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4. 6. 29. 04:32

사도 성 베드로(Apostle Saint Peter) 
 

 

  

 축일

 6월 29일 
 신 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4년경 
 같은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 넘어지고 깨져도 주님만을 따른 베드로

 

 

[로렌초베네치아노_사도베드로와안드레아를부르심]

 

 

신약시대에 베드로는 주님의 으뜸가는 사도로서 자리를 차지하지만 신뢰와 배신, 강함과 연약함을 가졌기에 우리들에게 신앙의 표양을 그대로 보여 준다. 먼저 베드로에 대해 간략히 보고 베드로를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① 베드로의 신분은 벳사이다인 요나의 아들로서 안드레아의 형제인데 본명은 시몬이다. 시몬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께서 직접 게파(ghefa)라고 바꾸어 불렀다. 게파라는 말은 시리아어로서 희랍어로 번역하면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갈릴래아 바다에서 어업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과 생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12제자 중 수위를 차지했고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친근하였으며 그의 행적과 공로가 지대하다(요한 1, 41-44: 마태 10, 2; 마르 5, 37; 마르 14, 33).

 

 

② 베드로의 성격은 정열적이며 충동적이고 확고한 결심과 순간적인 주저함으로 인한 동요로 많은 실패가 전해지고 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목숨을 바쳐 맹세하고도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였다(마태 26). 바다 위를 걸어 주님께 다가가지만 풍랑을 보고 무서워하여 빠졌으며(마태 14), 우직하게 타인보다 먼저 주님을 메시야라고 말하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었다(마태 16).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하실 때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간하다가 책망을 받았으며(마태 16),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때 함께 산에 올라가서 장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에게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주고 내려가지 말고 그대로 안주하여 거기에 살자고 하였다(마르 9).

 

 

③ 베드로의 선교활동에 대해 간략히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후 40일간에 11차례 나타났는데 그 중 베드로는 7차례 만났다. 베드로는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중 유다 후임을 택하는 일을 주장했고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 열성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 하루 삼천 신자를 얻고 기쁨과 나눔의 뿌리인 초기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성전 문간에 있는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는 기적을 베풀기도 하였다(사도 2-3).

 

 

성격이란 태어나면서 형성된다고 하지만 성장하면서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많이 작용하게 된다. 자신의 삶의 환경을 통해 형성된 성격은 한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부였던 베드로처럼 그 자신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베드로의 성격은 좋은 면으로 나타날 때는 최대의 장점이 될 수 있었고, 나쁜 면으로 나타날 때는 최대의 약점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선 베드로는 대단히 급한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급한 성격으로 인하여 좋은 일에는 앞장을 선 경우도 있었고 실수 할 때는 또한 여지없이 넘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의 급한 성격은 그의 신앙생활에서 장점으로 나타난 경우가 있다. 예컨대 마태오 복음 14장에 갈릴래아 바다 위에서 한 밤중에 다른 제자들과 노를 젓고 있을 때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모두들 유령이라고 벌벌 떨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거든 저도 바다위로 걸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 오라 하실 때 그는 서슴없이 물위에 발을 내밀어 물위를 걸었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던 것이다. 그 배에는 다른 제자들도 많이 있었으나 물위로 걸었던 제자는 오직 베드로뿐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16장에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앉아 조용히 묻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냐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고, 혹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고 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물음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앞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복이 있다. 너를 베드로, 즉 반석(petra)이라 부를 것이요, 그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요,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리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처럼 베드로의 성격이 순종하고 헌신할 때는 장점이 되어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에 늘 앞장서는 자가 되었고, 주님의 칭찬을 받고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성격이 단점으로 나타날 때는 그의 조급한 성격은 늘 사탄의 이용물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주님의 칭찬을 받고 난 뒤에 예수님을 붙잡고 십자가를 지지 말도록 간청하다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scandal)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하고 책망을 들었던 것이다. 또한 최후 만찬의 식탁에서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오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베드로 차례가 되자 "주님, 절대로 제 발을 씻기지 못하나이다"고 말을 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 발을 씻지 아니하면 너와 내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자 금새 베드로는 자시의 말을 바꾸어 "제 발 뿐 아니라 제 온몸도 씻어 주소서"라고 했다.

 

 

 

 

[시온산 베드로 회개기념 성당(가야파관저)에 있는 베드로의 부인(否認) 부조상. 2013.3월 권요셉)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례에서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강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결국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성격에서 우리가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성격이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 자신의 장점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어떤 성격이든 오직 자신만을 위한다면 분명히 자신의 단점이 되었던 것이다. 즉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할 때는 믿음의 반석이 될 것이며, 자신만을 위할 때 신앙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작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자신을 과신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우월감을 가졌을 때가 많았음을 성서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말 중에 '나' 라고 하는 말이 문제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자세는 영적으로 볼 때 가장 사탄이 이용하기 쉬운 자리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자세에서도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기도에도 "나는 저 세리들과 같지 않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하느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은혜를 잃어 가는 것이다.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때는 실제로 다른 제자들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었을 때, 즉 자신의 약함을 알고 겸손함을 깨달은 그 순간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의 유혹이란 대체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 보다 나 자신의 더 낫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못을 범했을 때 나 자신도 그러한 잘못을 범할 수 있기에 일상 안에서 더 조심하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에서 보여 주는 것은 자신을 믿고 있을 때가 항상 넘어짐의 시기였음을 보여 주고 있기에, 예수님 안에서 겸손이라는 말을 더 깊이 배워야 하겠다. 

 


② 유혹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한 환경은 이러한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베드로는 빌라도의 법정이 아닌 가야파의 집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다. 가야파의 법정은 사형을 집행하는 곳이 아니다. 재판은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서 최후의 판결이 나게 되어 있다. 즉 베드로는 이미 마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야파의 집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것이다.

 

또 칼을 든 군인이 베드로를 붙잡고 위협을 했더라면 베드로가 본능적으로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질문한 사람은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맹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베드로는 이미 마음으로 주님을 모른채 하기로 생각하고 그 가야파의 집에 들어갔던 것이다.

 

만일 자신의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삶의 기준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목숨을 살기 위해 두려움으로 주님을 거부했지만 깊은 참회와 용서를 통해 사도로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죽는 순간까지 전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주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매달려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볼 수 있듯 인간적 약점과 연약함이 있지만, 마음의 중심을 '나'라는 잣대에 두지 않고 주님의 잣대로 삶을 꾸러간다면 넘어졌을 때 다시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유혹들을 갖도록 하지만, 주님의 잣대인 믿음을 다시 한번 견고하게 다지도록 하였으면 한다.

 

<인천가톨릭대학교 김일회 신부님께서 신학교 홈페이지 성서신학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교회의 반석, 사람낚는 어부 베드로

 

 

 

 

 

나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던 어부였습니다. 나는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사나이였죠. 아는 것이라곤 그물질하는 것뿐이고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무식하다면 무식한 사람이었죠.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난 것은 바람이 심하던 어느 봄날이었죠. 호숫가에서 내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셔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분은 한눈에 보아도 우리와 달리 상당한 품위가 있는 분처럼 보였습니다.

 

 

 

"안녕들 하시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며칠째 고기를 잡지 못해 마음이 몹시 어두웠던 나는 퉁명스럽게 툭 뱉었습니다.

 

"보면 모르시오. 눈은 장식품이오?"

 

오히려 그분은 빙그레 웃으시며 나직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그러면 저 큰 세상에 나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소."

 

그분의 말씀은 힘이 있고 신비로워 나는 마치 마술에 걸린 듯했습니다. 그저 그분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건 앞으로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큰 일을 할 겁니다. 나를 따르시오."

 

그렇지 않아도 매일의 삶이 힘들고 지루하던 차에 그분의 말씀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더구나 나같은 사람이 쓸모가 있다니 솔직히 우쭐해지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난 당신의 숨은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세상과 하느님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하겠소."

 

난 갑자기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는 그물을 버리고 심지어 가족도 뒤로 한 채 그분을 따라 나섰습니다. 나는 원래 날뛰는 야생마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주님은 길들여주시고 훈련시켜 반석처럼 견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신중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급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았을 때 난 그새를 기다리지 못하고 주님께로 가다가 물에 빠지는 창피도 당했죠. 그러나 내 마음은 조금이라도 그분을 빨리 뵙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은 주님을 세번이나 배반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 관저 뜰 안에서 어떤 여인이 날 알아보고는 소리를 쳤습니다.

 


"바로 저 사람도 예수와 같이 있던 사람이오!" "당신도 저 죄인과 어울려 다니던 한패거리요?"

 

"무슨 소리야, 이 여자가 생사람 잡네. 처음 보는 사람이구만."

 

나는 큰소리로 그것도 세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죠. 그때 나는 주님의 눈과 마주쳤던 것 같았습니다. 그분의 가련한 눈과 말입니다. 사실 나 자신이 그렇게 약한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난 황급히 그곳을 피해 나왔죠. 이때 닭이 울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배반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나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러웠던지…. 주체 못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내 생애 그렇게 슬펐던 순간은 또 없을 겁니다.

 

 

[제임스 티소의 베드로의 배신]

 

배반한 나를 주님은 부활하신 후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처음엔 부활을 믿지도 못했고 마치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으셨을 텐데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더욱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다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씩이나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만 슬퍼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씀을 드렸죠. 정말입니다. 저는 주님을 제 목숨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주님은 나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난 여전히 결점도 많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다른 똑똑한 제자가 많았는데도 저를 대표로 세우셨습니다. 그만큼 절 사랑하시고 믿어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주님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저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보람과 행복이 더 많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은 바람이 불던 그 옛날 바닷가에서 그분을 만난 것입니다. 다시 그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또다시 모든 걸 버리고 그분을 따라갈 것입니다.

 

<평화신문, 제615호(2001년 2월 25일자),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카파르나훔 사도 베드로 기념성당. 2014년 2월 권요셉]

 

 

오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성 베드로 사도 위에 세워진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4세기부터 로마에서 지켜왔다.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
(Sermo 4 de Natali ipsius, 2-3: PL 54, 149-151)

 

그리스도의 교회는 베드로의 굳건한 신앙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온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베드로가 모든 민족을 구원으로 부르고 모든 사도들과 모든 교부들의 으뜸이 되도록 간택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많은 사제들과 사목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먼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지만 베드로도 자신의 고유한 권한으로 다스립니다. 형제들이여, 이러한 직분의 부여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 권능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몫을 베드로에게 부여하셨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이 베드로와 같은 권한을 갖기를 원하시지만, 그것은 항상 베드로를 통해서만 주십니다.


주님께서 언젠가 모든 사도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호한 대답을 전해 주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들 자신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맨 먼저 주님을 고백한 사람은 사도들 가운데서 첫 자리를 차지했던 그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즉,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세상의 견해가 너를 오류로 이끌지 못하며, 천상적 감도로 말미암아 교훈을 받고 육정이나 혈통이 아닌 외아들의 아버지이신 그분께서 가르쳐 주셨기에 너는 복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는 너에게 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나의 신성을 계시하신 것처럼 나도 너에게 너의 높은 위치를 알려 주겠다고 하십니다. "너는 베드로, 반석이다." 말하자면, "내가 부서질 수 없는 반석이고 두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모퉁이 돌이며 누구도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반석이라면, 너도 내 힘으로 견고해진 반석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권한에 참여함으로써 너도 그 권한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즉, 이 견고한 기초 위에 나는 영원한 성전을 짓겠으며 하늘까지 오를 내 교회가 이 신앙의 견고함 위에 세워지리라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힘도 이 신앙을 누르지 못하고 죽음의 사슬도 이 신앙을 묶어 버릴 수 없다. 이 말은 생명의 말이다. 이 신앙은 그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처럼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던져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지극히 복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주님은 이 권리를 행사할 권한을 다른 사도들에게도 물려주셨으며 또 교회의 모든 주교들에게도 물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 줄 권한을 한 사람에게 위임하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베드로에게 이 권한을 위임하시는 것은 베드로를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의 으뜸으로 내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사도 대축일

 

 

[주세페체사리_성모자와성베드로와성바오로]

 


섣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95,1-2. 4. 7-8: PL 38,1348-1352)


이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전한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복된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의 순교는 이날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어떤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퍼져 나가고, 그들의 말은 땅 끝으로 번져 갔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전한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정의의 길을 좇아 진리를 고백하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이요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한 복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다." 이 말씀은 이보다 앞서 베드로가 "주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즉, 네가 고백하는 신앙을 내가 이 반석위에 세우리라. 네가 나더러 "주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했으니 내가 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서 나오지 않고 반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것처럼, 베드로라는 이름도 '베드라'(반석)라는 말에서 연유하지 베드라가 베드로라는 이름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전 제자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만이 거의 어디서나 온 교회를 대표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온 교회를 대표할 책임을 맡은 베드로만 그리스도께로부터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쇠는 한 사람만 받은 것이 아니고 온 교회가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의 탁월함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는 너에게 열쇠를 주겠다."라고 하실 때, 모든 이에게 주실 것을 베드로에게 위탁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하늘 나라의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온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모든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역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칠 과업을 맡겨 주셨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 혼자서만 주님의 양 떼를 쳐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하십니다. 사도들 중 으뜸인 베드로에게 먼저 말씀 하십니다. "베드로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한번, 두번, 세번까지 대답하십시오. 당신의 경솔한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세 번이나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당신은 사랑의 고백도 세 번 해야 합니다. 세 번 묶은 것은 역시 세 번 풀려져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묶은 것을 사랑으로 푸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한 번뿐만 아니라 두번, 세번까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맡기셨습니다. 이 두 사도들의 순교는 같은 날에 기념합니다. 이 두 분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날에 순교했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가고 바울로가 뒤따랐습니다. 사도들의 피로 우리에게 거룩하게 된 이 축일을 경건히 지내고 그들의 신앙과 생활, 그들의 수고와 고난, 그리고 그들의 증거와 복음 전파를 공경하도록 합시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과 교황주일

 

 

 

 

 

흔한 이름이 갖는 중요성

 


사람들은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은 그 사람의 고유성을 지정하는 구실을 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짓고, 다른 이들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그를 기억하는 일이 된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여 불러주지 못하면 당사자는 매우 섭섭해한다. 이름은 이렇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그런데 이름도 유형과 유행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 이름들을 살펴보면 남녀에 따라,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름을 들어보면 어느 세대인지 구별이 될 정도이다. 또 과거에는 훌륭하고 존경받는 이들의 이름을 많이 따랐다. 하지만 요즈음 세대는 독특하고 자기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이름을 짓는다. 과거에는 공동의 가치가 우선되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에도 많은 이름이 있다. 세례 때 받는 ‘세례명’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세례명은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것이므로 새사람으로서 받는 새 이름이다. 교회 성인들의 이름을 받아 그 성인을 본받고 그분의 전구로 보호를 간구하는 마음이 실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이름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요즈음에는 자기 생일에 맞추어 성인의 이름을 찾거나, 성별이 맞지 않으면 거기에 맞추어 변형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특별한 성인의 이름을 찾거나, 또는 이름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따라 세례명을 정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문 이름으로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풀이하여 짓기까지 한다(어른 입교 예식서, 203항 참조).

 

하지만 과거에는 유명 성인들이 단연 으뜸이었다. 현재도 그런 유형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이다. 이 성인들의 이름으로는 성모님과 사도들,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이 특히 인기가 많았다. 우리 교회의 흔한 세례명으로 ‘베드로’와 ‘바오로’를 들 수 있다.

 

베드로와 바오로를 가장 많이 택한 이유는 그만큼 교회에서 중요하고 공경받는 성인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많은 교우가 그 이름을 갖게 됨으로써 이분들의 행적과 역할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춧돌이시라면, 사도들은 교회를 우뚝 솟게 하는 기둥이시다. 특히 베드로와 바오로는 중심이 되는 으뜸 사도들에 속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 두 분의 사도를 특별히 공경해 왔다. 4세기에 이미 축일을 6월 29일에 지낸 기록이 있다. 이분들은 초대교회의 핵심이며 주요 사도들이기에 함께 지낸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수의 평범한 어부였지만,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고, 초대 교황으로서 교회의 설립과 복음선포에 자신을 봉헌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당시 명망 높은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하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다. 박학한 지식과 로마 시민의 지위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와 희랍을 거쳐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두 분 모두 순교한 것으로 전한다.

 

교회는 이 축일을 성대하게 지낸 전통을 갖고 있다. 이날 미사는 전야 미사와 본일 미사로 두 번의 미사를 지낸다. 그것은 베드로의 수위권으로 교회 가르침의 권위가 드러나고, 바오로의 가르침과 선교가 그리스도교 신학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사도 베드로는 천국의 문을 상징하는 열쇠를 갖고 있고, 사도 바오로는 진리를 뜻하는 칼을 지닌 형상을 볼 수 있다. 두 사도의 행적을 기억하면서(독서), 그분들의 사도직 수행과 복음선포를 회상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은총을 전구한다(감사송).

 

아울러 이 대축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을 ‘교황주일’로 정하여 지낸다. 구체적인 우리 교회 공동체가 보편교회의 표상인 사도좌의 교황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실천하고자 특별 헌금을 모아 사도좌에 보낸다.

 

교회 안에 흔한 이름이지만, 사도들의 이름이 갖는 중요한 역할을 묵상하면서 그분들의 열정을 본받아 자기 공동체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명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기정 다니엘 신부,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3년 6월호]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어른은 집안의 구심점(2월 22일)

 

[치마다코넬리아노_아기예수와함께있는성크리스토포로와성베드로]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산다. 가족과 친척들의 혈연관계에서부터, 같은 고장 출신이라는 지연관계,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학연관계, 아파트 반모임이나 이런저런 계모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모든 모임이 그렇듯이 거기에는 모이게 하는 어떤 힘, 어떤 매력을 띠고 있는 구심점이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유대 관계는 단연 혈연관계일 것이다.

 

혈연관계에서 가장 큰 구심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집안(혈연집단)의 어른일 것이다. 가족의 식구들은 명절이 되면 모인다. 또 특별한 때에 모인다. 그 특별한 때란 다름아니라, 집안의 어른을 기억하는 특별한 날이다. 살아계시다면 생일이라든지, 환갑이니 칠순이니 하는 그런 날들이 특별한 날이다. 돌아가셨다면 기일 같은 날이 특별한 날이다. 그 날에 가족들은 모인다. 어른을 축원해 드리고 기억하려고 모인다.

 

그러니 집안의 구심점은 아무래도 어른일 것이다. 형제들이 저마다 따로 흩어져 살더라도 어른이 계실 때에 잘 모이지만, 어른이 계시지 않으면 덜 모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집안의 어른이 식구들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준다.

 

교회도 한 식구이다. 신앙이라는 이른바 ‘신연(神緣)관계’로 맺어진 한 집안 식구들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부모나 형제나 자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신연관계로 맺어진 신앙은 혈연이나 학연, 지연이나 그 어떤 것보다 강한 관계이다. 하느님과 맺은 관계이니 어찌 이보다 강한 인연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생활하는 한 집안 식구들이다. 그래서 서로를 형제 자매들이라 하지 않는가. 교회의 궁극적인 어른은 주님이시지만, 우리가 접하고 느낄 수 있는 교회의 어른도 계신다. 곧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이시다. 유식한 말로 교황님은 ‘그리스도교 백성이 같은 신앙과 같은 통교(친교)를 이루는 일치의 가시적인 원리이며 기초’이시다. 그래서 전 교회가 교황님을 존경하고 사랑을 드린다. 또 교구에는 교구장 주교님이 어른이시고, 본당에서는 본당신부님이 어른으로 계신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우리 신앙의 가족들은 모이는 것이다. 그분들이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세기 교회 때부터 이런 신앙의 가족들은 교회의 어른을 공경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2월 22일)이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셔서 온 세상의 교회에 봉사할 권한을 주시고 지상의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한다.

 

그렇다면 이 축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날짜는 본래 로마에서 가족들 가운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었다. 이 관습에 따라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바티칸 언덕(지금의 베드로 대성전)에서 공경의 예를 드렸는데, 이것이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 되었다.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대축일(6월 29일)이 있지만, 갈릴래아의 어부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만 지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우리 교회에서 어른이시기 때문이다.

 

이날 전례에서,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이다(영성체송). 교회의 반석이며 기초이고 구심점이 되는, 보이는 어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셨다는 고난의 증인이며, 어른(원로)으로서 형제들이 굳은 믿음을 갖도록 ‘양들의 모범’이 되셨다(제1독서). 그래서 우리들도 베드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신앙을 선포해야 한다(복음).

 

그렇다. 어른이시지만 인간이시기에 약점도 있고 불완전함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굳은 신앙이 그분을 우리 교회의 어른이 되게 하였고, 우리 믿는 이들의 모범이 되신 것이다. 우리도 든든한 반석, 믿는 이들을 모이고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구심점의 힘, 곧 신앙을 다시 고백해 보자. 우리의 교회를 굳건하게 지켜주고 더욱 하나되게 만들어주는 것은 ‘신앙’이기 때문이다.

<나기정 다니엘 신부,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1년 2월호>

 



교황 베드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초대 교황
탁월한 능력 없지만 특별한 역할 수행
사도단 으뜸…생애 후반 로마교회 창설

 

 

[안니발레카라치_주님어디로가시나이까 쿼바디스]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서방 교회의 최고 사제이고 바티칸 시국의 원수이다. 교황은 실제적으로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인 최고 사목자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교황을 일컫는 말 중의 하나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를 구체적인 공동체로 세웠다. 예수님은 현세 교회를 이끌고 지도할 권한을 열두 사도에게 주고 세상으로 파견했다.

 

특히 사도단을 구성할 때 그들 중에서 시몬을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라고 이름지어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웠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초대교황이 되어 교회를 이끌었고 후임 교황들은 그 후계자로서 만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해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온 것이다.

 

 


원래 이름은 시몬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다. 갈릴래아 지방 베싸이다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난 시몬은 아버지와 동생인 안드레아와 함께 고기를 낚는 어부였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운다. 새 이름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삶 전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가리키며 바로 그 때부터 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결혼한 후 가파르나움으로 이사해 살았던 그는 한 마디로 굳은 결단력과 의지, 지혜로써 사도들을 이끌고 하느님 백성을 지도할 만큼 높은 학식도, 재능도 갖추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소신 없이 행동했으며 때로는 단호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에는 무분별하고 경솔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인 견지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도 전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과 섭리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그를 향해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제부터 당신은 사람들을 낚을 것입니다』(루가 5, 10)라고 일러 그를 제자들 사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할 것임을 알려준다.

 

복음서들에서는 그의 역할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일러주고 있지만 그가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워진 것을 한결같이 보도한다. 마태오복음은 16장 18절에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라며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울 것임을 약속한다. 이어 19절에서는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베드로에게 탁월한 위치가 주어졌음을 알려준다.

 

루가복음 22장 31절과 32절에서는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라며 베드로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고 요한복음 21절 15절 이하에서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며 당신의 양들을 맡기셨다.

 

루가복음서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또 베드로에게 특별히 나타났고 부활 후 베드로의 특수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루가 24, 34). 루가에게 있어서 열두 사도는 역사적인 예수님과 교회의 역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면, 베드로는 이 연결 고리의 가장 탁월한 위치에 있는 제자인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도 베드로는 지도적인 인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베드로는 항상 부활 후 열한 명의 사도단이 언급될 때 가장 먼저 등장한다. 유다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마티아를 선출할 때에도 그는 선출 과정을 이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공개 설교를 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변인이었고 유대 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했다.

 

특히 그는 10장 24절 이하에서 이방인 개종자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사도단의 단장으로 행세했다. 이 대목에서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베드로의 인식 전환을 통해 이방인들에게까지 확장된다. 또 15장 7절 이하에서 나타나는 구약 율법 문제에 있어서도 베드로는 단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로마서 첫째 편지 작성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 생애 후반기에 로마로 가서 로마 교회를 창설하고 거기서 자신의 첫째 편지를 썼으며 네로의 박해 때인 65년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했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했다.

 

하지만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교회의 전승은 정확하지 않다. 이는 2세기말과 3세기초, 베드로가 로마를 여행하고 순교했다는 전승이 정립되면서 확정됐다. 테르툴리아노에 전해진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대박해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전해진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베드로의 유해가 묻혀 있다고 믿어지는 장소에 건립됐다. 원래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글레토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작은 경당이었는데, 그 뒤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은 바티칸 언덕에 바실리카식 성당을 건축했다. 평지 위에 성전을 세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힘들게 언덕 위에 성전을 건축한 것은 베드로의 유해가 그곳에 묻혀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신이나 무덤이 정확하게 발견된 것은 아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월 4일, 박영호 기자]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루가 5,1-11)

정태현

 

 

[엘그레코_눈물을흘리고있는성베드로]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만큼 그 개성과 성격이 신약성서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도 드물다. 네 복음서의 일치된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안드레아의 동기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낚다가 첫 제자 무리에 부름을 받았다. 공관복음은 좀더 구체적으로 그가 갈릴래아의 어촌 가파르나움에 살던 주민이었으며 독특한 갈릴래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결혼한 뒤에 뜻밖에도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그의 이름은 본디 ‘바르 요나(요나의 아들) 시몬’이었으나(마태 16,17). 예수님께 소명을 받으면서 상징적인 이름인 ‘베드로’가 되었다(마르 3,16; 마태 10,2; 루가 6,14).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인데, 아람말로는 케파이다. 아람말을 모국어로 쓰시던 예수님께서는 그를 이 아람말 이름, 케파로 부르셨을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베드로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은 두 가지로 다르게 묘사된다. 하나는 예수님의 초기 선교활동과 연결된 장면으로 공관복음(마르 l,16-20; 마태 4,18-22; 루가 5,11)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부활하신 다음의 발현 장면으로 요한 복음(21,1-19)에 나온다. 여기서는 공관복음, 그 가운데에서도 루가 복음의 기록을 바탕으로 베드로가 어떻게 소명을 받았는지 살펴보겠다.

 

 

5. 1(“공동번역”)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2 그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며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겐네사렛 호숫가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먹고 살려고 고기 잡는 일에 열중한 반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 기울이셨다. 그날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고 나서 다음 출어를 준비하며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서는 예수님이 많은 군중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군중의 수가 불어나자,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올라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그곳에 앉으시어(유다의 스승들은 앉아서 가르친다.) 호숫가에 모인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고기를 낚는 시몬의 배를 사람을 낚는 강론대로 삼으신 셈이다. 그리고 이 배의 임자가 분명 시몬인 만큼, 이 순간 시몬과 예수님은 동업자가 된 셈이다.

 

군중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난 예수님은 시몬에게 갚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명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평생 그물질로 잔뼈가 굵은 시몬이 고기잡는 일에 문외한인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그분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낮에는 고기가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먹이를 찾아 물가 얕은 곳으로 나오는 법인데, 예수님이 이런 상식과 반대로 명령하시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던진 시몬의 그물에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든 것이다. 시몬이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이 와서 두 배를 고기로 가득 채웠다.

 

시몬은 이를 보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청하였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시몬과 그의 동료들이 체험한 놀라운 광경은 하느님의 위업을 드러내고, 그분의 현존과 직결된 것이다. 하느님의 영역을 체험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이 부당한 죄인임을 느끼고, 그 놀라운 능력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깨달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이사 6장 참조). 복음서 여러 곳에서 드러나듯 베드로의 성격은 직선적이고 솔직하다. 그는 예수님보고 떠나달라고 요청하였다. 갈릴래아 어촌의 순박한 어부로서는 그분의 존재를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을 것이다.

 

놀란 것은 시몬뿐이 아니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도 똑같이 놀랐다. 그들은 시몬과 더불어 고기를 낚는 어부였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사람들이었다. 지금 시몬은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나중에는 이들이 시몬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를 떠나달라고 요청하는 시몬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시면서 그를 안심시키시고 새로운 소명을 주셨다. 그분은 부당함과 무기력함을 넘어서서 시몬을 부르신다. 시몬에게 주어진 소명은 시몬의 자격과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 시몬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료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이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200주년 기념성서”, 루가 l,34) 하고 질문을 던졌다가, 성령의 힘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는 천사의 대답을 듣고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l,38) 하고 대답한 성모 마리아의 믿음과 맥을 같이한다. 믿음은 자신의 부당함과 무능함을 넘어서서 전달되는 하느님의 뜻을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후 시몬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표요 대변인 구실을 한다. 베드로는 열두 사도의 명단 첫머리에 나온다(마르 3,16; 마태 10,2; 루가 6,16). 그는 예수님이 다볼산 위에서 당신의 모습을 갑자기 바꾸셨을 때,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 그분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는 제안을 한다(마르 8,29; 마태 16,16; 루가 9,20). 부자 청년이 재산을 포기하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을 때, 베드로는 열두 사도의 대변자로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며 이에 대한 보상의 말씀을 주님에게서 얻어낸다(마르 10,28-31; 마태 19,27-30; 루가 18,28-30).

 

그는 주님을 극진히 섬기고 따르는 일에서 다른 제자들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동시에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분을 배반하는 나약함에서도 다른 제자들을 앞질렀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했다가 예수님에게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는 호된 질책을 듣는다(마르 8,32-33).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그의 열정과 더불어 나약함도 잘 알고 계셨다(마르 4,29-31). 그래서 그를 위하여 미리 기도하셨다. 그것은 그가 다시 그분께 돌아와 믿음이 약한 다른 형제들을 도와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몬아, 시몬아, 들어라. 사탄이 이제는 키로 밀을 까부르듯이 너희를 제멋대로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루가 22,31-32). 이런 뜻에서 과연 그는 열두 사도의 바위요 그들을 기둥삼아 건설될 교회의 반석이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는 결코 깨끗하고 완전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위업 앞에서 자신의 부당함과 무력함을 충분히 체험하고 그분께 떠나주시도록 청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서 자기를 도와준 동료들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그것은 믿음의 결단이었다. 그렇다고 주님의 부르심 그 자체가 결점과 나약함에서 베드로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보증은 아니었다. 부르심을 받잡은 다음에도 그에게는 주님의 기도와 도움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베드로에 대한 이 주님의 도움은 다른 동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주님께서는 그가 다시 강하게 될 때에 다른 약한 동료들의 든든한 바위가 되어주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정태현 갈리스토/ 신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사도직)
[경향잡지, 1998년 5월호]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 21,15-17)

정태현

 

 

 

 

[헤리트반혼트호르스트_성베드로의부인]

 

 

베드로가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불리게 된 이야기(공관복음)는 지난번에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그가 사목직에 불리게 되는 이야기(요한 복음)를 살펴본다. 두 이야기의 지리적 배경은 다같이 갈릴래아 또는 겐네사렛 호수이지만, 시간적 배경은 다르다. 공관복음서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아직 공생활에 몸담고 계실 때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반면, 요한 복음의 이야기는 지상 생애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뒤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요한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를 세 가지로 전한다. 그 가운데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발현하신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거기에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따뜻한 애정이 가득히 드러난다. 본디 이 이야기가 실린 본문 21장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사실이 본문의 정통성이나 그 내용의 중요성을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어느 날 티베리아 호숫가에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일곱이 모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이던 스승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생업에 종사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시몬을 따라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섰으나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은 다음날 먼동이 틀 무렵 호숫가에 나그네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아무도 그분이 자기네 스승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여보시오들, 고기 좀 잡았소?” 그분이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시오.” 그분의 말씀대로 오른쪽에 그물을 던졌더니 백쉰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그물에 잔뜩 잡혔다. 153은 상징적인 숫자로 당시 알려진 이 세상 물고기의 가짓수를 가리키기도 하고, 1에서 17까지 더한 숫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17은 완전한 숫자 10과 7일을 더한 숫자이니 매우 많다는 뜻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 요한이 먼저 그분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알려준다. 거의 벗은 채로 고기잡이에 몰두하던 베드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에 뛰어들었다. 스승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는 배가 뭍에 가까이 가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뭍으로 올라와 보니 숯불이 지펴있었고 생선과 빵도 있었다. 숯불 둘레에 옹기종기 모여 밤새 호수의 찬 물에 젖은 몸을 말리면서 스승이 손수 차려주는 아침식사를 하던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해 하였을까! 그분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갈릴래아의 천한 어부들을 이처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이가 그분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21. 15(“공동번역”)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16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떼를 맡기시기 전에 먼저 세 번에 걸친 질문으로 당신께 대한 그의 애정을 확인하신다. 사몬 베드로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였다. 요한(‘요나’의 변형일 수 있음)의 아들 시몬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직전에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마태 26,33), 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요한 13,37) 하고 장담한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은 그가 당신을 세 번이나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태 26,34; 요한 13,38). 과연 시몬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수님에게서 다른 제자들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니, 어찌 베드로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라는 말마디를 붙여 간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데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두 가지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예수님의 질문 자체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말 원전에 따라 예수님의 질문을 직역하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들(또는 ‘이것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이다. 이 질문을 세 가지로 알아들을 수 있겠다. 1) 여기 있는 네 동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2) 네가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 사용하는 이런 배나 그물 같은 장비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3) 네 동료들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첫 번째는 예수님 스스로 당신 자신과 제자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베드로에게 어느 쪽을 더 사랑하겠느냐고 하실 리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이다. 두 번째는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온 제자들에게는 맞지 않는 해석이다. 나머지 세 번째 해석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베드로와 관련된 복음서 전승의 문맥과 가장 부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공동번역도 세 번째 의미로 이해하여 의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질문을 문맥에서 분리시켜 요한 공동체나 더 나아가 현대의 독자들에게 적용할 때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해석도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곧 사목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부모 형제 친구 등 자신에게 가까운 어떤 사람들 또는 자신의 어떤 소유물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예수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응답에 나오는 ‘사랑하다’는 동사가 달리 쓰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저자가 단순한 문제에 변화를 주려고 두 개의 동사를 동의어로 바꿔 쓴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두 동사의 사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뒤의 경우를 받아들여 살펴보자. 예수님의 질문에 나오는 ‘사랑하다’는 동사 ‘아가파오’는 보통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순수한 사랑,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랑을 뜻하는 반면, 베드로의 응답에 나오는 동사 ‘필레오’는 친구의 상호 우정처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을 가리킨다. 우리말로 ‘필레오’를 ‘좋아하다’로 옮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은 베드로가 과연 다른 제자들에 앞서서 당신을 순수한 무조건적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좋아하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스스로 주님께 대한 사랑의 품격을 낮추었다고나 할까?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은 단순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이 부사는 원전에는 없음) 사랑하느냐?”였다.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라는 비교급이 빠진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요구하는 사랑의 정도도 그만큼 낮아진 것이다. 베드로의 두 번째 대답도 첫 번째와 같았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에서는 비교급이 빠진 것은 물론, 동사까지도 ‘사랑하다’(아가파오)에서 ‘좋아하다’(필레오)로 바뀐다. 이 질문을 받고서 베드로는 마음이 슬퍼졌다. 예수님이 세 번씩이나 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것은 내가 세 번 배반한 사실을 기억하시고 이를 되갚으려 하시는 것인가? 더구나 동사까지도 바꾸시면서 낮은 단계의 사랑만을 확인하시다니! 이제 그분은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으시는가 보다. 베드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처음 두 질문에서보다 더 간절하게 과거 자신이 주님께 보여준 충성스러운 행동들에 대한 그분의 기억에 호소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의 생각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베드로의 응답에 다같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고만 하시면서 사목직을 맡기신다.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는 일은 그분께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둔다. 이 세상 누구보다 어떤 가치보다 더 그분을 사랑해야 하며, 누구보다 앞서서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순수하고 사심없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분의 목자들도 베드로처럼 연약한 인간인지라 자신들의 말이나 열정과 달리 쉽게 죄에 떨어지고 그분을 자주 배반한다. 이를 미리 내다보신 그분은 베드로에게 던진 질문을 통하여 사랑의 급수를 낮추시면서 오늘도 일선 사목자들에게 당신께 대한 사랑을 확인하신다.

 

“너 나를 좋아하느냐?” 이 사랑의 확인은 중요하다. 그분을 사랑하는 사목자라면, 그분이 그토록 몸바쳐 순수하게 사랑하던 양떼를 똑같이 아끼고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태현 갈리스토/ 신부 ·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사도직)

[경향잡지, 1998년 6월호]

 




■ [교회상식과 교리상식] 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베드로 (상)

 

이번 호부터는 12사도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 사도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이번 호에는 먼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베드로의 삶을 살펴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요나(또는 요한)의 아들이었고, 안드레아의 형이었습니다. 고향은 벳사이다였고, 직업은 어부였지요. 예수님을 만났을 당시에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카파르나움에서 장모와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마르 1,29-31).

 

시몬은 무식하고 평범한 어부였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첫 제자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케파, 곧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케파란 '바위'라는 뜻의 아람어이고, 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마태오복음(16,13-20)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시몬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길지만 중요한 대목이어서 성경 본문을 그대로 적습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6,18-19).

 

이 대목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 곧 반석으로 삼으신 이유인데, 시몬의 신앙고백이 결정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내용은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기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 친히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고 이어서 계속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몬을 베드로 곧 초석으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몬 베드로에게 맺고 푸는 권한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의 성경적 근거가 되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신 것입니다.

 

도대체 시몬은 어떤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시고 하늘나라 열쇠까지 주신 걸까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시몬 베드로의 성격을 조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우선 베드로는 용기 있고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서는 모습(마르 1,16-20),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지니고 있던 칼로 대사제의 종을 내리치는 모습(요한 18,1-11) 등은 이런 면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덤벙대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물 위를 걷겠다고 나섰다가 바람이 불자 두려워져 물에 빠지게 되자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모습이라든가(마태 14,22-33),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해 칭찬을 받았지만 곧 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자 안 된다고 펄쩍 뛰는 모습(마태 16,13-23) 등이 그러합니다.

 

비겁하고 소심한 성격도 있는 듯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신도들과 어울리며 음식을 나누다가 할례받은 유다인 신도들이 내려오자 음식 규정을 어긴다는 지탄을 받을까봐 몸을 사리는 태도가(갈라 2,11-14) 그러하지요.

 

붙잡히신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 집으로 갔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치자 밖으로 나가 슬피 우는 모습은(루카 22,54-62) 심성이 착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충정이 대단한 제자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다는 전갈에 무덤으로 달려가고(루카 24,1-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주님이십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호수로 뛰어드는(요한 21,1-14)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런 시몬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시고 마침내 교회의 반석으로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 교회의 양떼를 잘 보살피라고 간곡히 당부하십니다(요한 21,15-19).

 

[평화신문, 제976호(2008년 6월 29일), 이창훈 기자]

 

 


베드로 (하)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뜻으로 케파, 곧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께 받은 시몬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의 맏이로서 교회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이번 호에는 주님 승천 후부터 순교에 이르기까지 베드로 사도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간곡한 당부를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먼저 배반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될 사도를 뽑는 일을 주도합니다(사도 1,15-26).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을 가득 받은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굳세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평범하고 무식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놀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회개합니다. 베드로의 첫 오순절 설교를 듣고 신자가 된 이들이 삼천 명이나 됐습니다(사도 2장).

 

나아가 베드로는 예수님 이름으로 불구자를 고치는 첫 기적을 행합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 달려온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3장). 그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이가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됐다고 합니다(사도 4장).

 

사도행전 전반부는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뿐 아니라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며 또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는 등 박해 받는 모습을 곳곳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삶은 베드로 사도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 베드로 사도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요?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갈라 2,9)이라고 불렸습니다. 교회 기둥으로서 베드로 사도가 수행한 대표적 역할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빚어진 할례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모여서 한 회의입니다. 할례 논쟁은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도 모세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고 나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빚어진 논쟁입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유다인이나 이방인에게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시며, 이방인이나 유다인이나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파함으로써 할례 논쟁을 종식시키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루살렘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지중해 해안도시인 카이사리아와 야포 같은 인근 도시들은 물론 안티키아와 갈라티아 같은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또 일부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그리스 도시인 코린토에서도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들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도시들에서 실제로 지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만약 이들 도시들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이 도시들에서는 주로 유다인을 찾아 복음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할례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셨다"(갈라 2,8)는 바오로 사도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이 말에서 할례받은 이들은 유다인을,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안티오키아를 거쳐 말년에는 로마로 갔으며 그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또 순교한 때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전해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기록은 로마에서 25년 동안 살았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연도도 기록에 따라 빠르게는 55년부터 늦게는 65년 또는 67년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네로 황제의 대박해 때에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바티칸 언덕에 오늘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우뚝 서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 지하에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자신같이 부족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또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지만 자신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를 자원했다고 하지요.

 

또 베드로는 평소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또 특히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을 가슴아파하며 눈병이 날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벽에 첫 닭이 울때면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쇠와 함께 새벽 닭도 베드로 사도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평화신문, 제977호(2008년 7월 6일), 이창훈 기자]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

 

 

 

로마의 4대 성당이라고 하면 성 베드로 대성전, 성 요한 라떼라노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그리고 성 바오로 대성전을 일컫는다. 그중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전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전들이다.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 내부.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내부.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로마 성모 설지전 대성당.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로마 라테란 성요한대성당.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로마 라테란 성요한대성당 내부.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내부.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돔. 2014년 2월 권요셉 촬영]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의 하나를 건축물에서 꼽는다면 단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이라 할 수 있다. 최대길이 221m, 최고 높이 141m로 세계 최대의 성당 가운데 하나이며 독창적인 구상과 미켈란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상징해 제작한 돔은 베드로 대성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교황은 모든 중요한 바티칸의 행사들을 이 위대한 성전에서 거행하며 순례자들이 많을 때에는 성전 앞의 타원형 광장에서 옥외행사를 집전한다. 얼마전 막을 내린 대희년도 바로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열어 시작했고 바로 그 성문을 닫는 예식을 광장에서 거행함으로써 폐막됐다.


 

무덤위에 성전건립

 

베드로 대성전이 자리잡은 바로 이 곳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글레토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작은 경당이었다. 그 뒤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은 바티칸 언덕에 바실리카식 성당을 건축했다. 그후 1200년 동안 존속하던 베드로 성당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구상한 것은 교황 니콜라오 5세,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베드로 성전은 176년이라는 오랜 공사 끝에 완공, 1626년 11월18일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축성됐다.

 

베드로 대성전 내부에 들어서면 두 줄의 거대한 기둥에 의해 3개의 통로가 나뉘며 중앙 신랑과 양쪽 익랑이 교차하는 곳에 교황 제대가 있다. 바로 이 제대 밑에 성 베드로의 무덤과 많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로마의 4대 대성전 중 하나인 바오로 대성전 역시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로마 남서쪽에 조금 떨어진 「앗 아쿠아스 살비아스」라는 곳에서 참수되어 그곳에서 가까운 오스티엔가에 묻혔다고 한다. 그 후 무덤 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고 324년에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헐리고 그 자리에 기념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로마의 박해

 

그리스도교는 복음 전파 초기부터 로마제국내의 여러 요소와 긍정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국경을 없애고 대제국을 형성해 행정 질서나 언어, 문화가 통일돼있었던 점, 상업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제국 어디에나 퍼져있는 유대인 공동체 등과 이미 평화시대로 접어들어있었던 시대상황 등이 긍정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자 결국 이는 로마 제국과 마찰을 빚게 된다.

 

로마제국은 62년 네로 황제의 태도 변화가 있기까지는 대체로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었다. 일부 과격한 유다인들이 유다 해방을 부르짖으며 독립 전쟁을 일으키는 등 소요를 유발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에 아무런 적의를 보이지 않아 로마 행정 관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단순히 영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로 여겼다.

 

하지만 62년경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의 상태를 벗어나면서 호의적이던 관계가 무너지고 박해가 발생했다. 그리스도교와 로마제국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요인을 이미 갖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다신교적인 경향으로 국가를 절대시한 제국이었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국가의 절대성을 함께 할 수 없었다. 또 그리스도교의 신앙생활에 대한 무지 역시 충돌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로써 박해의 빌미가 제공됐고 드디어 첫 박해인 네로의 박해 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모두 순교했고 이후 그리스도교는 로마에서 불법 종교가 됐고 줄곧 박해가 이어졌다.

 

 

사도들의 순교

 

베드로 사도의 순교와 관련해 전승에 따르면 자신의 생애 후반기에 로마로 가서 활동하다가 순교했고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95년경 로마의 글레멘스 주교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베드로가 박해 중에서도 거룩하고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기록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같은 설명을 했고 1세기 후반 이레네오는 로마에서의 그의 활약상을 설명해준다.

 

한편 이레네오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로마교회의 창립자라고 보았지만 바오로의 로마서에 의하면 이런 견해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오로는 그때까지 로마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로마 1,13). 따라서 비교적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이는 견해는 바오로가 로마에 갇혀 있을 때 두 사도가 협력해서 일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끝맺음에서 이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사도 28,31).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교회의 전승은 정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는 2세기말과 3세기초에 베드로가 로마를 여행하고 순교했다는 전승이 정립되면서 확정됐다.

 

바오로는 58년 봄 고린토에서 로마서를 쓸 때부터 예루살렘과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 가서 전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글레멘스 1세 교황이 95년경 고린토교회로 써보낸 편지를 보면 바오로가 스페인에 가서 전도한 후에 다시 로마로 와서 순교했다고 한다.

 

네로황제는 64년 7월19일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나서 여론이 좋지 않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4년 동안 모질게 박해했다. 이 박해 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순교했다.

 

두 사도가 65년 네로 황제의 대박해 동안에 순교했으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으며 바오로는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받았다는 전승은 테르툴리아노에 의해 전해졌다. 이러한 기록은 네로의 대박해때 바오로와 베드로가 죽었다는 타치우스의 보도와도 일치한다.

 

3세기초 제피리노 교황 재임시 로마 사제의 글을 인용한 에우세비오는 베드로의 기념비가 바티칸에 있었다는 전승을 기록했다. 4세기초 콘스탄틴 대제는 바티칸 언덕에 대성전을 건축했는데 대성전을 평지 위에 세울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언덕 위에 세운 것은 베드로의 유해가 그곳에 묻혀 있다는 확신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바오로는 로마남문 밖 교외에 있는 지하수가 세줄기 솟아나는 티레 폰타네에서 순교했고 그 근처 현재의 바오로 대성전 자리에 묻혔다고 한다.

 

[가톨릭신문, 2001년 1월 28일, 박영호 기자]

 

 


 

성경 속의 인물 - 베드로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포드브라운_성베드로의발을씻는그리스도]

 

 

사도의 어원은 희랍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다. 직역하면 ‘파견된 자’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1열두 제자에게 이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주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파견되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열두 제자는 아니지만, 바오로도 사도라 불리고 있다.

 

베드로는 사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갈릴래아 작은 마을 벳사이다 출신으로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보다 2, 3세 연장으로 알려져 있다. 본 이름은 시몬이었으며,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람어로는 게파(Kefa)라 했다(요한 1,42). 베드로와 게파는 모두 바위를 뜻한다.

 

이 이름은 그의 기질과도 어울리지만, 훗날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하심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성경에서 베드로는 언제나 사도들 명단 첫 자리에 등장한다. 그의 위치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의 대변인이었고, 주님께서 질문할 때마다 대표로 답변했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퇴장으로 공백이 생겼을 때 후계자를 뽑는 자리도 그가 마련했다. 초대교회의 확실한 구심점이었던 것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 스승님의 말씀은 현실화되었다.

 

로마의 박해가 시작될 때 오늘날의 터키인 소아시아에서 전도하며 안티오키아 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기원후 64년 네로 황제에게 체포되어 로마에서 순교했다. 십자형을 선고받았지만, 스승과 같은 모습으로 순교할 자격이 없다며 거꾸로 못박혔다는 일화를 남겼다.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발간된 성인들의 생애를 다룬 『황금전설』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입었으니 내 머리는 땅을 가리키고 다리는 하늘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주십시오.’

 

베드로 사도는 두 편의 서간을 남겼다. 핍박받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수신자들은 소아시아 북부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훗날 그분의 무덤 위에는 화려한 성전이 건립되었다. 오늘날의 베드로 대성전이다. 초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2012년 10월 7일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가톨릭마산 14면]

 

 



교회의 빛나는 인물 - 사도 성 베드로 (1)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강서동 본당 주임)

 

 

 

 

예수님께서 갈릴레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마태 4,18).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9)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는 아버지 요나의 집을 떠나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베드로는 벳사이다 출신으로 장모와 함께 카파르나움에 살고 있었다. 그 사실로 베드로가 결혼했음을 알 수 있다(마르 1,29 이하). 예수님은 밤새 기도를 하신 후 열 두 명의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그중에서 제일 수제자가 베드로였다(마태 10,2). 예수님은 본래 시몬이라고 불리던 그에게 특별한 이름을 주셨다.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케파)’란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그리고 초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 분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베드로의 성품은 열정적이고 급한 모습이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뵙고 물에 뛰어드는 용감성, 예수님께서 장차 당신이 당하실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을 때 만류하며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하다가 주님께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는 질책을 받았던 일, 제자들의 발을 예수님께서 씻어주시려고 하실 때 반대하던 베드로, 예수님이 잡히실 때 격분하여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의 귀를 자른 일, 타볼산 위에서 예수님의 찬란한 변모를 체험하고 무척 좋아하며 초막을 지어 바치겠다던 심정, 예수님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던 그의 장담 내지는 약속발언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순수하고 거침없는 그의 활달한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반하게 된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통절하게 울며 속죄하였다(마르 14,66-72). 성 암브로시오는 주님께 “저에게도 베드로의 눈물을 주시어 제가 지은 죄를 씻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렸다. [2012년 8월 5일 연중 제18주일 청주주보 3면]

 

 


 

사도 성 베드로 (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너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라고 겸손되이 사랑을 고백하였다(요한 21,15-18).

 

믿을만한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는 후에 로마에 가서 지내면서 두편의 서간을 썼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네로 황제 때에 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베드로의 무덤은 그 당시 공동묘지에 있었고, 신자들이 매일 그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베드로의 무덤위에 경당을 세웠고, 그 후에 칼 대제 때에 그 경당을 포함하는 성전이 세워졌다.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 후에 건립되어 베드로의 무덤 위에 중앙 제대가 자리잡고 있다.

 

교회의 조상이신 베드로의 무덤이 로마에 있기 때문에 세계 모든 주교들이 정기적으로 로마에 모여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고 전구의 은혜를 청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성 베드로 사도는 중세시대부터 천국문을 지키는 수문장이자 비를 내리는 날씨의 수문을 여는 성인으로 여겨졌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강론 중에 “성 베드로의 무덤을 찾아뵙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베드로 사도의 무덤 곁에 묻히고 싶다.”고 소원을 말하였다. 그의 소원은 이루어져서 성 베드로 성당의 합창단 아래 경당에 모셔졌다. 우리도 그리스도께 사랑을 드리고자 성 베드로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임을 믿는다. 교회는 베드로의 축일을 6월 29일에 지낸다.

 

[2012년 8월 19일 연중 제20주일 청주주보 3면]

 


 


성미술  - 베드로의 순교

노성두

 

 

 

- 카라바조의 ‘베드로의 순교’

 

1600~1601년, 230x175cm, 로마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카라바조의 ‘바오로의 개종’1600~1601년, 230x175cm, 로마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쿠오 바디스?』

 


어디로 가십니까? 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막 로마의 마메르티누스 감옥에서 탈옥한 참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데 마침 반대쪽에서 마주 오는 주님을 발견한다. 골고타 언덕에서 돌아가신 주님이 로마에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성 이시도로의 계산에 따르면 서른 여섯 해 만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경실색해서 뒤로 자빠지든지, 감격에 겨워 털썩 주저앉아야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주님더러 어디 가시는 길이시냐고 묻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다. 주님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로마로 간다. 가서 또 한 번 십자가에 달릴 테다』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던지 베드로는 재차 확인한다.

 

『주님, 정말로 십자가에 달리신다구요?』

 

그렇다는 주님의 대답을 들은 베드로는 이윽고 발길을 돌린다.

 

『그렇다면 저도 돌아가겠습니다. 가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겠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었던 이 대화는 교황 레오와 리누스가 기록해둔 것을 「황금전설」(Legenda aurea)에서 다시 찾아 수록해 두었다.

 

베드로는 첫 주교이자 첫 교황이다. 마르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꼽으면서 베드로부터 시작한다.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 믿음직스럽기도 으뜸, 속썩이기도 으뜸이었다. 변덕을 부리고 후회하는 것도 으뜸이었다. 예수님께서 반석이라는 뜻에서 「베드로」(게파)라는 이름을 붙여주시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신 일이나,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하늘 열쇠를 건네주신 것도 그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말한다(마태오 16, 18~19).

 

그러나 예수님께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도 제자였다는 사실을 세 차례나 부인한 것, 그리고나서 닭이 울자 주책 없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 것은 베드로의 순박한 영혼을 잘 드러내는 일화들이다. 그러나 물위를 걷겠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거나, 올리브 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말코스의 귀를 칼로 벤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교부 크리소스토모는 베드로의 불같은 성질로 미루어서 만약 주님을 배반한 자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손에 때려죽였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한 술 더 떠서 베드로가 아예 생 이빨로 씹어서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수님께서 배반자의 이름을 짚어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도 다 그런 사태를 우려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그림

 

「베드로의 순교」는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로마의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에서 주문을 받고 그린 그림이다. 비슷한 크기로 그린 「바오로의 개종」과 함께 체라시 경당의 측면 제단화로 들어갈 작품이었다. 베드로는 허연 백발이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장가까지 갔다니까 순교할 당시에는 예순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손과 발에는 이미 쇠못이 박혔고, 인부 셋이 달려들어서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미리 파둔 구덩이에다 십자가 끝을 파묻고 땅을 다지면 집행이 완성된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종려가지를 든 천사도 없고, 몰려든 구경꾼의 탄식도 안 보인다. 처형을 집행하는 로마 장교와 그의 부하들도 죄다 생략했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린 순교자의 표정에도 과장이 하나도 없다. 쇠못을 움켜쥔 손과 이마에 패인 몇 가닥의 주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말할 뿐이다. 이런 고통은 주님을 만나고 로마로 다시 돌아왔을 때부터 각오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간결한 설득력과 사실적인 현장성을 통해서 종교화의 새로운 표현 영역을 넓힌다. 「베드로의 순교」에서도 보는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는 미술의 불필요한 장식들을 다 걷어내고, 지극히 단순한 구성을 통해서 어떤 능변보다 힘있는 수사를 보여준다. 땅파는 인부의 흙때 묻은 발바닥, 차갑게 빛나는 삽날, 구덩이에서 방금 파낸 젖은 흙더미, 팽팽하게 당겨진 노끈, 인부들의 땀 냄새, 나무 십자가의 나이테,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체를 일으키는 순교자와 그의 희미한 눈빛, 이런 것들이 보는 사람을 처형의 현장으로 이끌고 동참하게 한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로부터 십자가형을 선고받자 집행관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한다. 「황금전설」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똑바로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입었으니 내 머리는 땅을 가리키고 다리는 하늘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주십시오』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리고 나서도 입을 열어서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똑바로 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은 홀로 바로 달리실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개를 떨구었던 아담의 자식들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 머리를 밑으로 하고 땅을 향해서 나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그림 앞쪽에는 큼직한 돌멩이가 하나 뒹굴고 있다. 이 돌은 베드로의 이름이 가리키는 바위, 또는 비유 말씀에 나오는 모퉁이의 머릿돌을 닮았다.

 

[가톨릭신문, 2003년 7월 6일]

 

 


 

 

■  성 베드로 사도좌

 

 

교회 반석 베드로,

양떼 앞엔 연민... 죽음 앞엔 초연

 
2월 22일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이다. 이 날은 예수가 베드로를 사도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선택해 온 세상의 교회에 봉사할 권한을 주고, 지상의 대리자로 삼은 것을 기념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 바오로 사도 개종축일과 함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기념해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과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주제로 한 그림을 제단 양 쪽에 즐겨 배치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카라바조와 귀도 레니의 '성 베드로 사도 순교' 두 작품을 감상하며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의미를 알아보자. <사진 자료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복음(마태 16,13-19)처럼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며 기초이고, 구심점이다. 예수는 이 날 복음에서 베드로에게 너를 초석 삼아 교회를 세우겠다 하늘 나라 열쇠를 주겠다매고 푸는 권능을 주겠다는 3가지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은 예수가 부활한 후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 특별히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 15-17)며 사목권을 부여하는 장면에서 성취됐다. 베드로는 이로써 '목자들의 으뜸'(1베드 5,4)으로서'그리스도의 양떼'를 보호하고 사목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1베드 5,2-3).
 
같은 장소에서 부활한 예수는 베드로에게 그의 순교를 예언하면서 "나를 따르라"(요한 21,19)고 촉구했다. 이 말은 예수를 대신해 양떼를 돌보듯이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에도 동참하라는 뜻이었다. 베드로는 십자가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뜻을 완성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출신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 파울리나 경당의 벽화에 영감을 받아 1601년 유화 작품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완성했다. 로마 산타마리아 데 포폴로 성당 제단화로 그려진 이 그림은 망원렌즈로 포착한 현장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카라바조는 극단적 명암대비를 사용해 극적 효과를 높이는 '테너브리즘'의 창시자답게 배경 전체를 어둡게 표현해 미동도 허락치 않는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림의 등장인물은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와 3명의 집행관뿐. 카라바조는 지극히 단순한 구도에서도 관람자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등장인물 중 베드로의 얼굴만 드러나도록 했다. 3명의 집행관들은 죄없는 베드로를 처형하는 일이 내키지 않은듯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고개를 떨군채 묵묵히 형을 집행한다. 집행관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를 거꾸로 매달고 있다. 테르뚤리아누스 교부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고 집정관에게 "나는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형집행이 막 시작된듯 하다. 구덩이를 판 삽을 쥐고 있는 집행관의 발바닥에 묻은 흙이 아직 젖어 있다. 큰 쇠못이 박힌 베드로의 양 손과 발은 아직 피가 흐르지 않아 깨끗하다. 가장 건장해 보이는 집행관은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앞으로 상체를 숙인채 십자가를 묶은 외줄을 양손으로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바로 뒤 중년의 집행관은 무게중심을 뒤로한 채 양손으로 베드로의 양 다리와 십자가를 감싸고 십자가를 곧추세우며 거들고 있다. 깊이 패인 미간의 주름,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어오른 팔근육이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다는 집행관의 의지를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맨 앞 어깨로 십자가를 밀고 있는 가장 어려보이는 집행관은 베드로를 매단 십자가가 바로 세워지기만 하면 재빨리 구덩이를 다지고 자리를 뜰 기세로 삽자루를 불끈 쥐고 있다.
 
벗어진 이마에 수염까지도 백발인 베드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머리를 들고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스승 예수를 따르기 위해 거꾸로 매달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베드로가 마지막까지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교회'다. 베드로가 돌보던 그리스도의 양떼는 이제 갓 태어나 겨우 걸음마를 하는 힘없는 어린 양들이었다. 목자 잃은 양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십자가형 고통마저 잊은 듯한 베드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 우는' 베드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슬픔에 빠져'있고, '눈물을 흘렸다'는 등 그의 인간적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카라바조는 베드로의 젖은 눈을 통해 그가 '삯꾼이 아니라 착한 목자'(요한 10,11-13)였음을 고백하고 있는 듯하다.
 
카라바조가 '성 베드로 사도 순교'작품을 통해 '하느님 백성'과 세상을 향한 목자의 사랑을 표현했다면, 제2의 라파엘로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 귀도 레니(1575~1642)는 같은 주제의 작품에서 '으뜸 사도'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적극 동참하는 용맹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귀도 레니의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작품에도 카라바조의 작품처럼 사도 베드로와 3명의 사형 집행관이 등장한다. 베드로와 집행관들의 옷색깔도 똑같다. 하지만 레니는 베드로가 아닌 주변인들을 중심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레니의 작품에서 집행관들은 얼굴을 드러내 놓은 채 일을 즐기듯 당당하다. 따라서 베드로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카라바조가 베드로의 시선을 통해 사람들을 순교의 현장으로 동참시켰다면, 레니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모두 엇갈리게 분산시켜 순교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구경꾼으로만 머물게 하고 있다.
 
레니의 집행관들은 카라바조의 집행관들과 달리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사다리를 타고 십자가 위로 올라온 빨간 모자의 집행관은 왼손으로 베드로의 오른 발에 쇠못을 고정시킨 채 오른 손으로 허리춤에 찬 장도리를 빼어내고 있다. 그 아래 빨간바지의 집정관은 베드로의 양발을 묶은 밧줄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양손으로 힘껏 당기고 있다. 맨 앞의 집행관도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베드로가 꼼짝 할 수 없도록 허리춤을 꽉 붙잡고 곧 베드로의 살을 꿰뚫을 쇠못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양팔만은 자유로운 베드로 사도는 부자유스럽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손을 뻗은 채 마지막 기도를 하는 듯 하다. 벗겨진 이마에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희미한 잔주름만 어렴풋이 보일 뿐 그 어떤 두려움과 고통의 일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이겨낸 초인적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장면에서 착한 목자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15-18).
 
[평화신문, 2006년 2월 19일, 리길재 기자]

 


 

■  루도비코 카라치의 '성 베드로의 울음'
 
‘닭이 울자 말씀이 생각나 슬피 울었다’

 

 

- 루도비코 카라치의 '베드로의 울음', 캔버스에 유채, 1613~15,

 

153×112cm, 프린스턴, 바르바라 존슨 컬렉션.
 

 

 

성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가장 먼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으며,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서 사도 중의 으뜸이며,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았고, 교회를 세우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제 1대 교황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성경에서 열두 사도들을 언급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며, 예수님은 변모의 기적을 행할 때나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늘 베드로를 동반하셨다. 그러니 베드로는 얼마나 축복받은 제자이며,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역사상 많은 화가들이 베드로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

 

. 그 대표적인 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천국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성경의 이 부분은 베드로의 정체성과 그의 역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일 것 같다. 예수님은 그를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라 불렀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다. 그에게 주님의 지상 대리인의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베드로가 열두 제자 중의 으뜸이자 제 1대 교황이 된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베드로

 

 

그런 베드로도 평생 후회할 만큼 큰 잘못을 한 번 저질렀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신 후 하녀 하나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베드로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이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말이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며 세 번째 부인하자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베드로를 그린 그림 중에 ‘베드로의 후회’ 혹은 ‘베드로의 울음’이라는 제목으로 된 작품들이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그 치명적 과실로 인해 평생을 눈물로써 참회하였으며, 이로 인해 눈가가 패어있었다고 전해진 내용을 그린 것이다.

 

루도비코 카라치(Ludovico Carracci, 1555~1619)가 그린 ‘베드로의 울음’은 닭이 옆에 그려져서 지금 막 그가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슬피 우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허공에 내민 손가락과 간절한 눈빛에서 그가 온몸으로 후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화면 아래 쪽 투박한 어부의 발 옆에는 베드로를 상징하는 천국의 열쇠가 어렴풋이 보인다. 화가는 화면의 시선을 베드로에게만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은 아예 새까맣게 처리해버렸다.

 

루도비코 카라치는 볼로냐의 그 유명한 카라치 가문이 배출한 3명의 걸출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트렌트 공의회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가톨릭의 새로 정립된 교리와 이념을 그림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가톨릭 개혁 화가들에 속한다. 자칫 이념을 대변하는 작가의 그림들이 설득력에 치중하다 보면 예술성에서 뒤질 수도 있지만 루도비코의 이 작품은 성 베드로의 본질을 참으로 인간적이고, 절실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베드로의 후회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예수님을 그토록 따르고 사랑하던 애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이 가장 어려움에 처한 순간에 모른다고 부인하는 잘못을 저질렀는데 세상의 그 누가 인간적 실수 혹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제는 죄를 지은 이후의 태도가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 베드로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토록 절실하게 눈물을 흘리며 평생을 참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니, 인간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주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염치없게도 불쑥 들었다. [가톨릭신문, 2008년 11월 2일, 고종희(마리아 · 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이번 호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 경향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반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지나가자.  반종교 개혁은 프로테스탄트에 의한 종교 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즉 가톨릭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교회의 쇄신을 목표로 일어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주로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이미 받아들인 특정 지역의 한정된 분야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펼쳐졌다.

 

바로크 미술(예술)이 발전하는 데는 반종교 개혁도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르네상스의 영광이 매너리즘에 밀려난 시기,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 등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세력 확산을 막기 위해 고심했고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미술을 통해 신앙을 격려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을 적극 권고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술 작품이 감동적이면서도 신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맹인 경우도 많았던 일반 신자들은 보다 사실적인 미술 표현을 통해 교회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이해하곤 했다.

 

루도비코 카라치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사이의 과도기에서 활동한 가톨릭 개혁 예술가로 불린다. 가톨릭 개혁 예술가들은 평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고 또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예술을 장려했고, 결과적으로 바로크 미술도 성장했다.

 

특히 카라치 집안은 볼로냐 출신의 대표적인 화가들을 배출하며 바로크 미술 확립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 또 루도비코 카라치는 사촌동생인 아니발레 카라치 등과 함께 미술아카데미를 설립해 바로크 미술의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가톨릭신문, 2008년 11월 2일, 주정아 기자]

 

 


 


성미술  - 엘 그레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1587-1592년, 캔버스 위에 유화, 121.5 x 105cm, 에르미타주 미술관,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이탈리아 로마 남문 밖 교외에 자리 잡은 트레 폰타네 성당(Chiesa di Tre Fontane, 54쪽 참조)은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정열적인 인생의막을 내리고 참수당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오로의 목을 올려놓고 칼로 쳤던 돌기둥이 보관되어 있고, 처형 직후 바오로의 목이 구른 세 군데 자리에서 샘이 솟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세 개의 샘, 곧 ‘트레 폰타네’가 있다.

 

라틴어로 ‘작은 조각상’을 뜻하는 이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 불렸던 사도 바오로는 원래 벤야민 지파의 독실한 유다교인이자 엄격한 바리사이로, 스테파노 성인의 처형을 열렬히 지지했을 만큼 그리스도인을 무참히 박해하고 이들을 박멸하려 혈안이 되었던 사람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인은 이 가혹한 죽음의 시련을 피해 다마스쿠스로 달아났으며, 바오로는 이들을 잡으려 집요하게 추격을 하고 있었다.

 

거의 다마스쿠스가 보일 정도에 왔을 때, 돌연 하늘에서 번개와 같은 강한 빛이 나오며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울은 그 광채에 눈이 멀고 그 소리에 놀라 땅에 넘어졌다. 잠시 후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그분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고 하셨다. 그때 사울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부름에 응하는 커다란 기적이 일어났다. 미켈란젤로나 카라바조를 비롯한 역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빛에 놀라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허우적대며 눈이 멀어 앞을 보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사울의 모습을 그려 ‘바오로의 개종’이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나 16세기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톨레도의 화가’ 엘 그레코(1541-1614년)는 바오로를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랑을 생활화하며 서간을 기술하는 따스한 내면의 지식인으로 묘사하였다. 그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교회의 반석이며 선교의 주보로 추앙받는 두 사도, 곧 초대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 두 사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두 사도는 65년 네로 황제의 대박해 중 함께 순교했으며, 이들의 축일이 공히 6월 29일이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베드로와 달리 바오로는 로마인이라는 이유로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받아 죽었기에, 처형된 큰칼이 그의 상징물이 되었다. 바오로가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집을 의미하는 커다란 책 또한 그의 도상적 상징물이다.

 

그림에 나타난 두 사도는 경전의 해석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중인데, 이들의 모습이 결코 성인들답지 않은 것이, 엘 그레코가 의도한 바가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화가는 이들의 인간적인 풍모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신앙을 증언하는 것이다. 왼쪽의 베드로가 흰색의 머리에 나이 들고 겸허한 자태를 보이는 반면, 오른편의 바오로는 열의와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의 모습이라는 대조를 보인다.

 

그림의 바오로를 보면, 흔히 그림에 그렇게 나타나듯 푸른색 튜닉 위에 붉은색 외투를 입은 사도의 모습이며, 고결한 얼굴에 머리숱이 적고, 길고 검은 턱수염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그 넓은 이마가 보여주듯 지적이며 정열적인 성격의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경전을 짚은 그의 왼손은 신앙복음을 향한 바오로의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오른손의 반을 펼친 손가락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과 설득을 표현하고 있다. 칼 모양의 각진 귀는 남의 말을 잘 들어야하는 설교자의 본분을 말한다. 그리고 그의 확고한 신앙에서 비롯된 강렬한 눈빛과 결의에 찬 표정이 말씀이라는 진리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다. 이런 신앙을 향한 그의 열정은 그의 붉은색 망토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바오로의 희고 밝은 오른손위에 그 얼굴과 표정, 푸른색 튜닉에 노란 망토가 의미하는 만큼이나 겸허한 복종의 자태로 그려진 베드로의 오른손은 검게 그을린 것이 노동자의 손이다. 이 손은 컵 모양으로 그려져 마치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 사려 깊고 사색적인 베드로의 내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의 시선이 바오로가 지적한 경전을 향해 기울어있는 것이, 바오로의 해석에 대한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베드로의 왼손은 커다란 열쇠를 쥐고 있는데, 이 열쇠는 천국의 열쇠로 베드로의 도상학적 상징물이다. 그 손이 열쇠를 꼭 쥐고 고리 부분만 남긴 것으로 보아, 겸손과 복종의 미덕과 기도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자세가 천국의 문 곧 하느님 세계로 가는 신앙의 본분임을 은밀하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손 역시 결연한 의지와 강한 권위를 지닌 손으로 그려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만큼 신앙의 길은 복종의 마음에서 비롯된 권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인가?

 

이처럼 두 사도의 상반된 자태, 상하로 교차하는 손의 자세는 신앙의 길이 서로 다른 것의 상호보완과 조화, 균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열정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과 아울러 지혜와 사랑을 통한 겸허하고 부드러운 마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의에 의해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함이 잘못되지 않도록 지혜와 경험의 관록이 보살피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신앙이요 사랑임을 다시금 일깨우지 않는가?

 

이런 두 마음을 가진 존재가 바로 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인 우리 자신이다. 우리 안에 베드로와 바오로의 존재가 늘 있는 것이다. 이런 열정과 겸허라는 그 상반된 요소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비로소 신앙의 큰문이 열리는 것인가? 그림의 뒷부분, 두 사도 사이로 흐리고 작게 난 문이 우리 스스로 열어야 할 그 천국의 문이 아니고 무엇일까? 엘 그레코는 그 천국의 문을 열 열쇠가 바로 열정적이며 희생을 전제로 한 사랑의 신앙임을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기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코린 13,7).

 

*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경향잡지, 2008년 6월호,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g/greco_el/10/1003grec.jpg)

 


 

천국의 열쇠를 받는 베드로
 

 

 

‘프레스코 기법’ 완벽 재현

 

- 작품 해설 : 피에트로 페루지노, <천국의 열쇠를 받는 베드로>, 1482,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이 그림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이다. 프레스코란 ‘신선한’이란 뜻의 이탈리아로 벽에 회칠을 하고 그것이 마르기 전인 축축한 상태에서 그리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그 외의 작품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거기에는 페루지노의 이 그림을 비롯하여 12점의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들이 있다. 또한 이들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장소가 교황청인 만큼 당대 최고의 유명 화가들로 구성된 일종의 드림팀이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성경의 말씀대로 넓은 광장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수여하고 있고,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겸손한 자세로 열쇠를 받고 있다. 두 주인공의 주변에는 12제자들과 당대인들이 서 있으며 그 중에는 얼굴색이 유독 시커멓게 그려진 유다의 모습도 보인다.

 

인물 뒤에는 정확한 원근법에 의해 그려진 아름다운 광장이 보인다. 광장 중간에 그려진 장면 역시 성경의 일화들인데 왼쪽에는 황제의 세금에 대해 답변하는 그리스도를, 오른쪽에는 그리스도가 체포되기 직전 사람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중앙의 건축물은 예루살렘의 황금성전이고 양쪽의 고대 건축물은 로마제국 시대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연상케 한다. 사실 이 예루살렘 성전은 당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그려놓은 것으로써 황금 지붕에 그려진 정교한 입체감은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진정 프레스코 기법의 대가로서 환영효과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개선문의 아치 위에는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을 설립했으나 식스투스 4세는 종교에 있어서 그에 못지않게 위대하다”라는 글귀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화가가 주문자인 교황에게 바치는 일종의 찬문(讚文)이다.

 

당시의 현대식 건축물을 중앙에 세우고 양쪽에 로마 제국의 개선문을 그려 넣은 것은 고대문화에 대한 부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 앞쪽에는 당대인들의 초상화가 눈에 띄는데 오른쪽 다섯 번째가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자화상이다. 이 무렵 당대인들의 초상화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했다.

 

이 작품은 좌우 대칭과 안정되고 통일된 화면 구성, 인물들의 우아한 표현 등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5세기 말 르네상스 대가가 표현할 수 있는 회화적 능력을 최대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청명한 공기, 명료한 색채 등은 이후 페루지노의 제자인 라파엘로의 작품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마리아의 결혼’과 자주 비교되고 있으며 라파엘로가 스승의 작품에 빚을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승의 이처럼 멋진 작품을 뛰어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예술을 보여준 것이 바로 라파엘로가 탄생시킨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12월 6일, 고종희(한양여대 교수 · 서양미술사)]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p/perugino/sistina/keys.jpg)


 

참고자료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베드로', 서울(한길사), 2014년, 17-35쪽.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베드로 사도',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58-362쪽.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베드로 사도좌',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65-367쪽.  
루돌프 피셔-볼페르트 저, 안명옥 역, 교황사전 - 베드로, 서울(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년, 3-5쪽.  
신치구 저, 성서와 전설에서 본 열두 사도의 생애 - '베드로',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9-82쪽.  
제임스 마틴 저, 성찬성 역, 나의 멘토 나의 성인 - ‘나는 죄인이니 베드로’, 서울(가톨릭출판사), 2012년, 351-386쪽.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베드로,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39-41쪽.  
최홍준 저, 무한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 '초대 교황 베드로', 대구(가톨릭신문사), 1999년, 327-337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5권 - '베드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3300-3311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베드로 사도', 서울(성바오로), 2002년, 157-159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베드로 사도의 주교좌', 서울(성바오로), 2002년, 6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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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
제 196 편 ►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그리스인들의 영향 • 로마의 영향 • 로마 제국 아래에서 • 유럽의 암흑 시대 • 현대의 문제점 • 물질주의 • 물질주의의 취약성 • 세속적인 전체주의 • 그리스도교의 문제 • 미래

오순절 날 베드로 설교의 결과들은, 왕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들에서, 대부분 사도들의 장래의 정책들을 정하고 그리고 계획들을 결정하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실제적 설립자였으며; 바울은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였고, 그리스인 신자들이 그것을 로마제국 전역에 퍼뜨렸다.
195:0.2

전통에 매이고 사제의 지배를 받는 히브리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예수의 복음이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상승에 대한 베드로와 바울의 선포 (후에 그리스도교가 됨)를 거부하였지만, 로마제국의 그 나머지는 확장되는 그리스도교 교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의 서방 문명은 지적이었고 전쟁에 지쳐 있었으며 존재하는 모든 종교들과 우주 철학들에 대하여 속속들이 회의적이었다. 서방 세계의 민족들은, 그리스 문화의 수혜자들, 위대한 과거의 존경받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철학, 예술, 문학, 그리고 정치적 진보 분야에서 위대한 성취들의 유산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성취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혼을 만족시키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영적 갈망은 만족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5:0.3

그러한 인간 사회의 무대 위로 예수의 가르침들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둘러싸여, 갑자기 밀려왔다. 새로운 삶의 질서가 그렇게 해서 이들 서방 사람들의 간절한 가슴에 제시되었다. 이 상황은 더 오래된 종교적 실천 관행과 세상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에 대한 새로운 그리스도교식 해석 사이에 즉각적인 갈등을 의미하였다. 그러한 갈등은 새로운 것이나 옛 것이 결정적으로 승리하거나 또는 어느 정도의 타협으로 끝나야만 한다. 역사는 투쟁이 타협으로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는 어느 한 민족이 한 두 세대 동안에 동화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것들을 포옹시키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사람들의 혼에게 제시하였던 것과 같은, 단순한 영적 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찍부터 종교의식, 교육, 마술, 의술, 예술, 문학, 법, 정부, 도덕, 성(性)에 관한 규정, 일부다처제, 그리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노예제도에 대해서까지 분명한 태도를 고집하였다.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종교─로마제국 전체와 모든 동방이 기다리고 있던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질서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으로서 그것은 당대의 사회적-도덕적 충돌을 신속히 촉진시켰다. 예수의 이상(理想)들은, 그리스 철학에 의해 재해석하고, 그리스도교 안에서 사회화됨에 따라서, 이제 서방 문명의 윤리 도덕, 종교 안에서 체현된 인간 종족의 전통에 대담하게 도전하였다.
195:0.4

처음에는, 그리스도교는 오직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만 개종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세기가 시작되면서 그리스-로마 문화의 최고점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새로운 질서, 삶의 목적과 실존의 목표에 대한 이 새로운 개념을 향하여 점점 더 돌아서고 있었다.
195:0.5

어떻게, 그것의 태생의 땅에서는 거의 실패한, 유대에서 기원한 이 새로운 메시지가 그토록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로마제국의 최상의 마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철학적인 종교들과 신비 예배종파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 기인되었다:
195:0.6

1. 조직. 바울은 위대한 조직가였으며 그의 후계자들은 그가 정한 걸음을 유지하였다.
195:0.7

2. 그리스도교가 속속들이 그리스화 되었다. 그리스 철학의 최고뿐 아니라 히브리 신학의 정수(精髓)까지 포옹하였다.
195:0.8

3. 그러나 그 중에서 최고는, 그것은 새롭고도 위대한 이상(理想), 즉 예수의 생명 증여에서의 반향(反響)과 모든 인류에게 주는 그의 구원의 메시지에서의 반영이 포함되었다.
195:0.9

4. 그리스도교 영도자들은 미트라교와 기꺼이 타협해서, 그 추종자들의 절반 이상이 안디옥 예배종파로 전향되도록 하였다.
195:0.10

5. 마찬가지로 그 다음과 그리고 그 후대의 그리스도교 영도자들도 이교도와 더욱 타협하여, 로마 황제 콘스탄틴마저도 그 새로운 종교에 설득되어졌다.
195:0.11

그러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의 의례적인 허식을 받아들이고, 한편으로는 이교도들에게 바울 그리스도교의 그리스화된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교도들과 영민한 거래를 했다. 그들은 미트라 예배종파와 맺었던 것보다는 이교도들과 더 나은 거래를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초기의 타협에서도 그들은 극심한 부도덕은 물론 페르시아 신비 사상의 비난받을 만한 다른 수많은 실천 관행들을 성공적으로 제거시킴으로써 정복자가 되고도 남았다
195:0.12

현명하였든 또는 현명치 못했든, 이 초기의 그리스도교 영도자들은 예수의 이상들을 자의적으로 양보하고 그리고 더 많은 예수의 관념들을 구하려는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은 뛰어나게 성공했다. 그러나 오류를 범하지 마라! 이렇게 양보된 주(主)의 이상들은 여전히 그의 복음 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충분한 힘을 세상에서 주장하게 될 것이다.
195:0.13

그리스도교의 이 이교화로 인하여, 옛 계층은 의례적인 본성에서의 많은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주도권을 얻었다:
195:0.14

1. 인간의 도덕에서 새롭고도 엄청나게 높아진 음률을 부르짖었다
195:0.15

2. 하느님에 대해서 매우 확대되고 새로운 개념을 세계에 주었다.
195:0.16

3. 불멸의 희망이 인정받는 종교에서의 확신의 한 부분이 되었다.
195:0.17

4. 사람의 굶주린 혼에게 나사렛 예수가 주어졌다.
195:0.18

예수가 가르치셨던 위대한 진리들 대부분이 이러한 초기의 타협 속에서 거의 유실되었지만, 그것들은 아직도 이교화된 그리스도교의 종교, 다시 말해서, 사람의 아들에 대한 일생과 가르침을 지닌 바울파의 해석 안에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이교화 되기 전에 이미, 먼저 속속들이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인들에게 많은,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집트에서 온 그리스인이 니케아에서 용감하게 일어나서, 아주 두려움 없이 그의 증여에 대한 실제 진리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이 집회에 도전하였고, 그 회의가 예수의 본성에 대한 개념을 감히 가리우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그리스인의 이름은 아다나시우스였으며, 이 신자의 논리와 웅변술이 아니었으면, 아리우스의 신조가 승리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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