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0. 11. 1. 10:4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의 감수성에 민감한 요즘 같은 계절에 어울리는 뮤지컬이다.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과 같은 계절이 아니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별의 아픔을 센티멘탈한 감수성과 매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와 더불어 창작 뮤지컬 1세대에 속하면서 동시에 뮤지컬계 최초로 ‘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뮤지컬 작품 동호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007년 이후 3년 만에 관객의 곁으로 찾아온 뮤지컬이다.

 

괴테의 원작은 주인공 베르테르를 자살로 이끈 원인을 실연에 의한 상실감 하나로 단일화하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뿐만 아니라 신분 질서 사이에서 표면화한 갈등, 보다 나아가서는 실존적인 자아정체성의 위기 등 분석 가능한 자살 원인의 층위만 손꼽더라도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이다.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집중의 원칙에 충실한 연출 기법을 따른다. 사회적 갈등과 실존의 위기까지 망라하여 다루고자 한다면 괴테의 원작에는 충실하겠지만 연출에 있어 방점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위험이 따르고 더군다나 세 층위 이상이나 되는 베르테르의 자살 동기를 2시간 안팎의 공연 시간 동안 총체적으로 모두 다룬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의 연출이 되고 말 공산이 크다. 이러한 위험 부담 때문에 베르테르의 자살 동기를 실연의 아픔 하나로 집약해서 연출한다는 점은 집중의 묘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연출이라 할 수 있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안점을 두는 실연은 괴테가 몸소 겪은 경험에서 체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약혼자 케스트너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했던 괴테의 젊은 날의 실연 체험은 훗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을 롯데라고 이름 지을 정도로 작품 안에 투영시킨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베르테르의 자살의 원인 가운데 위계 질서의 갈등과 자아정체성의 붕괴를 덜어내는, 다각적 연출의 부담을 덜어낸 대신에 환원주의(혹은 축소주의)라는 부담을 떠맡는다. 베르테르의 영혼이 절망하게 된 원인이 롯데와의 실연이 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롯데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이 베르테르를 죽음으로 이끄는 유일무이한 동인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올해 연출이 다른 해 공연보다 차별점을 두었던 부분 중 하나가 원작에는 비중이 작은 인물 카인즈를 베르테르의 대리 자아로 투사해서 해석(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롯데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지 못하는 소심한 남성이지만 막상 카인즈에게는 베르테르 자신과는 달리 적극적인 구애를 하라고 권유한다)한 점 아니겠는가. 만일 베르테르의 자아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했는지, 죽음을 통해 해방 받고자 했던 다양한 동인이 무엇인지에 관한 치밀한 분석을 한다면 차후 연도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연출에 있어 주안점을 두어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에 관해(연출의 방향성 설정에 관하여) 도움이 될 듯하다.

 

3년 전보다 연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세련미를 보인다. 주인공이 어떤 파국을 맞을지를 관객이 누구보다 잘 안다는 부담을 덜기 위해 우울한 공기를 날리고자 하는 경쾌한 분위기의 연출을 곳곳에서 보인다. 마을 주민들의 흥겨운 가무는 공연 전반에 흐르는 무거운 정서를 환기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박건형과 임혜영의 안정적이고 매혹적인 대사와 노래에 비해 마부의 불안정한 노래 톤은 이번 공연에서 보완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씨년스러운 이 가을, 카타르시스적 감성에 목마른 뮤지컬 매니아라면 빼놓을 수 없는 ‘머스트 시 뮤지컬(Must See Musical)’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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