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오페라와 모차르트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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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와 음악/신동 모차르트

2016. 4. 3.

오페라와 모차르트 여인들

모차르트의 오페라 초연에서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창조한 인물들

 

모차르트는 20편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후궁에서의 도주', '여자는 다 그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이다. 이 오페라들은 모차르트의 생전에 모두 공연된 것들이다. 어떤 오페라들은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 겨우 초연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들은 모두 모차르트의 생전에 공연된 것들이다. 더구나 초연은 거의 모두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하였다. '후궁에서의 도주'는 모차르트가 26세 때에, ''피가로의 결혼'은 30세 때에, '돈 조반니'는 31세 때에, '여자는 다 그래'는 34세 때에, '마술피리'는 세상을 떠나던 해인 35세 때에 작곡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거의 모든 오페라의 주역들을 직접 선정했다. 모차르트가 평소 애호했던 성악가들이 선정되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여성 성악가들의 선정에서 그러했다. 그러므로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여성 주역으로 선정된다는 것은 그만큼 모차르트의 애정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모차르트가 사랑했던 오페라 속의 여인들! 과연 누구일까? 훗날 음악학자들은 모차르트는 자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인들을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빌려서 표현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는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돈 조반니'의 체를리나이다. 사진이 없어서 모습을 제대로 볼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그림으로나마 살펴본다.

 

미하엘러플라츠에 있었던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 오른편의 아담한 건물이다. 지금은 도시계획으로 전혀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대신, 시청(라트하우스) 건너편에 새로운 부르크테아터를 지었다. 옛 부르크테아터에서는 모차르트의 유명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 '후궁에서의 도주'가 역사적인 초연이 이루어졌다.

 

1. 후궁에서의 도주(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1782년 7월 16일. 비엔나 미하엘러플라츠의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에서 초연. 여주인공은 콘스탄체(Konstanze)이다. 스페인의 귀족인 벨몬테가 사랑하는 여인이다. 초연에서 콘스탄체의 이미지는 비엔나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소프라노 카테리나 카발리에리(Caterina Cavalieri: 1755-1801)가 맡았다. 콘스탄체는 항해 도중 해적에게 납치되어 터키의 파샤인 셀림에게 팔려갔다. 콘스탄체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벨몬트가 셀림의 하렘에 있는 콘스탄체를 구출하러 간다. 두 사람은 마음을 고쳐잡은 셀림의 후의로 무사히 하렘에서 벗어난다. 카테리나 카발리에리는 비엔나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로부터 성악 레슨을 받았다. 첫 무대 데뷔는 1775년 비엔나에서 공연된 파스쿠알레 안포시(Pasquale Anfossi)의 오페라 '사랑의 여정원사'(La finta gardiniera)였다. 그후 1778년에는 이그나즈 움라우프()의 징슈필인 '광부'(Die Bergknappen)에서 주역을 맡았고 1781년에는 살리에리의 '굴뚝청소부'(Der Rauchfangkehere)에서 프로일레 나네트를 맡아서 이름을 떨쳤다. 나네트 역할은 살리에리가 특별히 카발리에리를 위해서 작곡한 것이다. 카발리에리는 뛰어난 테크닉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다. 카발리에리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모차르트는 카발리에리를 위해서 '후궁에서의 도주'의 콘스탄체를 창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1788년 5월 7일 비엔나 초연을 가진 '돈 조반니'에서는 돈나 엘비라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돈나 엘비라의 역할 역시 모차르트가 카발리에리를 위해서 특별히 작곡한 것이다. 그에 앞서 1786년에는 모차르트가 '음악감독'(Der Schauspieldirektor)에서 마드무아젤 질버클랑의 역할을 카발레리아를 위해서 작곡한바 있다. 카발리에리는 1790년대에 들어와서 무대에서 서서히 모습을 보이지 않기 시작하다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2년 후인 1793년에 돌연 무대에서 은퇴하였다. 카발리에리는 그때 38세의 한창 때였다. 카발리에리는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1801년에 46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르투오소 소프라노인 카테리나 카발리에리. 콘스탄체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2.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년 5월 1일. 비엔나 미하엘러플라츠의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에서 초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주인공은 단연 백작부인이다. 수잔나와 케루비노는 조역이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아름다운 아가씨 로지나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우아한 백작부인이 되어 등장한다. 초연에서 백작부인(콘테싸 로지나 알마비바)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는 이탈리아 출신의 루이사 라스키(Luisa Laschi: 1760년경-1790년경)이다. 루이사 라스키는 비첸차와 볼로냐에서 오페라 공연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소프라노이다. 그러다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서 문화와 예술의 센터인 비엔나로 와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비엔나에서의 첫 오페라 출연은 1784년 치마로사의 Giannina e Bernardone(자니나와 베르나르도네)였다. 그때 라스키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당시 신문들은 라스키에 대하여 미모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맑은 음성의 소유자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라스키는 풍부한 감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또한 다른 성악가들과 다른 점이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스키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라스키의 모습은 초상화가 남아 있지 않고 실루에트만 있어서 유감이다.

 

루이사 라스키. 백작부인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또 한 사람의 중요한 배역은 수잔나이다. 수잔나는 피가로 시리즈에서 1부에는 등장하지 않고 2부인 '피가로의 결혼'과 3부인 '죄많은 어머니'에 등장한다. 다리우스 미요의 '죄많은 어머니'(La mère coupable)에서는 Suzanne 라고 표기되어 등장한다. '피가로의 결혼'의 프라하 초연에서는 수잔나를 당대의 소프라노 낸시 스토레이스(Nancy Storace: 1765-1817)가 맡았다. 모차르트는 수잔나를 낸시 스토레이스가 맡은 것으로 생각하고 작곡을 했다. 낸시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악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낸시의 부모는 낸시가 음악교육을 더 받도록 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보냈다. 낸시는 베니스를 중심으로 오페라 활동을 시작했다. 1783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요셉 2세는 베니스를 방문했을 때 낸시의 공연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요셉 2세는 낸시에게 비엔나에서 계획하고 있는 이탈리아오페라단의 설립을 주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낸시는 비엔나에 왔다. 낸시는 2년 동안 준비해서 이탈리아오페라단을 설립했다. 그 오페라단이 '피가로의 결혼'의 공연을 맡아하게 되었다. 낸시는 비엔나에 있으면서 모차르트, 하이든과 가깝게 지냈다. 하이든도 낸시를 위해서 여러 음악을 작곡했다. 낸시는 비엔나에 있으면서 20여편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그 중에는 서너편의 세계 초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살리에리의 La scuola de' gelosi에서 백작부인, 빈첸테 마르틴 이 솔러의 Il burbero di buon cuoro에서 안젤리카 등이며 물론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도 포함된다. 낸시는 1785년 경부터 갑자기 목소리에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무대에 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낸시는 런던으로 돌아가서 간혹 콘서트 연주를 했다. 그러다가 1817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낸시는 가장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는 소프라노였다. 모차르트는 낸시 스토레이스를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여겼다.

 

음성만큼이나 아름다운 낸시 스토레이스. 수잔나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3. 돈 조반니(Don Giovanni). 1787년 10월 29일. 비엔나를 위한 수정본은 1788년 5월 7일. 프라하 국립극장(에스테아츠극장). 현재의 슈탠데테아터(Stärgtheater)에서 초연. '돈 조반니'에는 세명의 여성 주역이 등장한다. 돈나 안나, 돈나 엘비라, 그리고 체를리나이다. 프라하에서의 '돈 조반니' 초연에서 돈나 안나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소프라노 테레사 사포리티(Theresa Saporiti: 1763-1860)가 맡았다. 당시 밀라노에는 파스쿠알레 본디지(Pasquale Bondini)가 이끄는 오페라단이 있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오페라를 공연했다. 본디니오페라단은 라이프치히에서의 공연을 위해 단원들을 모집했다. 테레사 사포리티는 언니 안토니아 사포리티와 함께 본디니오페라단의 단원으로 계약했다. 그런데 안토니아와 테레사에게는 확실치는 않지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결혼해서 남편성을 따라서 카테리나 본디니(Caterina Bondini)라고 했다. 그 남편이 누군가하니 본디니오페라단의 파스쿠알레 본디니였다. 본디니오페라단은 프라하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했다. 그 공연이 있을 때에 파스쿠알레 본디니는 프라하를 방문한 모차르트를 만났다. 본디니는 모차르트에게 제발 본디니오페라단을 위해 오페라를 한 편 작곡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돈 조반니'였다. 본디니오페라단이 '돈 조반니'의 세계 초연을 맡아했음은 물론이며 그래서 단원이 테레사와 카테리나 등이 '돈 조반니'의 세계 초연에 출연했던 것이다. 테레사는 '돈 조반니'의 프라하 초연에서 돈나 안나의 이미지를 창조하였으며 동생인 카테리나 본디니는 체를리나의 이미지를 창조하였으니 결국 '돈 조반니'의 초연은 테레사와 카테리나 자매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었다. 큰 언니인 안토니아는 한두번의 외국 공연을 끝내고 그만하겠다고 했으며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났다. 돈나 안나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테레사 사포리티는 유럽의 여러 곳을 다니면 오페라를 공연하였으며 말년에는 밀라노로 돌아와서 여생을 보냈다. 테레사 사포리티는 1869년, 향년 106세로서 장수한 후 세상을 떠났다. 대단하다.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테레사 사포리티와 가깝게 지냈다. 서로 농담도 하며 재미나게 지냈다. '돈 조반니'의 2막 딘더 장면에서 돈 조반니가 Ah che piatto saporito!(아 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가!)라는 아리아를 부르는 것이 있다. 모차르트가 Saporiti를 놀려 주려고 그런 가사의 아리아를 작곡했다는 후문이다.  

 

'돈 조반니'의 세계 초연에서 돈나 안나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테레사 사포리티. 동생인 카테리나 본디니는 체를리나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한편, 프라하 초연이 있은지 다음 해인 1788년 5월 7일에 비엔나 초연이 있었다. 모차르트가 오리지널을 몇군데 수정한 버전이었다. 비엔나 초연에서는 돈나 안나를 모차르트의 처형인 알로이지아 베버(Aloysia Weber)가 맡았고 돈나 엘비라는 유명한 카테리나 카발리에리(Caterina Cavalieri)가 맡았다. 그리고 체를리나는 루이사 몸벨리(Luisa Mombelli)가 맡았다.

 

4.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 So machen es all). 1790년 1월 26일. 비엔나 미하엘러플라츠의 부르크테아터에서 초연. 이 오페라에는 두 명의 자매가 주인공이다. 휘오르딜리지(Fiordiligi)와 도라벨라(Dorabella)이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들이다. 무대는 나폴리이지만 두 자매는 인근 페라라(Ferrara) 출신이다. 하녀 역할의 데스피나(Despina)는 주역과 같은 조역이다. 비엔나 초연에서 휘오르딜리지의 이미지는 소프라노 아드리아나 페라레세(Adriana Ferrarese)가 창조했고 도라벨라의 이미지는 소프라노 루이즈 비예느브(Louise Villeneuve)가 창조했다. 조역인 데스피나는 소프라노 도로테아 부사니(Dorotea Bussani)가 맡았다. 비엔나 초연에서 도라벨라의 이미지를 창조한 루이즈 비예느브에 대하여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 다만, 프랑스 출신이지만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루이스 비예느브는 노브르(Noverre)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노브르라고 하면 당시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안무가를 말하는 것이라면 루이즈 비예느브는 비엔나에서 노브르발레단원으로서 활동했다고 볼수 있다. 발레에 관심이 있었던 비예느브는 노래도 잘 불러서 이윽고 1786년부터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밀라노, 베니스 등지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는데 대표적인 것은 마트틴 이 솔러의 오페라 L'arbore(나무)에서 아모레를 맡은 것이었다. 초연에서 휘오르딜리지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아드리아나 페라레세(Adriana Ferrarese: 1755-1804)는 이탈리아의 페라라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고향인 Ferrara에서 Ferrarese라는 이름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베니스에서 성악공부를 마친 그는 런던으로 가서 이탈리아 오페라에 출연하였고 이어 비엔나로 와서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에 출연했다. 아드리아나 페라레세는 '피가로의 결혼'이 초기에 공연될 때에 수잔나의 역할을 맡아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와 함께 '여자는 다 그래'에서 휘오르딜리지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그는 믿을수 없을 정도의 아름답고 정확한 고음을 낼수 있으면 놀랄만큼 안정된 저음도 낼수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아드리아나 페라레세. 휘오르딜리지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5.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1791년 9월 30일. 비엔나의 테아터 임 프라이하우스 아우프 데어 뷔덴(Theater im Freihaus auf der Wieden: 뷔덴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마술피리'에는 세 여인이 주역급으로 나온다. 파미나 공주와 그의 어머니인 '밤의 여왕', 그리고 파파게노의 파트너인 파파게나이다. 파파게나는 조역이므로 굳이 내세워야 할 정도는 아니다. '마술피리'의 비엔나 초연에서 파미나 공주의 이미지는 소프라노 안나 고틀리브(Anna Gottlieb)가 창조했으며 '밤의 여왕'은 모차르트의 처형인 요제파 호퍼(Josepha Hofer)가 맡아했다.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에게는 두명의 언니와 한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차르트의 처가집은 딸만 넷인 딸부자집이었다. 큰 딸이 요제파(Josepha: 1758-1819)이며 둘째 딸은 알로이지아(Aloysia: 1768-1839)이고 셋째 딸이 콘스탄체(Constance: Constanze: 1762-1842)이며 막내 딸이 조피(Sophie: 1763-1846)였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큰 딸이 알로이지아이고 둘째 딸인 요제파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요제파는 나중에 프란츠 드 파울라 호퍼(Franz de Paula Hofer)라는 성악가와 결혼했기 때문에 요제파 호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남편 호퍼가 세상을 떠나자 제바스티안 마이어(Sebastian Mayer)라는 사람과 재혼했기 때문에 요제파 마이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요제파는 '마술 피리'의 역사적인 초연에서 '밤의 여왕'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로서 음악사에 길이 기억되고 있다. 이어 1798년에는 '마술 피리'의 후속 편인 Das Labyrinth(미로)에도 '밤의 여왕'으로 출연하였다. 오페라 '미로'는 나중에 모차르트의 처제인 조피와 결혼한 사람인 페터 빈터(Peter Winter)가 음악을 붙이고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대본을 쓴 작품이다. 요제파는 '마술피리'에 앞서서 1789년 파울 브라니츠키(Paul Wranitzky)의 오페라 '오베론'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기도 했다. 파울 브라니츠키의 '오베론'(요정 여왕)은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마술피리'의 대본을 쓸수 있도록 영감을 준 작품이다.

 

요제파의 결혼전 이름은 마리아 요제파 베버였다. 독일 바덴-뷔르템버그의 첼 임 뷔젠탈(Zell im Wiensental)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요제파의 아버지, 즉 모차르트의 장인어른은 위대한 작곡가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이복동형이 된다는 것이다. 즉, '마탄의 사수'로 유명한 베버는 요제파를 비롯해서 알로이지아, 콘스탄체, 조피 자매들의 삼촌이 된다. 요제파는 주로 만하임에서 성장했다. 이후 가족을 따라 뮌헨으로 가서 살다가 다시 비엔나에 정착했다. 요제파도 알로이지아와 마찬가지로 성악에 전념하여 소프라노로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제파는 당시 비엔나 교외의 뷔덴(오늘날의 4구)에 있던 뷔덴극장(Theater auf der Wieden)에서 요한 프리델 극단의 프리마 돈나로서 활동했다. 뷔덴극장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 '마술피리'가 초연된 극장이었다. 극단장인 요한 프리델이 세상을 떠나자 극단의 핵심 배우였던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극단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쉬카네더는 새로 극단을 개편하면서 모차르트의 처제인 요제파를 계속 단원으로 남도록 배려했다. 요제파는 쉬카네더 극단의 중요한 멤버였다. 요제파는 '밤의 여왕'을 1801년까지 계속 맡아서 노래하다가 더 이상은 힘들어서 은퇴하였다. 그때 요제파의 나이는 43세였다. 요제파는 1804년에 무대에서 완전히 은퇴하였으며 1819년 12월 29일 비엔나에서 61세로서 세상을 떠났다.

 

'밤의 여왕'의 이미지를 창조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요제파 호퍼

 

'마술피리'에서 아름다운 파미나 공주의 역할을 처음 맡은 사람은 소프라노 안나 고틀리브(Anna Gottlieb: 1774-1856)이었다. 안나는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배우였다. 안나는 언니들과 함께 아역배우로서 성장했다. 첫 연극출연은 다섯살때 부르크테아터에서였다. 12살 때인 1786년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역사적인 초연에서 바르바리나를 맡았다. 15세 때에는 파울 브라니츠키의 오페라 '요정의 왕 오베론'(Oberon, König der Elfen)의 초연에서 아만데를 맡았다. 이 오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처형인 요제파 호퍼가 주인공인 타티아나를 맡았다. 1789년에 에마누엘 쉬카네더의 극단이 뷔덴극장의 전속극단이 되자 안나도 이 극단의 전속단원이 되었고 그래서 1791년의 '마술피리' 초연에서 파미나 공주의 역할을 맡을수 있었다. 그때 안나는 17세였다. 안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82세인 1856년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나는 모차르트를 존경하여서 자기의 묘지를 모차르트의 묘지가 있는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마련해 달라고 유언했다.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공주. 당시 17세이던 안나 고틀리브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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