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권요셉 2013. 11. 16. 00:07

11월 16일(토)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Hayley Westenra with Celtic Woman - You Raise Me Up (Live)

 


 

[오늘의 독서]
지혜서 18, 14-16 ; 19, 6-9

 

(해설) 주님께서는 그날 밤에 일어날 일을 당신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분명히 깨닫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의인들은 구원을 받고 원수들은 망하는 것을 주님의 백성들은 기대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들을 징벌하던 그 방법으로 당신 백성을 당신께로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14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15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16 그는 당신의 단호한 명령을 날카로운 칼처럼 차고 우뚝 서서, 만물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땅 위에 서니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19,6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7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8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9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묵상) 전에 물이 있던 곳에 마른 땅이 드러나 보이며 홍해 바다에는 주님의 백성들이 걸어 갈 수 있는 길이 트였습니다. 온 백성은 놀라운 기적을 눈앞에 보면서 주님의 손길의 보호를 받으며 건너갔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온 세상 만물은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자기 본성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루카복음 18, 1-8

 

 

(해설) 돈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가난한 과부는 재판관을 붙들고 도움을 간청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원하는 과부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그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간절히 청해야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묵상)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끈질김을 보일 것입니다. 용기와 끈질김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성인들의 공통점은 인내와 용기와 끈질김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정의와 평화를 얻으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청원을 기다리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청하면 진정 들어주십니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하소연을 귀여겨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간절히 끊임없이 청한다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청하기 전에 미리 우리의 원의를 채워주시지만 우리가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은 항상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늘 감사하며 살 것입니다.

 

미국 필리델피아 대교구
성 이광헌 아오스딩 한인성당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오늘의 성인]

성녀 제르트루다(대) (Gertrude the Great)

 

 

 

축일 11월 16일 
수녀, 신비가, 저술가 
활동지역 헬프타(Helfta)
활동연도 1256-1302년 
같은이름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흔히 '위대한 제르트루다'(Gertrudis)로 불리는 성녀는 1256년 1월 6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1261년 아이슬레벤(Eisleben)에 있는 헬프타 시토회 수녀원 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이 수도원은 성덕으로 유명하였는데, 이 수도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인 하크본(Hackeborn)의 제르트루다는 수녀원을 지혜롭게 운영했으며 그곳을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수녀원장의 동생이면서 수련장이었던 성녀 멕틸다(Mechtildis, 2월 26일) 수녀 밑에서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교육을 받았다. 15세 때 학교를 마치고 수녀회에 입회하였는데, 그녀의 지적 열망과 타고난 지능으로 베네딕투스(Benedictus) 성인의 영성뿐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 능통하였다.

 

그런데 1281년 1월 27일 예수의 발현을 체험하고 나서는 세속적인 학문에 흥미를 잃고 오로지 성서와 교부들의 저서 그리고 전례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또한 그녀의 생활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영적 체험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삶과 그리스도의 발현,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비로운 은총적 계시를 다룬 5권의 책이 “하느님의 사랑의 사자”(Legatus divinae pietatis)로 대표적인 저서이다. 그녀의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체험과 헌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성사에서 ‘예수 성심의 신학자’라고 불리어졌고, 예수 성심 공경을 시작한 선구자 혹은 첫 사도로 여겨졌다. 그녀는 중세의 신비신학과 신비주의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며, 특히 13세기 독일 교회 안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가로 여겨지고, 그녀의 풍부한 신비 경험으로 ‘독일의 테레사’라고도 칭해진다.

 

1302년 11월 16일 헬프타 수도원에서 중병을 앓던 그녀는 “아! 신랑이 오신다.”라고 외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전례의 기도, 독서, 찬가에서 그녀를 공경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았다. 1738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다른 제르트루다 성녀와 구별하고 그녀의 영적인 깊이를 재평가하면서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가톨릭 홈)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성녀 제르트루다
 
 제르트루다는 하느님의 모습을 신비적으로 보거나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입맞춤을 체험했고, 미사 도중에 탈혼과 계시적 조명 그리고 사랑의 상처를 경험했다.
 
'위대한 제르트루다’로 불리는 성녀이자 신비가인 독일 헬프타(Helfta)의 시토회 수녀. 그녀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그 신학적 섬세함과 신비적인 감수성, 그리고 지성과 감성이 조화된 영적 균형에서 비롯된다.

 
'13세기 위대한 신비가'


13세기 가장 위대한 신비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녀는 1256년 1월 6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1261년 아이슬레벤에 있는 헬프타 시토회 수녀원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지적 열망과 타고난 지능으로 일찍부터 학문의 길을 걸었다.

특히 15세 때, 학교 교육을 마치고 수녀회에 입회한 뒤 그녀는 베네딕토와 베르나르도 성인의 영성 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 능통했고, 특히 라틴어에 정통했다. 이러한 지적 재능으로 그녀는 모든 것을 지성에 의존했고, 결국 세속 학문과 지성에 매달린 정신은 영적 생활에 대해 소원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면서 그녀는 1280년 극도의 영적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한다. 예수님은 지성에 매몰된 그녀의 영적 상태를 책망하면서도 위로를 줌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영적 평온을 되찾게 되고, 이후 제르트루다 성녀는 예수님과의 일치 체험을 통해 심오한 내적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녀는 예수님을 신적인 신랑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 영적 결합은 평화와 삼위일체의 삶을 경험하게 했다.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여기게 된 성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심에 깊은 일치를 이루며 자신을 삼위일체의 생명 그 자체 안으로 이끌어갔다.

제르트루다의 영성 생활은 그러나 개인적인 신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비주의적 삶에 대한 경험은 성서와 영적 독서, 공동기도, 시간 전례, 미사를 통해서 성숙됐다. 시간 전례 중에 하느님의 모습을 신비적으로 보거나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입맞춤을 체험했고, 미사 도중에 탈혼과 계시적 조명 그리고 사랑의 상처를 경험했다.

전례의 리듬에 따라 살았으며 거기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전례와 성서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신심을 표현하고 풍요롭게 하는 주제와 표상을 발견했으며, 그녀의 개인적인 기도와 전례 사이에는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으며, 전례가 그리스도와 합일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 

그녀는 종종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감정과 열정, 상상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대신덕의 실천을 통한 그분과의 친교를 주장했다. 내적 경험을 항상 성서에 비추어 해석했고, 인간 현실을 무시하는 과장된 감정이나 상상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리스도와의 혼례적 관계의 경험 역시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대신덕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수 성심의 신학자’


제르트루다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체험과 헌신이었다. 사실 그녀는 ‘예수 성심의 신학자’로 불렸고, 예수 성심의 공경을 시작한 첫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신비, 특히 상처에 집중했는데, 이 상처는 피 흘리는 고통에 집중된 슬픈 것이 아니라 정화되고 밝고 변형된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성덕 중 하나는 순명이었다. 하지만 이 순명은 단지 규율을 지키고 장상에 복종하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고 일상 안에서 순교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완전한 순명은 완전한 헌신이었고, 그것은 또한 자신이 하느님을 비추는 촛불에 불과하다고 하는 완전한 겸손이었다. 

이러한 겸손은 자연스럽게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으로 연결된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완전한 순명의 모범을 보인 성모 마리아와의 일치를 통해 그녀는 죽음으로까지 하느님께 순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명과 일치로 이끌려진다. 결국 그녀는 하느님 앞에서의 순명, 끝없는 헌신을 동반해 자기 자신이 완전히 없어지기까지 순명의 삶을 살았다.

“아! 신랑이 오신다”


1288년 제르트루다 성녀는 중병을 앓게 되고, 합병증으로 치유가 불가능하게 된다. 건강이 안좋아 오랫 동안 병상에 누워 지냈던 그녀는 투병 생활을 하다가 1302년 11월 16일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는 부르짖기를 “아! 신랑이 오신다”라고 했다. 신적인 신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그녀의 삶과 영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비록 그녀는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시성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1738년 그녀를 다른 제르트루다와 구분해 그녀의 영적인 깊이를 재평가하면서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그에 앞서 1606년 교황청은 공식 전례의 기도, 독서, 찬가에서 그녀를 공경할 수 있도록 공인했다.

그녀의 생애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기도 자체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개인적인 기도, 전례적 기도, 일상적인 것이든 신비적인 것이든 언제나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기도는 그 자체가 곧 그리스도인의 생활임을 성녀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톨릭신문, 2005년 10월 16일, 박영호 기자)

 

 


 

 


독서기도
 
제2독서
성녀 제르트루다의 ‘신적 사랑에 대한 권고 말씀’에서
(Lib. 2, 23,1. 3. 5. 8. 10: SCh 139,330-340)

 
"나에 대해 당신이 지니신 생각은 평화의 생각입니다"

주 하느님이시여, 나의 창조주시여, 내 영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내 영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고, 나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어도 당신의 영원한 사랑이 나를 감싸 준 당신의 그 자비가 나의 내심으로부터 당신을 찬양하게 해주소서. 주여, 나는 이제 내 능력 미치는 데까지 주님이 나에 대해 지녀 오신 무한한 자비에 감사 드리고 주님의 관대하심과 주님의 인내심을 찬미합니다.

 

나는 유년 시절, 소녀 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인 스물다섯 살까지는 앞뒤를 못 가리는 철없는 사람으로 지내 왔습니다. 그때 나는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말하고 행동하고 또 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악에 대해 느끼게 된 자연적인 혐오감을 통해서 또는 나를 이끌어 온 선에 대한 매력을 통해서 또는 내 친척들의 야단법석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내 행위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보내 주실 때, 나는 그 경고에 대해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이교도들 가운데 사는 이교도인 양, 내 하느님 당신께서 선행에 보답해 주시고 악행을 벌하신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께서 나에게, 소녀 시절부터 즉 다섯 살의 어린이 시절부터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수녀원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심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나는 이제 내 죄의 보속으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의 온갖 고난을, 곧 그분이 말구유의 짚풀 위에서 처음 울던 때부터 유년 시절의 무력함, 소년 시절의 허약함, 청년 시절의 고통을 참아내고 십자가에서 머리를 숙이며 큰소리로 외치시면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의 고난을 바쳐 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내 게으름의 대신으로 당신 외아드님께서 아버지의 옥좌의 정상에서 우리 땅에 내려오신 때부터 자신의 승리한 육신의 영광을 아버지의 면전에 바쳐 드릴 때까지 지내 오신 거룩한 생활을 그 완전하신 생각과 말과 행위와 함께 바쳐 드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의 깊은 심연 속에 침몰해 들어가 주님의 지극히 뛰어난 자비와 함께 그 감미로운 사랑을 찬미하고 흠숭합니다. 자비의 아버지시여, 내가 이처럼 타락된 생활을 하는 동안 주님이 나에 대해 지니신 생각은 고통의 생각이 아니라 평화의 생각이었고, 당신은 당신의 무수히 크나큰 은혜로써 나를 높여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은혜들 가운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당신 우정의 친밀함을 보태어 주시고 여러 방법으로 천주성의 고귀한 장막인 당신 아드님의 성심을 열어 주시어 거기에서 기쁨의 온갖 보화를 풍부히 주셨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죽을 때나 죽음 후에 나에게 은총의 선물을 주시리라는 확고한 약속으로 내 영혼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밖에 다른 선물을 내가 받지 않았다 해도, 그것만 생각해도, 내 마음은 산 희망으로 당신을 바랐을 것입니다.

 

  
응송  예레 31,3b; 호세 2,16b. 21 참조

◎ 하느님께서는 제르트루다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여, 어릴 때부터 그를 이끌

어 내시어 빈 들로 데리고 나아가시고 * 사랑을 속삭여 주셨도다.
○ 하느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그와 영원토록 약혼하셨고,
◎ 사랑을.

 


 

 

귀한 소개글 제 홈피에 복사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