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llet Review

劍聖 2011. 11. 14. 09:37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열풍은 올 가을 공연계에서 두드러진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연극과 뮤지컬에 이어 발레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인 발레 <오네긴>은 우리나라에서 발레로 초연되기 전에 영화와 오페라로 만들어진 ‘원 소스 멀티 유즈’ 작품이다.

 

발레 <오네긴>은 원작 소설과 비교할 때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두 부분에서만큼은 엄연히 차이점을 드러낸다. 첫째로 타티아나의 꿈은 소설에선 악몽이다. 하나 발레에선 타티아나의 상상계로 대변하는 로맨틱한 꿈으로 변모한다. 한 눈에 반한 남자 오네긴과의 로맨틱한 2인무는 현실에서는 충족하지 못하는 타티아나의 짝사랑을 꿈이라는 상상계로 변모시켜 표현한다.

 

둘째로는 연애편지를 찢어버리는 연출이다. 이는 원작 소설에선 찾을 수 없는 발레만의 독창적 연출로 2막에서 타티아나의 애틋한 짝사랑이 담긴 연서를 오네긴이 무참히 두 번 찢어버리는 연출은 3막에서 타티아나를 향한 연모를 담은 오네긴의 연서를 타티아나가 두 번 찢어버리는 연출로 반복된다.

 

이는 발레 <오네긴>만이 지니는 고유한 매력이다. 캐릭터만 다를 뿐 상대의 진심어린 사랑이 담긴 연서를 찢는 연출은 발레 <오네긴>에서 동어반복으로 재생된다. 오네긴은 타티아나에게 상처를 준만큼 찢겨진 연서만큼이나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다. 여자의 마음에 칼을 꽂는 남자는 칼을 꽂힌 여자에 의해 자신의 마음에도 칼이 꽂히고 만다. 나쁜 남자는 자신의 젊었을 적 사랑을 차갑게 거절한 응분의 징벌을, 다른 여인도 아니고 바로 사랑을 거절당한 여인을 통해 되돌려 받는다.

 

 

오네긴이라는 캐릭터는 ‘나쁜 남자’다. 2막 1장에서 타티아나가 사랑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연서를 그녀의 눈앞에서 찢어버리는 잔인함도 모자라 렌스키의 연인인 올가를 렌스키가 있는 면전에서 대놓고 희롱하는 처사는 오네긴이 ‘나쁜 남자’임을 방증하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오네긴이라는 캐릭터를 형성함에 있어 ‘나쁜 남자’ 개념을 바이런이즘에서 따오긴 했어도 뼛속까지 나쁜 남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만일 오네긴이 뼛속 깊이 나쁜 남자였다면 2막 2장에서 렌스키와의 결투를 앞두고 렌스키를 설득하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네긴은 바이런이즘에 입각한 ‘나쁜 남자’지만 그럼에도 ‘뼛속까지 나쁜 남자’는 아니다. 이는 타티아나가 사랑했던 남자를 철저하게 나쁜 남자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타티아나 역시 젊은 시절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 나쁜 남자 오네긴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다. 만일 오네긴을 완전히 뇌리에서 지우고 싶었다면 3막 2장에서 오네긴의 구애를 힘겹게 뿌리친 후 홀로 남아 오열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이다. 타티아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오네긴이 자리 잡았던 게다. 발레 <오네긴>의 정수 가운데 정수는 바로 타티아나가 흐느끼는 마지막 장면이다. 오네긴의 구애를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젊은 시절 오네긴을 향한 사랑의 불씨가 아련하게나마 남아 있던 타티아나의 양가감정은 홀로 남아 흐느끼는 극적인 연출로 표현된다.

 

3막 2장에서 마지막에 홀로 남아 절규하는 타티아나를 보면 피천득의 ‘인연’ 가운데 마지막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인연’ 속 마지막 문구는 타티아나의 양가감정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콕 짚어내는 문구다.

 

(사진: 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