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2. 7. 4. 10:16

역사적 사실인 ‘팩트’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는 것을 ‘팩션’이라고 한다. <더 레이븐>은 팩션이다. “신이시여, 내 불쌍한 영혼을 돌보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등진 천재 작가 에드가 앨런 포(존 쿠삭)의 생애를 그리되, 포의 마지막 5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픽션적 상상력으로 첨가하는 영화다.

 

 

<더 레이븐>은 뮤지컬 <잭더리퍼> 혹은 조니 뎁의 <프럼 헬>처럼 연쇄살인마의 살인 행적을 상상력으로 첨가한다. 살인마가 포의 소설을 모방하여 연쇄살인을 벌이고, 포와 수사관 필즈(루크 에반스)가 살인마를 뒤쫓는다. 에드가 앨런 포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연쇄살인이라는 ‘가공’이 추가된다고 보면 된다.

 

<더 레이븐>은 ‘버디 무비’다. 애드가 앨런 포와 필즈라는 두 남자가 팀워크를 이뤄 연쇄살인범 검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함께 수사하기 때문이다. 범인이 포의 소설을 모방하여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기 때문에 필즈는 포를 수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로 생각하고 살인현장에 항상 포를 대동시킨다. 경찰도 아닌 일반인인 포가 필즈에게 받은 권총을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는 건, 한때 육사에 발을 담근 적이 있던 실제 포의 행적을 정당화하는 픽션적 설정이라 보면 된다.

 

연쇄살인마가 포의 소설 속 설정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철학으로 조망하면 플라톤의 ‘이원론’, 혹은 ‘시뮬라크르’로 바라볼 수 있다. 포가 집필한 <모르그가의 살인>이나 <함정과 진자>,<붉은 죽음의 가면> 등은 플라톤의 이원론으로 보면 ‘이데아’다. 포의 작품이 집필되지 않았다면 살인마는 포의 작품을 따라 살인 행각을 벌이지도 못하고 살인마의 마음 가는대로 사람들을 도살했을 게다.

 

포의 작품이 플라톤의 ‘이데아’에 해당한다면, 포의 소설을 모방하여 현실에서 포의 소설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는 살인 행각은 ‘시뮬라크르’ 또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그림자’가 된다. 그런데 시뮬라크르의 핵심 중 하나는, 모방한 대상이 원형, 즉 이데아를 별 것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저력에 있다. 원형을 모방하게 되었을 때 원형은 더 이상의 아우라를 발휘할 수 없다. 원형의 아우라를 모방한 대상이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마의 시뮬라크르도 마찬가지다. 포의 소설이 오리지널, 원형이지 살인마의 연쇄살인은 이데아를 흉내낸 그림자, 시뮬라크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쇄살인이 계속 터질 때마다 발행되는 포의 소설은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왜? 연쇄살인마의 살인 행각에 편승해서 포가 돈독이 올라 소설을 내놓는다고 사람들이 욕하기 때문이다. 포의 소설이 이데아인 몸통이고, 포의 소설을 따라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 시뮬라크르, 꼬리지만 이 꼬리 때문에 몸통인 애드가 앨런 포가 욕을 먹는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더 레이븐>의 시추에이션은 유럽의 재정 위기, 즉 EU의 꼬리에 불과한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이 세계 경제라는 몸통을 뒤흔드는 요즘의 경제 위기 세태와 닮은 점이 많다. ‘시뮬라크르’에 불과한 살인마의 엽기 살인이 ‘이데아’인 포를 물 먹이는 것처럼, 요즘 남유럽의 심각한 재정 위기는 세계 경제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쥐락펴락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