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llet Review

劍聖 2011. 10. 28. 16:37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상임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안겨준 발레다. 우선 의상 디자인을 살펴보자. 발레의 배경은 분명 서양이지만 의상 곳곳에서 동양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줄리엣의 잠옷에서는 일본의 기모노를, 캐퓰렛 부인의 블랙 드레스에서는 중국의 치파오를 읽을 수 있다.

 

디베르티스망과 같은 소소한 눈요기는 찾을 수 없지만 내면 연기가 무대를 압도한다. 첫 눈에 반한 연인을 향한 사랑의 교감은 섬세한 손놀림으로 우아하게 표현한다. 로미오의 손은 줄리엣의 이마와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쇄골과 가슴, 그리고 그녀의 몸을 사랑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로미오의 사랑스런 시선이 손으로 옮아갈 때 줄리엣은 사랑받는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감지하고 환희의 몸짓으로 로미오에게 화답한다.  

 

 

이 부분은 1막의 클라이맥스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살펴볼 때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대상a로 자신을 내어맡긴다. 로미오는 로잘린을 대체할 대상a로 줄리엣을 대신 찾는다. 하지만 줄리엣은 로잘린을 대체하는 대상a가 아니라 스스로를 대상a로 화함으로 로미오에게 화답한다. 줄리엣은 로잘린을 대신하는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그녀 스스로가 사랑의 대상이 되는 주체성을 발휘한다.

 

각 막의 클라이맥스는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매 막마다 점층적으로 동선이 진행한다. 그리고 그 클라이맥스는 각 막의 마지막 부분이다. 2막의 클라이맥스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 두 사람의 가문이 원수지간임을 재현하는 막이기도 하다. 티볼트는 머큐쇼와 벤볼리오에게 싸움을 걸기 위한 시비를 건다. 머큐쇼와 로미오가 티볼트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티볼트의 손에 머큐쇼가 쓰러지고 만다. 티볼트를 향한 로미오의 관용의 시대는 이제부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이 로미오를 일깨운다. 머큐리의 피가 묻은 붉은 천으로 로미오는 티볼트를 목 졸라 보복한다.

 

2막의 클라이맥스는 동해보복법을 통해 머큐리와 티볼트의 죽음을 극적으로 연출하지만 이는 또한 상상계와 상징계의 균열이 발생함을 보여준다. 로미오는 티볼트를 교살하기 전에 줄리엣과 결혼 서약을 맺는다. 이는 몬테규 가문과 캐퓰렛 가문이라는 불구대천지 원수지간이라는 상징계를 초월하여 젊은 두 남녀가 사랑으로 맺어지는 상상계다. 사랑이라는 상상계 앞에서는 적대적인 가문 지간이라는 상징계는 아무 상관없어 보인다.

 

하나 2막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서 티볼트를 교살하는 로미오를 통해서 상징계가 상상계를 침범한다. 두 남녀가 맘껏 사랑만 할 수 있는 상상계 안에서만 안주하기에는 몬테큐 가문과 캐퓰렛 가문으로 대변되는 원한의 상징계가 버겁기만 하다. 적대적인 두 가문이라는 상징계는 사랑이라는 상상계를 침범하고, 상상계를 향한 상징계의 침범은 3막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막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는 상징계에 침범당한 상상계의 사랑의 파국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통해 극적으로 제시한다.

 

정명훈 마에스트로의 연주는 무용수의 템포와 하나됨으로 무용수가 연기하는 무대 위의 시각적 연출을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청각적 감동과 자연스레 연결시킨다. 올해 단 하나의 발레만 관람해야만 한다면 필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상할 것이다.

 

(사진: 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