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6. 1. 18. 08:16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축      일

  1월 18일 

신      분

  공주, 수녀

활동지역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1242-1271년경 

같은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조국 헝가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만일 전쟁이 승리한다면 어린 마르가리타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 은혜는 실제적으로 허락되었기에 세 살 난 딸을 베스프렘(Veszprem)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원에 맡기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국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스(Maria Laskaris)였다. 그녀는 12세 때에 첫서원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서약할 자격이 미달된다는 내용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정치적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성녀 마르가리타는 수녀원을 떠나기보다는 코와 입술을 자르라고 항변하여 자신의 자발적인 의사임을 입증하였다.

그 후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기 극기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가끔 온밤을 지새우며 성체 앞에서 기도하였고, 기도의 효력을 확신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였다. “갑자기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순 없지만, 어쨌든 하느님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이 말이 입증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2명의 수녀들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더 있다가 가라고 하였지만 즉시 떠나려 했을 때 그녀의 기도로 갑자기 비가 와서 그곳에 더 머물렀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탈혼을 경험하였고 기적도 많이 따랐다. 또 사순시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그녀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인하여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까지 되곤 하였다. “성 금요일은 하루 중에서 가장 짧은 날이다”라고 한 그녀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271년 1월 18일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사망한 성녀 마르가리타는 1789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된 후 1943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녀는 보통 수녀복을 입은 모습으로 흰 백합과 함께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1월 19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홈



[금주의 성인]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

(St. Margaret of Hungary, 1월 18일)

1242~1271. 헝가리 공주. 도미니코회 수녀.



성녀는 헝가리 국왕 벨라 4세와 왕비 마리아 라스카리스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성녀가 태어나던 때는 헝가리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성녀의 부모인 헝가리 국왕 부부는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헝가리를 구해주신다면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도 덕분인지, 헝가리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성녀의 부모는 하느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 살 난 막내딸을 도미니코 수녀원에 맡겼습니다.

 수녀원에서 자란 성녀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늘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혹할 정도로 고행과 극기, 단식을 했습니다. 함께 지내는 수녀들이 말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녀는 사순 시기가 되면 거의 먹지도 않고 밤을 새우며 기도에 몰두했습니다.

 성녀는 뛰어난 미인이었습니다. 수녀원에 사는 헝가리 공주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보헤미아의 국왕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성녀가 있는 헝가리 수도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수도원을 방문해도 된다는 교황의 허가장까지 받아들고 말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성녀의 아버지는 내심 딸이 보헤미아 국왕과 혼인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딸도 더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보헤미아를 헝가리의 우방국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헤미아 국왕을 만난 성녀는 단호히 말합니다. “저겐 보헤미아 왕자님께서 주는 왕관보다 하늘에 계신 왕께서 주는 왕관이 더 영광스럽습니다.”

 이 같은 일이 있은 후 성녀는 수도 생활에 더 매진합니다. 일부러 가장 힘든 허드렛일을 도맡았고, 단식과 고행은 일상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종종 기도 중에 탈혼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성녀의 기도와 전구로 여러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잦은 단식과 극기로 몸이 허약했던 성녀는 30살이 되던 해에 숨을 거뒀습니다. 성녀는 1943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8일, 박수정 기자]


출처 : 가톨릭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