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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0. 12. 7. 23:13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봄작가, 겨울무대’는 2008년부터 차세대 공연예술가를 체계적으로 발굴 양성하기 위해 기획된 라이징스타 프로젝트로 해당 연도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작가들에게 의뢰한 신작을 대학로의 신진연출가와 매칭시켜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제작, 발표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동창생>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친구 남희의 초대를 받은 4명의 동창생은 다음날 남희로부터 끔찍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자살을 하되 남희 본인만 죽지 않고 동반자살을 하겠으니 초대된 친구 중 한 명을 밖으로 내보내라는 전화였다. 동창생들은 남희의 파티에 초대되었을 때부터 이들 관계에는 돈독한 우정보다는 암묵적인 살얼음이 자욱하게 낀다. ‘소울메이저’라고 용어를 잘못 일컫는 유진에게 도영은 ‘소울메이트’라며 면박을 준다. 휴대폰 샐러리맨으로 기죽으며 살아가는 민구는 동창들에게 ‘은따’ 당하는 신세이다. 동반자살이라는 남희의 제안에 동창생들이 살기 위해 제일 먼저 누구를 지목할지는 명약관화하다. 이후 남은 동창생들은 <쏘우> 직쏘의 끔찍한 게임처럼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정죄하며 유독 자신만이 살아서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를 피력한다. 동창생들은 정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찌르고 상처를 준다. 생존의 문제 앞에 직면한 이들은 살아남을 동창을 위해 자발적인 희생을 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짓밟고 모욕을 준다. 이 과정에서 인간 본성의 저열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남희의 작업실을 빠져나와서 과연 누가 살 수 있을까가 궁금한 연극이 아니라 인간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극이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두 번째 작품인 <상자 속 흡혈귀>의 루마니아 흡혈귀들은 <트와일라잇> 속 컬렌 가문 뱀파이어의 생존 방식을 체득하지 못한 듯하다. 컬렌 가문의 뱀파이어들은 백년 이상 되는 수명 덕에 인간 세계에서 유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고 이를 부와 연결시킬 줄 아는 혜안을 가졌기에 인간 세상에서 생존함에 있어 금전적인 문제는 전혀 겪지 않는다. 하지만 연극 속 루마니아 흡혈귀들은 컬렌 가문의 흡혈귀보다 조상 격에 속하는 오래된 흡혈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일차 조건인 생활비 조달 및 재테크에는 매우 무능하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유원지 드림월드 안 귀신의 집 안에서 설정된 귀신 캐릭터로 근근이 생계를 버는 가족이다. 이들 루마니아 흡혈귀는 ‘88만원 세대’와 외국인 노동자라는 두 설정을 투사하는 캐릭터이다. 기거할 지하실을 마련하기 위한 보증금 500만원이라는 금액은 이들에게 너무나도 큰 금액이자 동시에 이들의 뿌리는 한국이 아니라 루마니아라는 머나먼 타국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상자 속 흡혈귀>의 캐릭터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 투성이다. 미봉은 아들이 호숫가에 빠져 죽음으로 말미암아 차디찬 호숫가에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길 주저하는 여자이다. 루마니아 흡혈귀들은 돈이 없어 변변한 지하실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드림월드가 철거되지 않나 염려하며 긍긍 전전하기만 한다. 자유주의 시장논리 앞에서는 인간이 아닌 흡혈귀라 할지라도 강자가 되지 못하는 ‘경제적 루저’로 전락하고 만다. 다문화가정의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현 한국사회에 대한 일침이자, 사채업자라는 자본주의의 독버섯에 의해 흡혈귀를 비롯한 연극 속 캐릭터들이 어떤 비극을 당하는가를 코믹과 니힐리즘의 범벅으로 우리에게 일갈하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