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4. 4. 24. 21:59

성 마르코(Saint Mark the chronicler of Gospel)

 

 

 

 

축일 : 4월 25일 
복음사가  
활동지역 :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활동연도 : +74년경 
같은이름 :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가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Marcus)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사도 12,12-25)과 동일 인물이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한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다. 또 그는 성 바르나바(Barnabas)의 조카이며(골로 4,10),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 사람이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로 여겨지나(마르 14,51-52)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바오로(Paulus)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사도 12,25),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로 바르나바와 함께 갔으며, 바르나바와 함께 바오로의 1차 전교여행을 수행하였다(사도 13,5). 그러나 밤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바오로의 제 1차 전교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15,36-40).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사도 15,39),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에는 로마(Roma)에 함께 있었다(골로 4,10).

 

그는 분명히 베드로(Petrus)의 제자였는데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라고 언급한다(1베드 5,13). 불확실한 전승이지만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였으며, 신약에서 여러 번 언급된 바와 같이 요한 마르코임이 분명하다(사도 12,25). 동방에서는 이 요한 마르코를 또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는 비블로스(Byblos)의 주교라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어쨌든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였다.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고 하며,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로마에서 복음을 기술했다고 전한다. 마르코는 베네치아(Venezia)의 수호자이며 그의 유해는 그곳의 산마르코(San Marco) 대성당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의 문장은 사자이다.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성 바르나바의 조카였다. 사도 성 바울로의 첫번째 선교 여행에 동행했고 나중에 그를 따라 로마에 갔다. 성 베드로의 제자로서 자신의 복음서에다 그의 가르침을 반영시켰다.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를 세웠다고 전해져 온다.

 

 

성 이레네오 주교의 저서 [이단자를 거슬러]에서
(Lib. 1,10,1-3: PG 7,550-554)

 

 

진리의 전파

 

 

땅 극변에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교회가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은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신 성령에 관한 신앙입니다. 성령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드러내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사랑하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림하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시며, 수난받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며, 육신으로 승천하시고, 또한 하늘로부터 성부의 영광속에 다시 오시며, 만물을 일치시키시고 모든 인간 육체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이시요 하느님이시며 우리 구세주이시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은 모든 이 위에 정의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어받은 이 가르침과 이 신앙을 충실히 간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온 세상 곳곳에 퍼져 있지만 같은 한 집안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온 교회는 마치 한 영혼과 한 마음만을 지니고 있듯 이것을 믿고, 또한 흡사 하나의 입만을 가지고 있듯 일치된 목소리로 그것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또 전수해 줍니다. 세상의 언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앙을 전달하는 전승의 활력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독일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이 믿고 또 전수하는 것과 스페인이나 켈트 지방이나 동방의 교회들이나 에집트나 리비아의 교회들이나 세계 중심의 교회들이 믿고 전수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인 태양이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처럼 진리의 선포도 세상 어디에서나 빛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웅변을 지닌 사람도 이것과 다른 어떤 것을 말해서는 안되고(누구도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위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전승의 효력을 감소시켜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불리지 말아야 하고 또 이야기를 적게 할 수 있는 사람도 그것을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좌절을 극복한 마르코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가 아들과 같이 아끼는 제자였다. 그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식 이름과 희랍어 이름을 동시에 갖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열심한 믿음을 지녔던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베드로 사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또한 마르코는 희랍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의 통역사로 전교의 일선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베드로 사도가 청중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에 관해 자연스럽게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주님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내용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였다.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산실이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예배모임의 장소로 기꺼이 봉헌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신도들이 모임의 장소, 즉 교회로 사용할 수 있게 했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이런 신심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영향을 받은 마르코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신심을 본받았을 것이다.

 

 

Gianantonio Guardi,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

(상좌~ 성 도미니코, 성모자, 성 세바스티아노) (하좌~ 성 안토니오 수도원장, 성 마르코)
1746-48, Oil on canvas, 234 x 154 cm, Parish Church, Belvedere di Aquileia

 

 

마르코의 집에서 주님의 제자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임과 예배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마르코는 자연히 사도들과도 잘 알게 되었고, 세례를 베푼 베드로 사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 단적인 예로 헤로데에 의해 감옥에 붙잡힌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제일 먼저 찾은 집이 바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베드로가 마르코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여종이 나와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 반가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베드로 사도께서 문 앞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안에서 기도하고 있던 신도들은 여종의 말을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 하니? 야, 너 미쳤구나!"

 

그러나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다. 정말 베드로 사도가 거짓말처럼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베드로 사도는 "쉿, 조용히들 하시오. 내가 감옥에서 천사들의 도움으로 빠져 나오게 된 경위를 다 말하리라. 어서들 들어가십시다." 하면서 그간의 경위를 알려주었다.

 

마르코 어머니의 집은 대문을 지키는 여종이 있었던 재산이 많은 큰 주택이었던 것 같다. 또한 남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과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르코는 유명한 바르나바 사도와는 사촌지간이었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 유대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예루살렘에 구호를 위해 바르나바 사도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올라온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사도 바오로는 마르코를 만나게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대뜸 마르코의 됨됨이와 능력을 보고 자신들과 함께 같이 일할 것을 권고했다.

 

"마르코, 우리 같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하지 않겠나? 우리 같이 떠나세."

 

"저는 모든 게 아직 부족한 사람인데요.…"

 

"이 사람 겸손하기는 아무 말 말고 함께 떠나세."

 

두 사도는 예루살렘을 떠날 때 마르코를 데리고 갔다.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와 함께 얼마동안 동고동락하며 전도 활동을 했다. 바오로 일행이 바포에서 배를 타고 밤필리아 지방 베르게로 건너갔을 때였다. 마르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선생님, 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제 전도여행이 시작인데…"

 

마르코는 만류하는 바오로 사도와 헤어져 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오로 사도는 몹시 실망했다. 그만큼 마르코에게 기대가 컸던 탓이었다. 부유한 생활을 했던 마르코가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따라 따라나섰지만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베르게에서 시작되는 전도여행 앞에는 홍수 등 자연적인 재해, 유대인의 박해, 풍토병, 강도의 위험 등이 바오로 사도 일행을 괴롭혔다. 결국 두려움과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 마르코는 일행에서 혼자 빠져 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마르코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용기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참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온 마르코는 얼마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주님의 복음 전파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베드로 사도의 통역을 맡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마르코는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마침내 초대교회에서 전승을 모아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해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귀한 복음을 전해주었다. 마르코에게 있어서 신앙의 길은 좌절과 낙담을 반복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후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인 것이다.


<평화신문, 제654호(2001년 12월 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사도와 성서저술가 - 마르코 사가


성서 전문가들은 마르코가 기원후 64년경 로마에서 복음을 저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멸의 빛’ 마르코 복음의 저자

예수님 말씀 활동 첫 저술
타 복음서 연구 토대 이뤄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에 관해 처음으로 쓰여진 복음서로 마태오 요한 루가 등 다른 복음서를 연구하는 중요한 토대를 이룰 뿐 아니라 감추어진 「메시아 비밀」을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 죽음, 부활 안에서 밝혀주는 생생한 예수님 사건의 증언록으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복음을 저술한 작가 마르코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마르코는 예수의 제자나 목격 증인이 아니었고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로부터 들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들을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기억나는 대로 충실히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삭제하거나 삽입하지도 않았다』

 

115년경 초대 교부들 가운데 소아시아 히에라 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마르코의 얘기를 밝힌다. 평소에 요한 원로로 부터 익히 전해들은 바가 있어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그는 『마르코가 베드로를 통해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이레네오 테르툴리아노 유스티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같은 교부들도 파피아스의 말을 받아들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파피아스의 증언은 교회 전통으로 자리잡게돼 「마르코」는 네 복음서중 가장 먼저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복음서의 저자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복음 작가는 이름만 알리고 있을 뿐 생애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는 거의 알 수 없는 상태다.

 

신약성서 곳곳에 「예루살렘 출신으로서」(사도 12, 12)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제자」였으며(사도 12, 15 ; 13, 5~13 ; 15, 37~39 필레 1, 24 골로 4, 10 ; 1디모 4, 11) 또한 「베드로의 제자」(1베드 5, 13)로 「요한」 마르코 라는 인물이 묘사돼 있으나 복음 작가와 같은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레네오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르코라 불리는 요한」이 바로 복음작가 마르코라고 설명한 것들과 관련지어 본다면 마르코는 베드로가 순교할 무렵부터 베드로와 연관을 맺으며 내용을 기록했다고 추측할 수 있고 따라서 성서 전문가들은 마르코가 기원후 64년경 로마에서 복음을 저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르코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피다 보면 추적 가능한 몇가지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다. 이레네오가 언급한 내용을 따를 때 우선 마르코의 어머니는 베드로가 석방될 즈음 예루살렘 자신의 집에서 신도들을 보살펴 주던 분(사도 12, 12)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바로 헤로데 아그리빠 왕의 박해로 체포돼 갇히게 된 베드로는 어느날 밤 두 천사의 힘으로 기묘하게 옥에서 구출된 후 「마르코」라 부르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머물다가 원수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로마」로 향해 출발했다는 대목이다.

 

또 베드로 전서 및 사도행전에 따르면 마르코가 로마에 살았으며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첫 번째 전도여행에 동행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중에 헤어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바르나바가 마르코를 동행하려 했으나 바오로가 반대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필레몬서에서는 이후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투옥 생활을 하던 곁에서 마르코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제3차 여행(53~58)에서도 바오로 곁에 마르코가 있었다. 그는 디모테오에게 『그대는 마르코를 데리고 함께 오시오. 그는 봉사하는 일에서 내게는 귀한 사람』임을 드러냈다.

 

또한 베드로도 마르코를 자신의 아들로 여겼다는 구절을 볼 수 있는데 학자들은 아마도 베드로가 친히 마르코에게 세례를 주고 신앙적으로 가르치며 키웠을 것이라는 추측을 보이고 있다. 그런면에서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교부들의 증언은 의혹이 어느 정도 불식됐다고 봐야 한다.

 

마르코 복음서는 모두 16장.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1, 1)의 기쁜 소식이 역사적인 인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선포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안에서 밝혀지는 메시아 비밀, 수난 예고에 이어지는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 복음서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예수님의 수난은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한지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 이 복음은 지금껏 설교 역사상 세상 끝까지 불멸의 빛을 내뿜는 커다란 금자탑의 하나로 여겨진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 바오로가 치명한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현지 주교로서 베드로 정신을 따라 교회를 발전시켰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면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마르코는 목에 줄을 매 읍내를 돌게 되고 참살 당하게 된다. 정확한 순교 날짜나 장소 등이 불분명하나 마르코 복음사가의 유해는 9세기경 이탈리아 베니스의 성 마르코 성당으로 옮겨졌다.

 

전문가들은 그러한 순교 후에도 「베드로」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그가 교회 전승상 마르코라는 사실을 정확히 입증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이었고 사도들의 증언 내용을 몸소 두루 익힌 자로서 복음 전파에 전념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통상 날개 달린 사자가 마르코의 상징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그의 복음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되며 이 소리가 포효하는 사자와 같다는 의미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5월 9일, 이주연 기자]

 



성 마르코 복음사가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대학 교수·신부)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의 통역자요 바오로 사도의 협조자일 뿐 아니라 제2복음서의 저자이다. 그가 복음서의 필자임을 의심하는 설도 있으나 초기 그리스 필사본은 제2복음서를 마르코에 의한 복음서라고 하고 있으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도 “베드로의 통역이었던 마르코는 주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듣고 왼대로 주의 깊게 그러나 차례에는 구애받지 않은 채 썼다고 장로는 말하고 였다”고 하였다. 또한 성 이레네오는 “베드로의 제자 또는 중개자 마르코는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던 일을 써서 전했다”고 하였으며 오리게네스 역시 마르코가 이 책의 필자라고 하고 있다.

 

마르코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은 신약성서에 의거하는 바 베드로 전서에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5,13)나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골로 4,10), 바오로의 동료 마르코(필레 l,24), 바오로가 투옥당했을 때 데려오기를 청한 마르코(2디모 4,11), 사도행전에 나오는 요한 마르코(13,5; 12,12.25; 15,37), 복음사가 마르코는 모두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옛 풍습에 따라 유다인들에게는 요한으로, 이방인들에게는 마르코라고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사촌인 바르나바가 사제 계급 출신(골로 4,10)이니 마르코도 그러하리라 보며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살았다. 그 집은 새로 태동하고 있던 교회의 집회를 위하여 이용되었으니(사도 12,12) 결코 작은 집이 아니었을 것이며 로데라는 여종(사도 12,13)까지 거느릴 정도면 상당히 유복한 가정이라고 하겠다. 43년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베드로는 이 집을 피난처로 삼았었다(사도 12,12-17).

 

마르코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떤 학자들은 그가 게쎄마니에서 예수님의 체포를 얘기할 때 자기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즉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마르 14,51-52)는 얘기다. 마르코는 명백히 베드로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바오로를 따르고(마르 14,44-49) 그 후(마르 14,61-63) 로마에서 다시 바오로의 협조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또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복음 활동에 헌신하였을 것이다. 오랜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바오로의 영향보다 베드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따라(사도 12,25) 45-49년경 1차 전교여행을 함께 했다(사도 13,5).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키아로 갔다가 그 후 키프로스 섬까지 함께 갔으나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 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렸다(사도 13,12). 이에 바오로가 그를 못마땅히 여긴 나머지 50-52년경의 2차 전교여행 때는 동행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바르나바는 격렬한 언쟁 끝에 헤어져 마르코와 함께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 섬으로 가 전교하였다(사도 15,37-40). 그 후 로마에 가서 베드로를 도와 교회 발전에 전력하였다. 그가 신자들의 희망에 의하여 베드로의 설교를 재료로 삼아 간단 명료하고 강력한 필치로 복음서를 저술한 것은 바로 이때인데 아마 70년경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로 하여금 감옥에 있는 자신을 방문해 주도록 요청한 것을 보면(2디모 4,11) 서로간의 나쁜 감정은 없어진 것 같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성 치릴로, 성 안또니오, 성 미카타리나 동 훌륭한 주의 종을 배출한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립자였으며, 주교로서 베드로의 제자답게 복음을 전하다가 줄에 몸이 묶이어 자갈밭에 끌려다니다가 순교하였다. 동정과 순교와 저술가로서의 세 가지 영광 속에 천국에 갔다고 하나 순교한 날짜와 장소 등은 불확실하며 그의 유해는 9세기경 이딸리아 베니스의 성 마르코 성당으로 옮겨져 공경받고 있다.

 

 

날개 달린 사자는 바로 마르코의 상징인바 이는 그의 복음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되며 이 소리를 포효하는 사자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날개는 에제키엘이 날개 달린 네 마리 생물을 환시로 본 것을 복음사가들에게 적용시킨 데서 유래한다. 축일은 4월 25일이다.

 

마르코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존재 이유인 복음 선포에 온갖 정열을 다 바쳤으며 특별히 글로서 전하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우리도 성인을 본받아 우리의 말과 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복음 선포에 귀착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경향잡지, 1988년 4월호]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 마르코 (상)

 

'메시아 비밀' 담고 있는 마르코복음서

 


 

- 마르코복음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전승과 사상을 종합하는 교회일치 신학을 제시했다. 그림은 바티칸 박물관 '지도의 방' 벽면에 그려져 있는 마르코 성인화. 날개 달린 사자는 마르코 성인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전승을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복음으로, 초대교회에 큰 공헌을 했다.

 

고대교회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주교 증언에 따르면 복음서를 쓴 마르코는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출신 요한 마르코이다. 그는 예루살렘 가정교회 유지의 아들이었다.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빠져나와 마리아의 집으로 향하는데, 이 마리아가 마르코의 어머니다.

 

마르코는 당시 국제공용어인 그리스어에 능통해 베드로 사도를 수행하며 그의 설교를 통역했다. 또 바오로 사도의 제1차 전교여행에 동행했기에, 마르코복음서에는 두 사도의 영향이 반영됐다. 때문에 복음서는 두 사도의 전승과 사상을 종합하는 교회일치 신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복음서는 주님의 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사야서와 즈카르야서, 시편 등 구약성경을 인용했다. 그중에서도 이사야서는 복음서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사야서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돼 본토로 귀환하게 되리라는 예언으로, 폐허에서 일어서야 하는 귀향민에게 희망을 고취했다. 마르코서는 이러한 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을 이용해 예수가 선포한 기쁜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틀로 차용한다.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와 바빌론 종살이에서 해방돼 귀환할 때 광야를 거친다(이사 40,3). 마르코복음서 역시 광야를 서두로 삼고 있다. 요한 세례자는 예언서에 나타난 대로(1,2~3)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설교 듣는 이들에게 함께 주님의 길을 마련하도록 촉구한다. 이처럼 광야를 거쳐 주님이 오신다는 점에서 이사야서의 본토 귀환 여정은 마르코복음의 지리적 여정과 일치한다.

 

또 이사야서는 귀향민에게 하느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신다고 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코복음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새 하늘이 열리고, 예수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거나 5000명의 유다인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킬 때 광야가 초원으로 변하며 새 땅이 열리는 것을 보여줬다. 하느님 초대에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이 참여해 기쁨을 나눈다고 한 이사야적 전망 역시 반영돼 있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며 공생활을 시작했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속에서 나올 때 하늘이 갈라졌다(1,10). 이는 이사야서의 한 대목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63,19)을 암시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무엇인가 행동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예수 세례 때 실현된 것이다.

 

복음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11)는 대목에서 예수는 하느님 아들로 선언된다. 구약성경에서 '아들'은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특히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외아들'(창세 2,22)로 표현된 이사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이사악이 하느님 말씀에 따라 제헌(祭獻)됐듯 예수 역시 스스로 바쳐져야 한다는 소명이 있음을 암시한다.

 

복음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예수 한 명이다. '너는'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점에서 복음서는 '메시아 비밀'이라고 하는 특유의 주제를 드러낸다. 복음서 곳곳에서 마귀가 예수를 하느님 아들이라는 점을 폭로하려고 하지만 예수는 이를 막는다. 왜 예수의 신원이 비밀로 지켜져야 했는가.

 

예수는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많은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뛰어난 능력을 드러냈다.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가 메시아이자 하느님 아들인 것은 놀라운 능력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하느님 아들이라는 근거는 인간적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예수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리셨다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아들이라는 결정적 근거다. 이는 어떠한 인간도 개입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하느님만의 역사다. 하느님은 예수를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부활시키고 오른편에 앉게 함으로써 당신과 같은 권능과 권한, 영광으로 이끄셨다. 하느님의 이러한 역사하심에서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비로소 하느님 아들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것이다.

 

마르코복음서는 '메시아 비밀'이라는 모티브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예수의 신원이 단박에 알려질 수 없다는 원초적 사실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를 함부로 고백하기보다는 침묵속에서 그분이 가신 길을 따르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31일, 정리=김은아 기자]

※ 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 마르코 (하)

 

광야 · 빈 무덤 지나 부활의 갈릴래아로

 

 

 

- 빈 무덤을 찾은 세 여인이 예수가 부활했음을 알고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이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부활을 선포하고, 예수가 기다리는 갈릴래아로 가게 된다. 그림은 코르넬리우스(1783~1867)의 '무덤가의 세 마리아'.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강림한다. 하늘이 갈라질 정도로(마르 1,10) 강력한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내던졌다'(1,12).

 

마르코복음은 광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예수가 사탄을 제압하고 들짐승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3). 이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 11,6-9)하고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했다는 표지다.

 

마르코복음에서 광야라는 장소는 대단히 중요하다. 광야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 복낙원(復樂園)을 암시한다. 예수가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일 때 광야는 초원으로 변모한다(6,39-40). 이는 이사야서를 비롯한 묵시문학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예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성령의 활동 안에서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하고 말한다.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왔지만 여전히 감춰져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지 않는 한, 하느님 나라에 관한 어떤 말도 의미가 없다. 하느님 나라와 믿음이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하느님 나라 선포는 공동체가 더불어 수행해야 하는 공동의 소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자세다. 예수의 네 제자가 생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뒤따랐던 것처럼, 구체적 삶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1,18).

 

예수가 행한 치유와 구마(驅魔) 행위는 기존 질서와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다. 마귀는 성경에서 인간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둠의 세력인 동시에 공동체의 사회적 시스템, 또는 자연 배후에서 작용하는 세력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구마 행위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5장에 기록된 '마귀들과 돼지 떼' 에피소드다. 예수가 마귀 들린 이 앞에 나타나 이름을 묻자 그 안의 더러운 영들이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5,9). 이들은 예수에게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하지만 더러운 영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더니 호수에 빠져 죽는다(5,10??13). 마귀들의 이름을 군대라고 밝힌 것은 로마 군대를 연상시킨다. 이는 백성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로마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 나라는 미래에서 현재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현실이 변모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제국주의적 현실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수는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꼽음으로써(12,29), 인간의 궁극적 원리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예수는 성전 앞의 환전상과 비둘기장수를 쫓아내는 성전 정화사건(11,15)을 벌인다. 그리고 성전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파괴되리라고 암시한다(13,2). 또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써 제구를 나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는 유혈제사를 비판하고,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11,17). 유혈제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빵으로 바꾸어 나누는 성찬례가 그리스도교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르코복음은 후반부에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16,8)고 진술한다. 빈 무덤에서 예수의 부활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이를 선포하기보다는 두려워서 스스로 입에 족쇄를 채우고 도망친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1장의 배경인 '광야'에 다시 놓인 것과 같다. 이처럼 마르코복음서는 광야에서 시작해 무덤으로 끝난다. 그러나 광야가 주님이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잠시 준비하는 곳인 것처럼, 무덤 역시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확인하는 장소로서 거쳐 가는 장소일 뿐이다. 때문에 제자들은 당혹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으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고, 예수가 기다리는 갈릴래아(16,7)로 향해야 한다.

 

이는 인간적 좌절과 실패, 두려움을 겪는 우리를 불러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초대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3년 4월 7일, 정리=김은아 기자]

※ 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


 

 


 


Pieter Pauwel Rubens, The Four Evangelists (좌~ 성 루카, 성 마태오, 성 마르코, 성 요한) c. 1614, Oil on canvas, 224 x 270 cm Schloss Sanssouci, Potzdam
[원본 : http://www.wga.hu/art/r/rubens/10religi/161relig.jpg
 
 
복음사가의 상징(福音史家의 象徵)
 
마태오는 그의 복음이 예수님의 인간성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어 사람의 얼굴로 나타낸다(편집자 주 : 세리 출신이었던 마태오 사도는 은행원과 회계업무자의 수호성인으로 보통 장부를 펼쳐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그리고 마르코는 그리스도의 품위를 강조했고, 복음의 서두가 사자의 울음처럼 장중하게 시작되므로 사자로 나타냈다. 또한 황소는 주로 제사의 제물로 쓰이는데 루카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대신 속죄하는 제사라고 묘사했기 때문에 황소로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기록했기 때문에 독수리로 나타냈다.
[최형락 신부, 가톨릭 용어사전에서 발췌]

 

 

 

 

 

 

Paolo Veneziano, A Scene from the Life of St Mark(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성인의 유해를 옮기는 도중 배에 나타나서 폭풍을 잠재우는 성 마르코)
1345, Tempera on wood, 58 x 42 cm, Basilica di San Marco, Venice
[원본 : http://www.wga.hu/art/p/paolo/venezian/st_mark.jpg
 

 
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과 이동
 

 

 

중세의 베네치아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도시국가였으나, 그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안가 사라센의 통치자가 알렉산드리아에 거창한 이슬람 성전을 짓도록 명했다. 그는 물자가 모자라자, 이집트에 있는 성당의 기둥을 뽑아 쓰도록 하였다. 그 성당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보관한 곳으로,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성인의 유해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이집트에서 성인의 유해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에 그 유해를 당장 옮겨야 했던 것이다. 이때 성당의 지하묘지에서 성인의 유해를 찾는데, 마르코 성인이 현시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고 한다.
 
성인의 유해를 옮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숙명적인 일이기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우선 이집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성인의 유해를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위장하고, 또 세관원들의 눈을 속이고자 유해의 가슴 부분에 사라센 사람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혐오하는 햄과 돼지고기를 넣었다. 유해의 가슴을 열어젖힌 항구 세관원은 그 속의 햄과 돼지고기를 보고 혐오감에 치를 떨며 얼굴을 돌리고는 그 시신을 당장 배에 실을 것을 명했다. 이렇게 해서 성인의 유해는 별 탈 없이 배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향해 무난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서기 827년의 일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경향잡지 2006년 2월호에서 발췌]

 

 



[책 속 미술관]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

 

 

1562-66년, 캔버스 위에 유채, 315x398cm, 이탈리아 베네치아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

 

 

틴토레토(1518-1594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려한 색채를 중시한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오늘날 베네치아의 중요한 유적은 산 마르코 성당이다. 이 성당에 모셔진 마르코 성인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오늘날에도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틴토레토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이다. 마르코 성인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복음사가로서 마르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두 번째 방문 때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이렇다. 중세의 베네치아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도시국가였으나, 그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안가 사라센의 통치자가 알렉산드리아에 거창한 이슬람 성전을 짓도록 명했다. 그는 물자가 모자라자, 이집트에 있는 성당의 기둥을 뽑아 쓰도록 하였다. 그 성당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보관한 곳으로,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성인의 유해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이집트에서 성인의 유해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에 그 유해를 당장 옮겨야 했던 것이다. 이때 성당의 지하묘지에서 성인의 유해를 찾는데, 마르코 성인이 현시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고 한다. 그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이다.

 

성인의 유해를 옮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숙명적인 일이기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우선 이집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성인의 유해를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위장하고, 또 세관원들의 눈을 속이고자 유해의 가슴 부분에 사라센 사람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혐오하는 햄과 돼지고기를 넣었다. 유해의 가슴을 열어젖힌 항구 세관원은 그 속의 햄과 돼지고기를 보고 혐오감에 치를 떨며 얼굴을 돌리고는 그 시신을 당장 배에 실을 것을 명했다. 이렇게 해서 성인의 유해는 별 탈 없이 배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향해 무난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서기 827년의 일이다.

 

일설에 따르면, 베네치아 상인들이 유해를 옮기던 중 하늘에서 갑자기 몰아친 천둥과 번개, 폭풍우가 거리에 들끓던 사람들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성인의 유해는 아무런 방해나 장애도 없이 무사히 배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틴토레토가 그린 것이 바로 하늘의 승낙이 있던 성스런 순간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3명의 베네치아 사람들이 마르코 성인의 시신을 들어 옮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시신을 운반하는 낙타를 저지하려다 땅바닥에 엎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천둥과 폭풍우의 조짐이 두려워 아케이드로 몸을 피하려고 줄달음질 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환하게 빛나는 성인 모습, 그 건장하고 멋진 모습이 마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또는 매장 순간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보인다.

 

순교 당시의 처참한 모습과 달리 표현된 것은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성인의 고상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림 속 배경 또한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베네치아이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광장이며 웅장하고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산 마르코 광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의 종탑 역시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 모습이다. 틴토레토는 역사나 지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이 그림에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기념물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성인의 머리 왼쪽으로 위엄을 지닌 성인의 자태를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그림의 의뢰인으로 당시 베네치아의 명망있는 의사이자 예술 후원인이었던 토마소 기아노티이다.

 

그리고 그림 곳곳에 연기 같은 흰 선이 나타나 있다. 당시 이 그림을 판화로 제작한 것을 보면 성인의 영혼이 투명한 흰색으로 천사들의 머리에 둘러싸여 부유하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흰색 선들은 바로 성 마르코의 영혼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의 뒤쪽 교회 앞에는 장적더미가 보이는데, 관례적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인을 매장했으나, 이교도들은 불에 태웠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 이 장적더미는 그림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만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였다면 불에 태웠을 것을 베네치아에서 벌어진 일, 곧 성인의 매장과 병치시킨 것인데, 이처럼 어떤 동일한 사건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여러 형상으로 병합시키는 것은 일종의 꿈과 환상이다. 틴토레토는 지금 꿈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몽환적 인상은 그림의 배경에 나타난 천둥과 번개의 비현실적 형상을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인의 육신은 밝게 빛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과 그림자에 싸여 모호하게 표현되어 현실성을 잃고 있다. 참다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교인에 반해, 왼쪽 아케이드로 도망해 들어가는 이교도들은 창백한 유령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림 하단에서 교회를 향해 뻗은 일렬로 늘어선 석판 경계선이 그리스도교인과 이교도들의 다른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낙타의 줄을 잡은 채 나뒹구는 이교도는 절대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석판들은 그림에 원근의 깊이감을 주는 효과를 발하기도 하는데, 이 원근법이 인간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는 르네상스 회화의 일면이다. 그러나 지금 틴토레토는 사실과 현실에 입각한 르네상스 이상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고 있다. 병치된 꿈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양감과 무게감이라는 현실성을 잃은 채 언제라도 바람에 쓰러질 듯 불안한 연극무대 같은 건물, 확실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잃은 채 더 이상 르네상스의 이상인 숭고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 인간의 모습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한 형상 가운데에서도 확실한 존재가 하나 있다. 그림 속의 모든 존재는 움직이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교도들은 모두 왼쪽으로 내달리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림의 전면을 향해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 다만 성인의 유해만이 구체적이면서도 분주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고요한 형상, 빛이 어울린 아름다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는 16세기 이탈리아를 휩쓴 종교적이며 정치적 격동기에도 베네치아 사람들이 가장 믿고 신뢰하던 존재, 불멸의 영원한 존재가 바로 그들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틴토레토는 당시 인간의 이성을 토대로 파악한 구체적인 세계를 오히려 모호하게 표현하고, 하느님의 섭리와 신앙이라는 모호한 관념을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형상으로 묘사하면서, 유한한 인간 세상에 비해 하느님의 섭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또한 믿음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르네상스의 이상을 따르면서도, 그 이상을 거부하면서 정신의 숭고함을 전한 매너리즘의 화풍이 펼쳐진 것이다.

 

*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경향잡지, 2006년 2월호,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t/tintoret/3a/3mark.jpg)




참고자료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마르코', 서울(한길사), 2014년, 58-66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33-23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마르코의 복음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349-2359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마르코 복음 사가', 서울(성바오로), 2002년,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