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5. 1. 25. 21:53

성 티모테오(Saint Timothy) 와 성 티토(Saint Ti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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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모테오(Saint Timothy)

 

  사도성바오로와성티모테오

 

 

 축      일

 1월 26일  

 신      분

 사도 바오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에페수스(Ephesus)

 활동연도

 +97년경 

 같은이름

 디모테오, 디모태오, 디모태우스, 디모테우스, 티모시, 티모테우스  

 


리카이니아(Lycaenia)의 리스트라(Lystra) 태생인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티모테오, 디모테오)는 그리스인 아버지와 유대교에서 개종한 에우니케(Eunice)의 아들이다. 그는 성 바오로(Paulus)가 리스트라에서 설교할 때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성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른팔 역할을 하였다(사도 16,1-4). 그는 혹시 말썽이 날까봐 할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제2차 전교 여행을 수행하였다.

 

바오로가 유대인의 적개심 때문에 베레아(Berea)를 몰래 빠져나갈 때, 성 티모테우스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테살로니카(Thessalonica)로 파견되어 그곳의 상황을 보고하고, 또 박해 중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였다. 58년 성 티모테우스와 에라스투스(Erastus)는 마케도니아(Macedonia)로 파견되었으며, 그 후 코린토스(Corinthos)로 가서 바오로의 가르침을 명심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바오로가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투옥되고 또 로마(Roma)로 이감되었을 때, 성 티모테우스도 같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 후 그는 에페수스로 가서 그곳의 초대주교로 봉직하였다. 그는 디아나(Diana)를 공경하는 카타고리아의 이교 축제를 공식적으로 반대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티모테우스에게 보낸 바오로의 두 편지는 65년경에 마케도니아에서 썼을 것이다.

 


 

 

성 티토(Saint Titus) 


 

 

 축      일

 1월 26일  

 신      분

 바오로의 제자, 주교 

 활동지역

 크레타(Creta)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디도, 디또, 티투스 

 

 

성 티투스(또는 티토, 디도)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의해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그를 코린토스(Corinthos)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그 후 그는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Creta)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그는 달마티아(Dalmatia)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 듯하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티투스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성 바오로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할 자질 및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

 

 

 

 

티모테오와 티토는 사도 바울로의 제자요 협력자들이었다. 티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지도했고, 티토는 크레타 교회를 지도했다. 성 바울로는 그들에게 사목 서간을 써 보냈는데 그 서간들은 성직자와 신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유익한 많은 권고들을 담고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강론에서
(Hom. 2 de laudibus sancti Pauli: PG 50,480-484)

 

 

나는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바울로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흡사 자신이 하늘 나라에 있는 것처럼 느꼈고, 상처와 채찍을 받을 때 상을 받는 이들보다 더 큰 기쁨을 지녔습니다. 그는 상급에 못지 않게 고통을 사랑했습니다. 고통은 상급을 얻게 해주므로, 그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울로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에게는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상급이고 육신 안에 사는 것은 투쟁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상급을 뒤로 미루고 투쟁하는 것을 더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로에게 있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는 것은 큰 투쟁이고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투쟁보다 큰 투쟁이고 다른 모든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상급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상급보다 투쟁과 고통을 택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투쟁과 고통을 겪는 것을 즐거운 일로 여겼다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이 점에서 나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우리에게 슬픔의 원인인 것은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는 무엇 때문에 위험과 환난을 상기하는 것입니까? 바울로는 어떤 때 큰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고린토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바울로 사도의 놀라운 덕행의 모범을 경탄하는 것으로만 만족치 마십시오. 여러분은 또 그 모범을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의 승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바울로와 같은 공로를 지닌 사람이 그와 같은 상급을 얻으리라고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도 바울로의 다음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로가 우리 모두를 자기 자신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같은 영광의 월계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그 선물들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로가 지닌 덕행들의 위대함과 탁월함을 그리고 그렇게도 큰 영광을 얻게 한 그의 열성과 견고성만을 생각지 말고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똑같은 그 인간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려운 것은 쉽고 가벼운 것으로 보일 것이고, 잠시 동안 여기에서 노력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총으로 부패함이 없는 불사 불멸의 월계관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과 권세가 있습니다. 아멘.

 



성 티모테오와 티토(1세기)

윤 클레멘트 신부

 

 

 

사도 바오로의 선교동료, 협력자, 그리고 주교로 알려지는 두 분에 대한 전기(傳記)는 없고, 다만 사도 바오로의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분을 약 1세기 혹은 2세기 초의 인물들로 추정한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두 통 그리고 티토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는데, 이 편지들은 모두 사목서간들로 말하여진다.


티모테오는 리카오니아의 리스트라에서 출생하는데, 아버지는 그리스 이교인이었고 유대인인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사도 16,1-2 참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성서를 공부하고 성 바오로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 바오로는 그가 할례를 받게 한다. 그는 성 바오로로부터 두 통의 편지를 받는데, 한 통은 마케도니아에서 그리고 한 통은 로마에서 보내왔고, 그 편지들에는 성 바오로의 가득한 친절과 형제적 사랑이 담겨 있는 것들이었다.


성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선교동료 겸 협력자로 삼아서 마케도니아, 코린토 등으로 함께 선교여행을 하는데, 나중에는 티모테오를 마케도니아로 보내기도 한다. 성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건강이 약화되자, 그가 더 이상 고신극기(告身克己)를 삼가고 물 뿐만 아니라 포도주도 함께 마실 것을 권하기도 한다. 성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소아시아의 고대도시 에페소의 주교로 임명하여 그곳의 선교를 담당하게 하는데, 티모테오는 그곳에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바친다. 티모테오는 에페소에서 97년경에 자신들의 우상 축제와 예식들에 반대한다는 죄목으로 이교인들에게 의해 붙잡히고, 마침내 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다.

 
티토는 성 바오로의 비서였는데, 성 바오로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바오로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다. 티토는 성 바오로의 많은 선교여행에 동행하는데, 예루살렘 공의회에도 두 사람은 함께 참석한다(갈라 2,1 이하 참조). 티모테오에게와는 달리 성 바오로는 티토가 할례를 받지 않게 하는데, 티토는 유대인 부모나 종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티토는 어느 해 코린토로 가는데, 마케도니아의 형제들이 했던 것처럼 코린토의 형제들도 더 가난한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주라고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또한 계속해서 니코폴리스, 달마티아, 그리고 에페소 등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는 그리스 크레타의 첫 번째 주교로 알려지는데, 그곳에서 그는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받는다(티토 1,5 이하 참조). 그는 96년경에 죽어서 크레타 섬의 고르티나에 묻히는데, 그의 머리는 823년에 베니스로 옮겨진다.


티모테오와 티토는 자신들에게 보내어진 서간들에서 “믿음 안에서의 충실한 자녀”들로 언급되는데, 바오로는 특히 티모테오를 가리켜 “우리의 형제이며 하느님의 일꾼, 동료이고 봉사직무의 협력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2009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헌신적인 제자 티모테오

 

 
에페소에 있는 티모테오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스승 바오로에게서 온 편지였다. 티모테오는 반가운 마음으로 편지를 뜯고 읽어 내려갔다. 얼마 전 사람들을 통해 이곳 사정을 스승에게 기별을 보냈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티모테오가 바랬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티모테오는 내심 스승이 이곳 에페소를 떠나 자신에게로 오라고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그냥 에페소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의 아들, 티모테오! 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 말했던 것처럼 에페소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
 

이 말은 사실 티모테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스승의 이 말은 "끝까지 싸워라! 회피하지 말라!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라!"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티모테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 하루하루 버티어 온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티모테오는 당장이라도 스승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에페소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기에는 너무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의 에페소는 황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 물질과 돈에 굶주린 도시였다. 그래서 에페소 사람들은 너 나 할것 없이 부에 대한 열정으로 사로잡혀 있었다. .에페소는 이런 분위기는 교회에도 영향을 주어 많은 이단자들이 설치고 있었다. 젊은 티모테오만이 이단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그 싸움은 사실 젊은 티모테오에게는 힘겨운 것이었었다. 그런데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혼자 싸우기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티모테오야, 너는 에페소의 혼잡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후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너에게 갈 수 없으니 네가 혼자 잘 싸워야한다. 내가 늘 너와 함께 영적으로 함께 있는 것을 잊지 마라." 티모테오의 눈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러나 그는 참고 견딜 것을 다짐했다.

 
티모테오는 그의 정신적 아버지가 도와주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티모테오는 이처럼 경건하고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티모테오는 눈을 감고 스승을 만났던 그 날을 회고했다.
 

열심한 청년 티모테오는 어느 날 바오로를 만나게 되었다. 그와의 만남은 티모테오의 일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가장 큰 사건이 되었다. 당시에 스승은 제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요한 마르코 문제 때문에 결별을 하고 실라를 데리고 안티오키아를 떠나왔었다. 티모테오는 리스트라에서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젊은 사람이었지만 몹시 듬직해 보이고 믿음이 갔다. 티모테오, 나와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겠소.라는 바오로의 말에 티모테오는 가슴 쿵쿵거릴 정도로 흥분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바오로는 한눈에 티모테오의 됨됨이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티모테오는 리스트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줄만 알았던 바오로가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나서 전도를 하기 위해 다시 떠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뜨거운 감동을 체험했다. 그리고 자신도 바오로의 뒤를 따라 전도에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바오로는 믿음 안에서 티모테오를 아들로 삼았을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바오로는 자주 티모테오를 "믿음 안에서 나의 참된 아들", "나의 아들", "나의 동업자이며 형제"라 는 애칭을 즐겨 사용했다. 결국 티모테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오로의 열정적인 제자로 성장했다.

 
바오로의 눈부신 전교활동 현장에서 티모테오의 신실하고도 은총 넘치는 활동이 큰 도움이 되었다. 티모테오는 사목자로 준비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건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신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티모테오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선교활동을 했다. 그래서 바오로가 그가 나이가 어려 남에게 멸시를 당할까봐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바오로는 티모데오를 믿고 전폭적으로 후원했다. 이처럼 제자를 확신을 갖고 믿는 스승을 만났기 때문에 티모테오는 큰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티모테오도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여 충실하게 스승의 말을 따랐다. 티모테오는 이처럼 바탕이 좋은 일꾼이었다. 티모테오는 자신의 처지에서 자족하며 최선을 다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금의 순간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닐까. 사도 바오로는 그 옛날 티모테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대로 머물러라, 후퇴하지 마라, 싸워라라고 하는 것 같다.

<평화신문, 제641호(2001년 8월 26일자),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티토 - 믿음의 동행자, 문제의 해결사

 

 

사도 바오로에게는 여러 명의 협조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디도였다. 디도는 그리스 사람으로 사도 바오로를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디도는 사도 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사도 바오로의 전교활동에는 항상 그가 동행했다. 디도는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심 깊은 신자였다. 사도 바오로가 디도를 가리켜 "같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진실 된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디도는 사도 바오로의 손발처럼 든든한 협조자일뿐 아니라 영적인 부자지간이었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생각할 때 디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모범으로 여겼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상황을 예루살렘교회에 알리려 할 때 모델로 디도를 데리고 갔을 정도였다.


사도 바오로의 충실한 두 제자는 디모테오와 디도였다. 디모테오는 어머니가 유다인이었지만, 디도는 순 그리스인으로 개종한 제자였다. 디도는 디모테오 보다는 더 나이가 많았고 성격과 수완에 있어서도 디모테오 보다 원숙한 듯하다. 고린토 교회의 사태 수습을 위해 디모테오를 보냈으나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디도가 파견되어 사태 수습을 한 것을 보면 디도는 지혜와 정치적 수완도 있었던 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디도는 디모테오처럼 바오로의 서신에서 송신자로 이름이 함께 연명된 일이 없고, 사도 행전에도 디도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고린토 후서 등 몇 편의 서간에서 잠시 소개될 뿐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사도 바오로의 그림자처럼 그의 활동에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디도의 가장 현저한 활동은 뭐니뭐니 해도 고린토 교회의 문제 해결에서였다. 고린토 교회의 분열은 바오로의 큰 관심사였다. 교회가 여러 파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교회의 붕괴로 이어질 가장 나쁜 조짐이었다. 바오로는 처음에 디모테오를 보내면서 그를 정중히 대접해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디모테오의 활동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 후 고린토 교회의 사정은 더 악화되었고, 바오로에 적대적인 유다인들이 득세하여 그들은 거만해져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런 사정을 수습하기 위해 바오로는 급히 고린토를 방문하였으나 결국 이 여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고린토 교회는 더 혼란해지고 바오로는 모욕을 받고 에페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침내 바오로는 디도를 고린토에 다시 보내어 계속 사태 수습에 노력하게 하였다. 또한 가난한 삶들을 위한 헌금 모금 사업도 벌이도록 지시하였다.

 
"이보게 디도, 고린토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음이나 언변, 그리고 지식이나 열성이 따를 수 없는 훌륭한 신자들이요. 그들을 잘 사목 해 주시오.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 주고 은혜로운 헌금 모금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해 주시오."

 
"알았습니다. 분부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토 교회의 사태 수습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또한 구제 사업을 위한 헌금 모금도 성공적이었음을 알고 몹시 기쁘고 만족했다. 바오로는 기쁨에 넘쳤고 만족했다.
 

드디어 바오로가 고린토에 세 번째로 도착했을 때에는 여러 난제가 쉽게 해결되고 바오로는 다음의 계획인 로마전교를 준비할 수 있었다. 바오로는 교우들 앞에서 디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디도는 나의 참 아들이요, 친구이며, 믿음의 동반자입니다. 디도는 여러분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맞아준 것에 대해 신자 여러분에게도 큰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바오로가 전도여행을 하면서 디도는 그레데 섬에 남겨두어 사목을 담당하게 하였다. 디도가 할 일은 교회를 돌보며 원로를 임명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계속 여행하면서 디도에게 서간을 보내어 사목의 지침을 내려주었다.

 
"디도! 내가 그대를 그레데 섬에 홀로 남겨둔 것은 내가 다하지 못한 사업을 완결 지으려는 것이오. 훌륭한 원로들을 뽑아주어 교회가 자립할 수 있게 해주오. 그리고 그레데 사람들 중에 악명 높은 자들이 많소. 그들은 더러운 이익을 위해 못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오. 그대는 그들을 꾸짖어주고 건전한 교리에 부합하는 것만을 가르치시오."
 

그레데 섬은 지중해 상에 있는 섬인데 상당한 수의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오로는 디도에게 원로의 임명과 이단의 경계 등을 지시하고, 교회 각계 각층에 대한 교훈과 사회일반에 관한 교훈 등 상세하게 편지를 썼다.

 
바오로가 디도를 그레데 섬에 홀로 남겨두고 중대한 임무를 부탁하고 있는 것은 디도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디도는 바오로가 힘들어하는 일을 담대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제자였던 것이다. 그래도 바오로는 어떤 의미에서 참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어려운 문제의 해결사인 디도 같은 제자가 있었으니까. 

[평화신문, 제647호(2001년 10월 1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참고자료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디모테오 주교', 서울(성바오로), 2002년, 38-4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1969-1973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디모테오 주교', 서울(성바오로), 2002년, 38-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