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2. 1. 6. 09:47

마라톤이라는 스포츠에 있어 주만호(김명민)는 냉철하게 표현하면 ‘소모재’다. 주만호 본인이 42.195km 완주를 통해 제 기량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우승 후보 선수의 기록 향상을 위해 30km까지 우승 후보 선수의 페이스를 맞춰주는 ‘소모재’다. 소모재는 어디까지나 소모재일 뿐, 주만호의 완주 달성에 관해서는 주만호 본인을 제외하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페이스 메이커>는 주만호가 페이스 메이커를 넘어서서 완주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마라톤의 조연이 조연에 머무르길 거부하고 주연으로 우뚝 서길 원한다. 이 점은 <페이스 메이커>를 움직이는 주요한 동인이다.

 

 

<페이스 메이커>는 최근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전략적으로 흔하게 다루는 ‘루저의 정서’와 밀접하게 맞닿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비록 경기에선 졌을지라도 은메달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경기 결과에 근간하는 루저의 정서를 다룬다면 <페이스 메이커>는 <국가대표>나 <챔프>처럼 핸디캡을 가진 개인의 층위로부터 루저의 정서를 다져간다.

 

선수 생활을 재개하기 전에는 친구 종수(조희봉)가 운영하는 통닭집에서 배달하며 근근이 생활을 영위하는 루저로(여기서 주만호가 루저의 층위에 있다는 의미는 주만호의 사회적 계층이 저소득층에 머무르기 때문이 아니다. 친구 가게에 얹혀살기 전에 박성일 감독이 소개시켜 준 지도자의 길을 주만호가 스스로 저버렸기 때문에 루저라는 표현을 쓴다), 선수촌에 입단해서는 후배에게는 존경받기는커녕 ‘삼발이’라는 조롱거리가 되는 루저다.

 

<페이스 메이커>에서는 루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인간 승리를 달성한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동인이 중요하다. 부상에 시달려 마라톤 완주도 하지 못 할 불편한 다리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에 있어 전성기를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꿈인 완주를 위해 달려가는 주만호를 통해 관객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영화는 루저라는 서글픈 정서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인간 승리라는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노력한다.

 

<페이스 메이커>에 있어 주요한 동인인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불굴의 정신은 가족사와 결합하는 구조를 갖는다. 동생 주성호(최재웅)는 주만호에게 있어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다. 부모 없이 자라는 두 형제는 어린 시절 형 주만호가 달리기 경기에서 2등을 해야만 라면 한 박스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는 달리기 시합에서 2등을 하고 라면 한 박스를 상품으로 받는다(어린 시절의 주만호가 2등을 해야만 하는 설정 자체는 냉정하게 비평하면 십여 년 전 개봉한 이란 영화와 매우 흡사하다. 이는 시나리오의 독창성 상실이다). 그리고는 라면으로 동생과 모처럼의 만찬을 즐긴다.

 

<페이스 메이커> 속에서 소개되는 동생과의 긴밀한 우애는 런던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 주만호가 무너지는 순간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동생과의 우애는 신파적 정서와 맞닿는다. 주만호는 동생 하나밖에 모르는 세칭 ‘동생 바보’다. 동생 주성호는 형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다. 한데 이 점이 주성호에겐 콤플렉스다. 형의 정성과 뒷바라지에 고마워하기는커녕 형을 아주 부담스러워한다. 자신을 향한 형의 지나칠 정도의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형이 선수촌에서 짬날 때마다 전화하는 것도 동생에겐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던 형은 그간 동생의 부담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아파한다.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형의 마음이 동생에겐 고마움으로 와 닫았던 것이 아니라 부담 백배였다는 동생 주성호의 사연이 형으로 하여금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끔 만든다. 문제는 왜, 무엇 때문에 형의 애정이 동생에겐 그토록 콤플렉스로 남느냐 하는 부분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한데 영화는 이에 대한 답이 부재한다. 동생이 마음의 상처로 받아들일만한 부분이 없음에도 영화는 왜 동생이 형의 애정을 그토록 부담 백배로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설명이 미약할 따름이다.

 

또 하나를 지적코자 한다. 이런 형의 동생을 향한 애정이 콤플렉스로 작용했던 주성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콤플렉스를 떨쳐버리고 런던 올림픽에서 형을 향한 애정으로 화답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주성호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형의 한없는 무한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이 콤플렉스를 승화시키는 시퀀스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생략화법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그럼에도 주성호는 형을 향한 콤플렉스를 승화 과정 하나 없이 형제애로 받아들이고 마라톤에서 기진맥진한 형을 구사일생으로 회생시킨다.

 

이는 동생 주성호가 그간 가졌던 콤플렉스를 형제애로 승화시킴으로 대회 기권 직전의 형을 구한다는 설정이다. 루저의 인생 역전기는 형제애와 맞닿고 형제애는 신파와 맞닿는다. 신파가 감동 강박증과 조우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페이스 메이커>의 문제는 형의 사랑이 왜 동생 주성호에게 있어선 왜 콤플렉스로 작용했는지(동생을 향한 형의 사랑 자체를 짐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콤플렉스로 주성호에게 작용했다는 설정은 참으로 미약한 답변이다), 그리고 동생의 콤플렉스가 무슨 계기를 통해 형을 향한 형제애로 승화하는지에 관해선 영화가 침묵한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의 최근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라면 신파라는 기제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 마냥 이상하리만치 신파적인 연출을 꾸준하게 선호한다. 이런 신파 선호증은 신파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장르인 <무방비도시>나 <카운트다운> 같은 엄한 장르에서도 애용되기 일쑤 아니던가. <페이스 메이커>도 신파 강박증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페이스 메이커> 속 형제의 신파 라인이 플롯의 개연성을 위해 얼마만큼 적절한 처방전일지는 이 영화를 접하는 일반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