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2. 7. 7. 12:15

제목을 통해 감 잡았겠지만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일본의 고유한 문화 코드 가운데 하나인 애니미즘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래 된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요괴가 인간과 공존하고 인간을 도와준다는 이야기 구성 자체도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익숙한 설정 아니던가.

 

 

뭐, 이는 판타지를 다룸에 있어 초자연적 존재를 익숙하게 다루어 온 지브리 스튜디오와 조우한 영화이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브리 스튜디오 속 요괴들은 인간의 성장을 돕는 판타지적 소재로 애용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요괴 버스’는 낯설지가 않은데, <이웃집 토토로> 속 ‘고양이 버스’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요괴 버스’와 오버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괴 버스’는 왜 등장할까. <이웃집 토토로>를 되새기기 위한 ‘고양이 버스’의 변주만은 아닐 텐데 말이다. 지브리 스튜디오 가운데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악령이기보다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선령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모네 집 다락방 요괴 3인방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먹을 음식을 허락 없이 훔쳐 먹는 말썽을 피우기는 하지만 이들이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존재는 아니다. ‘요괴 버스’ 역시 주인공 모모를 위기로부터 구해주는 수호천사 같은 역할을 한다. 다락방의 세 요괴가 인간의 세계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까지 어겨가며 인간을 도와준다는 건 이들 초자연적 존재가 인간과 괴리할 때엔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걸 반증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요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빌려 이 영화가 말하고픈 건 무엇일까. 가족주의, 혹은 성장담일 게다. 모모의 아버지는 딸인 모모와 직접적인 소통을 그리 잘 하지 못한다. 딸과의 대화를 통해 딸의 서운함을 풀어주지 못하니 편지라는 간접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그저 “모모에게”라는 운만 띄운 채 편지를 통해서도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질 못한다.

 

 

모모도 아직은 어린 나이인지라 아빠와의 소통에는 서투르긴 마찬가지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요괴라는 소재를 빌어 아빠와 딸의 소통 및 화해를 이룬다. 영화 속 요괴는 가족주의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판타즘적 장치다.

 

인간사에 개입하면 안 되는 룰을 어겨가면서까지 인간을 도우려고 하는 것은 요괴 이와가 모모에게 잘못한 사건을 뒷수습하는 차원이면서 동시에 아빠와 딸의 못 다 이룬 소통을, 판타즘적 요소라는 극적인 요소를 통해 완성코자 하는 극적 장치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혹은 카톡과 같은 통신 수단은 삐삐만 있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발달했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예전처럼 소통은 원활하지 않은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도리어 이전 시대보다 소통을 갈구하는 시대가 요즘 시대가 아닐까 싶까.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디지털도 해결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딸 사이의 소통을 초자연적 존재가 매개해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그리워하는 건 비단 가족과 가족 사이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