끌었다. 작업장 안에는 젊은 공장 노동자들이 쉼 없이 일하고 있었고, 그녀의 마음 안에서는 그들 가운데서 함께 하며 그들을 상담하고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이 솟아올랐다. 이러한 열정은 브리송 신부가 자신이 트루아에 노동자들을 위해 설립한 센터에 그녀를 초대했을 때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1866년 4월 18일 그녀는 성모 방문 수녀회의 학교 동창생 중 하나인 루시에 카뉘에(Lucie Canuet)와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며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사업’에 동참했다. 1868년 10월 30일 젊은 설립자인 그녀는 수도복을 입으면서 프랑수아즈 드 살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이름은 그녀의 일생의 사업이 무엇일지를 가리키는 상징이었다. 그녀는 이 작은 그룹을 주네브(Geneva) 교구 주교의 보호 아래 두고 이끌었으며, 그의 영성과 교수법의 방법을 완벽하게 적용하였다. 그 후 그녀의 공동체는 자신들의 전 생애를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헌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티 수녀회(Oblate Sisters of St. Francis de Sales)로 그 명칭을 정하였다.

 

1871년 10월 11일 프랑수아즈 드 살 수녀는 서원을 발하고 새로운 수녀회의 총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듬해에 교회법적 인준을 받은 수녀회는 설립자의 지도 아래 급속히 발전하며 사회 사도직을 확장해 갔다. 동시에 본당들에 학급을 열고, 파리(Paris)에 젊은 여성들을 위한 첫 번째 기숙학교를 열어 8년 동안 프랑수아즈 드 살 수녀가 교장을 맡았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티 수녀회의 사도직은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교육 형태로 확장되었다.

 

1893년 그녀는 다시 총원장 수녀에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그 책임을 맡았다. 그 동안 그녀는 수녀회를 유럽과 남아프리카와 에콰도르에 진출시켜 교육 사도직을 전파하는데 힘썼고, 1903년에는 프랑스 내에서 수도회에 반대하는 반종교적인 박해의 시류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수녀회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로 본원을 옮겼다.

 

1911년 교황 비오 10세(Pius X)로부터 수녀회에 대한 최종 승인을 받았다. 연로한 프랑수아즈 드 살 수녀는 1914년 1월 10일 페루자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고요함 중에 선종하였다. 그녀는 1992년 9월 2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가톨릭 홈)

 

 



성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1844-1914)
윤 클레멘트 신부

 

 

 

프랑스 여성 근로자들의 수호자인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 성녀는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지방의 세잔느(Sezanne)에서 태어났다. 성녀는 열한 살이 되던 해에 트로이(Troyes)의 ‘방문의 수도원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마리 드 살레 차퓌 수녀원장과 루이스 브리송 신부를 만나 영성적으로 성장하고 인도된다. 당시 브리송 신부는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남녀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1858년에는 집 없이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남녀들을 위해서 쉼터를 세웠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상 안에서 도덕적인 유혹들을 피하고 가톨릭 믿음과 인간 존엄성을 배우게 하였다. 브리송 신부는 젊은 근로여성들을 위한 집들을 세 곳에 세웠으며, 1866년에는 레오니와 함께 ‘성 프란치스코 드 살레시오의 오블레이트 수녀회’(The Oblate Sisters of St. Francis de Sales)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와 환경의 많은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사회적인 여러 요인들로 착취당하며 위험한 근로환경에서 일하고 있던 프랑스 여성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기를 계속하였다. 1868년 10월 30일에는 브리송 신부와 함께 세운 자신의 수도회에서 착복식을 하면서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Leonie Francoise de sales Aviat)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1871년에 첫 서원을 하였다. 그녀는 여성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영성을 따르고자 하였는데, 그 당시의 시대적 그리고 사회적 환경은 참으로 노동 사도직이 절실하던 때였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을 영적 아버지로 세웠던 그녀의 수도회는 회칙도 살레시오 수도회의 회칙을 채택하였다. 그녀는 프랑스 곳곳에 수많은 주택, 본당학교들, 여학생들의 기숙학교 등을 세웠고 수도회는 프랑스 여러 지역에서 당시의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실하게 실천하면서, 또한 자신들의 사도직의 영역들을 넓히고 사람들을 보살폈다. 또한 그녀는 피정을 지도하기도 하였는데, 그녀의 사도직 목표는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1903년에 프랑스에서의 반종교법이 강제로 시행되고 당시에 만연되는 세속화로 인하여 프랑스에서 수녀회를 계속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이탈리아의 페루지아(Perugia)로 수도회 모원을 옮겨 각 지역의 수녀들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세운 수도회의 회칙 초안을 직접 작성하였는데, 이 회칙은 1911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하여 승인되었다. 그녀는 아직 피난살이 중이던 1914년 1월 10일에 이탈리아에서 다른 이들을 위하던 복된 이승의 여정을 하느님나라로 옮겨가는데, 그날을 우리교회는 그녀의 축일로 지낸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11월 25일에 있었던 그녀의 시성식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온 분입니다. 그녀는 당신 자신의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고,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언제나 그 중심에 둔 것은 기도생활과 하느님과의 일치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시대사조를 거슬러 우리 시대의 사회적이며 영신적인 요구에 우리 자신을 개방하고 응답하라고 초대합니다.”

(2013년 5월 5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전주주보 2면)

 

 



 

성녀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

 

프랑스 여성 근로자들의 수호자
번역 송영웅 바오로 • 봉명학원 재단이사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Leonie Francoise de Sales Aviat, 1844-1914)는 프랑스 샹퍄뉴(Champagne) 지방이 세잔(Sezanne)에서 태어났다. 레오니는 그녀가 살던 시대의 많은 문제점을 직시하여, 사회적인 여러 요인으로 착취당하며 위험한 근로 환경에서 일하는 프랑스 여성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868년 10월 30일, 새로운 수도회를 창설한 이 젊은 여성은 착복식을 하고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프랑수아즈 수녀는 여성 근로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트루아(Troyes)에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수녀회(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티 수녀회 : Sister OBlates of St. Francis de Sales)를 창설하고 1871년 서원하였다. 그 시대에 이러한 노동 사도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하고 있던 루이 브리송(Louis Brisson) 수사 신부는 프랑수아즈 수녀가 이 분야에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을 영신의 아버지로 삼은 프랑수아즈 수녀는 살레시오 수도회 회칙(Salesian rule)을 자신이 세운 수녀회의 회칙으로 채택하였다. 프랑수아즈 수녀는 프랑스 전역에 수많은 주택과 학교를 세웠으며,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티 수녀회의 수녀들이 많은 지역에서 그 지역이 요구하는 바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데 필요한 사도직 영역을 더욱 확장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 또한 사도직 수행의 일환으로 수녀원에서 피정 지도도 하였다.

 

1903년 프랑스에서 반종교법이 강제적으로 시행되면서 아비아 원장 수녀는 프랑스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아비아 원장 수녀는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페루자(Perugia)로 수도원 모원을 옮기고 이곳에서 각 지역의 수녀들을 지도하였다. 아비아 원장 수녀는 신설 수도회의 회칙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이 회칙은 1911년에 교황 성 비오 10세(1903-1914 재위)에 의하여 정식 승인되었다.

 

아비아 수녀가 창설한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티 수녀회는 그녀가 페루자에서 선종한 지 약 40년 후인 1952년 미국에 진출하였다. 1992년 9월 2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비아 원장 수녀를 복자로 선포하였고, 2001년 11월 25일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 '성부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성자의 왕국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계획이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 성녀 안에서 찬란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아비아 수녀는 마지막까지 당신 자신을 철저하게 내어주는 삶을 살아온 분입니다. 그녀는 당신 자신의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고,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언제나 그 중심에 둔 것은 기도 생활과 하느님과의 일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아비아 수녀는 당신이 겪은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빛과 힘을 얻어 신앙생활 안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항구히 인내하며 견디어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께 매달리며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주님, 당신을 위하여 제 뜻과 저의 소망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에서 제가 참된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비아 수녀의 삶을 특별하게 부각해 주는 이분의 좌우명, ‘철저하게 자신을 잊어버려라’는 지나친 이기주의와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비아 수녀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시대사조를 거슬러 우리 시대의 사회적이며 영신적인 요구에 우리 자신을 개방하고 이에 응답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티 수녀회의 수녀들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창설자인 아비아 수녀가 세운 학교에 근무하면서 교회와 깊은 통공에 있거나 혹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어느 곳에 있게 하시든지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현행 은총(the present graces)을 받을 수 있도록 확고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이 은총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과 빛은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성녀가 된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 수녀의 강력한 기도를 신뢰하십시오. 그리하여 철저한 신앙심과 충실함 그리고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성녀가 완벽하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 다시금 쇄신하여 살아가라는 초대를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십시오.”


 

성녀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아비아의 축일은 1월 10일이다.
[교회와 역사, 2013년 3월호]





참고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녀 레오니 프랑수아즈 드 살 아비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26-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