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llet Review

劍聖 2011. 9. 22. 09:57

20세기 초 중국,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겪은 한 남자가 있었다. 황제로 태어났으나 전범으로 내몰린 남자, 한때는 중국 대륙을 통치했지만 부귀와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남자, 그의 이름은 푸이다. <마지막 황제>는 청 왕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리는 발레이다.

 

1막이 시작되면 날아오는 한 마리 나비를 보며 푸이는 상념에 잠긴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화려했던 푸이의 일생이 한 줄기 주마등처럼 나비를 통해 스쳐 지나간다. 1막 초반부 푸이에게 나타난 나비는 2막 마지막과도 연결되는 수미상관 구조를 갖는다. 또한 현재의 전범인 푸이와 옛날의 황제였던 푸이가 교차하는 방식의 연출도 보여준다. 화려했던 과거와 초라한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의 연출은 수미상관으로 보여지는 푸이의 나비와 더불어 푸이의 일생이 운명에 의해 극적으로 바뀜을 보여주는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또다른 방식의 연출이다.

 

1막에서 푸이의 결혼식 가운데 보여지는 화려한 경극은 중국 고유문화를 강조하는 기법의 디베르티스망이다. 치파오를 착용하고 태극권을 선보이는 시녀들의 군무 역시 중국 문화를 강조한다. 2막의 일본군 군무는 유독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대는 몸짓이 많다. 아시아를 장악하고자 한 대동아경영이라는 일본의 가치관은 제국주의적 야망을 포장하기 위한 궤변이었기에 일본의 정신적 저속함을 강조하는 연출, 혹은 푸이를 괴뢰국인 만주국의 수장으로 앉힌다는 일본의 속셈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단계로 바라볼 때엔 항문기만큼이나 성숙하지 못하고 저열한 방식이었음을 방증하는 연출로 보여진다. 

 

 

<마지막 황제>의 백미 중 하나는 파드되를 통해 보여주는 내면적 심리의 반영이다. 1막 파드되의 정수는 푸이와 서양인 교사 존스턴과의 파드되다. 존스턴은 멘토일 뿐만 아니라 푸이가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푸이로 하여금 모성애를 간접 투사할 수 있게끔 해주던 유모는 궁정에서 축출되고 푸이가 심적으로 기댈 사람이 궁정 안에선 전무했기 때문이다. 남성과 남성이라는 다소 낯선 방식의 파드되는 두 남자의 정서적 공유가 푸이에게 얼마나 간절하게 필요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2막에서 존스턴이 추방당할 때 푸이가 그토록 큰 심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파드되다.

 

2막 파드되의 정수는 속옷 차림의 파드되다. 푸이의 정실인 완롱은 푸이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로움에 침잠하는 여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경비대장은 한 줄기 빛과 같은 남자다. 완롱과 경비대장 두 남녀의 파격적인 파드되는 두 남녀의 불륜을 미화하는 연출이기에 앞서 외로움에 침잠해 있던 완롱을 정서적으로 구해줌으로 육체와 정신의 합일이 이뤄짐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마지막 황제>의 백미는 세 명의 푸이가 선보이는 마지막 장면이다. 현재의 비루한 푸이와 화려한 과거의 푸이, 어린 푸이라는 세 명의 자아가 동시에 선보인다. 세 명의 자아는 푸이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인생무상’이었음을 함축해서 표현한다. 푸이의 인생을 조망하면 푸이의 의지로 인생이 운영되지 않고 역사적 변혁이라는 거대한 운명이 푸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했음을 알 수 있다. 황제에서 전범으로의 나락을 겪은 푸이의 인생무상 연대기를 함축하는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관객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진: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