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劍聖 2012. 3. 27. 09:57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제프리 다머의 살인,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끔 만든 강호순 혹은 유영철의 연쇄살인, 캄보디아인이라면 혀를 내두를 폴 포트의 가혹한 동족 살상과 같은 악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트라우마? 뇌 구조의 이상 혹은 타고난 악의 유전자?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인 라인하르트 할러 교수는 감방에 수감된 죄수 300여 명과 1년 이상의 인터뷰를 거친 후 <아주 정상적인 악>을 집필한다.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사람의 기원에 관하여 아리스토파네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태초에 만들어진 사람은 하나의 성性이 아니었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성이 한 몸 안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신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붙어있는 양성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태초의 사람이 신에게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제우스는 사람을 나누기로 결정한다. 남자와 여자로 나누기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가지 성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악을 설명함에 있어 뜬금없이 플라톤의 <향연>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할러 교수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 있는 극단적인 악의 기질은 정신질환자와 인격 장애자, 사디스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향연>에서 언급한, 태초의 사람이 남녀의 몸을 함께 가진 것처럼 정상인에게도 악의 본성이 함께 있다고 본다. 대량 학살자의 5-10%만이 사이코패스 혹은 극단적인 나르시시즘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을 뿐 나머지는 정상인과 다름없다.

 

수백만의 유태인을 가스실로 내몰았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살펴보더라도 그를 조사한 감정관은 - 감정관 자신의 정신 상태보다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가 더 정상이라고 진단할 정도였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한 아버지이자 남편이, 누군가에게는 일가족을 몰살하는 인간 도살자가 되는 양쪽의 극단이 한 사람의 몸 속에 있는 게다.

 

악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따로 있을까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잠자고 있던 악을 일깨움으로 범죄를 저지르게끔 만드는 유전자는 따로 있는 걸까? 아직까지는 악과 유전자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작업에 있어 획기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오늘날의 연구 수준에 적합한 결론을 내리자면 범죄가 사람의 유전자나 다른 생물학적 요소를 통해 결정되고 유전자 속에 악의 자리가 있다는 생각은 멀리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는 달리 폭력적인 범죄는 폭력적이지 않은 범죄보다 유전적 영향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기나 공갈 범죄와 같은 비폭력 범죄가 강도나 살인과 같은 폭력 범죄에 비해 유전적 영향이 높다는 아이러니다.

 

그런데 범죄는 유전자 하나로만 이뤄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와 환경 두 가지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발생한다. 아직까지는 악한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악의 원인이 사람의 유전자 가운데 숨겨진 것도 아니다.

 

악을 잡으려다 생사람 잡을 수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을 보면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사람을 찾아내서 체포하는 프리크라임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지금의 사법시스템과 비교한다면 지금의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체포하지만 프리크라임은 범죄를 ‘저지를’ 사람을 체포하는 것이 차이다. 자기가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단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당한다.

 

만일 유전과학과 뇌 과학의 발전 덕분에 악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과학자들이 마침내 찾아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프리크라임에게 체포당하는 예비 범죄자처럼, 악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악의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악에 대해 단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악의 유전자를 식별하는 기술이 탄생하면 사람들은 살인이나 강도, 성폭행의 염색체나 도둑이나 사기꾼, 공갈범의 유전자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하여 선별적인 검사를 하려고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검사를 통해 악의 유전자를 가졌다고 판명되면 그 사람은 심각한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악의 유전자를 판명할 수는 있어도 악의 유전자를 변화시킬 기술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단지 악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예비 범죄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다닐 가능성이 높다.

 

위의 이야기는 흡사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악의 유전자를 찾아내거나 뇌 과학의 발달로 범죄 유발 가능성이 높은 뇌 구조를 찾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주 정상적인 악>은 범죄자들이 저지른 다양한 방식의 범죄 나열에 그치는 수준의 책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주홍글씨’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만일 악의 유전자를 판명할 기술이 나온다면 세상은 - 유전자 판별을 통해 개인이 저지를 악을 사전에 예방하려다가 사회나 집단이 악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통제하거나 차별하는 식의 파시즘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된다면 그 사회는 악의 가능성을 가진 개인을 솎아내려다가 조지 오웰의 <1984>가 경고한 ‘빅 브라더’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개인의 악을 방지하려다가 파시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사진: 지식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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