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0. 11. 17. 23:54

88년 당시 가수왕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최곤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사나이다. 자신이 늘그막의 스타임을 인정하지 않고 인기 절정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 끊임없이 현실과 충돌하는 사나이다. 최곤의 현실은, 최곤에게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현실에 충실하라고 직언한다. 하지만 최곤은 자신의 비루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현실과 불협화음을 일으킴으로 손님을 구타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안하무인, 자아도취적 인간인 최곤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매니저 박민수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자율적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민수는 늘 최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처리하는 ‘짝패’이자 최곤의 치기어린 응석을 군소리 하나 없이 모두 받아주는 정신적 기둥이다. 최곤이 잘 나갈 때만 그의 곁에 있어준 것이 아니라 최곤이 나락에 떨어진 지금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다.

 

엔터테인먼트 세계라는 생존 경쟁에서 도태된 최곤이 선택의 여지 없이 마지막으로 다다르게 된 곳은 바로 영월. 그런데 영월은 최곤과 박민수 두 남자에게만 유배지로 작용하진 않는다. PD 석영은 방송사고를 터뜨려 그녀 역시 영월로 낙향했고 지국장은 “영월에서 선한 것이 뭐가 나오겠느냐”고 보는 비관주의자이다. 최곤과 박민수, 그리고 석영과 지국장 모두에게 영월은 늘그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영월을 변방의, 루저의 정서로 끌고가지 않는다. 도리어 영월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다. 뮤지컬 <라디오스타>가 영화와는 달리 독창성을 발휘하는 부분은 바로 이 두 사내가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지점인 영월을 늘그막으로 처연하게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월을 ‘알프스’로 묘사함으로 뮤지컬 <라디오스타>는 이 두 남자에게 비상할 날개를 달아줄 장소가 바로 영월임을 넌지시 암시해준다. 알프스 복식을 한 배우들의 재치발랄하고 흥겨운 퍼포먼스는 관객의 흥을 북돋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걸그룹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감상하는 재미도 숨은그림 찾기처럼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라디오스타>가 독창성을 발휘하는 두 번째 지점은 영화의 화면분할 기법을 연출로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최곤이 영월 주민들의 사연을 송출하는 장면에서 꽃집 총각의 짝사랑, 보건소 간호사, 고스톱판 할머니들의 사연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더라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뮤지컬이라는 재현 예술의 특성을 십분 극대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애로점을 <라디오스타>는 <헐크>처럼 화면분할 방식의 연출로 재현하되 <헐크>처럼 산만하지 않게 연출한다. 도리어 제한된 공간에서 연출 시간을 아낌과 동시에 조연 캐릭터들의 밀도를 극대화함에 성공한다. 빚을 독촉하는 장면에서 정형돈의 멘트를 삽입한 연출과 인터미션 이후 꽃집 총각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배우들이 객석에서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연출, 그리고 최곤과 박민수가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무대 가까이에 앉아 관객을 향해 팬서비스를 하는 연출 또한 인상적이다.

 

 

 

<라디오스타>는 이렇게 기법, 테크닉에만 충실한 뮤지컬이 아니다. 드라마투르기에도 진정성을 발휘한다. 연출의 동선은 인터미션을 분기점으로 추구하는 방점이 나뉘어진다. 인터미션 이전에는 최곤이 영월에서 어떻게 재기하는가를 보여준다면 인터미션 이후의 후반부는 최곤과 박민수의 끈끈한 정을 심도 높게 그려준다. 하지만 감정선의 분기점은 인터미션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지 않는다. 인터미션 이전에 있는, 최곤의 라디오 사연 가운데 다방 아가씨의 사연을 중심으로 방점이 구분된다. 다방 아가씨의 사연이 있기 이전에는 유머와 엔터테인먼트, 캐릭터들의 처연함과 이를 극복하는 비상의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다방 아가씨의 사연을 드러냄에 있어 뮤지컬은 ‘엄마’라는 노스텔지어를 끄집어낸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중간에 이스트리버의 신나는 공연이 있긴 하지만) 뮤지컬 <라디오스타>는 캐릭터들의 감정선 구축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최곤이 라디오 사연을 송출하면서 “혼자서 빛나는 별은 없다”라며 박민수를 눈물로 찾는 연출은 두 인물의 감정선을 구축함에 있어 우정의 극치점을 보여준다.

 

2년 전 대구 국제뮤지컬 페스티벌에서 남우주연상과 대상, 더뮤지컬어워드에서 작곡상과 작사상을 수상한 바 있는 뮤지컬 <라디오스타>의 저력은 이번 재연출의 공로를 힘입어 한껏 업그레이드 되었다. 내년 하반기에 일본과 중국에서 있을 <라디오스타>의 해외 진출에서도 토종 뮤지컬의 개가라는 낭보가 들어오길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쇼플레이. 본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복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