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4. 7. 22. 23:00

성녀 비르지타(Saint Bridget)

 

 

 

 축일

 7월 23일 
 신 분  과부. 설립자 
 활동지역

 스웨덴(Sweden)

 활동연도  1303-1373년   
 같은이름

 브리지따,브리젯, 브리지타, 브리짓다, 비르지따, 비리시다 


  

 

 

  

1303년 스웨덴 우플란드(Upland)의 총독이며 부유한 지주인 비르거(Birger)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인게보르크(Ingeborg) 사이에서 태어난 성녀 비르지타는 12살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하였는데, 그때부터 계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로 훗날 네레시아 지방의 총독이 된 18세의 귀족 울프 구드마르손(Ulf Gudmarsson)과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중의 하나가 스웨덴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이다.

 

1335년 그녀는 스웨덴의 왕 마뉴스 2세와 막 결혼한 왕비 나무르의 불랑쉬(Blanche)의 시녀가 되었다. 비르지타의 큰딸이 결혼에 실패하고 또 그녀의 막내아들 구드마르(Gudmar)가 1340년에 죽게 되자, 그녀는 노르웨이 트론디엠의 성 올리프 경당으로 순례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궁중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재차 순례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아라스에서 병을 얻었고, 이때 그녀는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환시를 보았다.

 

1344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알바스트라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극도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4년을 지냈다. 이때에도 그녀는 수많은 환시와 계시를 받았고, 고해신부는 그녀의 모든 환시가 올바르다고 보증해 주었다. 이러한 계시에 따라 그녀는 1346년에 바드스테나(Vadstena)에 '지극히 거룩한 구세주 수도회‘를 세웠고, 마뉴스 왕도 여기에 거처하였다. 이것이 ‘삼위일체회’(비르지타회)의 시작이다. 바드스테나는 15세기 스웨덴의 지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그녀는 라트비아(Latvia)와 에스토니아(Estonia)의 이교도들에 대항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려는 국왕 마뉴스의 지원을 거부하였다. 그녀는 당시 아비뇽(Avignon)에 유배 중이던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에게 글을 보내어 자신의 환시 내용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교황은 안전하게 로마(Roma)로 돌아올 것이며,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에 교황이 중재자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로마에서 지내면서 매우 엄격한 생활과 빈민구제에 온 정열을 쏟았으며, 당시의 심각한 교회와 정치사이의 제 문제에 대하여 기탄없는 충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의 엄격한 생활과 성덕,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에 대한 관심 및 교황의 로마 귀환에 대한 노력 등이 로마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녀는 로마 주변의 수도원을 개혁하였고, 그녀의 예언과 고위직책에 대한 탄핵은 유명하였다. 그녀는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는 문제를 위하여 계속 노력하였으나, 우르바누스(Urbanus) 교황만이 잠시 귀향하였고 그의 후임자인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는 여전히 아비뇽에 있었다.

 

그녀의 구술로 적은 “계시”라는 책에는 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내용으로 당대에 강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그녀의 시성과 콘스탄츠 공의회(Council of Konstanz)에서 그러하였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녀가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한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그의 체험들은 모두가 진실하며 교리와도 부합된다고 갑론을박하였다. 그녀의 사후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o)는 그녀의 “계시”를 세심히 검토하도록 하였는데, 결국 신자들이 읽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녀는 스웨덴의 수호성녀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가톨릭 홈)

 



성녀 비르지타

 

 

1303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나이 어릴 때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들을 훌륭히 길렀다. 성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직 세속에 살면서도 좀더 고행적인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훗날 수녀회를 세우고 로마에 가서 온갖 덕행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회개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여러 번 순례 여행을 하고, 자신의 신비 체험을 기술한 여러 가지 글을 남겼다. 1373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비르지타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기도문에서
(Oratio 2: Revelationum S. Birgittae libri, 2, Romae 1628, pp.408-410)


 

◆ 구세주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영혼의 승화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죽음을 예고하시고, 최후 만찬 때 물질인 빵을 축성하시어 신묘히 당신의 보배로운 몸으로 변형시키시고, 그것을 당신의 지극히 숭고한 수난의 기념으로 사도들에게 인자로이 남겨 주시며, 당신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손으로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위대한 겸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예 받으소서, 당신은 수난과 죽음의 공포로 말미암아 그 순결한 몸에서 피땀을 흘리시고 원하신 대로 우리 구속을 성취하시어 인류에게 품으신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가야파에게 끌려가시어 온 인류의 심판관이신 당신이 빌라도의 재판에 넘겨지는 것을 겸손히 허락하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광 받으소서. 당신은 자색 홍포를 입고 날카로운 가시로 엮어 짠 가시관을 쓰신 채 조롱당하시고, 당신의 영예로운 얼굴이 침 뱉음 당하고 눈을 가리우며 얼굴과 몸이 악인들의 잔인한 손으로 무참하게 맞는 것을 인내로이 참으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찬양 받으소서. 당신은 기둥에 묶이시어 참혹하게 채찍질당하시며, 피에 젖은 채 빌라도의 재판장으로 끌려가시어 순결한 어린양으로 드러내시는 것을 인내로이 허락하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예 받으소서. 당신은 그 영광스러운 몸이 피로 범벅이 된 채 십자가 형을 받으시고, 고통에 짖눌린 당신의 거룩한 어깨에 십자가를 메시고 사람들이 분노하여 외치는 가운데 수난의 장소로 끌려가시어, 옷 벗긴 채 십자가 나무에 못박히기를 원하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원토록 영예 받으소서. 당신은 결코 죄를 짓지 않고 미소한 죄마저 허락치 않으신 당신의 영광스런 어머니가 그렇게도 격심한 고뇌 가운데 계신 것을 보실 때 사랑에 젖은 인자한 눈으로 겸손히 내려다보시고 또 그분을 위로해 주시면서 당신 제자의 충실한 돌봄에 맡기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원토록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당신께로 돌아온 강도에게 천국의 영광을 자비로이 약속하실 때 죽음의 고뇌 가운데서 모든 죄인들에게 죄 사함의 희망을 주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원토록 찬양 받으소서. 당신은 수시간 동안 우리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한없는 슬픔과 쓰라림을 당하시고, 상처의 예리한 고통은 당신의 복된 영혼까지 꿰뚫고 지극히 거룩한 심장까지 무참히 찔러 마침내 그것을 헤쳐 놓아 기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당신은 또 머리를 숙이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자신을 겸손되이 맡기시고 죽으시어 차디찬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보혈과 지극히 거룩한 죽음으로 영혼들을 구속하시고 유배지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자비로이 이끄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우리 구원을 위해 늑방과 심장이 창으로 찔리우는 것을 허락하시고, 그 늑방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보혈과 물을 쏟으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광 받으소서. 당신은 그 거룩한 몸이 벗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내려져 슬픔에 젖은 당신 어머니의 팔에 안기기를 원하시고, 어머니께서 당신 몸을 수의로 싸서 무덤에 묻고 병사들이 지키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원토록 영예 받으소서. 당신은 삼일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뽑으신 사람들에게 당신이 살아 계심을 드러내 보이시고, 사십 일 후에 많은 이들이 보는 데서 승천하시어 고성소에서 해방시키신 당신의 벗들이 하늘의 영광에 들도록 하셨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원토록 기쁨과 찬양 받으소서. 당신은 제자들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의 영혼 안에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가시키셨습니다. 내 주 예수여, 영원토록 찬미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소서. 당신은 당신 신성의 영광 안에서 하늘 나라의 옥좌에 앉아 계시고 동정녀에게서 육신을 취하실 때 지니신 모든 거룩한 지체들과 함께 육신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심판 날에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영혼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당신은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세에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성녀 비르지타(St. Birgitta, 7월 23일)

1303~1373, 스웨덴 우플란드 출생, 스웨덴 수호성인.

 

 

자신을 낮추고 교회에 순명, 하느님 예언 전하고 기도 묵상 나눔의 삶



 

성녀 비르지타는 '예수님 수난 15기도'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 수도원에서 살면서 기도와 묵상의 삶을 사는 성녀 앞에 예수께서 나타나 자신의 수난과 고통에 함께 하고 싶다면 매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15번씩 1년 동안 바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겐 특별한 은총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녀는 평생 동안 이와 같은 특별한 환시와 계시를 체험합니다. 그 때마다 성녀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교회 가르침에 순명하며 기도생활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성녀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에게 독실한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성녀의 아버지는 매주 금요일이면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이스라엘까지 순례를 했다고 합니다.

 

성녀는 자녀 8명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은 스웨덴의 성 가타리나입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을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었습니다.

 

성녀는 1341년 남편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납니다. 힘든 여정 중에 남편은 병에 걸렸고 성녀의 헌신적 간호로 회복하지만 이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성녀는 이후 수도원에서 지내며 수도자들보다 더 엄격한 삶을 살아갑니다. 또 자신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수도회를 세워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기도와 묵상, 나눔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성녀는 하느님께서 성인을 통해 내려주시는 예언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성녀 주변에는 성녀를 칭송하거나 혹은 의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성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성녀의 예언과 계시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가톨릭 교회는 성인의 모든 행적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성녀는 1391년 교황 보니파시오 9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평화신문, 2010년 7월 18일, 박수정 기자]


 



항상 쇄신되어야 할 교회

 

 

 

예언자이며 신비가인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
글 김주영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분들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교회의 등불 역할과 예언자 역할을 하셨다. 이 지면을 통해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성녀 한 분을 소개할까 한다.

 

요한 복음에 필립보와 나타나엘의 대화에서 예수님을 두고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하는 냉소적인 질문이 있다.

 

성녀 비르지타의 시성 청원을 접한 보니파시오 9세 교황도 이렇게 자문하였다고 한다.

 

“무슨 좋은 것이 북쪽(스웨덴)에서 나올 수 있을까?”

 

이분은 돌아가신 지 18년 만에 성인품에 오르고 스웨덴의 수호성녀일 뿐 아니라 뒷날 유럽의 공동 수호자로 추대된 비르지타 성녀이다.

 

현세 교회의 피뢰침이 되어 주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주신 분으로 설명할 수 있는 비르지타 성녀.

 

먼저 그분의 생애에 대해 알아본 뒤 당시 세상과 교회의 상황, 계시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 시대 교회에 무엇이 필요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끝으로 현 교회의 쇄신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녀 비르지타의 생애

 

성녀 비르지타는 1302/1303년에 스웨덴의 핀스타(Finsta)라는 곳에서 총독인 아버지 와 그의 둘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하느님의 환시를 보았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영적인 그녀에게 꼭 맞는 배필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그녀를 깊이 존경하고 그 성덕을 본받으려 노력했고 서로 격려하며 경건한 생활을 했다.

 

28년여 동안의 결혼생활을 통해 8명의 자녀를 두고 유복한 가정생활을 하였다. 물론 자녀가 많으면 근심도 많게 마련인데 어머니로서 비르지타는 8명의 자녀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되게 교육한다. 그녀의 딸 중에 그녀 못지않은 스웨덴의 자랑 가타리나 성녀가 나오게 된다. 성녀가 성녀를 키웠다고나 할까?

 

남편을 하느님 품으로 보내고 그녀는 하느님을 따르는 수도자로서의 삶을 택하게 된다. 엄격하기로 이름난 알바스트라(Alvastra)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계시를 받게 된다.

 

뒷날 성녀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자녀들에게 배분하고 자신이 받은 계시에 따라 수도회를 세우게 된다. 그녀는 또한 순례자로서도 유명하다.

 

교통수단이 좋지 않던 그 시대에 그녀는 스웨덴에서 최근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스페인의 야고보 사도 무덤은 물론이고 로마, 나폴리, 예루살렘까지 순례한다. 바로 그 순례의 과정을 통해 세상과 교회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뜻을 계시로 받아 전했다.

 



14세기 유럽 사회와 가톨릭교회

 

14세기 초부터 유럽은 온갖 종류의 재앙을 당하게 된다. 여러 차례의 기근으로 사람들은 매우 쇠약해졌고 그리하여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에 쉽게 감염되었다. 이는 결국 어마어마한 사망률을 초래하였으며, 계속되는 전쟁도 재난을 부추겼다.

 

식량 위기는 가장 궁핍한 사람들과 농민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흑사병은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농민들은 도시에서 삶을 도모하고자 했으나 거기서 번번이 마주친 것은 가난과 고생뿐이었다.

 

4년간(1347-1351년)의 흑사병은 유럽을 휩쓸어 병에 걸린 사람 80%를 죽게 만들었다. 이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前) 세기인 13세기 유럽을 특징지었던 통일성을 사라지게 하고, 제국과 교회 모두 분열에 봉착하게 하였다.

 

어느 사회이건 늘 정의로우며 바람직하고 순탄한 것은 아니다. 중세라는 가톨릭 중심 사회에도 그늘진 한쪽 모습이 있었는데 교회 일부에서의 세속화 경향이다. 뜻있는 성직자들의 쇄신하려는 노력도 많았지만 결국 일부는 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중세사회의 지식층은 거의 성직자였고 또한 이들이 당시 사회를 이끌어왔기에 일부의 세속화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며, 교회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교회 행정에도 폐해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종종 제도화되었고 그 존재 이유를 순전히 물질적으로 구성된 조세제도와 사례금 제도에서 찾으려는 것 같았다.

 

비종교적 목적을 위한 파문의 남용, 성직매매의 인상을 준 성직록(聖職祿)의 거래 등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도덕적 폐단과 과오, 또한 그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대한 불평과 비난이 커져갔다.

 



교회 쇄신을 위한 천상의 계시록

 

성녀의 계시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누면 신학적 명상과 윤리 · 교훈적 계시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는 당시 교회에 만연한 악습의 쇄신에 관한 하느님의 계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14세기 교황좌를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그 거처를 옮겨 70여 년간 7명의 교황이 살았다. 이는 단순한 교황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더 이상 교회의 영적인 면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편의를 생각한 나머지 교회는 더 이상 그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영향은 성직자들과 백성들에게 바로 이어지는 교회의 영적인 피폐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비뇽에 있는 교황들로 하여금 향락적인 생활 태도를 바꾸고 교회를 돌보도록 자극하는 일에 하느님께서는 성녀를 도구로 쓰셨고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를 통해 완성하셨다.

 

신앙의 정통성은 항상 교회의 올바른 정통의 실천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악습의 근절을 요구한다. 성녀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악습으로부터 벗어나 품행과 신앙의 순수함을 다시 되찾기를 원하는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와 인내에 대해서 언급한다.

 

신부들과 주교들에 대해서 성녀는 여인임에도 아주 강력하게 질타하며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대표적으로는 밀라노의 주교였던 조반니 비스콘티 주교의 잘못에 관한 질타이다.

 

반면에 열정을 가지고 사목하는 주교들에 대해서는 칭찬도 담겨있다. 재물과 태만함과 유약함에 대한 질책을 하면서 준비된 강론으로 양들을 잘 이끄는 참된 목자로서의 삶을 권고하고 있다.

 

사제들에 관해서는 7성사를 경건히 믿음을 가지고 집전할 것을 조언하고 있으며, 특별히 미사에서 성체 신비를 경건하게 봉헌할 것과 아울러 사제들에게 창칼로 준 성경 말씀으로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맺음말

 

“항상 쇄신되어야 할 교회”, 교회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머리에 남았으며 기억해야 할 말로 삼았고 항상 되뇌며 살아가는 말이다. 이 말에는 머물러 있으면 썩고, 나태해지는 것이 우리이기에 언제나 좋은 모습을 꿈꾸며 끊임없이 쇄신하여야 한다는 교회의 간절한 요청이 담겨있다.

 

교회는 항상 쇄신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에 의한, 무엇을 위한 변화이며, 어떤 모습으로의 쇄신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따라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좌표인 것이다.

 

교회는 우리 모두가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때, 이 말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만일 교회가 그의 전형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하라[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중국 은나라 탕왕의 말이 있다.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는 우리 모두이어야 하겠다.

 

김주영 시몬 - 춘천교구 신부.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교회사를 전공하였고 현재 교구 성소국장 겸 교회사연구소장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녀 비르지타 혹은 브리지타 창설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35-438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비르지타', 서울(으뜸사랑), 2014년, 130-133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6권 - '비르지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8년, 3755-3756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녀 비르지타 수절 수녀', 서울(성바오로), 2002년, 179-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