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권요셉 2014. 8. 14. 22:45

성모 마리아(Vigin Mary) 승천축일
 

 

 

 축일

 8월 15일   

 신 분

 예수의 어머니  

 활동지역

 이스라엘, 에페소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복되신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로 공경 받으시고 신도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49) 하신 마리아의 예언대로 특히 에페수스 공의회(Council of Ephesus) 이후로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이 같은 마리아 공경이 비록 온전히 독특한 것이긴 하나,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부께서 성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골로 1,15-16), 성자 안에 모든 충만함이 머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골로 1,19;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66).

 

성모 마리아에 관한 축일은 다음과 같다.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선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12월 8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8월 22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1월 21일,

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9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 31일,

루르드(Lourdes)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7월 16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0월 7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5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교황 비오 12세의 교황령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에서
(AAS 42 [1950], 760-762. 767-769)

 

 

당신의 육신은 거룩하고 영광스럽도다

 

 

교부들과 위대한 교회 학자들이 천주의 모친 승천 축일을 맞아 그리스도교 백성들에게 행한 강론에서는 성모 승천을 모든 그리스도교 세계가 이미 알고 또 인정한 교리로 보고 있다. 강론에서 그들은 이 교리를 좀더 길게 설명하고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의미를 더 깊이 밝혀 낸다. 그들은 특히 이 축일이 기념하는 것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육신이 부패를 벗어났다는 것만이 아니라 성모님이 당신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죽음을 이기시고 천상 영광을 얻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 전승의 해설자로서 탁월한 위치를 지니는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은 천주의 모친 마리아의 승천 교리를 성모님께서 받으신 다른 고귀한 은혜 및 특권과 비교하면서 웅변적인 말로 이렇게 갈파한다. "아들을 낳으실 때 아무 흠 없이 동정성을 간직하신 그 분께서 사후 당신의 육신을 아무 부패 없이 간직하셔야 마땅했다. 태중에 창조주를 모셨던 그분은 하느님의 집에 거처하셔야 마땅했다.


성부의 정배가 되신 성모님께서는 하늘의 신방에 거처하셔야 마땅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 아드님을 바라보시며 아드님을 낳으실 때 피하신 그 고통의 칼로 당신의 심장이 찔리우신 그분은 아드님께서 영광 중에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것을 바라 보셔야 마땅했다. 천주의 모친께서 아드님이 지니신 특권들을 누리시고 천주의 모친과 여종으로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공경을 받으셔야 마땅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제르마누스는 천주의 모친이 되시고 동정 육신의 거룩함을 지니신 성모 마리아께서 그 육신이 부패되지 않으시고 또 승천하신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성 제르마누스는 말하고 있다. "다윗이 기록한 대로 당신은 '아름답게 나타나시고' 동정인 당신의 육신은 온전히 거룩하시며 온전히 정결하시고 온전히 하느님의 거처가 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육신은 무덤의 부패를 모르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시면서 불사 불멸의 빛 속에서 변모되어 새롭고도 영광스러운 생명을 얻어 온전한 해방과 온전한 생명을 마땅히 누리셔야 했습니다."

 

또 다른 옛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주고 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시며 생명과 불사 불멸을 베푸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러운 모친께 생명을 되돌려 주시고 모친으로 하여금 당신 육신을 불사 불멸에 참여케 하시며,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시고, 당신께로 취하여 승천하게 하셨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는 그리스도만이 알고 계시다."

 

교부들의 이 모든 논증과 말씀은 궁극적으로 성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실 성서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천주의 모친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아드님과 결합되어 언제나 당신 아드님과 결합되어 언제나 당신 아드님의 위치에 참여한 분으로 나타나신다.


기억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2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부들은 동정 마리아를 새 아담과 밀접히 연관되고 그에게 종속된 새 하와로 제시해 주면서 모친과 아드님께서는 지옥의 원수와 투쟁하는 데 언제나 함께하시고, 또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 투쟁에서 사도 바울로가 언제나 연관시키는 "죄와 죽음"을 함께 누르시고 함께 완전한 승리에 도달하게 되시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은 이 마지막 승리의 본질적 부분이고 상급이었던 것처럼 복되신 동정녀께서 아드님과 함께한 그 투쟁도 성모님의 동정 육신이 영광을 받음으로써 끝맺어야 했다.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원한 같은 예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 오묘히 결합되시고 원죄 없이 잉태되시며 천주의 모친 되심에도 동정을 보존하시고 죄와 그 결과 곧 죽음을 완전히 이기신 우리 구속자의 인자로운 동반자가 되신 위대한 천주의 모친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모든 특권으로써 죽음의 부패를 피하시고, 당신 아드님처럼 죽음을 이기시어, 영혼과 육신을 지니신 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영광으로 이끌어 올리심을 받으셨다. 천주의 모친께서는 그 곳에서 세세 대대 불사 불멸의 왕이신 당신 아드님의 오른편에서 여왕으로 빛나고 계신다.

 




성모 승천 대축일: 사랑이라는 구원의 징표(8월 15일)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상징을 본다. 우리는 무언가 의미하는 바를 드러내려고 기호 같은 것을 쓴다. 간판글씨도 그렇고 거리의 교통 신호등 색깔도 마찬가지이다. 이 가운데 어떤 강한 메시지를 띠고 있는 상징으로 고유한 것을 ’징표’ 또는 ’표징’이라 말한다. 이 가운데서도 고전적이고 흔한 징표를 들라 한다면, 아마도 ’사랑의 징표’를 말할 수 있겠다. 옛날에는 연인 사이에 그들만의 사랑의 징표로 어떤 물건을 주고받거나 나누어 갖기도 하였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는 흔히 광고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자 메시지로 그 징표를 나타내기도 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통신 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이거나 항구한 징표들을 볼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변함없는 태도와 일관된 자세는 항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자세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태도도 하나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징표와 표징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내용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 신앙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러한 징표를 잘 읽어야 한다. 교회생활 자체가 수많은 표징과 상징들로 싸여있다. 우리 신앙의 가장 큰 바탕은 ’주님 부활에 대한 신앙’이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 인간들 가운데(역사 안에서) 사시다가, 수난하시고 고통을 받으셨으며, 십자가 죽음을 맞으셨다는 것,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셨다는 것과 그 성령의 힘으로 우리 교회가 살고 있음을 믿고 있고 실재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보증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의 징표는 어디에 있는가? 복음서를 보면, ’빈 무덤 이야기’가 그 징표로 나온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주님은 계시지 않고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활의 징표이다.

 

8월 15일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이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많다. 우리는 성모님께 대한 공경과 신심이 매우 큰 편이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이날을 큰 축일로 지낸다. 또 이날은 우리 나라의 광복절이다. 해방 기념일이다. 그래서 성모님의 승천과 연관지어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 성모 승천은 하느님께서 가장 온전한 인간이신 성모님의 영혼과 육신 모두를 당신의 하늘나라로 불러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교회의 모델이신 성모님을 따라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성모 승천 대축일은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한 것일까? 일찍이 초대교회 때부터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신심은 있었다. 하지만, 전례문에 나타나는 것은 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처음에는 ’성모님의 안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신심이 확대되자 9세기에 와서 ’성모 승천’이란 말이 나온다.

 

중세를 지나는 동안 성모님 승천에 관한 영성과 신심이 더욱 확산되어, 천주의 모친 대축일이었던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지내고, 천주의 모친 대축일은 1월 1일로 옮겨 지내도록 하였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게 된다. 성모 공경과 함께 성모님께서 온전히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징표로 성모님이 승천하셨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성모님의 ’빈 무덤에 대한 징표’이다. 처음 전례문에 나온 ’성모님의 안식’이란 표현대로, 성모님도 돌아가셔서 무덤에 묻히셨다. 하지만 무덤이 빈 것이다. 확신을 갖지 못하고 성모님을 공경하였지만,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승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성모님의 빈 무덤을 승천의 징표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뒤따르는 본보기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커다란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주님 사랑의 징표가 성모님의 승천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이 제일 먼저 성모님에게서 이루어졌고, 이제 우리에게 그 약속이 실현될 것임을 성모님의 승천이라는 표지로 드러내주신 것이다.

 

성모님은 교회의 모델이자 우리들의 모범이시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열자. 그래서 생각과 말과 행위들이 성모님처럼 하늘을 향한 진정한 자유인이 되도록 묵상해 보자. 


<나기정 다니엘 신부,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0년 8월호>

 


 

'성모승천 대축일'과 '성모승천' 교리

 

 

하느님 영광 보여주는 구원의 표징


 

 

 

(사진설명)
성모 승천 교리는 장차 우리도 받게 될 하늘의 영광을 보여주는 구원의 표지다. 그림은 니콜라스 푸신의 '성모 승천'(1626년, 워싱턴국립갤러리).   그림 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으로 '거룩한 동정녀'이며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충만한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아 '승천'했음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다.

 

'원죄 없는 잉태'가 구원의 첫 열매인 성모 마리아 신비의 출발점이라면 하늘에 올림을 받은 '승천'은 성모 마리아 신비의 종착점이다.

 

원죄 없이 태어난 분은 원죄에 물든 이들과 똑같이 죽음을 맞아 부패의 무덤에 머물 수 없다. 따라서 성모 승천은 마리아가 근원적으로 구원받은 분임을 의미한다. 아울러 장차 우리도 받게 될 하늘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므로 영원한 생명을 믿는 신자들에게 구원의 표지이다.

 

주지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승천과 마리아 승천은 확연히 구별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신적 권능으로 스스로 승천했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 능력에 의해 하늘로 들어올림를 받았다. 그래서 성모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 '피승천'(被昇天)이라고도 불렀다.

 

성모 승천은 마리아가 구원 역사 안에서 거룩한 동정녀이며 하느님 어머니로서 지니는 '특권'이다. 그러나 이 특권은 우리 자신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 자신이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닮으면 닮을수록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기 때문이다.

 

'성모 승천'이 신앙 교리로 선포된 것은 반세기에 불과하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년 재위)는 1950년 11월1일 희년의 '모든 성인의 날' 축일을 맞아 사도적 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원죄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졌다"며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16)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교회헌장」 59항)고 고백했다.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966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에는 십자가 아래 계신 마리아(요한 19,25-27)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성령이 오시길 기다리는(사도 1,14) 모습 이후 성모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그러나 초기 교회 공동체부터 성모 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하늘로 들어올려졌다고 믿어왔다. 이 전승을 뒷받침하는 한 사건이 있다. 칼체돈 공의회(451년)를 소집한 로마의 마르치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의 세례자 유베날리에게 성모의 유해를 인도할 것을 요청했지만 성모가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인근 발케르네에 성모 승천 기념 경당을 세웠다.

 

교회는 4세기께부터 성모 승천 축일을 기념해 왔다. 5세기 초부터 예루살렘에서는 해마다 8월15일이면 '하느님의 어머니(Teotokos)' 축일을 지냈다. 이 축일은 6세기께 '성모 안식 축일(Dormitio-일시적으로 잠에 떨어짐)'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8세기에 들어 '성모 승천 대축일'로 확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1970년 「미사경본」 개정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전야 미사가 있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돼 마리아 축일 중 가장 중요한 날로 자리잡게 됐고, 한국 교회는 이 날을 의무 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편 한국 천주교 용어위원회는 2000년 「가톨릭교회 공식 용어집」을 간행하면서 '몽소승천', '피승천', '소천' 등의 말이 모두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 '성모승천'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평화신문, 제883호(2006-08-13), 리길재 기자]

 



 

마리아의 승천

 

 


- 마리아의 승천, 페터 파울 루벤스. 1613년. 458×297cm. 빈 미술사 박물관.

 


마리아의 삶을 훑어보면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사는 동안 기쁨과 은총도 많았고, 슬픔과 고통은 그보다 더 많이 겪었다. 신성을 잉태하고 인류를 구원하실 분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이천 년 전 한 시골마을 이름 없는 처녀로서는 쉽사리 감당하기 힘든 운명이었을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스물 네 해나 더 살았다고 한다. 처음 천사를 만나서 아기를 점지 받았을 때가 열네 살이었고 이듬해 아기를 낳았다니까 여기에 예수님이 살았던 서른 세 해를 더하면 마리아는 일흔 살이 넘도록 수를 누린 셈이다. 물론 기록에 따라 임종 시점을 조금씩 다르게 보기도 한다.


성서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제노바의 주교 야코부스 다 보라기네가 쓴 「황금전설」에는 마리아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주교 야코부스는 13세기말, 그때까지 전해지던 수많은 성자전과 관련 문헌들을 수집하고 비교하면서 성서의 인물들과 성인들의 삶에 대한 기록들을 가감 없이 정리해두어서 교회전례력의 기초를 이루고 또 성 미술의 주제를 다루는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마리아는 노년에 산중에 은거하면서 단식과 기도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사무치는 마음이 피어올라 먼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의 생각이 마리아의 흉중을 사로잡는다. 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솟으면서 마음을 흔들었다. 그 순간 마리아는 천사를 목격한다. 빛나는 광채를 뿜으며 날아온 천사는 손에 들고 있던 종려나무 가지를 마리아에게 건넨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한다. 첫째, 그리운 예수의 제자들을 살아 있는 동안 두 눈으로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둘째, 못된 사탄이 당신의 영혼에 근접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건넨 종려나무 가지에는 어린 새순이 파랗게 나 있었는데, 잎사귀 하나하나가 마치 샛별처럼 아름답게 빛났다고 한다.


제자들이 마리아를 뵙기 위해 모인다.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마침 에페소에서 설교를 하고 있던 요한은 난데없이 흰 구름이 엉기면서 벼락이 치더니 곧 하늘로 들려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리아의 대문 앞에 내려섰다. 마리아는 아들처럼 사랑하는 요한을 보자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근심을 털어놓는다. 유다인들이 마리아가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시신을 훔쳐다 태우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 순진한 요한이 혼자서 마리아를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흘리는데, 때마침 다른 제자들이 모두 구름을 타고 마리아의 집 앞에 도착하면서 한 시름 놓았다고 한다.


여기서 수증기나 불포화 대기가 상승기류를 타고 응결점에 도달해서 생성된 구름이란 놈이 어떻게 인간을 탑승시킬 수 있으며, 항로표지장치도 없이 무슨 수로 마리아의 집으로 달려올 수 있었는지 신통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문제야 공학도들이 해결할 문제고, 그림 그리는 화가들로서는 그날 마리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인 등장인물의 머릿수만 맞추면 되니까 공연한 일에 골치 썩일 필요가 없다.


루벤스는 「마리아의 승천」을 열두 차례나 그렸다. 똑같은 주제를 싫증도 안 내고 줄기차게 붙들고 있는 것도 어지간한 뚝심이지만, 빈 미술사박물관에 있는 작품은 높이가 4.58m나 되는 제단화라서 보는 사람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림 앞에 서면, 그림 속 기적을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림 속 실물대 크기의 등장인물들이 그림 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승천하시는데, 밝고 고운 노랫소리가 하늘 가득히 울려나왔다고 한다. 아기 천사들은 그림에서 회오리바람처럼 휘감아 도는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자연스러우면서 생동감 넘치는 역동적인 구성은 루벤스의 장기이다. 루벤스는 그림을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누어서 마리아가 승천하는 장면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장면을 함께 재현한다. 마리아가 묻혔던 빈 무덤에는 웬일인지 시신은 간 데 없고 옷과 장미와 백합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마리아가 무덤에 남기신 옷은 믿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가령, 노르망디 공작이 샤르트르를 침공했을 때였다. 샤르트르의 주교가 창끝에 마리아의 옷을 걸어서 깃발을 만들자 시민들은 두려움 없이 적군과 맞싸우기 위해 돌진했고, 깃발을 본 적군병사들은 모두 눈이 멀거나 미쳐서 사시나무 떨 듯 몸을 흔들다가 뻣뻣이 굳어서 죽어갔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또 지상에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승천하셨는데, 이것을 두고 여러 교부들이 그 까닭을 설명한다. 가령 성 베르나르도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하시고 지상에 많은 성지를 만들어 우리에게 순례지를 정하셨는데, 굳이 마리아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는지 되묻는다.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과 약간 차등을 두는 의미에서 마리아는 하늘로 불러들이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서 성삼위일체론과 삼단논법을 무척 애용하는 성 아우구스티노는 세 가지 근거로 마리아의 육신 승천을 뒷받침한다.


첫째, 그리스도와 마리아는 한 가지 같은 몸인데 무릇 인간의 죄 많은 육신들처럼 벌레나 부패가 스며들 수 있겠느냐. 둘째, 그리스도의 보좌(寶座)가 하늘나라에 거한 것처럼 마리아의 고귀한 존재도 천상에 처소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 셋째, 마리아의 몸은 온전히 정결하시며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낳으실 때도 온전히 정결하셨으니, 그로부터 영원히 온전하고 정결해야 함은 마땅한 노릇이 아니겠느냐.


책을 뒤적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성 아우구스티노는 영성도 뛰어나고 머리도 엄청 명석한 천재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마다 족집게로 정답을 가르쳐 주니 여간 고맙지 않다. 화가 루벤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굳건한 신학의 토대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라도 제단화를 그리는 붓이 이처럼 신바람을 내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가톨릭신문, 2004년 10월 24일, 노성두]

 


 

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와 의미

 

성모 승천, 구원의 영광 보여주는 희망의 표지

 

 

 

 

 


 - 성모 승천 대축일은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림은 예루살렘 성모영면성당에 있는 '성모 승천' 이콘.

 


8월 15일은 성모 승천, 즉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이날 모든 신자는 주일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 지내면서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를 짚어본다.


 

▨ 성모 승천 교리

 

성모 승천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다. 성모 승천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이는 4세기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오다. 당시 많은 교회 문헌이 승천을 비롯한 성모 마리아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에피파니오 주교는 성모 승천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했다. 지나친 성모 공경을 우려한 까닭이다.

 

성모 승천 교의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6세기 투르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다. 성모 승천 교의는 8세기 들어 신학적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 알베르토(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등 신학자와 베네딕토 14세 교황(재위 1740~1758)이 이를 확인했다. 1870년께부터 교황들은 성모 승천 교의를 공식화하자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마침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 승천을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했다. 195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교회헌장」 59항)며 성모 승천을 정통 교리로 재천명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신적 권능에 의한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부른다. 성모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마찬가지로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영광에 들게 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

 

교회가 언제부터 성모 승천을 성대하게 기념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은 4세기께 안티오키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가 성모 승천을 공적으로 기념한 것은 5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축일로 지내면서부터다. 교회는 6세기께 이 축일을 '성모 안식 축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교회는 순교자와 성인들을 그들의 선종일에 맞춰 기념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성모 마리아가 하늘나라로 올림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성모 안식 축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동로마 제국 황제 마우리치우스(582~602)는 제국 전체가 이 축일을 지내도록 했다.

 

이 축일이 로마교회에 전해진 것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피난 온 동로마 제국 내 수도원들 영향으로 추측된다. 세르지오 교황(재위 683~701)은 다른 성모 축일에서처럼 이날 행렬을 하도록 권함으로써 축일을 더욱 성대하게 지내는 데 기여했고, 레오 4세 교황(재위 847~855)은 팔부 축일로 지정했다. 니콜라오 1세 교황(재위 858~867)은 이 축일을 부활 대축일, 성탄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과 같이 대축일로 기념하도록 했다. 교회는 16세기 '로마 성무일도'에 성모 승천 팔부 축일을 삽입했다. 1970년 미사 경본 개정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전야 미사가 인정되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됐다.

 

현재 성모 승천 대축일은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과 함께 교회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 가운데 하나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마리아 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함께 신자들이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축일로 지낸다.
 

 

▨ 성모 승천 의미

 

교회가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각별한 영예와 공경을 드리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구세사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다. 마리아는 처녀임에도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순명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데 일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사업의 뛰어난 협조자가 됐고,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됐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성모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도 육신이 부패되지 않고 영혼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 속에 들게 됐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성모 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의 표지가 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74년 발표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가 바라던 종국적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일"이라고 밝혔다. 성모 승천은 구원의 역사가 완성됐을 때 그리스도를 따랐던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생을 하느님 뜻에 순명한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심순화 가타리나 작 '성모 승천'(2001년).

 

 


 

▨ 성모 신심과 한국교회

 

성모 승천 대축일과 한국교회는 각별한 인연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고, 3년 뒤 같은 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광복절과 대한민국 건국일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면서 신자들 사이에는 해방과 건국이 한국교회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가 도우신 결과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이는 또한 성모신심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사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초창기부터 활발했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꽃을 활짝 피운다.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퍼지던 성모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전수했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승인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서울 명동성당은 1898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또 국내 첫 본토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1932년 설립됐다.

 

한국전쟁 직후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성모기사회 등 성모신심 단체들이 대거 한국교회에 진출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열어 다시 한 번 한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또 1984년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를 마리아께 봉헌했고,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2000년 대희년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위해 묵주기도 3억 단을 봉헌하기도 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이처럼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3년 8월 11일, 남정률 기자]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

 

 


1516-1518년, 690x360cm,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자 디 프라리 성당(베네치아 아카데미 소장)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년)는 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베네치아의 중요한 화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대표적인 피렌체의 화가들이 원근법과 명암법을 중심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이른바 조각적인 형태주의를 추구했다면, 화려한 빛으로 충만한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예술가들은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과 빛을 중심으로 회화적인 색채주의를 확립하였다. 이러한 베네치아 화풍의 정점에 있는 화가가 바로 티치아노이다.

 

장대한 구도와 적색과 청색, 금색의 조화가 눈에 띄는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자 디 프라리 성당의 제단화 ‘성모 승천’은 색채의 마술사로서 티치아노의 천부적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황제 카를 5세와 교황 바오로 3세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카를 5세 앞에서 티치아노가 붓을 떨어뜨리자 황제가 친히 허리를 숙여 주웠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바오로 3세는 티치아노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면서 거절당할까 매우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마리아가 죽은 지 사흘 뒤에 몸과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성모 승천’은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친 뒤 그 영혼과 육신을 지닌 채 하늘의 영광으로 영입되었다는 내용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던 “황금전설”의 ‘안식’에 있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비록 성서에 기초를 둔 것은 아니지만 중세와 르네상스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을 자극했던 중요한 예술적 소재가 되었다.

 

티치아노가 그린 이 작품의 구성은 관례적 표현방식을 따랐다. 곧 지상에서 천상으로 점진적인 행위의 변화에 의거한 것인데, 아래에는 열린 무덤이 있고 그림의 중앙에는 떠오르는 성모 마리아가 있으며 그 위로는 열린 하늘이 있어 모든 천사들과 삼위일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금빛과 붉은 색으로 충만한 화면은 기존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다채로운 색채들이 조화롭게 결합된 것이 티치아노가 추구한 색의 향연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화려한 색의 향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형태와 선이 아름다운 하모니의 리듬 속에서 통일되고 있다. 이런 색과 빛 그리고 형태의 통일감은 하늘과 땅이 ‘알렐루야’를 부르는 곧 기쁨의 향연이 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이 화려한 색채를 통해 화가는 하느님의 섭리와 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쁨의 향연과 함께하고 있는 중앙의 성모는 화려하고 밝은 금색으로 둘러싸여 승천하는 순간의 영광과 광휘를 드러낸다. 크게 펼친 두 팔과 기적에 들떠 상기된 고귀한 얼굴 표정은 이 기쁨의 순간을 대변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성모의 몸을 감기도 하고 허공에 날리기도 하는 성모의 베일과 옷은 아름다운 율동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상승하는 순간의 힘찬 역동성을 실감나게 한다.

 

그럼에도 성모가 입고 있는 옷과 베일의 색이 흔히 성모 승천에서 볼 수 있는 흰색(순결)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녀가 즐겨 입던 청록(가난을 즐겨하는 마음)과 진홍색(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 곧 세속의 마리아의 색으로 표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바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하느님의 품으로 향하는 마리아의 승천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혼과 육신을 분리시켜 표현한 이전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아기 천사 합창단의 모습을 한 지품천사들이 지금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도우면서 환희와 축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이들의 순진무구한 모습은 하느님의 진실한 종으로 살았던 성모 마리아의 독실한 신앙심과 순결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마리아를 가득 비추고 있는 금빛이 그녀의 아름답고 날씬한 모습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는데, 이런 축복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는 하느님을 향해 숭배와 찬양의 몸짓으로 팔을 벌리고 있다. 마리아는 완전한 원의 형상 속에 표현되어 있는데, 그 원의 이미지는 그림 상단의 천상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로 그 천상에서는 평온하면서도 근엄하신 하느님께서 사랑스런 눈빛으로 마리아를 응시하고 계신다. 그 천상에서 모든 것은 금빛 광휘에 싸여 있다.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다. 하느님 곁에는 좀 어두운 그늘로 표현된 대천사가 있어 하늘의 여왕이 되실 마리아를 위해 준비한 왕관을 들고 있다.

 

그림 하단은 지상이다. 여기에 열두 사도의 모습이 있는데, 한 개인으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담처럼 보인다. 곧 개인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전체가 하나의 토대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에 일어나는 기적을 목도하면서 놀라고 두려워하는 이들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다양한 연출로 보이는 이들의 행위는 신앙의 열정에 들뜬 자연적인 행위인데,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입은 옷을 벗어젖히며 마리아의 뒤를 따르려는 이들의 모습에서 사랑하던 성모 마리아의 정신을 따르겠다는 약속이 보이지 않는가? 이들 가운데 무릎을 꿇고 손을 가슴에 댄 사람이 베드로 사도이다. 토마스는 성모 마리아를 손으로 가리키는데,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토마스는 이 주제의 그림에서 때로 마리아의 허리띠를 잡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푸른 옷을 입고 팔을 안으로 펼친 사람은 안드레아이다.

 

기쁨과 환희에 찬 순간을 화려하고 강한 색채를 통해 표현하고 있음에도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근엄하고 고요하며 명상적이고 차분한 분위기가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더욱 강하게 자극한다. 이것이 티치아노의 예술적 재능과 아울러 이 주제에 대한 그의 독창적 해석을 보이고 있다. 티치아노는 그림의 하단 가운데 ‘Ticianus’라는 서명을 자랑스럽게 남기고 있다.

 

*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사 석사, 파리 3대학교(Sorbonne)에서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5년 8월호,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t/tiziano/01a/1assunt0.jpg)

 




성모 승천
 
다른 두 사건을 한 그림에 묘사

 

 


- 작품해설 : 안니발레 카라치, <성모승천> 1592 160*177cm 볼로냐, 국립 미술관


 

1583년 로마에 살던 반디니라는 사람이 볼로냐의 팔레오티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전해진다. 반디니 역시 후에 추기경이 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 고위 성직자였다. 편지에 따르면 반디니는 자신의 경당에 <성모승천>을 한 점 걸기 위해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했는데 문제는 그림 속에 성모님의 빈 무덤을 그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성모승천 당시에는 현장에 있지 않았고, 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서거한지 삼일 후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일을 한 장면에 그려도 되는가 하는 문제에 부닥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팔레오티 추기경은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으므로 전통에 따르라고 충고하면서 성모님의 얼굴을 사망 시점인 60대로 그릴 것을 조언했다. 또한 제자들은 12명 대신 11명으로 그릴 것을 권유했는데 성 야고보가 성모님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성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때로는 이렇게 등장인물의 숫자까지도 화가 혹은 주문자, 학자들에 의해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되곤 했다.

 

반디니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린 사람은 ‘풀조네’라는 화가였고, 그림이 제작된 시기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1500년 동안 교황을 중심으로 단일 체제를 유지해왔던 교회가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막 분리되기 시작한 대단히 예민한 시기였다. 당시 막 탄생한 개신교는 아예 교회 안에서 그림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성상파괴운동을 전개했고 이후 오늘날까지도 개신교에서는 성화를 활용하거나 장식하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18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교회 안에서 성화를 모시고 이를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공식 천명했다. 오늘날 천주교회에 성모님이나 예수님 상을 비롯하여 많은 성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전통에 따른 것이다. 반디니가 그림 한 점을 두고 그토록 고심한 이유는 당시 가톨릭이 혹시라도 개신교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교리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안니발레 카라치가 그린 <성모승천>은 화가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두 층으로 나누어서 아래쪽에는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을 그렸다. 제자들의 숫자를 세어 본 독자들은 12명이 아닌 11명으로 그린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대부분 대머리의 할아버지로 그려졌다. 화가는 또한 승천하는 성모님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있는 서로 다른 순간에 벌어진 두 사건을 한 장면 안에 교묘히 조합시키고 있는데 그 비결은 제자들의 일부가 승천하는 성모님을 경이로운 몸짓으로 바라보게 한 데 있다. 물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위의 편지 내용에서 밝혔듯이 맞지 않은 상황이지만 회화적 측면에서 보면 멋진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된 지 몇 년 후 안니발레는 또 한 점의 〈성모승천〉을 제작했는데 그 그림에서는 아래쪽 제자들 대부분이 빈 무덤을 바라보고 성모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는 성모님을 바라보도록 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가톨릭은 더 이상 개신교와 사사로운 교리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고, 미술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대담해졌으며 자신감을 찾게 된 것이다. 이를 표현한 미술이 바로 바로크 양식이고 이 그림을 그린 카라치는 바로크 미술이라는 새 양식을 연 선구자였다.

 

[가톨릭신문, 2009년 8월 23일,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