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금산 2013. 6. 23. 07:34

이야기 공작소 <4-2> 부산 중구

스토리텔링 - 팩션 - [베니스의 초량상인]

'안 씨 집안 아이'를 베네치아로 보내

                           '안토니오 코레아'를 찾으시오!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루벤스가 1620년 전후 남긴 '조선 남자' 드로잉. 서양인이 그린 첫 조선 남자에 대해 여러가지 추리가 나오고 있지만, 김하기 작가는 조선 동래부 초량왜관의 상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림 속 남자는 소설 '베니스의 개성 상인'에서 안토니오 코레아로 등장한다.

 

- 배는 인도의 고어에 닿았다.
- 초량상단 행수 안광복은 월희에게 서신 한 통을 내보였다.
-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온 할아버지의 서신이었다.

- 누이 월희와 매부 다나카는 고어에 내렸다.
- 초량상단도 조선을 향해 배를 돌렸다.
- 그러나 단 한 사람 안광복만은 이탈리아로 가는 상선에 올랐다.

- "난 할아버지를 찾아 베네치아로 가련다.
- 너를 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떠나는구나."

#1.교간사건

한 밤인 자정. 초량왜관을 지키고 있는 조선인 복병의 감시를 피해 한 왜인이 동쪽 방면의 6척 담장을 넘고 있었다. 초량왜관의 장기체류자인 항거왜인 다나카였다. 담을 넘자마자 장대 끝에 걸린 두 남녀의 머리가 다나카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난 달 월담을 해 두모포에서 몰래 밀무역과 교간(交奸·간통)을 하다 발각돼 참수된 야나기와 점순이의 머리였다. 부산의 초량왜관에서는 매년 국경을 넘나드는 월경인들로 인해 몇 쌍씩 효수를 당했다.

두모포 쪽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가니 약조제찰비가 가로막고 있다. 다나카는 눈을 감고도 이 비석에 새겨진 내용을 알고 있다. '경계를 넘는 자, 암거래를 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고 효수한다.'

그러나 효수당한 머리통이나 약조제찰비조차 월희를 향한 용솟음치는 다나카의 욕망을 가로막지 못했다. 다나카는 두모포 객잔(客棧·상인 숙박시설)으로 향하면서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사랑하다 죽어버리자.'

용두산과 용미산을 품고 있는 십만 평의 넓은 초량왜관은 금녀구역으로 남자 왜인들만 삼백 여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용두산 아래 관수(초량왜관의 우두머리)가 거주하는 관수옥과 사무역의 장소인 개시대청, 외교교섭 업무를 보는 재판옥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아래 환자를 돌보는 의사옥,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 통사(역관)들이 머무르는 통사옥이 있는 남쪽 하천 좌우에는 무역과 생필품을 관장하는 상점가와 무역창고들이 몰려 있다. 용미산 동쪽 포구에는 반달모양의 방파제로 둘러싼 선창과 잔교가 설치되어 있다. 왜관 안에는 재물의 신을 모시는 변재신사 등 수십 개의 신사와 사찰도 갖춘 완벽한 무역도시이지만 유독 여자만 없었다. 결국 왜인들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월담하다 발각돼 처형을 당하곤 했다.

객잔에서 다나카를 기다리고 있는 월희는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무역을 한 오빠를 닮은 탓인지 활달하고 개방적인 성격이었다. 다나카와 월희는 개시대청에서 견직물 매매를 하다 눈이 맞은 이후 조선인 복병과 일본인 메츠케(감시관)의 감시를 피해 상관 창고와 가마 광에서 이미 몇 차례 명을 걸고 합궁을 치른 관계였다.

다나카가 두모포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월희는 벗은 몸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마른 박하 잎을 띄운 목조 온천탕으로 들어갔다. 다나카가 슬슬(瑟瑟·에메랄드)로 된 목걸이를 월희의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

"월희, 당신에게 잘 어울리무니다."

"고마워요. 저도 호랑이 발톱을 만든 팔찌를 가져왔어요. 이걸 하면 온갖 잡귀들은 물러가고 행운이 따른대요. 제가 등을 밀어드릴게요."

월희는 재스민을 섞은 녹두비누로 거품을 내어 다나카의 등을 밀었다.

다나카는 월희의 따뜻한 손길과 수온 속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아, 여기서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으무니다."

"우리 멀리 인도로 도망가요. 거기서 걱정 없이 살아요."

월희의 몸은 갓 피어난 모란처럼 탐스러웠고, 온천 수증기 사이에서 빛나는 얼굴이 달무리처럼 신비스러웠다.

"아-"

그녀의 입에서 가녀린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순간, 갑자기 욕실 문을 덜컥 열리며 복병 넷이 나타나 칼끝을 겨눴다. "밀무역과 교간사건이다. 두 연놈은 오라를 받아라!"



#2.동북아 무역의 허브항-초량왜관

   
옛 초량왜관의 우두머리가 거주했다는 부산 중구 동광동 관수옥 자리. 지금은 식당이 들어서 있다.
초량왜관의 관수는 에도의 쇼군으로부터 두 가지 지엄한 명령을 받았다. 첫째 현재 대만에서 일어난 반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낼 것. 둘째 초량왜관을 통해 생사와 견직물을 두 배로 늘려 수입할 것. 둘 다 어려운 과업이었다.

관수는 초량상단의 행수 안광복을 관수옥으로 초대했다. 관수는 속으론 초조했지만 겉으론 짐짓 점잔을 떨며 가죽 주머니에서 검붉은 가루를 내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커피였다.

"이건 아랍에서 온 아주 귀한 고히라는 차이므니다."

"흔한 가파(加芭)군요. 제 집에는 말라카에서 가져온 가파 가루가 몇 봉이나 있지요."

관수는 진귀한 커피 대접으로 거래의 기선을 제압하려다 오히려 제압을 당한 꼴이 되었다. 나가사키 멀리 말라카까지 무역하는 두무포 초량상단의 창고인 여각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일본으로 건너갈 인삼(상인삼 소인삼 미인삼) 생사 축면 문무 사릉 윤자와 일본에서 들어온 납 구리 유석 토단 단목 후추 오화당(과자) 설탕이 쌓여 있고, 멀리 인도와 아라비아에서 온 공작꼬리 진침(상아) 서각(물소뿔) 파사모전(페르시아 양탄자) 슬슬(에메랄드) 노창(알로에)과 아프리카 너머 유럽에서 건너온 럼주 권총 안경 담배 파이프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 그러스무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 일본은 생사와 견직물이 많이 필요하므니다."

"이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이 필요하겠군요."

"…예?"

"지금 대만의 반란으로 중국에서 대만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가는 생사 공급 길이 끊겼을 터. 그러니 평소보다 두 배정도 더 필요하지 않겠소?"

"정말 그러하무니다. 생사 40만근과 축면 윤자 사릉 등 견직물 10만근이 필요하므니다."

"흠, 값을 두 배로 쳐주면 물량은 맞춰보겠소만…. "

"고맙스므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 대륙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무니까?"

"그것도 쇼군의 명령이오?"

"…."

형세를 꿰뚫고 담판 짓는 안광복에게 관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소."

"그게 무엇이무니까?"

안광복은 관수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관수는 커피를 홀짝이며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3 해상 실크로드의 지배자-초량상단

초량상단이 황포 돛대 세 개가 높이 세워진 커다란 범선을 타고 먼 바다인 말라카로 떠나는 날이었다. 배 선실에는 정박하는 포구에서 무역할 인삼 100근, 황금 100관, 견직물인 소비사릉 1,000반이 실려 있었고 선원들은 모두 초량상단의 단원들이었다. 초량상단은 주로 부산진의 진상과 동래의 내상, 그리고 울산의 울상 등 20명으로 꾸려져 있고, 강수(선장)인 안광복을 비롯해, 소공(키잡이), 도장(기사장), 암해자(항해사) 등으로 구성된 선원들은 상단이기 이전에 강력한 해상결사체였다. 이들이 헤치고 가는 바닷길은 일본의 나가사키, 필리핀의 마닐라, 동남아 파림빙(팔렘방)과 말라카이지만, 때로는 멀리 인도 고리(캘리컷)와 아라비아의 아덴까지 나갔다.

초량상단의 행수인 안광복은 동래부사에게 경장은 50개를 주고 동래부 뇌옥에 갇혀 있는 월희를 빼내와 범선에 태우고 초량왜관항으로 들어갔다. 안광복은 죽은 시체가 나오는 왜관의 동남문인 무상문에서 관 하나를 받아 배에 실었다. 왜관의 관수가 내준 관이었다.

"분명 이 안에 참수당한 다나카의 시체가 있으렷다."

"그러하무니다."

검역소의 역인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배가 부산포 앞바다로 나가자 안광복은 관 뚜껑을 열었다. 참수 당했다던 다나카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안광복을 보자 '고맙스무니다'를 연발하고, 월희와는 눈물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다나카, 이제 안심하게. 둘이 꿈꾸던 땅 인도로 데려가 줌세."



#4. 안토니오 코레아의 편지

배는 정박하는 항구마다 무역을 하면서 서진을 해 마닐라와 참파(베트남), 말라카를 거쳐 두 달 만에 마침내 목적지인 인도의 고어에 도착했다. 다나카와 월희를 배에서 내리기 전 안광복은 누이동생에게 말했다.

"월희야, 언젠가 너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이제 그 날이 된 것 같구나."

안광복은 월희에게 서신 한 통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온 할아버지의 서신이었다.



사랑하는 예분이에게

그동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오. 나는 고향이 조선 동래부 초량인 초량상인 안돈오(安敦五)이고 예분이의 지아비이오. 이탈리아 이름으로는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하오. 나 안돈오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이탈리아 상인 카를레티를 따라 먼 이탈리아로 오게 되었소. 이곳에서 유리세공 기술을 배웠고, 지금은 베네치아 중심가에서 멋진 공방도 차리고 있소.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굴을 향한다고 하더니 이제 내 나이 70세, 늙고 병이 드니 고향 초량과 예분이가 더욱 그립소.

내가 전쟁터로 떠날 때 예분이는 임신 중이었는데 안씨 집안에 남자 아이가 있으면 이곳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보내 코레아 유리공방의 주인 안토니오 코레아를 찾으시오. 내 핏줄을 타고 난 아이라면 능히 날 찾아올 수 있을 것이오.

내가 예전에 유명화가 루벤스를 통해 그린 초상화가 몇 장 있는데 그중에 조선옷을 입고 그린 그림 한 장을 함께 보내오. 젊은 시절의 얼굴이라야 예분이 당신이 나를 알아볼 것 아니오. 예분이, 사랑하오. 저승에서 만날 때 날 모른 척 하지 마오.

1650.6.24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안돈오



안광복은 누이 월희와 매부 다나카를 인도 고어에서 하선시키며 말했다.

"난 할아버지를 찾아 이탈리아로 떠나려 한다.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멀리 떠나는구나."

초량상단도 인도 고어에서 조선으로 향해 동쪽으로 배를 돌렸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안광복만이 이탈리아로 향해 서쪽으로 가는 상선으로 갈아탔다.



#5. 에필로그

필자는 초량왜관에 대해 고문서를 정리하던 중 초량왜관의 우두머리 관수가 쓴 기록인 '관수일지'에 꽂혀 있는 서신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온 안광복의 서신이었다.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순이에게

그동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오. 나는 고향이 조선 동래부 초량인 베네치아 초량상인 안돈오(安敦五)의 손자 안광복이오. 이탈리아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임종을 했소만 부산포에 두고 온 아이 용복이가 늘 눈에 아슴거리오.


◆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지, 초량왜관

- 당대 세계최대 항구·동북아 허브
- 스토리 발굴·역사관 설립 등 필요

   
초량왜관을 그린 조선시대 변박의 왜관도.
초량왜관은 오래전부터 부산-한양-베이징-서안-타시켄트-아라비아-로마로 잇는 육상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부산포-나가사키-마닐라-베트남-말라카-아덴-케이프타운-로마로 잇는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지로서 당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항구 상관이자 동북아 최고의 허브항이었다.

규모가 약 10만 평인 초량왜관은 나가사키에 설치된 중국 상관지역인 도진야시키의 10배, 네덜란드 구역인 데지마 상관의 25배에 달한다. 초량왜관을 통해 일본의 은이 중국으로 들어갔고, 중국과 조선의 생사와 비단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또한 나가사키와 연계되어 부산상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행보에서 알 수 있듯이 동남아시아 인도 유럽까지 연결되어 무역을 했다.

중국 정보는 주로 왜의 통사(통역관)들이 조선의 통사인 양관에게 듣는 것을 토대로 에도에 있는 쇼군에게 보고한다. 고립된 섬나라 일본은 상품교역이든 정보입수든 대륙 관문인 초량왜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쇼군은 동북아의 판도를 뒤흔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정보도 모두 초량왜관을 통해 입수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초량왜관에서 근대적 개항이 시작되었고, 오늘날 부산항이 세계 3대 무역항으로 우뚝 서는 밑바탕이 되었다. 일본은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을 풍차가 있는 하우스텐보스로 만들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그러나 초량왜관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우선 초량왜관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역사박물관 설립과 관수옥과 연향대청 복원작업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 필자 김하기 약력

   
김하기 소설가
부산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황석영과 이문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대 부경대 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창작과 비평에 '살아있는 무덤'으로 등단해 '완전한 만남' '천년의 빛' '식민지 소년' 등 16권의 책을 썼다. 소설가, 작가, 칼럼니스트로 한국인의 창의성에 관심을 가지고 전 방위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김하기 소설가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