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llet Review

劍聖 2011. 2. 26. 00:13

 

올해 국립발레단이 선보이는 발레 <지젤>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의 낭만주의 발레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서 특기할 사항은 1962년 국립발레단 창단 이래 처음으로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전회 매진이 가능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다. 국내 발레로는 처음으로 파리오페라 버전의 오리지널 안무를 선보인다는 점이 첫 번째 요인이고 두 번째로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가 한국에서 안무 지도를 한다는 점이다.

 

<지젤>에서 1막과 2막의 분위기는 극과 극으로 대조된다. 1막이 사랑의 달콤함에 행복해하는 시골 처녀 지젤을 통해 봄날의 정취와 같은 흥겨움을 한껏 고조시킨다면 2막은 칠흑 같이 어두운 공동묘지를 통해 생전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지젤의 슬픔을 극대화한다. 이렇게 1막과 2막의 무대는 상반된 분위기를 통해 극명한 대비효과를 이룬다.

 

<지젤>은 발레라는 장르를 초월하여 살펴볼 때 푸치니의 오페라 <르 빌리>와 일정 부분에서 유사점을 가진다. <지젤>과 <르 빌리>는 히로인인 지젤과 안나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원령인 ‘빌리’가 된다는 공통분모로 지닌다. <지젤>에서 시골 처녀 지젤은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광기에 사로잡혀 죽은 후 빌리가 되고 만다. <르 빌리>에서도 안나 역시 마찬가지다. 연인 로베르토가 요부에 빠져 안나를 잊고 지내는 동안 안나 역시 상심에 빠져 죽은 후 빌리로 바뀌고 만다. <지젤>과 <르 빌리> 모두 1막에서는 히로인이 사랑의 행복함을 연인에게 빼앗기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다. 지젤과 안나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을 초월한 초월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이승과는 별개의 존재인 ‘빌리’라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지젤>과 <르 빌리>가 동일한 소재인 빌리로 히로인을 치환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극명한 차이점을 보이는 지점은 빌리가 된 두 히로인이 옛 연인을 대하는 태도이다. <르 빌리>에서는 빌리가 된 안나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로베르토를 용서하지 않고 끝내 죽음으로 되갚는다. 안나는 연인 로베르토가 죽음에 다다라서야 그를 용서한다. 즉 자신이 생전에 당한 심적 고통을 죽음으로 되갚은 이후에야 연인을 용서하는, 이승의 사람을 저승으로 끌어들이고 나서야 용서하는 ‘탈리오의 법칙’에 입각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젤>의 지젤은 안나와는 달라도 한참이나 다른 방식의 사랑을 이룬다.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속이고 지젤과 사랑을 나눈 알브레히트의 목숨을 거두기를 바라지 않고 도리어 옛 사랑을 살려주기를 동료 빌리들에게 간청한다. 사랑의 배신을 저지른 대가로 알브레히트가 밤새도록 춰야 하는 춤은 지젤에게 있어선 복수의 기회다. 하지만 지젤은 안나와는 달리 복수를 초월한 사랑을 구현한다. 안나가 연인을 죽음으로 응징하고 최종적으로 연인이 안나 자신과 같은 존재인 죽은 사람이 되고서야 사랑으로 합일하는 것과는 달리 지젤은 연인을 죽음을 통해 자신과 같은 불귀의 객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죽어서 빌리라는 원령이 될 정도로 원한이 뼈에 사무침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시골 처녀를 속임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연인의 부도덕함을 초월하여 연인에게 죽음이라는 ‘복수 제의’를 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랑 이전에 복수라는 제의가 반드시 치러져야 하는 <르 빌리>와는 달리 <지젤>은 복수라는 제의가 성립하지 않는 용서를 통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기할 사실은 알브레히트가 치러야 할 목숨이라는 속죄의 대가는 힐라리온이라는 별개의 타자를 통해 대신 지불받는다는 점이다.

 

흔히 <지젤>을 관람함에 있어 주된 관전 포인트로 1막에서 광기에 사로잡혀 죽어가는 지젤의 연기를 들 수 있다. 하나 2막에서 복수라는 통과의례를 접어둔 채 사랑하는 연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지젤의 사랑에 관전 포인트를 맞춘다면 연인을 향한 지젤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관한 경이로움을 금치 못함과 더불어 마음 한편에 고이 잠들었던 감동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국립발레단. 본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복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