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劍聖 2012. 3. 24. 23:37

당신은 선비라는 단어를 접할 때 맨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인가? 지조? 의리? 혹은 청빈? 숭유?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맨 먼저 연상케 만드는 것이 조선 시대 선비라는 단어다.

 

하나 더, 최근에 이루어진 선비에 대한 평가를 보면 거의 한 쪽으로 치우쳐 칭송 일색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선 왕조에 대한 평가, 유교에 대한 평가에 있어선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선비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거의 대부분이 칭송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저자인 계승범 교수는 이를 두고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로 선비를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이는 선비의 의리 및 지조에 감동해서, 어떤 이는 선비의 안빈낙도적 인생관에서, 어떤 이는 면전에서 왕을 꾸짖을 만큼의 기개를 선비가 가졌기 때문에 칭송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선비의 특정 사안만을 바라보고 그 특정 사안을 선비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게다. 선비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서 정치적이고도 역사적인 평가를 더해 총체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선비가 일생 동안 공부하고 실천한 두 가지 핵심 가치는 ‘수신’과 ‘치국’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선비가 조선을 다스렸던 ‘치국’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계승범 교수는 조선왕조를 5백여 년 동안 독점적으로 다스린 세습 지배 계층이자 권력가였던 선비가 조선을 어떻게 이끌었는가 하는 ‘치국’의 관점에서 선비를 조망한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는 긍정적인 용법보다는 부정적인 용법의 타이틀이다. 그렇다면 계승범 교수는 선비의 ‘치국’을 긍정적으로 보겠는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겠는가? 타이틀이 부정적인 용법이지 않은가?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선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조선을 다스리는 지배 계층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태만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조선 시대 지배 계층이자 지식인이던 선비는 본연의 임무에는 태만하고 국가를 이끌어갈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부재한 이들이라고 평가한다.

 

또 다른 역사 청산

필자로 하여금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에 대해 글을 쓰게 만든 건 ‘5장, 유교적 선비와 21세기 대한민국’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 협조한 친일 세력을 21세기 들어서도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에서 계승범 교수는 이도 모자라 역사 청산 대상에 있어 기존에 우리가 알던 친일파 외에도 또 하나의 관점을 보탠다. 아니? 친일파도 모자라서 또 하나를 더? 그건 바로 선비다. 선비를 역사 청산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명과 청이 바뀌는 국제 질서 가운데서 선비는 중국의 새로운 주인인 청을 정신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비록 인조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굴욕을 했다 할지라도 선비들의 마음 가운데에는 친명배금, 만주족을 멸시하고 멸망한 명을 정신적인 지주로 받드는 소중화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는 청을 섬기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명을 숭상하는 아이러니가 선비의 사상 가운데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예학의 발전과 주자학의 교조화를 가속화시킨다. 실리를 배격하고 배타적이고 의리적인 사유 체계를 선비가 숭앙함으로 조선 왕조는 국제 정서와는 상반되는 가치관을 수호하다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급격하게 국력이 쇠퇴하고 이는 결국 조선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

 

이들 선비는 소중화주의에 빠지는 오류만 저지르지 않았다. 선비의 배타적인 사유 체계가 당시 급변하는 국제 정서와는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정신적인 오류였다면, 선비의 상공업 천시는 조선의 생산력을 약화시키는 물질적인 오류다.

 

선비는 중국의 사대부보다도 상공업을 통제하고 천시했다. 이는 이웃 일본이 활발한 상업으로 성공적인 상업 국가로 변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의 상공업을 낙후시키고 쇠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내수에 만족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는, 무역의 소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조선의 전반적인 생산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렇게 조선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친 선비는 역사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구한말에 접어들어 도리어 애국자로 평가받는다. 전봉준의 동학농민봉기만 하더라도 적대관계이던 농민과 선비는 일본이라는 외세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는다.

 

위정척사 선비의 항일투쟁은 조선 시대 지배층의 의무이던 군역을 회피한 처사와는 매우 상반된다. 선비가 군역을 피하는 방식은 상당히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향교의 교생이 되어 학생의 신분이 되거나 혹은 업유(유학 공부를 업으로 삼는다는 의미)를 자칭함으로 최대한 군역을 회피했다. 심지어는 임진왜란이라는 개국 이래 최대의 국난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의 군역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비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군역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외면했던 선비, 조선 국권의 상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하는 선비는 항일투쟁으로 말미암아 졸지에 애국자로 둔갑한다. 무능한 선비 통치 문화를, 이를테면 동학농민봉기와 같은 계기를 통하여 청산했어야 하지만 우리 역사는 선비 통치 문화를 청산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역사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인 선비가 도리어 애국자로 탈바꿈하고 만다.

 

선비 세력은 역사 앞에 행한 과오를 청산해야 하건만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여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까지 겹치고 마는, 우리 역사 청산의 딜레마를 계승범 교수는 쾌도난마로 일갈한다. 역사적 트라우마가 남아 작동하는 한에 있어서 식민사관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진: 역사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