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llet Review

劍聖 2011. 3. 30. 22:15

 

발레 <돈키호테>는 주객이 전도되는 발레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리기 쉽겠지만 이는 <돈키호테>라는 제목이 명시하는 것처럼 돈키호테가 이 발레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의미지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수사법은 아니라는 말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선보이는 알렉산더 고르스키 버전의 <돈키호테> 속 주인공은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딸 카트리이고 정작 돈키호테는 이들의 사랑을 맺어주는 사랑의 전령사에 불과하다.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 캐릭터를 차용하되 이야기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조연에 머무른다. 이렇게 발레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타이틀 롤은 빌리되 세르반테스의 원작과는 달리 바질과 카트리의 사랑을 이어주는 조연으로 돈키호테의 비중을 축소시키면서 두 청춘 남녀의 로맨스를 주축으로 하는 동선을 구축한다.

 

세르반테스의 원작 소설은 17세기 초의 작품이지만 발레는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볼쇼이극장에서 초연이 가능했다. 소설을 타이틀 롤로 함에 있어 무려 200여년 이상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벌어진다. 19세기라는 시대적 사조는 청춘남녀의 연애담을 그림에 있어서도 이전 시기와는 현저한 간극을 보여준다.

 

바질에게 연적戀敵인 가마슈는 바질에게는 없는, 귀족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는 캐릭터이다. 게다가 부자다. 사회계층적 입지로만 놓고보면 빈궁한 바질은 가마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카트리는 아버지의 바라는 바와는 무관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질을 선택하고 그를 사랑한다. 연애담론이 성립하되 귀족이라는 우월적 계층의 특권이 붕괴함을 의미한다. 선술집 딸이라는 카트리의 평민적 지위는 가마슈라는 귀족을 만남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카트리는 신분 상승, 더불어 구애자 가마슈가 부자라는 이점을 마다하고 평민인 이발사 바질과 사랑에 빠진다. 귀족이 될 수 있는 신분 상승의 수혜를 마다하고 이상적인 사랑을 찾는다는 점은 19세기에 들어선 귀족의 지위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전 시기와 같이 평민에게 많은 부분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19세기 귀족상을 바질과 카트리의 연애담을 통해 일정 부분 반영한다. 

 

 

그렇다면 왜 바질과 카트리 두 청춘남녀의 연애담론에 2세기 이전의 기사문학인 돈키호테를 타이틀 롤로 삽입했을까. 이는 돈키호테를 낭만적 연애 로망의 수호자로 역임하기 위한 타이틀 롤로 바라볼 수 있다. 세르반테스가 저술할 당시의 돈키호테는 급변하는 스페인의 시대적 사조에 맞물려 바라볼 때엔 기사도라는 판타즘을 통해 현실의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픈 한 이상주의자의 비애로 바라볼 수 있다. 하나 돈키호테라는 기사문학이 200년 후 낭만적 연애 로망과 조우할 때에는 연애 로망을 수호할 수 있는 기사도적 사명을 부여받은 인물로 돈키호테를 바라볼 수 있다. 돈키호테가 아니라면 그 누가 카트리의 아버지인 로렌조에게 딸의 결혼을 허락하도록 설득할 수 있겠는가 - 로렌조는 구혼남의 외적 조건을 보고 결혼을 허락하는 아버지지만 카트리는 상대의 외적, 물질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는 아가씨로 대변된다.

 

17세기라는 시대적 사조와 맞서던 돈키호테는 19세기와 접목할 때엔 더 이상 급변하는 시대적 사조와 맞서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발레로 접목하더라도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풍차를 적의 기사로 착각하고 마지막까지 허상인 둘시네아를 연모하기 때문이다) 위기에 봉착한 남녀의 사랑을 수호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게끔 만들어주는 기사로 역할이 바뀐다. 연애 로망과 기사도라는, 다소 이격이 있어보이는 두 요소가 결합할 때 이질감이 아니라 이상적인 연애 로망의 완성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승화하는 발레가 바로 <돈키호테>이다. 돈키호테가 사랑의 기사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공로는 3막 2장에서 바질과 카트리의 디베르티스망으로 화려하게 표현된다.

 

(사진 출처: 유니버설발레단. 본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인용 & 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