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lay Review

劍聖 2012. 3. 25. 21:38

인간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불합리한 것은 지성을 통해 걸러내고 합리적으로만 생각한다고 말이다. 혹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적어도 나만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더더욱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말은 정답이 아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건 맞지만 모든 부분에 있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사건을 바라봄에 있어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만 믿고 자기가 믿고 싶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는 객관적이지 않은 심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몰리에르의 유쾌발랄한 사회 풍자극 <위선자 따르뛰프>는 ‘확증 편향’이라는 관점으로 관찰할 수 있는 희극이다.

 

<위선자 따르뛰프>에선 따르뛰프가 언제 나타날까를 기다리다가는 목 빠지기 쉽다. 따르뛰프는 극의 중반이 되도록 나타날 생각을 좀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남자가 간절하게 바라는 ‘고도’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도 비슷하다. 극의 초반과 중반은 오르공과 그의 가족, 그리고 재치 발랄한 오르공의 하녀들 혹은 요정들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귀족 오르공의 집에 식객으로 있는 따르뛰프는 성자聖者다. 틈날 때마다 기도를 하고 말할 때마다 항상 신을 들먹인다. 한데 정말로 따르뛰프는 신의 품 안에 있는 걸 즐거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진짜 성자일까? 아니다. 따르뛰프는 사기꾼이다. 귀족 오르공의 재산을 노리고 기회만 엿보다가 오르공의 허점이 드러나면 언제든지 등칠 준비만 하는, 성자인 척 하는 사기꾼이다.

 

하지만 오르공은 따르뛰프가 이런 부류의 인간인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따르뛰프를 믿고 따른다. 따르뛰프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따르뛰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하지만 오르공의 집안 사람들 중에서 오르공을 빼고 따르뛰프를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글쎄.. 오르공의 딸인 마리안느는 아버지 오르공이 따르뛰프에게 시집가라고 하자 펄쩍 뛴다. 마리안느에겐 이미 애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르뛰프가 성자라고는 하지만 따르뛰프가 정말 성자인지는 상당히 미심쩍기 짝이 없다.

 

마리안느의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성자인 체 하는 따르뛰프가 오르공의 아내 엘미르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자고로 성자라면 남의 아내를 유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기꾼 따르뛰프는 겉으로는 성자인 척 하면서 속으로는 남의 아내를 건드릴 엉큼한 생각만 한다.

 

따르뛰프가 어머니와 잠자리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된 오르공의 아들 다미스는 당장 따르뛰프를 쫓아내려 한다. 하지만 쫓겨나는 건 어머니를 유혹한 사기꾼 따르뛰프가 아니라 다미스다. 어리석게도 다미스의 아버지 오르공은 아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자신의 아들보다 사기꾼 따르뛰프를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 다미스는 분명히 따르뛰프가 어머니 엘미르를 유혹하려 하는 걸 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아들의 말 - 사기꾼이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 당장 따르뛰프를 내쫓아야 한다. 하지만 오르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확증 편향’ 때문이다.

 

따르뛰프가 하는 말은 무조건 옳은 말이고 따르뛰프가 하는 행동은 무조건 바르고 거룩하다는 생각이 오르공의 머릿속에 깊숙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오르공은 ‘확증 편향’ 때문에 바른 말을 한 아들을 내쫓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리고 만다. 희극 하나를 관람하면서도 심리학을 관찰할 수 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희극 속 인물이 오르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