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성녀

권요셉 2014. 7. 24. 21:55

성 야고보(Saint James)

 

 

 

 축일

 7월 25일  
 신 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이스라엘, 스페인 등 

 활동연도  +44년?  
 같은이름

 대야고보,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장야고보, 제임스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그들은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그들은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Andreas)의 집에 갔을 때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예수께서 낫게 해주신 현장에도 있었다(마르 1,29-31). 그들은 또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0-28) 하고 청했던 사람들이다. 또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얻었고(마르 3,17),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는 베드로(Petrus)와 그들 형제만 따라오게 하셨으며(마르 5,37),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 순간에도 베드로와 그들 형제만 함께 자리하게 하셨고(마태 17,1-8), 게세마니(Gethsemane)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러하셨다(마태 26,36-46).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가톨릭 홈)

 


 

 

대 야고보
신은근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두 분의 야고보가 있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다. 동양에서는 대 야고보와 소 야고보로 구분한다. 제베대오의 아들을 큰 야고보라고 한 것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누가 더 연장자인지 모른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야고보는 어부였다. 부친과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자 동생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간 것으로 되어 있다(마르 1,20). 정말 그랬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와 헤어져 예수님을 따라갔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들도 고뇌했고 망설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생략되었을 뿐이다. 소명과 추종 사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복음적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야고보는 불같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스승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카 9,54)하고 말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천둥의 아들(보아네르게스)이라는 애칭을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야고보는 사도 중 제일 먼저 순교했다. 기원후 44년 헤롯 아그리파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당한 것이다(사도 12,2).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 전에 스페인에서 선교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그의 유해는 스페인 북서쪽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사도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졌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이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콤포스텔라는 ‘별들의 들판’이란 뜻으로 성당이 있는 도시 이름이다.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 3대 순례지에 속한다. 대개 프랑스 남부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코스로 장장 800㎞의 순례길이다. 야고보 사도가 걸었던 길이라고 한다. 614년 예루살렘이 사라센에 점령당하자 순례가 금지되었다. 중세의 기독교인들은 대타로 콤포스텔라를 선택했고 이렇게 해서 산티아고(성 야고보) 순례길은 유명해졌다.

 

구약의 야곱과 신약의 야고보는 어원이 같다. 히브리어 야코프(Yaakov)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구약의 야곱은 제이콥(Jacob), 신약의 야고보는 제임스(James)로 구분하고 있다. 희랍어 성경에서 야고보는 야코보스(Iakobos)다. 라틴어 성경은 야코부스(Jakobus)로 음역했고, 야코무스(Jacomus)로도 발음되었다. 그러다 co음이 탈락하면서 제임스(James)가 되었다.

[2012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가톨릭마산 14면]

 


교회의 빛나는 인물 - 성 야고보 사도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강서동 본당 주임)

 

야고보 사도는 마르코 복음 15장 40절에 언급되는 “작은 야고보(次 야고보)”와 구별되어 “장(長) 야고보”라고 불린다. 그는 어부이던 아버지 제베대오와 어머니 살로메의 아들이면서, 복음사가이며 사도인 요한의 형이다(마태 4,21; 27,56). 동생 요한과 함께 야고보는 그의 고향 벳사이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다가 그리스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둘 다 “보아네르게스 :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붙이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쉽게 분노하는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마르 3,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의 한 마을을 지나시게 되어 심부름꾼들을 보내시어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갖추게 하시려 하셨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그 상황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 형제를 꾸짖으셨다(루카 9,54 이하). 두 형제는 이 성격을 아마도 어머니 살로메의 영향으로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어머니는 두 아들들을 데리고 주님께 나타나서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자리를 잡으실 때 두 아들들을 메시아 주님의 좌우편에 세워달라고 부탁했던 여인이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수난의 잔을 마실 준비가 되어있느냐고 질문하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즐거운 마음으로“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2012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청주주보 3면]

 

주님께서는 야고보를 사도로 부르시어 12사도단의 한분으로 삼으셨다(마태 10,2; 사도 1,13). 베드로와 사도 요한과 함께 야고보 사도는 12사도들의 대표적인 분들로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순간의 증인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집으로 찾아가시어 치유시켜주셨을 때(마르 1,29),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부활시키셨을 때(마르 5,37), 예수님의 변모(마태 17,1이하), 겟세마니 올리브동산에서 피땀 흘리신 예수님의 어려우셨던 때(마르 14,33 이하)와 부활하신 주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당신 자신을 일곱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때에 현장에서 그 순간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요한 21,2).

 

야고보 사도는 헤로데 아그리빠 1세 때인 서기 44년 부활절에 목이 잘려 순교하였다(사도 12,2). 헤로데 왕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쳐 제일 먼저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야고보는 이렇게 주님의 사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주님을 위해 순교하신 분이시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가 살해된 장소에 예루살렘의 야고보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7세기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전설에 의하면 스페인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대성당에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진다. 10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야고보 사도의 무덤은 로마순례와 예루살렘 순례만큼 엄청난 순례자들의 순례목표지 역할을 하였다. [2012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 청주주보 3면]


7세기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전설에 의하면 스페인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대성당에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진다. 10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야고보사도의 무덤은 로마 순례와 예루살렘 순례만큼 엄청난 순례자들의 순례목표지 역할을 하였다. 전 유럽을 가로질러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이 생겨났다. 그 길들의 특징은 똑같은 모양의 성당들이 건축되어 있으며 그 성당들이 동시에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는 점이었다.

 

성 야고보사도는 친히 순례자로 지팡이와 물을 떠서 마실 때 사용하는 조개껍질을 손에 든 모습의 형태로 조각되었다. 그리하여 야고보 사도는 한동안 사도들 가운데 일반군중과 가장 친숙한 사도로 여겨졌다. 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나라의 주보성인이시고, 순례자들의 주보성인이시다. 우리 신자들이 모두 다 하느님께로 향해 나아가는 지상순례자들이기에 우리 교회는 순례교회이며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되는 천상교회이다!

 

콥트교회는 4월 12일에, 그리스정교회는 4월 30일에, 아르메니아교회는 12월 28일에 지내는 반면에, 가톨릭교회는 야고보 사도의 축일을 처음에는 12월 27일에 지내다가 지금은 7월 25일에 지낸다. [2012년 11월 25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청주주보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