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서간 주해

권요셉 2014. 11. 25. 22:00

 

 

 

사도 바오로의 생애와 사상(1)

사도 바오로의 생애와 사상(2)

사도 바오로의 생애와 사상(3)

1 테살로니카서

갈라티아서

1 코린토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2 코린토서

로마서

 

 

 


 

 

로마서

 

 

 

 

로마서는 정전 목록에 소개된 바오로의 첫째 서간이고 제일 길며 신학적으로도 내용이 가장 풍부한 작품이다. 이 서간에 피력된 신학은 그의 사도적 생애 완숙기에 속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그의 서간 가운데 로마서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I. 배경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가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다. 로마는 주전 753년에 창건되어 약 510년경까지 왕국으로 통치되다가 공화국이 되었다. 로마는 275년 이탈리아 전체를 장악하고 2세기 동안 지중해 일대를 식민지로 삼았다. 사회계층간 투쟁과 노예전쟁은 공화체제에서 군주체제로 옮아가는 요인이 되었다. 주전 60년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율리우스 체사르 세 장군으로 구성된 삼두체제에 의해 다스려졌다. 폼페이우스는 주전 63년 유다를 정복하고 많은 유다인을 노예로 로마에 끌고 왔던 장군이다. 주전 44년 율리우스 체사르가 암살되자 삼두체제가 붕괴되고 그의 두 친척인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주전 31년 9월 31일 악티움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이기고 온 로마제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주전 27년 원로원은 로마의 발전을 위한 옥타비아누스의 공로를 인정해서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존경하올)라는 칭호를 주었다. 이 칭호가 그 후 로마 제국 황제들에게 적용되었다(25,21. 25). 옥타비아누스의 이름은 “가유스 율리우스 체사르 옥타비아누스(주전 27-주후 14년)가 되었다. 이 황제 때 신약 시대가 시작되었다. 또한 그의 치세에 제국에는 200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가 지속되고 라틴 문학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베르질리우스(기원전 79~19년), 호라시우스(기원전 65~8년), 프로페르시우스(기원전 47년경~후 2년경) 등의 문장가들이 활약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주후 14년에 죽자 티베리우스가 그를 계승해서 주후 37년까지 로마제국을 통치하고 37년에서 41년까지는 가유스 칼리굴라가, 41년에서 54년까지는 클라우디우스가, 54년에서 68년까지는 네로가 제국의 황제였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서간을 보냈을 때에는 네로 황제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었다.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이후 네로는 약 5년 동안 제국을 가장 번영하게 했다. 60년 이후 네로는 포학한 군주가 되고 말았다. 그가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로마시에 방화하고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탓을 돌렸다. 로마 역사가 타치투스의「연대기」 (13,50-51)에 의하면 네로는 58년에 세리들의 지나친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조세 규정을 완화했다고 한다. 로마 13,6-7에서 조세의무에 관한 바오로의 가르침이 네로의 조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로마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로마의 종교는 태양신 종교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였다. 유다인들은 무역업으로 로마를 드나들고 노예로 끌려오기도 해서 로마에 정착했다. 그들은 로마에서 회당을 짓고 안식일을 지키며 헌금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냈다. 예루살렘으로 성전세를 보내고 순례를 가기도 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주후 19년에 모든 유다인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렸다. 120년경에 로마 역사를 쓴 수에토니우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도 로마에서 끊임없이 소란을 피운다는 명목으로 유다인들을 추방했다(49년 1월 25일 ~ 50년 1월 24일)고 기록했다. 이 소란은 아마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모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그것을 거절한 유다인들 사이의 빈번한 충돌을 가리키는 것 같다. 클라우디우스가 54년에 죽은 후 헤로데와 그의 후계자들이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폽페아 사비나를 비롯한 로마의 황실과 각별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사는 유다인들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II.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로마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창립된 역사에 관해 다음과 같은 사료가 있다. 사도 2,10-11,41을 보면 로마에 거주하는 유다인 삼천 명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들이 로마로 돌아가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창립했거나 기존 공동체에 합세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는 베드로 사도가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세 이듬해(42년) 마술사 시몬을 따라 로마에 와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기록했으나(교회사  2,14.6) 이 기록은 그럴듯하지 않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49년경)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의 한 지도자였다고 말하고(53년경 작성된 갈라 2,7-9; 참조: 사도 15,6-7) 로마서에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활동했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루카 복음사가도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로마 교회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는다. 바오로나 루카 복음가사는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언급했을 것이다. 베드로가 로마에 복음을 선포했다고 여긴 전통적 견해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로마 밖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유다인들, 이를테면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로마 16,7) 같은 이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로마에 와서 선포했을 것 같다. 유다인 부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다인 추방령 때문에 로마를 떠나야 했다(사도 18,2) 는 것은 주후 49년 전에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를 떠난 후 54년 네로 황제가 이 추방령을 해제한 다음에 많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예: 로마 16,3-4의 프리스카와 아퀼라)이 로마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는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바오로가 로마서를 작성했을 당시에도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14,1-15,13). 그가 로마에 가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복음을 선포하려고 한 것도 그것을 시사한다(1,13.16: 2,9). 그가 이방인들을 위해 하느님에게서 받은 자기의 사도직을 1,5-6,13과 15,15-16에서 두 번이나 강조한 것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공동체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아마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돌아온 후 공동체는 그 전과 달리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갈등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이 갈등은 로마 14-15장에서 서술된 대로 고기를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달력 규정을 지킨 “약한 이들”(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 규정에 대해 자유로운 “강한 이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긴장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오로는 이 두 집단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형제애를 생활 원칙으로 제시했다.

 

 

 

 

III. 바오로와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관계

 

 

바오로나 그의 동료 사도가 로마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지는 않았고 이 공동체 전체와 직접 관계도 맺지 않았다. 바오로와 이 공동체의 간접적 관계는 그가 코린토에서 처음 만난 유다인 부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를 통해서였다. 로마에서 추방되어 코린토로 와서 그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한 이 유다인 부부(사도 18,1-4.18-21.26)는 바오로가 로마서를 작성할 때 로마 공동체에 머물고 있었다(16,3-5). 바오로가 그들을 협력자로 일컬으며 문안을 보냈는데, 이로써 그들이 그와 그의 복음 선포 활동을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문안을 전하는 사람들을 통해(16장) 로마의 공동체와 간접적 관계를 맺은 바오로는 로마서를 통해 직접 이 공동체에 처음으로 자기를 소개했다(1,1-6). 그는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적으로 훌륭한 생활을 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16,19).

 

 

 

IV. 집필 동기

 

 

 

 

바오로는 로마서를 테르티우스라는 사람에게 받아쓰게 했다(16,22). 테르티우스가 어디까지 받아썼는지는 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우리는 1,1- 16,23을 단일한 작품으로 여기고 찬양기도문(16,25-27)을 후기의 삽입으로 보는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를 따른다. 바오로가 직접 알지 못한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서간을 써 보낸 상황은 로마서 여기저기에 서술되어 있다:

 

  ①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1,13; 15,23) 저지당했다(15,22). 그래서 그들에게 할 말을 서간으로 대신한 것이다.


  ② 바오로는 이방인들을 위한 자신의 사도직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면서(1,5-6; 15,15-16) 직접 로마로 가서 성령의 은사를 나누고자 했다(1,10-12). 그렇지만 그의 희망이 좌절되어 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 유다인과 이방인(1,14) 모두에게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받은 바오로(15,19)는 이미 복음화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을 주는” 역할(1코린 3,6)을 하기 위해 로마서를 작성했다.


  ③ 바오로는 복음화하지 않은 지중해 동부의 모든 곳 (예루살렘에서 일리리큼에 이르는 주변 지역)에서 복음 선포를 완결하기까지 로마에 가지 못했는데(15, 19-21), 이제 완결했기 때문에 로마를 거쳐 로마 제국의 서부 스페인으로 가려고 작정했다(15,22-23.28  7세기의 전통으로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사도 12,2]가 스페인에 복음을 전했다는데. 이 연대는 바오로가 로마서를 쓰기 전이다. 이 전통이 맞다면 바오로는 스페인의 복음화를 모르고 있었다고 추리할 수 있다). 로마서는 이렇게 바오로의 복음 선포에 있어 전환점을 이룬 시기에 씌었다. 바오로는 스페인 여행에 그들의 배웅을 받고자 했다(15,23-24). 로마는 제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중간 지점으로서 복음 선포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로마 방문과 서부 지역 복음 선포 계획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서간으로 통보하면서 그들의 지원을 생각했던 것 같다.


  ④ 바오로는 로마로 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전하러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다(15,25). 그러기 위해 그는 두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15,30-31). 유다의 비신자들이 그를 박해하고 또한 성도들이 헌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걱정하면서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로 성원해 줄 것을 서간으로 요청한 것이다.


  ⑤ 바오로는 복음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 걱정했다(9-11장). 그는 이 문제를 이방인들의 구원과 관련지어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스도께 대한 유다인들의 반항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계기가 되고,유다인들이 이 구원을 질투하게 하여 결국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그것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로마의 공동체에 설명하기 위해 로마서를 작성했다.


  ⑥ 바오로는 또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14-15장) 위해 로마서를 썼다. 그들의 갈등은 채식을 주장하는 “약자”와 그렇지 않는 “강자”(14,1-4), 특정한 날을 지키는 약자와 지키지 않는 강자(14,5-12),육식을 하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약한 이들의 태도와 이 규정을 무시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취한 강한 이들의 관점 (14,13-23) 사이의 갈등을 가리킨다(사도 15,20 참조). 바오로는 강자들에게 신학적으로 정당한 자유를 양보하면서 약자들의 세심한 태도를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하라고 당부했다(15,1-6).

 

 

 

 

V. 집필 장소와 연대

 

 

 

 

바오로가 가이오스의 집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로마서를 저술했다(16,23ㄱ). 가이오스는 그가 코린토에서 세례를 준 사람(1코린 1,14)인 것 같다. 또한 바오로는 시 재무관 에라스토스의 인사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했는데(16.23ㄴ), 그는 코린토시의 재무관이었던 것 같다(2티모 4,20 참조). 이러한 관찰은 코린토가 로마서의 작성지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바오로가 코린토의 항구인 캥크레애 교회의 봉사자 포이베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한 것(16,1)도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으면서 로마서를 작성했다고 추측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로마서가 작성된 연대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모금이 계획중이던 시기에 씌어진 코린토 전서(16,1-4)나 후서(8-9장)보다 후대였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로마 15,25-28을 보면 이 계획이 이미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코린토 후서는 예루살렘 사도들이 바오로에게 가난한 성도들을 기억해 갈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기록한 갈라티아서(2,10)보다 후기에 씌었다. 갈라티아서는 49년 이후에 씌었다. 48~49년경에 열린 예루살렘의 공의회에 관해 기록하는 갈라티아서는 49년 이후에 씌었고, 따라서 코린토 전서와 후서는 빨라도 50년 이후에 씌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코린토 전서는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을 동안(1코린 15,32; 16,8; 사도 18,18-19 참조), 더 정확히 말해 에페소 체류 말기(19,1.8.10.21)에 작성한 것 같다. 그는 에페소에 약 3년 동안 체류했다고 볼 수 있다 (19,10-21). 그래서 코린토 전서는 약 51년에서 54년 혹은 52년에서 55년 사이에 씌었다고 볼 수 있겠다. 코린토 전서 16,8을 보면 바오로가 에페소에 오순절까지 있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이 서간이 54년이나 55년 봄 이전에 작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코린토 후서의 작성 연대는 모금 계획에 관한 바오로의 언급에서 추정 할 수 있다. 코린토 전서 16,1-2를 보면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모금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코린토 후서 8,10과 9,2에서는 코린토인들이 “작년에” 모금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코린토 후서 8-9장은 55년이나 56년경에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금 계획이 완성된 시기에 씌어진 로마서의 작성 연대는 55년이나 56년 이후다. 바오로는 에페소를 떠나 트로아스(2코린 2,12)와 마케도니아(12,14)를 거쳐 코린토로 와서(9,4) 석 달 동안 머물면서(사도 20,3) 로마서를 썼을 것이다. 이러한 선교여행을 참작하면 그가 아마 57-58년경 항로가 열려 서간을 전달 할 수 있었던 봄에 로마서를 썼다고 볼 수 있겠다.

 

 

 

VI. 구조

 

 

 

로마서는 서론(1,1-15), 교의 부분을 예고하는 주제(1,16-17), 교의적 가르침(1,18-11,36), 훈계적 내용(12,1-15,13), 바오로의 사도직과 그의 계획(15,14-33), 서간의 결론으로서 인사말(16,1-23)과 결론적 찬미(16,25-27)로 구분된다. 로마서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론 (1,1-17)
    ① 인사(1,1-7)
    ② 감사(1,8-9)
    ③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려는 바오로의 소망.(1,10-15)
    ④ 교의 부분을 예고하는 주제(1,16-17)
1) 교의 부분(1,18-11,36)
    ① 하느님의 의로움과 진노의 계시, 신앙을 통한 의화(1,18-4,25)
    ② 신앙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 생활(5,1-8,39)
    ③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가지는 상관관계 (9,1-11,36)
2)  훈계 부분: 그리스도 안의 생활(12,1-15,13)
    ① 사랑으로 사는 그리스도교적 생활(12,1-13,14)
    ② 그리스도를 본받는 강자와 약자의 공동체 생활 (14,1-15,13)
3) 이방인을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과 그의 계획(15,14-33)
    ① 이방인을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 (15,14-21)
    ② 바오로의 예루살렘과 로마와 스페인 방문 계획 (15,22-33)
4) 인사(16,1-23)
    ① 바오로의 추천과 개별적 인사(16,1-16)
    ②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와 마지막 인사말(16,17-20)
    ③ 바오로 동료들의 인사말과 서간의 필기자인 테르티우스(16,21-23)
5) 마지막 찬양(16,25-27)

 

 

 

 

VII. 신학적 가르침

   

 

로마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교리나 바오로의 신학 전체를 요약한 작품이 아니다. 로마서에는 교회(16,1.4.16.23에 이 말이 나오는데,지역교회를 가리킨다. 16,5에서는 가정교회를 지칭한다),성체 성사, 세말(2,5-11; 13,11-14에 나오지만 극미한 분량이다)에 관한 바오로의 신학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서간에서는 구약 성서의 가르침을 참조하여 하느님의 의로움과 진노, 율법 준행에 의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세례를 통한 죄인의 의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그리스도교적 실존, 죄와 율법의 지배를 받는 인간 등에 관해 가르쳤다. 여기서는 이러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각 주제의 신학적 배경인 구약 성서의 가르침을 소개 하겠다. 상세한 설명은 주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 하느님의 의로움

 

로마서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법적으로 재판함에 있어 당신을 공정한 분으로 드러내시면서도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품성을 뜻한다(1,16-17; 3,5.21.22.25.26; 10,3). 바오로가 가르친 하느님의 의로움은 구약 성서의 가르침에 입각한다. 구약성서에서 “의”[義]란 일차적으로 관계를 뜻한다. 상대방과 관계를 맺기 위해 그가 요구하는 것을 채워야 의로운 이가 된다. 의로움은 하느님과 사람의 올바른 관계 (1사무 12,7; 이사 45,24; 미카 6,5; 시편 103,6; 스바 3,5; 다니 9,16), 사람과 사람의 올바른 관(1사무 24,18)를 지칭 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의인에게 선하고(시편 73,1) 그를 죽음에서 구원하며(116,5) 번창하게 하지만 죄인에게 벌을 준다는 그런 뜻으로 의로우시다(예레 12,1; 참조: 시편 139,19-24). 이러한 현실적 상선벌악 사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적인 믿음이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의인들이 현실적으로 고난을 받고 악인들은 번영하는 현상 때문에 문제시되었다(시편 73,2-). 욥의 운명이 그 좋은 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법적으로 사람들을 재판하시는 행위다. 하느님은 당신 법을 준행하지 않아 계약을 어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법에 따라 심판함으로써 당신을 의로운 분으로 드러내신다(예레 12,1; 호세 4,1-2; 12,3; 미카 6,2; 시편 96,13; 98,2). 하느님의 판단은 공정하다(스바 3,5; 시편 7,9-12; 9,8; 35,26-28; 36,6). 하느님이 사람의 불의를 가차 없이 벌하시면 그분과 사람과의 관계는 차단되고 만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유배 이후에 씌어진 구약 성서를 보면 하느님은 의로운 당신을 또한 자비롭고 성실한 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하셨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당신 백성과의 계약에 성실하심을 서술하고 본질적으로 그들을 위한 구원 행위를 가리킨다(LXX: 이사 9,6[7]; 45,8; 46,13; 51,5.6.8: 예레 23,5; 시편 21,32 ; 39[40],11; 40,11; 50,6.16[51.4.16]; 70[71],24). 하느님의 의로움은 계약에 불충하는 당신 백성을 법적으로 무자비하게 단죄하는 경직된 심판 행위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는 자비의 힘으로 나타난다(에즈 9,15; 다니 9,14; 이사 61,10).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 법을 준행하는지 않는지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면서도 당신 구원 약속은 끝까지 성실히 지키신다는 그런 뜻으로 의로우시다(느헤 9,8). 이렇게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그분의 사법적 판결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그분의 자비에 뿌리내린다.

 

이스라엘 백성의 의로움은 하느님과 그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토대인 율법 준수와 직결된다. 하느님은 당신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고 율법 규정을 지키는 사람을 의로운 이로 판정하시는 분이다(시편 1,5-6;119,1-8; 이사 61,8; 에제 18,19.21; 말라 2,17). 그들은 악을 피해 의로운 마음, 의롭고 진솔한 인격자가 됨으로써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준행하고 의롭게 된다(LXX 시편 72[73], 13).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인은 원수들이 주장한 사형 선고에서 해방된다 (하바 2,4). 그렇지만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다 (욥기 4,17; 에즈 9,15). 하느님의 법정에서는 아무도 율법 준행으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시편 143,2) 그분은 법대로 사람을 단죄만 하지 않고 죄인을 사실과는 반대로 결백하다고 선언해 주시기도 한다(탈출 23,7).

 

바오로는 주로 하느님의 의로움에 관한 유배 이후의 해석, 즉 당신 의로움을 자비의 힘으로 보여주신다는 가르침을 참조해서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과 부활에 입각한 의화 신학을 로마서에서 발전시켰다. 구약 성서에 계시된 대로 당신 백성과 맺은 계약에 성실하시는 하느님은 당신 의로움을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셨고, 이 의로움이 복음 안에 계시된다. 의로우신 하느님은 이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을 법적으로 의롭게 하셨다(3,25.26; 4,5; 8,30.33). 그리스도는 의화의 중개자시다(5,9.17.19.21). 의화는 율법준행에 달려 있지 않고(2,13; 3,20.21;   4,2.6; 9,31; 10,3.5) 신앙(3,22.24.26.28.30; 4,3.5.9.11.13.22; 5,1; 6,16; 9,30; 10,4.6)과 세례(6,7)로 이루어진다. 의로움은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6,18.19.20). 의로우신 하느님은 죄인에게 진노하시는 분이다.

 

 

나. 하느님의 진노

 

하느님의 진노는 당신의 법을 위반한 죄인을 벌하시는 행위, 당신 의로움을 무시한 범죄 행위에 대해 정당하게 보복하시는 행위를 뜻한다.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서술한 하느님의 진노 사상은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근거로 한다. “야훼의 진노”는 당신께 충실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 (이사 5,25; 예레 21,12; 40,5 LXX; 스바 2,2-3)과 이방인들의 악한 행동(3,8; 이사 26,20-21)을 벌하시는 하느님의 부정적 반응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당신의 절대주권을 우상 숭배로 침해하고 유일신 신앙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탈출 32,10; 신명 11,16-17; 이사 2,20; 예레 39,31- LXX; 에제 5,11-; 2역대 24,18). 하느님의 진노는 당신과 계약 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계약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행위를 뜻한다(에제 5,13; 호세 5,10; 2역대 36,16). 이러한 심판으로써 하느님은 당신이 계약에 성실하여 일관성있고 불변하는 분임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억압하는 이방 민족들에게  진노하신다(이사 10,5-11; 에제 36,5-6; 예레 51[28],11). 예언자들은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결정적 심판을 예고했다(스바 1,14-2,3). 땅 위의 모든 주민들(1,15.18)과 죄인들(아모 5,18-; 이사 2,6-21; 13,9.13; 에제 21,36[31])이 하느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인류 역사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실 것이다. 진노의 날에 하느님은 의로운 사람들을 구원하지만(시편 84[85〕; 다니 12,1-2) 죄인들은 벌하실 것이다(스바 1,18).

 

 

 

   

하느님의 진노 사상은 그분이 죄악에 대해 무조건 혹은 자동적으로 응징(인과응보)만 하시지 않고 죄인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신다는 믿음에 연결되기도 한다(요엘 2,13). 주께서는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넘치시나이다”(시편 103,8). 하바꾹 예언자가 “진노 중에 자비를 기억하소서”(하바 3,2)라고 기도한 것도 하느님이 죄인을 벌하기보다 자비를 베푸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희망했음을 뜻한다. 로마서에서 바오로는 예언자들이 예언한 세말의 진노가 죄인들의 인격 안에 실현되고 있고(1,18-) 하느님의 결정적 상선벌악으로 완결된다(2,8)고 가르친다. 하느님이 회개 기회를 주셨는데도(9,22-23) 율법을 어기고(4,15) 회개하지 않는 그들은 세말의 결정적 심판을 면할 수 없다(2,5.8). 죽음으로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진노에서 구원된다(5,9). 진노는 하느님께만 유보된 특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12,19). 하느님에게서 통치권을 받은 이들은 그분의 진노를 대행한다(13,4-5).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것은 영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영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힘이다.

 

 

다. 성령

 

사람은 영의 힘으로 재생되고 하느님을 위해 살 수 있다. 로마서에서 바오로는 “거룩함의 영”(1,4), “생명의 영” (8,2), “하느님의 영” (8,9.14), “그리스도의 영”(8,9), “영” (2,29; 7,6: 8,5.6.9.10.13.16.23.26.27; 12,11; 15,30). “성령”(5,5; 9,1; 14,17; 15,13.16.19),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 (8,11), “양자 신분의 영” (8,15), “영에 따라서” (8,4.5)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바오로는 구약 성서에 서술된 하느님의 영이 하는 역할을 참조했다. 구약 성서에서 가르치는 “영”의 원초적 뜻은 이러하다. 칠십인역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어 프네우마는 히브리어 루아흐의 번역이다(277번). 이 히브리어는 원래 “넓다” (예레 22,14)라는 말에서 나왔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뜻이다. 넓은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대기권, 공간(창세 32,16), 허공, 허무(예레 5,13; 미카 2,11; 이사 41,29)를 가리킨다. 대기권은 “인간이 움직이는 생명의 공간, 생명의 영역”을 지칭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뜻으로 는 “영”이 생명의 영역에 연결된다. 또한 이 뜻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의미로 분화했다:

 

 

 

 

    ① “영”의 히브리 원어 루아흐는 네 방위方位의 기점을 뜻한다. 온 세상이 “네 방위” (루호트/타 프네우마: 에제 37,9)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② 방위 개념은 바람이 불어오는 기점에 연결된다. 방위의 기점을 뜻하는 위의 히브리어는 이렇게 이차적 응용을 통해 “바람”을 뜻하게 되었다. 루아흐라는 말은 광풍이나 파괴적 바람(탈출 15,8; 이사 7,2; 32,2; 예레 2,24; 4,11; 13,24), 미풍(욥기 4,15), 생명의 숨결(애가 4,20), 이로운 바람(아가 2,17), 떠도는 바람(시편 18,10; 104,3)을 뜻한다. 프네우마라는 말은 “영”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영은 바람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③ 앞에서 살펴본 네 방위라는 물리적 공간의 뜻이 심리적 공간의 뜻으로 발전했다. 사람의 처신과 성격과 성향은 그가 삶의 공간, 즉 대인 관계나 주위 상황에 대처하는 양상에 달려있고, 이 양상이 그의 영(인간의 영)을 상징한다. 교만한 자는 “영이 높다” (잠언 16,18; 전도 7,8), 겸손한 이는 “영이 낮다”고 표현된다(잠언 29,23). 사람이 다른 이들로부터 억압당할 경우 그의 영이 부서지거나 의기소침하다고 말하고(탈출 6,9) 번민에 빠지는 사람의 경우(욥기 7,11; 21,4)는 “영이 짧은”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인내심이 많은 사람은 “영이 길다”라고 서술된다(전도 7,8). 사람이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 그에게 해로울 때 그의 영이 쓰라리고(창세 26,33) 굳어지고(신명 2,30) 고통스러우며(이사 65,14) 부서진 미음을 가지게 된다(시편 34,18). 사람의 인간됨은 이렇게 영을 어떠한 양상으로 가지는가에 달려 있다. 하느님이 유배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영”을 넣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도 그들을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겠다는 것을 뜻한다(에제 36,26).
   

   ④ “영”(프네우마)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루아흐)는 “숨결”로서 생명력을 뜻한다. 영은 하느님이 죽을 인간들 안에 잠정적으로 머물게 하실 당신의 생명력을 지칭한다(창세 6,3). 하느님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기 위해 영을 파견하신다.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의 영에 연유한다(욥기 27,3; 33,4; 34,14-15; 시편 104,29; 이사 42,5; 에제 37,1-14). 하느님이 당신 영을 보내시면 새로운 창조와 재생이 이루어지고 영을 거두어들이시면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 그분의 영은 그분께로 되돌아가며(코헬 12,7), 사람은 먼지로 되돌아가고 만다(시편 104,29-30). 바람으로서의 영은 신비스럽고 무서운 힘(욥기 38,24)을 가진 하느님의 창조력을 뜻한다(창세 1,2; 6,17; 7,15; 2사무 22,16; 욥기 33,4; 시편 33,6; 이사 32,15; 코헬 3,19.21). 영은 또한 하느님의 콧구멍에서 나오는 진노의 숨결로서(시편 18,16) 우물들을 말리고(호세 13,15) 심판의 도구다(이사 30,27-28).

 

 

하느님의 영은 그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활동하는 신적 힘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영을 “보내시다” (시편 104,30; 이사 48,16), “주시다” (63,11), “쏟으시다” (이사 32,15; 에제 39,29; 요엘 3,1-2)라는 말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런데 구약 성서에서 하느님의 영은 인격적 실재가 아니라 그분의 힘을 표현하는 원리다. 하느님의 영은 선택된 사람들에게 초인적 힘을 주어 그분 백성을 구원하고 다스리고 승리를 가져다주게 한다. 모세(민수 11,17.25). 여호수아(17,18; 신명 34,9),다윗(1사무 16,13; 2사무 23,2), 엘리사(2열왕 2,9)와 메시아 왕(왕적 메시아: 이사 11,1-2; 하느님의 종: 42,1) 위에 내린 하느님의 영은 그분의 힘으로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게 했다. 하느님의 영은 또한 기적적이고 신체적 힘의 원천으로서 선택된 이들 안에 임하여 예언을 하게하고(민수 24,2; 2역대 15,1),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고(에제 11,5) 그들을 가르치며(이사 11,2) 억눌린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게 했다(61,1). 하느님의 영은 바람과 같이 장로들(민수 11,25), 예언자들(1사무 10,5-13; 19,20; 1열왕 22,10- 12,21), 사울과 그의 사자들(1사무 10,10; 19,20-24) 위에 내려 황홀상태에 빠지게 했다. 또한 영은 온 백성 위에 내려(이사 32,15; 44,3; 에제 39,29; 요엘 2,28-29) 새로운 마음을 주고 그들을 윤리적으로 재생시키는 힘으로 활동한다(에제 36,26). 로마서에서 “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생명의 영역을 상징하고 생명의 숨결이나 강력한 바람과 같이 죽음을 파괴하는 힘이다. 내뿜어진 숨결이 누구의 것인지 식별하기 어렵듯이, 또한 아무도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듯이(요한 3,8),숨결과 바람을 뜻하는 영이 하느님의 영인지 그리스도의 영인지 항상 분명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로마8,9-11). “영”이 “그리스도”와 병행되기도 한다(8,10.11). 또한 성령은 바오로의 복음 선포 안에 현존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안에 신앙을 창조하고 그들을 성화시킨다. 영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지 못한 타락한 인간, 죄와 죽음과 율법의 지배하에 얽매인, “육을 따르는” 인간 안에 구원을 실현시켜 그를 영적 인간으로 재생시킨다. 영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현존 속으로 인도하여 부활생명을 전해주는 중개 역할을 한다. 영은 평화로운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창조하는 힘이다. 영은 사람을 죄에서 해방하는 힘이다. 아담의 죄 때문에 구세사를 펼치신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을 통해 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셨다.

 

 

라. 죄

 

바오로는 구약 성서에서 가르친 대로 “표적을 빗나가다. 법을 어기다. 윤리적 목표나 기준에 다다르지 못하다”라는 죄의 기본 뜻을 토대로 죄가 인간의 본성, 양심, 율법을 어겨 하느님께 반항하는 행위라고 가르쳤다. “죄”의 어원적인 뜻은 이러하다. 칠십인역 구약성서에 나오는 “죄”(하마르티아)와 “죄를 짓다”(하마르타네인)라는 두 말의 뜻은 다섯 가지 히브리어의 어원적인 뜻에 연결된다 :

 

 

    ① 이 두 말은 종교적인 뜻으로 “표적을 빗나감, 실패”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번역이다(창세 20,6.9: 탈출 32,30-31; 예레 5,25). 거의 대부분이 이 히브리어의 번역이다. 죄를 짓는 자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기대된 것을 채우지 못 한다는 것이다.

 

   ② “죄”와 “죄를 짓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비뚤어진, 왜곡된 조건”을 뜻한다. 죄를 짓는 자가 표준에서 벗어나 마음이 비뚤어지고 변형되며(이사 59,3), 그의 인격이 범죄로 인해 지속적인 결함을 입는다는 뜻이다(5,18). 표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처신은 교정 되어야 한다. 이러한 뜻으로 위의 히브리어는 “과실, 죄책”(14,21)으로 번역될 수 있다.

 

   ③ “죄를 짓다’라는 그리스 말의 히브리 원어는 “반항하다. 배반하다”를 뜻한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의 계약에 불충실하여 반항하는 짓(이사 58,1; 시편 19[18],13; 32[31],5)과 인간 관계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이사 53,5.11; 잠언 10,19; 12,13; 29,16).

 

   ④ “죄”와 “죄를 짓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느슨한, 잠자는, 빚이 있는, 악의 있는”을 뜻한다. 맡은 역할이나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킬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자다(시편 50[49],16). “죄인”(하마르톨로스)이라는 말도 대부분이 히브리어(악한 자, 불의한 자)의 번역어다. 죄인은 악한 짓을 행하고(시편 3,7; 28[27],3; 34[33],21; 36[35], 11,12; 55[54],3) 거짓을 일삼는 자다(58[57],3).

 

   ⑤ “불충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이라는 말은 윤리적 규범에 따라 야훼께 충실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 고백에서 사용되었다(2역대 12,2).

 

 

구약 성서에서 죄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 하느님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인간의 역사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 죄는 하느님께 연유하지 않고 그분께 대한 인간의 불순종으로 시작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그 결과로서 죽음을 당하게 되고 후손들에게도 죽음과 불행을 초래했다. 죄는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창세 6,5; 1열왕 8,46; 이사 64,5-7; 예레 9,14; 코헬 7,20; 집회 8,5). 죄는 연대적 범죄, 즉 동시대인끼리(창세 11,1-9; 2사무 24,1-17; 민수 16,22)와 다음 세대의 사람들과 연대성(시편 79,8; 탈출 20,5; 34,7)을 조성한다. 하느님이 잘못을 헤아리신다면 아무도 소생할 수 없고(시편 130,3),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결백하거나 의롭지 못하다(욥기 4,17; 15,14-16).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과 계약을 맺고 계약에 충실할 것을 명하셨다. 죄는 그들이 하느님의 뜻인 율법을 어겨 그분과 이웃에게 불충하는 것을 뜻한다.

 

로마서에서 바오로는 죄의 기원에 관해 창세기 2-3장에 묘사된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참조하여 죄가 아담의 출현과 함께 인류 역사 안에 들어와서 죽음을 초래한다고 가르쳤다(5,12-14.17.19.21). 바오로는 구약 성서에 서술된 죄의 뜻을 참조해서 모든 사람의 범죄와 파멸의 연대성을 강조했다. 아담의 범죄와 각자의 범죄는 모든 사람이 연대적으로 당하는 불행과 죽음에 영향을 준다(5,12.16ㄱ. 20.21). 또한 바오로는 죄를 율법과 관련지어 논했다. 죄는 율법을 어기는 행위이고 율법을 통해 파괴력을 행사하는 힘이다(7,7-25). 유다인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이방인은 양심에 저촉되는 짓을 행함으로써(2,12-15),모든 사람이 범죄했다(3,23).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과 부활로 죄의 힘을 파괴하고(8,3) 세례를 통해 죄에서의 자유에 참여하게 하셨다(6,1-2.6.11.12.17.18.20.22.23). 죄인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의롭게 되고(3,9; 4,7-8) 복음을 통해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6,17). 의화한 이는 하느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에 따라 삶으로써 죄의 힘을 이겨내고(8,2) 부활의 생명을 누릴 수 있다(8,10).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전개한 주제, 즉 하느님의 의로움과 의화, 은총, 죄, 예정설 등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은 소위 종교 개혁 시대에는 하나인 교회를 분열시킨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오늘날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성서학자들은 로마서를 정확하게 해석함으로써 교회 분열에 악용된 로마서의 메시지를 바오로의 의도에 따라 교회일치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로마서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서간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